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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다시 만날 생각 없다면서 사진은 계속 보내는 구남친 외 1편

by 무한 2015. 3. 11.

내 치과치료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제는 드디어 사랑니를 발치했는데, 내 입술을 지렛대 삼아 발치한 까닭에 이를 뽑은 자리보다 입술이 더 아팠다. 의사는 발치할 자세가 안 나오는지 내 왼쪽으로 갔다가, 또 오른쪽으로 갔다가 하며 움직였다. 잡고 있던 내 사랑니를 두 번이나 놓쳤는데, 난 하마터면

 

"서, 선생님. 집중해서 한 번에 가죠. 

제 입술은 마취된 게 아니잖아요….

입술만은 제발 살려주세요."

 

라는 이야기를 할 뻔 했다.

 

그간 매뉴얼을 통해 치과치료의 고통스러움을 몇 번 이야기 했더니, 몇몇 독자 분들께서는 병원을 잘못 선택한 것 아니냐며 다른 병원으로 옮기길 권해주셨다. 그 독자 분들께는 이 병원이 그렇게 나쁘진 않으며, 이제 치료 종료까지 두 번 남은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어금니를 너무 날카롭게 갈아 놓아 혀가 베이고, 마취를 제대로 못 해 극한의 고통을 맛보고, 또 간호사는 썩션기를 너무 내 목구멍 깊숙이까지 넣어 토할 것 같지만, 의사가 긴장할수록 숨소리가 거칠어져 지금 뭔가가 잘 되고 있는지 잘 안 되고 있는지를 금방 알 수 있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병원이다.

 

별로 궁금하지 않을 내 치과치료 얘기는 이쯤하고, 오늘의 매뉴얼 출발해 보자.

 

 

1. 다시 만날 생각 없다면서 사진은 계속 보내는 구남친.

 

미안하지만, 다시 만날 생각 없다면서 사진은 계속 보내는 구남친의 태도보다, 그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진을 보내는 거냐고 내게 묻는 김양의 질문에 난 더 어리둥절하다. 헤어진 이후 둘이 대화했던 내용들을 보자.

 

[김양이 한 말]

"사진 잘 받았어. 고마워. 사진들 다 받을래. 보고 싶어 다.

그냥 오빠 여유될 때, 하나하나씩 보내줘."

 

[구남친이 한 말]

"컴퓨터 하드 날아가서 그냥 이참에 사진도 다 지워지고,

차라리 잘 된 거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얼마 전에 데이터 복구하다가 사진들도 같이 복구가 되더라고.

다시 지우더라도 이건 네 사진들이니 줘야겠다 했어."

 

남친이 계속 사진을 보낸 원인과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가? 그가 사진을 보내게 된 건 데이터 복구하는 과정에서 사진이 되살아났으니 보낸 거고, 또 김양이 여유 될 때 하나하나씩 보내달라고 했으니까 하나하나씩 보내준 거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김양은,

 

"그건 저도 알아요. 그거 말고, 진짜 속마음이요."

 

라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바로 김양의 그런 태도가 둘의 이별사유가 된 것이라고 난 말해주고 싶다.

 

김양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만 생각하며, 해석하고 싶은 대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연애 중 남친이 계속 가리켰던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넌 어차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잖아."

 

김양과 같은 태도를 보이는 사람과는, 아무래도 의사소통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김양이 친구와 한 시간 넘게 대화를 해서 이제 겨우 서로의 합의점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때 친구가

 

"어쨌든 난 꼭 이렇게 해야겠어. 이렇게 안 할 거면 나도 안 해."

 

라고 말하면 김양의 기분은 어떨까? 그러면서 친구가

 

"그래서 결국 결론은, 넌 내가 하자는 걸 안 하겠다는 거잖아.

난 네가 하는 모든 말이, 그런 의미로 하는 거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

 

라는 이야기까지 한다. 그럼 김양도 친구고 우정이고 다 때려치우고, 이 답답한 상대와는 그냥 절교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김양의 남친 역시 가장 마지막에 보낸 메일에서, 정확히 이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상대에게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자기 상상 속이든,

아니면 외부의 어떤 모습이든 간에 멋대로 설정해 놓고,

끊임없이 그런 모습이 되길 바라고 원하고 강요한다면,

그것에 못 미칠 경우 실망과 원망하는 마음이 앞서게 되고,

두 사람 다 낙담과 포기를 하게 되는 건 당연한 것 같아."

