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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늦은 나이에 시작한 첫 연애, 6년 후 이별.

by 무한 2016. 1. 8.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선, 종종 '컷 수'로 그 내공을 평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진을 한 장 찍으면 카메라엔 한 컷의 사진을 찍었다는 것이 표시되는데, 절대적인 수치는 아니지만 대략 3만 컷 이상을 찍었다고 하면 초보를 벗어난 것으로 보곤 합니다.

 

또 카메라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보급기종의 경우 대략 10만 컷 정도에서 '셔터박스'라는 부품이 고장 나게 되는데, 그것을 가지고 자랑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게 셔터박스가 고장 날 때까지 그만큼 컷 수를 채워 찍어봤다는 경험을 증명하기에 뿌듯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 '컷 수'만으로 내공을 따지는 것에는 좀 문제가 있습니다. 연사를 즐겨 찍는 사람의 경우 보통사람들이 찍는 한 컷을 세 장씩만 찍어도 컷 수는 평균수치의 세 배가 될 수 있고, 또 타임랩스를 찍는 사람들의 경우 인터벌 기능을 사용해 하루에 수 천 컷도 찍을 수 있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진' 보다는 '컷 수'로 사진실력을 증명하고 싶은 사람들은 저 '허수'의 유혹에 넘어가 컷 수를 늘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음이 동해 찍은 사진이 아닌 직업과 관련된 촬영이나 습관적 연사에 의해 늘어난 컷 수임에도, 그게 전부 자신의 사진실력을 증명한다는 듯, 커뮤니티 등에 공개하며 뿌듯해 하는 일도 있고 말입니다.

 

왜 이 이야기로 매뉴얼을 시작했는지는, 아래에서 사연을 다루며 말씀드리겠습니다.

 

 

1. '남들과 다르며 특별하다'는 것의 함정.

 

위에서 말한 일들은, '사진 잘 찍는다'는 남들의 평가를 원하거나 중수 이상은 된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들이 주로  벌입니다. 동 트기 전부터 나가 풍경을 찍으러 갈 자신은 없고, 인물을 찍어보니 전문적으로 찍는 사람들만큼 나오진 않고, 사진기를 다룰 줄 알아 지인들로부터 스냅사진을 좀 찍어달란 부탁 받을 정도는 되는데, 사진 커뮤니티 등에서 뽑는 '오늘의 사진'에 선정되기엔 부족한 사진을 찍을 때, 다른 방법으로라도 좀 인정받거나 좋은 평가를 들으려 저런 일을 벌이는 것입니다.

 

그냥 누가 봐도 잘 찍은 사진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의 사진들을 찍는 사람, 아니면 반대로 조리개와 셔터스피드의 상관관계도 아직 이해하지 못해 스스로를 진짜 초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저런 일을 벌이지 않습니다. 중수 정도 되긴 하는 상황에서, 남들의 평가를 많이 의식하며 자신이 비슷한 수준의 그룹원들보다 좀 더 특별하다는 걸 내세우고 싶어 할 때 주로 저런 일을 벌이게 됩니다.

 

'컷 수'를 내세워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그래서 현재 무슨 사진을 얼마나 잘 찍게 되셨다는 얘깁니까?"

"사진 찍는 것이 행복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계십니까?"

"그 '컷 수'를 채운 사진이 무엇인지, 좀 보여주실 수 있으십니까?"

 

라는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저 지점들이야 말로 '컷 수'라는 숫자로 쉽게 가릴 수 없는, 중요한 부분들이니 말입니다.

 

저는 사연의 주인공인 K양이 한

 

"처음엔 지인들 모두가 남친을 택한 내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음."

"지인들은 내가 외적인 것들이 아닌 인간성을 보고 남친을 선택한 거라는 걸 인정했음."

"남친 친구들 역시 내가 왜 이 사람과 사귀는지 이해 못하겠다고 했음."

"평소 남편 잘 만나 편하게 살겠다는 사람들의 생각을 제일 경멸했음."

 

등의 말들을 보며, K양이 남들을 좀 많이 의식하는 편이며,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자신의 특별함을 증명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제가 연애 중 저런 이야기들을 앞세우고 있는 K양을 마주하게 되었다면, 앞서 '컷 수'를 앞세운 사람들에게 했던 질문을 좀 바꿔

 

"그래서 현재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상대와의 연애가 행복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고 계십니까?"

"그 선택으로 인해 어떤 상대와 어떻게 만나는 중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라고 물어봤을 겁니다.

