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S양 지인들의 말에 한 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걔랑 만나봐야 잘 될 리 없다. 영양가 없는 짓 그만해라."
누가 한 말인진 모르겠지만, S양과 구남친의 관계를 참 잘 요약한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S양이 현재 하려고 하는 일은, 제가 고장내버린 손목시계에 종종 하는 짓과 비슷합니다. 저는 시계 배터리 가는 일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배터리 사다가 집에서 갈았는데, 갈아 끼우고 나니 라이트 버튼을 누를 때마다 시계가 리셋됩니다. 열 번 넘게 재조립을 해도 이 상태니 못 쓰게 된 게 확실한데, 그래도 가끔씩 서랍에 넣어 둔 시계를 다시 꺼내 분해했다 다시 조립해 보곤 합니다. '마이너스의 손'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기적이 일어나 다시 동작하진 않을까 하며 말입니다.
S양 역시 상대의 마음이 딱 거기까지라는 것도 이미 확인했고, 사귀던 중 그의 행동으로 미루어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으며, 사실 돌아보면 그게 참 그렇게 행복한 연애만은 아니었다는 것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그저 현재 상대와 연락이 닿는다고 해서, 또는 상대 말고는 딱히 대안도 없다고 해서 다시 인연의 끈을 이어버리면, 데쟈뷰를 느끼며 다시 또 이별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위에서 이야기 한 것 이외에 S양이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이 좀 더 있는데, 그것까지 몽땅 아래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S양은 [노멀]로 사연을 주셨지만, 한 꼭지로 다루기엔 문제가 많아 [오답노트]로 발행합니다. 이건 S양이 생각하는 대로 'GO냐 STOP이냐'의 간단한 문제가 아니니, 아래의 이야기를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출발하겠습니다.
1. 연애가 미래의 모든 걸 보장해주진 않습니다.
상대가 지금 단순히 흑심을 품고 다가오는 게 아니라고 해서, 또는 상대와 공유한 이전의 추억들이 있다고 해서, 아니면 지금 내 마음처럼 진심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고 해서 무조건 신뢰하며 그와의 연애가 탄탄할 거라는 확신을 가져도 되는 걸까요?
알 수 없는 겁니다. 사람은 겪어 봐야 아는 거고, 확신 역시 상대와 연애를 하며 증명되는 부분들을 통해 가져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S양은 '사귀게 되는 그 순간'까지만 이성의 끈을 잡은 채 어느 정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사귀게 된 이후에는 '이제 그냥 이대로 죽을 때까지 쭉' 가는 거라 생각하며 긴장을 풀어버립니다.
슬픈 일이긴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변하고, 말에는 유효기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만약 제가 솔로부대원이고 S양과 사귀게 되었더라도, 3개월 후엔 그 연애 역할극이 지겨워 마음이 식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간 뜨거웠고 많이 만나 데이트를 했지만, 따지고 보면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이렇다 할 고민도 나눌 수 없으며, 그저 일상 중 발생하는 단편적인 이야기만을 주고받거나 '다음 데이트'에 나가 열심을 내야 하는 것에 지쳤기 때문입니다.
"니는 머하니? ㅋㅋ"
"ㅠ.ㅠ 어뜨케.."
"겜하장 톡 드르와"
충격과 공포의 이야기가 될 수 있겠습니다만, 한 번은 들어둘 필요가 있으니 복근에 힘을 꽉 주고 들으셨으면 합니다. 계속 위와 같은 모습으로만 연애가 지속된다면, 상대가 자신의 인생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좀 더 철이든 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리해야 할 대상 일 순위'를 S양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사귀는 사이고 결혼이 먼 얘기가 아닌 나이라고 무조건 결혼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같이 놀며 연애하긴 좋지만, 함께 살 동반자로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얘깁니다.