 

속된 말로, '말을 해봐야 씨알도 안 먹히니' 상대가 내려놓은 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더불어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말 자르기', '방어적 태도로 대화하기', '변명하기' 등의 부수적인 문제들이 고개를 들어 더욱 악화된 것이라고 봐도 되겠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긴커녕 듣는 즉시 방어할 말만 떠올리고, 일단 뭐라고 라도 변명을 해 '비긴 것'의 상황을 만들려고 하고, 그러다 상대가 체념하려 하면 이별로 위협했던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2. 마음엔 드는데 어색한 소개팅남, 어쩌죠?

 

일산 주민의 사연을 보니 반갑네. 희영씨 백마마을 살면 마두 1동 사무소 옆 육교도 알겠네? 거기 밑에 보면 배전함에 'MOOHAN'이라는 낙서가 있을 거야. 그거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한 태깅인데 아직도 있더라고. 왜 그런 낙서 했냐고? 그땐 어린데다 힙합에 빠져 있을 때라 그렇게 영역표시를…. 아, 그리고 백마마을에서 마두역 쪽으로 걸어가는 공원길 있잖아, 거기 가다보면 조각상 중에 일자로 여러 개 세워져 있는 거 있는데, 그 중 가장 높은 곳에 내가 500원 올려놨어. 애들하고 동전 던져서 거기 딱 안착시키는 내기 했었는데 내가 성공했지. 또, 마두역 광장에 돌로 만든 벤치들 있잖아. 그거 왜 그따위로 만들어 놨냐고 사람들이 불평하던데, 그거 위에서 보면 말 마(馬)자야. 나름 창의적으로 그렇게 만든 것 같은데, 앉아서 쉬기 불편하긴 하지.

 

마두 1동 바이더웨이 뒤편에 분식집 있는데 거기 부대찌개가 맛있어. 뚝배기에 주는 부대찌개인데 독특해. 노래방은 강촌마을 쪽으로 가다가 K노래방 있는데, 거기 가면 만이천 원 내고 목에서 피나올 때까지 부를 수 있어. 거기 주인아저씨랑 밤가시마을 B노래방 주인아저씨랑 친구야. 분식은 마두역에 있는 여러 노점 중 파란천막 집이 제일 맛있었는데, 지금은 천막이 다 없어지고 박스형으로 바뀌었더라고. 그래서 잘 모르겠다. 백석역 근처에 무한리필 닭갈비 있었는데 거기도 문 닫았고. 어익후, 이제 보니 반가워서 일산얘기만 벌써 두 문단이나 적었네. 아래에서 바로 매뉴얼 시작할게.

 

먼저, 소개팅남이

 

"회사에서 집까지는 13km 정도 돼요."

 

라고 말 한 부분 있잖아. 저것만 봐도 일단 그가 이성을 대하는 것에는 전혀 훈련이 안 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예컨대, 초짜 보일러 영업사원은

 

"이 제품은 무슨무슨 기술을 이용해서 열효율을 높였고,

어떤 효과가 일어나서 몇 도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라는 식으로 설명하거든. 그런데 많은 경험이 있는 영업사원은

 

"가스비가 거의 절반으로 줍니다.

그리고 겨울에 속옷만 입고 있어도 뜨끈뜨근 합니다."

 

라는 식으로 설명을 해. 만약 희영씨 소개팅남이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버스타고 몇 정거장이라든가, 아니면 몇 분 걸린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겠지. 대답하는 것도 그래. 그는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학생처럼 말하거든. 희영씨가 "혹시 뭐뭐 하세요?"라고 물으면, 그는

 

"네. 뭐뭐 해요."

 

라는 대답으로 끝내지. 이게 희영씨한테 관심이 없어서 그러는 건 아니야. 상대가 계속 선톡도 하고 오랜 시간 희영씨랑 대화하기도 하잖아. 그래서 희영씨는 더 헷갈려하는 것 같은데, 몰라서 저러는 거야. 적은 나이도 아닌데 왜 저렇게 모를까 하고 상대의 신상을 봤더니,

 

'남중-남고-군대-공대'

 

솔로부대 엘리트 코스를 밟은 부대원이네? 그럼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내가 외국인과 대화할 때 대부분의 대답을 'Yes / No"로 하는 거랑 비슷한 거야. 대화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나도 막 유창하게 농담 던져가며 대화하고 싶은데, 안 되는 거지. 마음으로는 "아 정말요? 저도 지금 정말 먹고 싶긴 한데, 방금 결혼식장에서 뷔페음식을 먹고 와서 먹기가 좀 곤란하네요. 다음에 같이 먹어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노 땡큐."하고 마는 거지.

