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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다들 제가 아깝다고 말하던 연애였는데요.

by 무한 2015. 12. 1.

선미씨, '내가 아깝다는 생각'이 이별의 씨앗이에요.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울었고 뭐 그런 거랑 관련 없이, 내가 아깝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으면 불만족이 자라날 수밖에 없어요. 자라난 불만족은 둘의 목을 졸라 결국 이별을 말하게 만들 거고요.

 

아니, 사실 내가 아깝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상대를 많이 사랑하면, 그건 상대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어요. 그래버리면 내가 스스로 견뎌야 하는 몫의 감정들까지도 상대가 덜 채워줘서 그러는 거라고 착각할 수 있고, 나만 더욱 상대에게 베풀고 있다고까지 생각할 수 있거든요. 상대가 뭔가를 해주면 그건 부족한 상대가 내게 갚아야 하는 당연한 빚처럼 여길 수 있고요.

 

그런 생각을 하며 사귀면, 이별하는 그 순간까지도

 

'너 VS 나'

 

라는 관계로 대립할 뿐이에요. '우리'라는 것을 만들지 못한 채 마지막을 맞이하는 거죠. 

 

비교나 지적, 개조하려던 것들에 대해 미안하단 말도 못한 채 끝나게 돼요. 그래서 나중에 그걸 뉘우치거나 하면 재회를 바라기도 하는데, 당시의 상처들이 너무 큰 까닭에 재회가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선미씨의 사연에서도 이렇다 할 희망은 보이지 않는데, 그래도 계속 모르고 있는 것보다는 지금이라도 아는 게 나을 테니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1. 전 저로 인해 오빠가 더 좋고 큰사람이 되길 바랐던 거예요.

 

이걸 먼저 물어볼게요. 연애 중 상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길, 또 선미씨와 어떤 사랑을 하길 바랐나요? 선미씨가 바란 거 말고, 상대 자신이 바란 걸 얘기해 주세요.

 

대답하기 어렵죠? 아, 나중에 남친 가족 중 누군가를 통해 들은 걸 얘기하는 건 반칙이니까, 그거 말고 선미씨가 알고 있던 걸 말해보세요. 못 말하겠죠?

 

이제 왜

 

"전 저로 인해 오빠가 더 좋고 큰사람이 되길 바랐던 거예요."

 

라는 선미씨의 말이 문제가 된 건지 알 것 같지 않으세요? 선미씨는 남친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선미씨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자친구의 모습을 내밀며 남친 보고 거기에 맞추라고 했던 거예요. 헤어지기 전 그가 했던 말들을 보세요.

 

"넌 한번이라도 나에게 좋은 말 해주거나 칭찬 해준 적 있어?"

"내가 뭘 해도 너는 만족하지 못 할 거야."

 

서로 발전하는 관계, 생산적인 만남, 뭐 다 좋아요. 그런데 연인이라면 그런 것 이전에

 

- 네가 내 옆에 있어서 참 좋다.

 

라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선미씨는 곧바로

 

"당연히 좋으니까 만나는 거잖아요. 오빠가 마음에 안 들었으면 저는 아예 다른 사람을 만났겠죠. 안 좋으면 오빠를 만날 이유가 없잖아요."

 

라는 대답을 할 것 같아요. 실제로 선미씨는 신청서에 저 말을 적기도 했잖아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그런데 만약 어느 선생님이,

 

"이게 다 애정이 있으니까 너희들에게 잔소리하고 때리는 거다.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너희가 어떻게 살든 말든 난 신경 안 썼을 거다. 그러니 불평하지 말고 내 말 들어라."

 

라는 이야기를 하며 늘 때리기만 하면, 그걸 전부 관심과 애정으로만 보긴 힘든 것 아니겠어요? 구실은 좋지만 그걸 겪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선 힘들고 아픈 게 사실이잖아요.

 

다 잘 되라고 그런 거고 좋은 마음으로 그런 거라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선미씨의 관심과 애정과 사랑을 얼마나 표현했는지도 한 번 돌아보세요. 오빠가 있어서 든든하다든지, 오빠가 자랑스럽다든지,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런 표현 없이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연애'를 위해 늘 지적을 했다면, 상대는 그걸 자신을 개조하려 드는 여친의 잔소리로만 여겼을 거예요.

 

 

2. 우리는 분명 더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었을 텐데요….