 

중요한 건 남들에게 속물처럼 보이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개념있어 보이냐 아니냐도 아닙니다. 외모나 조건을 보냐 안 보냐도 아니며, 상대와 사귀는 걸 남들이 이해를 하느냐 못 하느냐도 아닙니다. 무슨 표창장이나 모범상 같은 것 받으려고 연애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그 어느 질문보다 가장 앞서야 하는 질문은 "그래서, 행복한가?"라는 것입니다.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전 K양이 저 "그래서,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하긴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행복하다는 말을 하기 어려운 거라면, 선택과 관련해 K양이 말한 저 다름과 특별함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2. 6년의 시간, 무엇을 향해 어디로 걸어왔는가?

 

모든 게 거짓이었던 상대에게 복수하고 싶고, 상대를 파멸시키고 싶고, 상대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 사회적으로 매장해버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 상대는 갑자기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졌다며 데이트 비용도 1:9로 K양이 거의 전부 부담하게 하고, 심지어 K양에게 돈을 빌려가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기간 중 상대는 빌려간 그 돈을 다른 여자와 사귀며 놀러 다니는데 쓰지 않았습니까?

 

실제로는 직업 없이 놀고 있으면서 그걸 속인 채 월수입이 얼마네 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또 회식 등의 핑계를 대었던 것, 결혼자금으로 모아두었던 것을 부모님 형편이 어려워져 도와드리는 데 썼다고 했지만 사실은 반대로 부모님께 돈을 받아가며 생활하고 있었다는 것, 주말이면 부모님 일 도와드려야 한다며 내려갔던 게 알고 보니 부모님께 내려간 적 없고 다른 여자와 사귀며 함께 지내고 있었던 것, 이 외에도 여기에 적으면 남들이 분명 거짓말이라고 할 정도의 믿기지 않는 사건들이 있는데, 이런 걸 다 알게 되었을 때 K양의 손발이 떨리고 모든 게 다 무너진 듯한 기분이 드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는 6년이란 시간에 대해 절망하게 되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 말입니다.

 

"제 문제는 뭐였을까요? 대체 제가 뭘 잘못해서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 걸까요?"

 

비명에 가까운 K양의 저런 질문들이 제 마음까지를 아프게 합니다만, 그저 신세한탄만 하고 있는 건 아무 도움도 되질 않으니, 뭐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나를 함께 살펴봤으면 합니다.

 

먼저, 저는 이게 '6년의 연애'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헤어지기 전까지의 '1년 반'이 연애고, 그 이후의 만남은 '결혼 전제 없이 그냥 만나는 것'입니다. K양과 상대는 이걸 '부담을 다 내려놓은 비밀연애'라고 합의 본 후 만나신 것 같은데, 여기서 보자면 그건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하고 사귀는 것'에 가깝습니다. K양이 '비밀연애'라고 주장하신 그 기간에, K양은 부모님이 선 자리를 주선해 주시거나 좋은 조건의 남자들이 대시하면 그것에 대해 상대에게 털어 놓기도 했고, 그러면 그 말에 상대는

 

"좋은 남자 있으면 만나라. 결혼해라."

 

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건 '연인'이 아닙니다. 각이 아무리 잘 나와 봐야 '동네친구'의 각 밖에 나오지 않는데, 이걸 어떻게든 이어가려 하니 많은 문제들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교외로 함께 나가고 싶어도 상대가 반대한 까닭에 어쩔 수 없이 늘 해야 했던 동네 데이트, 사실 그것도 '데이트'라기보다는 잠깐 만나 밥 먹거나 시간 되는 날에는 같이 영화 보는 만남이었지 않습니까? 또, K양은 자꾸 '6년'을 강조하지만, 6년간 둘은 저러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 이외에 한 게 없습니다. 명절에 서로의 부모님을 찾아 뵌 적도 없고,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시간을 보낸 적도 없습니다. 두 사람이 훗날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며 함께 살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도 없고 말입니다. K양은 이게 다 '비밀연애'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는데, 저는 대답대신 톨스토이의 <부활>에 나오는 문장 하나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자신의 사업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된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으나, 그 사업이 무엇이며 또 그 성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그 비밀연애의 의미나 목적이 무엇이며, 그 비밀연애의 성공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K양은 남친의 직업도 모르고 집도 몰랐습니다. 그가 직업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집에 대해선 안 가르쳐줘서 그렇다고 하실지 모르겠는데, 그럼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는 아셨습니까? 전 K양이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려울 거라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K양은 상대와 사귄 것에 대해 '조건보다 사람을 보고 한 선택'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전 솔직히 K양이 상대의 '안 좋은 조건'을 보고 한 선택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K양은 상대의 조건이 K양 부모님께서 기대하시는 것보다 좋지 않은 게 분명하다고 생각해 아예 그와 사귄다는 말도 안 꺼내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면서 상대에겐 K양이 나이가 들고 K양 부모님의 기대치가 떨어지면 그때 얘기할 거라고 말하기도 했고 말입니다.