S양은 '마냥 그냥 좋은 것'이 정말 좋은 것이며 제일인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계속 긴장의 끈은 붙잡고 있어야 하며 S양 역시 S양의 삶을 살고 있어야 합니다. 상대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 나쁜 건 아니지만, 오로지 그 생각만 하며 연애에 매달려 있으면 상대에겐 점점 '할 일 없이 외롭고 심심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쟤는 왜 나랑 사귀고 있으면서 내 마음 같지 않은가?'
하는 고민만 키워가면, 연애는 연애대로 망하고 속은 속대로 상하는 이중고를 겪을 수 있습니다.
2. 버릴 건 버리고, 자를 건 자른 채 가야합니다.
S양의 이전 연애들과 관련된 부분인데, 이건 간단하게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 병원에 입원했는데, 남친이 S양 가족이 병원에 있다고 문병 한 번 안 올 경우.
두 번 고민할 것 없이 헤어지는 게 맞습니다. 이런 관계를 계속 가지고 가봐야 속된말로 더 '숭한' 결말만 보게 되는 겁니다. 서운함에 몸부림치며 이해하려 노력해봐야, 이후 더 황당한 일들만 겪게 됩니다.
"그땐 제 병명을 듣고 남친이 헤어지자고 할까봐, 그게 더 무서웠어요."
'안 헤어지는 것'이 연애의 최대 목표가 아닙니다. 말도 안 되는 핑계로 회피만 하는 사람과 계속 사귄다고 살림살이 나아지겠습니까. 이처럼 S양은 연애를 시작하면 '안 헤어지는 것'에 초점을 두는데, 앞으론 그것보다 더 중요한 '우리는 왜 사귀는가?'를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 가족이 제일 중요하고, 여행도 가족과 가고….
저걸 그냥 다 이해하려 하면 안 됩니다.
"그 남친은, 남자답기보다는 애기 같은 면이 더 많았거든요…."
그러니까 제 말은, 왜 거기서 S양이 그 애기 같은 남자를 키우고 있냐는 겁니다. 저런 남자와 만나면서도 S양은 자신이 손수 선물까지 만들어 준비하곤 했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럴 땐 '우리는 왜 사귀는 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런 고민 전혀 없이 그저 '연애의 지속을 위해 아낌없이 이해하리'라는 마음으로 옆에 있으면 속이 다 망가집니다. 결국 나중엔 그의 비겁한 모습도 봐야했고, 더불어 험한 말까지 듣지 않았습니까? 잘못 끼워진 단추를 끝까지 채워나가 버리면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 여자를 대하는 행동이 좀 그랬고, 이중성인 듯 보이는 모습이….
제가 묻고 싶은 건, 그렇게 다 알면서 왜! 대체 왜 사귀냐는 겁니다.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발을 빼는 게 맞는 건데, S양은 분명 이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분위기에 자신을 맡겨버리고 맙니다. [노멀]로 보내주신 사연이라 자세한 걸 적을 순 없는데, 여하튼 상대가 뭔가 연기하고 있다는 걸 느꼈으면 그 자리에서 돌아 나와야 하는 겁니다.
당장 상대 아니면 사귈 사람이 없기도 하고, 그가 다른 면을 보여줄 땐 또 그게 좋기도 하다면, 최소한 그런 이중적인 모습에 대해 털어 놓고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S양은 그걸 다 알면서도 그냥 못 본 척 해버리는데, 그러니까 상대는 S양이 그걸 다 모르는 바보인 줄 알고 연기만 계속 하지 않습니까?
"이해가 안 가기는 했는데, 그런데 그땐 아무래도 좋았어요."
좋은 건 좋은 대로 즐기면 됩니다. 그건 그런데, 분명 아닌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애깁니다. 만날 때만, 그것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만 너무 보고 싶었다며 막 난리를 친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왜 그렇지 않을 땐 찬바람 불며 남남처럼 행동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 있을 땐 왜 내팽개치는지, 왜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하는지, 왜 전부 다 비밀로 하려고 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위와 같은 상황을 모두 이해하고 인내하기만 하면, 한두 번의 연애를 하는 동안에도 세월은 금방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더불어 위의 연애가 끝난 후에도 저런 사람들을 '구남친'이라 생각하며 연락 오는 거 받아주거나, 아니면 유적발굴이라도 하려 들면 더 힘든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S양이 아무리 이해심 많고 다정한 사람이라 해도 다 품고 갈 수는 없는 법이니, 버릴 건 버리고 자를 건 자르시길 권합니다.