 

선미씨 쿠키 구워서 남자친구 준 적 있어요? 도시락 싸준 적은요? 남친 일하는 곳으로 몰래 찾아가 서프라이즈 해준 적 있어요? 손편지 써준 적은요? 남친을 위해 목도리 짠 적 있어요? 없다면 왜 없어요? 저런 걸 해주는 여자들도 많은데, 선미씨는 왜 안 해요? 업무 볼 때 내 생각하며 쓰라고 볼펜을 선물한다든가, 오래 쓴 낡은 지갑 말고 좋은 지갑 쓰라고 선물한 적 있어요? 역시 그런 선물을 해주는 여자들도 많은데, 선미씨는 왜 선물 안 한 거예요? 선미씨가 그렇게까지 섬세하게 챙길 줄 아는 여자였다면, 상대 역시 그 연애를 하며 더 행복했을 텐데요.

 

바로 저런 거예요. 다른 커플과 비교하며, '더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는데 상대는 더 열심을 내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계속 불평만 하게 돼요.

 

"제가 그런 비교만 한 건 아니에요. 저도 오빠를 배려했어요. 센스 없이 비싼 것 먹고 싶다거나 좋은 곳 가고 싶다는 얘기만 한 게 아니라, 분식류를 먹으러 가자고 하거나 햄버거를 먹으러 가자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어요. 제가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오빠 주머니 사정 생각해서 다른 거 먹자고 한 적이 더 많아요."

 

저건 선미씨가 신청서에 적은 말인데, 제가 보기엔 분명 좀 뭔가 이상해요.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누군가가, 자신의 부모님께서 패딩점퍼와 신발을 사주신 날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제가 입고 싶었던 건 N사의 제품이었지만, 부모님의 사정을 아니 그냥 1/3 가격인 그 점퍼에 만족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신발 역시 저는 신상품을 사고 싶었는데, 부모님을 생각해 그냥 할인 중인 제품을 사겠다고 했죠. 전 이렇게까지 부모님을 배려했던 거예요."

 

말로는 '배려'라고 하지만, 자신이 양보했다는 것을 엄청난 일을 한 것처럼 말하는 것일 뿐 감사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는 게 느껴지지 않으세요?

 

연애에 대한 서로의 성실도나 충성도를 평가하는 선미씨의 기준이 저래요. 기본이 되어야 하는 '감사'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라는 듯 배제되어 있고, 그 나머지 부분으로만 평가를 해요. 데이트비용도 상대 7, 선미씨 3으로 부담했다면서요. 그런 와중에 비싸고 좋은 거 먹고 싶어도 싸고 평범한 거 먹었다며 그걸 '배려했다'고 말하는 건, 황당한 거예요.

 

게다가 선미씨는 거기서 더 나갔잖아요.

 

"누구나 안정적인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 거 사실이잖아요. 저도 그런 생활이 욕심나기도 했어요. 그래서 저를 위해서라면, 이기적이겠지만 헤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제가 평생 참아가며 오빠를 이해하며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하지만 나중에 넉넉히 살지 못 한다 해도, 오빠의 성실함을 믿고 같이 헤쳐나가는 게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저런 마음이라면, 연애가 '내가 상대와 사귀어주는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거든요. 남친이 한 말을 다시 한 번 보세요.

 

"넌 한번이라도 나에게 좋은 말 해주거나 칭찬 해준 적 있어?"

"내가 뭘 해도 너는 만족하지 못 할 거야."

 

남친 입장에서 보자면 그 연애는, 자신이 늘 채무자의 입장에서 의무만을 시행해야 하는 것이거든요. 함께 행복하자고 하는 게 연애인데, 이 연애는 그저 선미씨의 행복을 위해 남친이 노력해야 하는 연애이니, 필연적으로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3. 남친 가족, 그리고 재회에 대한 이야기.

 

남친 가족이나 친구, 지인의 말들로 인해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될 순 있어요. 그러면 선미씨는 그 이야기들을 가지고 곰곰이 생각해 본 후 스스로의 선택을 해야 해요. 다시 연락을 해서 대화를 해본다든가, 찾아가 본다든가, 아니면 편지를 써본다든가 하는 선택 말이에요. 그건 괜찮아요.

 

하지만 그들이 낸 결론을 가지고 그대로 따르려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일 뿐이에요. 남친의 가족 중 한 사람이 선미씨에게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했잖아요.