 

제 입장에선 '이 연애를 왜 계속 이어와야 했는지'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상대는 경제적으로 점점 인색하게 굴었고, 이사 간 후엔 K양에게 자신의 집주소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헤어지고 난 뒤가 아니라 사귀는 중에 말입니다.) 또, K양이 바라는 게 있어도 상대가 반대하면 할 수 없었고, 상대의 언행은 점점 거칠어졌으며, 나중엔 상대가 주말에 만나기 힘들며 휴가도 같이 못 간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양은 계속 상대와 그 '비밀연애'를 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그 일'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계속 사귀고 있을 것이고 말입니다. K양은 무엇을 향해 어디로 걸어온 건지, 진지하게 돌아보시길 권합니다.

 

 

3. 우리는 무엇이었고, 뭐가 어떻게 된 걸까요?

 

K양과의 연애를 싹 걷어내고 보면, 그는 그냥 한량처럼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나중 걱정은 나중에 하기로 한 채 일단 당장을 즐기며 사는 타입이었고, 말주변이 좋다보니 어느 모임에 가든 이성들의 호감을 쉽게 얻었습니다. K양과 그는 연애 중 싸우고 연락 안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바로 다른 이성과 만나지 않았습니까? 나중에는 K양과 연애 하는 중에 양다리까지 걸쳤고 말입니다.

 

제가 아는 사례 중에 이런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함께 있으면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웃기며 재치 있는 말도 잘 하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학력은 고졸이었고, 배송 일을 하다가 음주로 면허가 취소되어 막노동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이성들에게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좋아했기에 지역 또래 모임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자리에 가서 직업을 소개할 때

 

"배송일 하다가 음주로 면허취소 돼서, 지금은 노가다 뛰고 있어."

 

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오빠 건축 쪽에서 일하잖아. 부모님 땅 좀 있으셔? 집 지을 일 있을 때 연락해."

 

라는 말로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학교에 대해 물으면 '뉴욕주립대 전통조리학과' 따위의 유머로 대답을 대신했고 말입니다. 이게 이렇게 뉘앙스 없이 글로만 적어 놓으면 재미없어 보일 수 있는데, 그는 친해지면

 

"지은아 오늘 시간 좀 있어? 시간 있으면 코털 좀 깎어. 나보다 더 많이 나."

 

등의 드립을 쳐가며, 정말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모임의 한 여자가 반했습니다. 한량 특유의 대책 없음은 종종 대범함이나 여유로움으로 보여질 수 있는데, 그녀가 그걸 딱 그렇게 본 것입니다. 그의 재치는 그녀가 그간 만나왔던 딱딱한 남자나 고지식한 남자들에게선 볼 수 없었던 것이었고, 고기를 먹을 때 썰어주고, 밥 먹을 때 챙겨주고, 집에 데려다 주고, 추울까 봐 외투를 벗어주고 하는 그의 행동들이 그녀에겐 모두 '날 위해 살아줄 것 같은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사귀게 되었는데, 일 년쯤 지나 여자는 남자가 무일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일 년 동안은 놀러 다니며 연애의 즐거움만을 만끽하느라 둘 다 마음이 붕 떠있었는데, 슬슬 결혼 얘기가 나오고 그걸 현실화 시키려다 보니 둘이 나눴던 알콩달콩한 미래계획은 그저 '꿈'이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된 겁니다. 남자는 그 순간에도 기죽지 않으려 자신의 면허가 회복되고 다시 배송 일을 하면 금방 돈을 벌어 다 잘 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는데, 여자는 그 말이 막연하다고 생각해 듣지 않았습니다.

 

듣지 않고 헤어진 건 아니고, 그녀가 주도적으로 나서선 두 사람이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세워 언제 어떻게 이뤄갈 것인지를 정했습니다. 2년 후 결혼하기로, 2년 간 둘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돈과 합쳐 1억을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2년 후 두 사람은 결혼했고, 지금은 방학역 근처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저 사례가 K양의 이야기와 거의 비슷한 사례이긴 한데, 몇 가지 완전히 다른 지점이 있습니다. 그걸 밝혀 적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그냥 계속 마음이 붕 떠 있는 상태를 유지함. 현실감 전혀 없음.

- 허언증이 의심될 정도로 남자는 갈수록 거짓말을 해댐.

- 여자는 그 얘기를 믿고 그냥 또 마냥 기다림.

- 결혼 말고 연애만 하자고 두 사람이 합의한 적 있음.

- 남자의 바람기가 발동함. 심지어 양다리를 걸치기도 함.