3. 그 외 S양의 고민들.
S양이 신청서를 적어 내려가다가 한 말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적다보니까, 왜 제가 이런 남자로 고민하지 하는 생각도 들고…."
바로 그겁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계속 그러고 있으니까 그런 일들이 그렇게 벌어지는 겁니다. S양의 다른 말들도 같이 한 번 보겠습니다.
"제가 이제 나이도 있고, 또 그 남자가 나쁜 조건도 아니고, 꼭 결혼을 염두에 두고는 아니더라도 연락이나 해볼까 싶은데…."
아닌 걸 확인했으면, 그냥 두는 게 제일 좋은 겁니다. 뭐 S양이 꼭 연락을 해야겠다고 고집하시면 말릴 생각은 없지만, 그래봐야 대개는 서로 실없는 얘기만 주고받다가 다시 흐지부지 되거나, 이쪽이 아직 자신을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한 상대가 이쪽을 휘두르는 모양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야 반갑게 맞아주겠지만, 이후 늦은 답장과 예의상 보내는 대답들에 괜히 더 실망하게 될 수 있고, 왜 우리가 헤어졌었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 괜찮은 사람은 점점 안 보이고…. 그냥 어느 정도 맞을 때 결혼을 해서 살다보면 다 맞추고 살게 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제가 바라는 연애를 하기엔 이제 제 나이나 주변 환경도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저를 쉽게 보는 남자라고 해도 그냥 어느 정도 타협하고 연락을 터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제가 늘 얘기하는 두 가지가 있지 않습니까? 정말 이젠 뭐 더 볼 것 없이 그냥 누군가와 사귀다 결혼하고 싶다 해도, 그가 S양을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는지는 꼭 봐야 합니다. 거짓말 조금 하면 알아서 속아 넘어가는 여자로 여긴다거나, 자신이 아무렇게나 대해도 계속 옆에 있을 사람으로 여긴다면, 그건 관계의 기반이 만들어지지 않은 거라고 봐야 합니다. 기반이 없는데 어떻게 층을 올리겠습니까.
그리고 자존심이고 뭐고 다 접고 사귄다고 해서, 그게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지만, 상견례는커녕 부모님께 사귄다는 말도 안 하는 사례도 있고, 계속 결혼에 대해선 미루기만 하다 연애만 즐기고 떠나는 사례도 많습니다. '재회를 위한 연락'을 한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 '연애의 시작'만 바라지 마시고 '누구와 왜 사귀는가?'라는 부분도 고민해 보시길 권합니다.
지난달에는 서른일곱의 노멀로그 독자 한 분이 결혼을 하셨습니다. 무작정 빨리 결혼해서 지옥 같은 50년을 보내는 것보다, 조금 늦더라도 행복한 40년을 보내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결혼이 끝이 아니라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물론 늦은 결혼이 불러오는 몇 가지 문제들이 있긴 합니다.
- 경조사에 뿌린 돈을 걷기가 어려움. 친구 돌잔치까지 갔는데 친구는 내 식에 안 옴.
- 결혼식에 온 싱글 친구들이 박수를 안 침. 속닥속닥 신랑 품평회만 하는 일이 발생함.
- 오만 원 내고 남편에 애 둘까지 데리고 와서 먹고 감. 식도 안 보고 뷔페 찾아감.
끔찍한 일들이긴 합니다만(응?), 이후의 행복한 결혼생활로 충분히 퉁 치고도 남을 일들이니, 급하다고 빠른 길만 찾지 마시고 바른 길을 찾으시길 권합니다. 자 그럼,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시길 권하며 매뉴얼 마치겠습니다.
+ 목요일 발행 예정이었던 글을 금요일인 오늘 올립니다. 금요사연모음은 주말 중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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