 

그래서 이건 어쩔 수 없이 희영씨가 멍석을 자꾸 깔아줘야 해. 영화 얘기를 꺼내도 상대가 눈치 없이 "네. 봤어요."하고 마는 게 참 당황스러울 수 있겠지만, 그런 순간에도 긴장하거나 당황하지 말고 말을 좀 더 이어나가야 해. 그리고 뭔가를 얘기했는데 대답만 하고 리액션이 없으면, 일부러라도 "저도 이제 저녁 먹어요."라는 식으로 한 마디 해주면 돼. 그럼 '아, 내가 대답만 하고 안 물어 봤구나.'하고 상대가 묻기 시작할 거거든. 이렇게 차근차근 맞춰 가면 될 거야.

 

상대가 솔로부대 엘리트 코스를 밟은데다 서울이나 일산의 지리까지 잘 모르는 까닭에 희영씨가 더 당황스러울 수 있어. 상대가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문제가 겹친 거니까. 그래도 나쁜 사람 아니고 계속 희영씨에게 관심을 보이며 친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니까, 일산의 느낌은 어떤지, 신촌의 느낌은 어떤지, 종로의 느낌은 어떤지, 강남의 느낌은 어떤지 등을 같이 만나서 좀 알려줘 봐봐. 상대가 데이트 코스를 짜 오거나 어디로 리드하길 바라고만 있으면 분명 틀어지고 마니까, 일단은 가르쳐줘. 그리고 상대의 홈그라운드에도 같이 가봐. 거긴 상대가 잘 알 테니까.

 

하나 더. 대화를 지금보다 좀 더 깊게 해. "운동 잘 하시고 조심히 들어가세요~" 정도로 끝내지 말고, 운동은 왜 시작했는지, 운동하는 곳의 분위기는 어떤지, 무슨 운동을 어느 정도나 하는지, 운동을 통해 변화된 게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보는 거야. 음식에 대해서도 어떤 고기 좋아하는지, 주로 먹는 메뉴는 뭔지, 중국집 가면 뭐 먹는지, 못 먹는 음식이 있는지, 회사나 집 근처에 맛집이 있는지 등을 물을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네 저녁 맛있게 드세요~"라고 끝내지 말고, 한 발짝 더 다가서봐.

 

안 그러면 둘 다 겉으로만 웃으며 "네 잘 하세요~ 네 맛있게 드세요~ 네 안녕히 주무세요~" 하다가 끝날 수 있어. 우리가 지금 인사성이 밝아지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게 아니니까, 형식적인 인사만 나누지 말고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고. 상대라는 한 세계를 탐험하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알았지?

 

 

정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댓글에 답글을 다는 건 되도록 지양해주시길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드리고 싶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내가 자신의 대화를 도청해서 글을 쓴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나, 자신의 메일함에 허락 없이 들어가서 메일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 본인의 사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같은 일을 겪었으니 저건 내 얘기나 다를 바 없다며 삭제를 요청하시는 분도 있고, 내게 자신이 믿는 종교를 강요하시거나, 날 심리분석 하고 계시다며 꾸준히 스토킹 하시는 분도 있다. 오래 전엔 나도 뭣 모르고 대화를 시도한 적 있는데, 그럴수록 괴롭힘의 강도가 심해질 뿐이었다.

 

내가 아닌 독자 분들께서 댓글에 답글을 다신 건데, 그것에도 그 분들 중 일부는 심하게 자극 받아 달려드시는 경우도 있다. 계속 누군가를 비판하는 메일을 보내거나, 그 글이나 댓글을 지울 때까지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항의하겠다고 하시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그런 일들이 벌어지면 정말 피곤하다. 왜 노멀로그의 글을 포털 메인에 띄우냐고 신고하시는 분이나 마음먹고 노멀로그를 곤란하게 만들려고 시도하시는 분들까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댓글에 답글을 달지 않는 것으로 그 분들을 자극하지 않게 할 순 있으니, 일부로 남들을 발끈하게 만들려고 쓴 댓글이나 비난하는 댓글, 또는 작성자인 날 욕하는 댓글 등에는 답글을 남기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린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오늘은 또

 

"오늘은 또 완전히 작정하고 저를 씹어대시더군요?

그렇게 말하면 모를 줄 아셨나요?

몇 번째 문단의 몇 번째 줄 몇 번째 글자, 또

몇 번째 문단의 몇 번째 줄 몇 번째 글자. 그걸 더하면 제 이름이 되죠.

이렇게 암호처럼 숨겨두시면 제가 모를 줄 아셨나요?

당신 참 가여운 사람이군요. 불쌍한 사람."

 

이라는 메일이 올지도 모르겠다.(뭐야 이거 무서워) 이 이야기에 대한 댓글을 다실 경우 역시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 이것에 대한 언급도 댓글로는 최대한 자제해 주셨으면 한다. 정말이지 세상은 넓고….

 

그럼 즐거운 수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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