- 두 사람이 사귄다는 걸 두 사람을 제외하곤 아무도 모름.

 

저건 종착지가 관계의 종말일 수밖에 없는 열차의 티켓입니다. 그냥 마냥 기다리며 그때그때 상대가 위기에서 벗어나려 꺼내놓는 달콤한 거짓말들에 취해 있으면, 6년이 문제가 아니라 10년도 후딱 가버릴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던 중 천만다행으로 K양이 그 내막을 알게 되긴 했는데, 그 충격이 너무 큰 나머지 현재 K양은 망망대해에서 나침반을 잃고 표류하는 사람의 마음이 되고 만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드러난 지금 K양의 남친은

 

"내가 이 상황에서 뭐하러 더 너에게 거짓말을 하겠냐. 이러이러한 건 진심이었고…."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가 하는 거의 모든 말은 변명과 합리화 일 뿐이라고 저는 적어두도록 하겠습니다. K양은 남친에게 '널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만은 사실이다'라는 말이라도 듣고자 계속해서 그에게 질문을 하고 계신 걸 텐데, 그런 말을 듣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널 정말 사랑했기에 놓아주려 했던 것이다."

 

라는 말은, 본인의 행동을 낭만적으로 해석한 후 갖다 붙이는 변명에 불과하니, 더는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누구에게 확인 받으려 하지도 마시길 권합니다. 그는 K양에게 돈을 빌려서까지 다른 여자와 놀러 다닌 사람입니다. 여기다 적을 순 없지만 더 심한 일도 저지른 사람인 것이고 말입니다.

 

"정말 저를 이용만 한 것일 뿐이라면, 그 여자가 있으니 저희가 싸웠던 날 절 두고 그냥 가도 되는 것이었을 텐데요. 그런데 그는 애써 제 마음 다 풀어주고 갔거든요…."

"그리고 진짜 그 여자가 좋았으면 제게 말하고 헤어지면 되는 건데, 왜 말 한 건지 답답하고 분통 터집니다. 그는 절 정말 사랑했기에 계속 보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라던데요."

 

충격과 공포의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 이쯤에서 복근에 힘을 한번 꽉 주시길 바랍니다. 그건, K양이 그에게 '물주'였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K양은 양다리를 걸친 채로도 거짓말 해가며 만날 수 있고, 또 만나면 데이트 비용도 다 부담하며, 급전이 필요할 때 돈까지 빌릴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또, K양은 그가 '바람녀'와 K양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도 의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그에게 '바람녀'는 자신이 보호해줘야 할 대상이고, K양은 자신이 신세를 져야 하는 대상이니 다른 겁니다. 이건 뭐 그가

 

"이게 다 내 능력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다."

 

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동정심을 가질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 다시 또 허비하는 1초의 시간도 아까우니, 오늘부로 상대와의 모든 연락을 끊고, 필요하다면 전화번호와 집 주소까지 바꾸시길 권합니다. 상대가 가엾고 불쌍하십니까? 저는 K양이 두 배는 더 가엾고 불쌍한데, 왜 K양은 거기서 6년을 당하고도 더 당하려고 줄 서계신지 모르겠습니다. K양은 남친의 행적을 밝히는 과정에서 남친 부모님에게까지 연락하게 되었는데, 남친 부모님이 남친에 대해 아시고 충격 받으신 걸, 그걸 또 K양은 또 걱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교통사고 피해자가 가해자 부모님 충격 받으실까 걱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니, 그 누굴 걱정하기에 앞서 K양 자신부터 돌보시길 권합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에요. 그 사람 어떻게 벌을 줘야 할까요?"

 

가장 큰 형벌은, 상대를 '내 인생과 앞으로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가 앞으로 불행하든 행복하든 K양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사는 게 가장 큰 벌이니, 그 벌을 내리셨으면 합니다.

 

매뉴얼 정말 길지 않습니까? 사연의 주인공이거나 주인공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적어 안개가 걷힌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드리거나, 다시 살아갈 힘이 조금이라도 더 생기도록 돕기 위해 구구절절 적다보니 길어졌습니다. 이번 매뉴얼도 그럴 수 있길 마음으로 빌어가며 며칠 동안 적어 내려왔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과거에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하던 많은 이들을, 지금은 육아고민 하게 만들었으니, 믿고 함께 가시면 됩니다. 덤덤히 그 경험을 예로 들어 남을 위로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고, 삶이 이렇게 기쁜 것이었다는 걸 느끼며 행복한 웃음 짓는 날도 반드시 올 겁니다. 그런 날이 오면 햄볶느라 정신없어 저를 잊게 되실 텐데, 그래도 원망하지 않을 테니 마음껏 행복하셔도 좋다고 이렇게 미리 적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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