 

"이러이러해서 그랬던 거다. 그러니 너도 올해 말까지는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고, **이에게도 시간을 줘라. 너희 참 잘 어울렸는데, 나도 너희가 이렇게 되어서 정말 속상하다."

 

저 말 듣고 올해 말까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상대와 선미씨가 낸 결론이 아니잖아요. 저건 그 분의 생각일 뿐이지, 상대의 생각이 아니에요. 올해 말까지 마냥 기다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 역시 아무 것도 없고요.

 

"무한님이 보시기에, 관계의 회복이 가능한가요?"

 

전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선미씨와 상대의 연애엔, 위에서 말한 것들 이외에 '경제력 차이'라는 장벽도 존재하거든요. 선미씨는 자꾸 본인이 부자가 아니라고 강조하시는데, 부자 맞아요. 당연히 재벌들과 비교하면 못 사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보통의 기준에서는 잘 사는 것 맞거든요.

 

사귀는 내내 남친이 걱정한 것도 바로 저 부분이잖아요. 자신이 벌어서는 현재 선미씨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절반도 채워주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 더불어 연애 중 상대는 자신이 한다고 하는데도 선미씨가 계속 만족을 못 하니, 힘들었을 거예요. 공주를 대접해야 하는 어느 소시민의 마음이었다고 할까요.

 

드라마 보면 왜 잘 사는 집 남자가 가난한 집 여자에게 출퇴근하라며 차도 선물해주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그걸 반대로 해야 하는 입장인 거예요. 당장 빠듯하게 먹고 사는 남자가 부자인 여자를 대접해야 하니, 대책이 안 서는 거죠. 그래도 그는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직업까지 바꿔가며 노력하긴 했는데, 그 와중에 선미씨가 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발견하곤 그냥 다 내려놓은 것 같아요. 속된말로 가랑이 찢어지게 노력하는데 그게 다 의무가 되어버리니, '나 안 해.'를 외치게 된 거죠.

 

선미씨는

 

"그럼 그걸 다 제게 이야기 하고, 같이 방법을 찾았으면 되는 거잖아요. 저는 오빠가 저를 위해 그렇게 사는 걸 원한 게 아니에요. 저도 오빠에게 맞추려 노력하기도 했고요."

 

라고 이야기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둘은 데이트에 바빠서 그랬는지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어요. 딱 한 번 그 이야기가 나오긴 했는데, '상대 탓'을 하는 이야기만을 하다가 둘 다 상처를 입으며 이별하게 되었죠. 게다가 선미씨가 마음속으로는 저런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거든요. 또, 선미씨가 말했듯 선미씨는 '더 안정적이고 풍족한 생활'에 대한 바람도 가지고 있었잖아요.

 

상대가 선미씨에게 한 이야기를 보면, 상대는 이별 후 그냥 홀가분해진 것 같아요. 남친 가족은 남친이 이별 후 많이 힘들어한다는 식으로 이야기 했는데, 실제로 그가 선미씨에게 한 말을 보면 '이별'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 같진 않아요. 그러니 남친 가족의 말만 듣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여하튼 저는, 남친의 마음도 이미 다 떠난 지금 상황에서, 선미씨 혼자 남친 가족 얘길 듣고 올해 말까지 기다리거나 그러진 않으셨으면 해요.

 

 

위에 적어 놓은 글만 보면 전부 선미씨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처럼 보이는데, 절대 그런 건 아니에요. 전 선미씨의 다음 연애를 위해서 이 글을 쓴 거지, 이번 연애에서의 잘잘못을 가리려고 이 글을 쓴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선미씨가 실수한 부분을 위주로 작성을 한 거니 너무 자책하진 않으셨으면 해요.

 

그리고 하나 더. 다음 연애에서는 너무 '자기검열'을 하지 마세요. 원하는 걸 말해요. 분위기 있는 곳 가고 싶다고 이상한 거 아니고, 여행가고 싶다고 잘못된 거 아니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상대에게 너무 부담이 되거나 선미씨를 이상하게 여길 것 같다고 생각하며 다른 얘기를 해버리지 마세요. 그래버리면, 오히려 선미씨에 대한 상대의 오해가 커져요.

 

매번 자기검열을 통해 떡볶이 순대 좋아한다고만 말하면, 상대는 진짜 선미씨가 그걸 제일 좋아하는 줄 안다는 얘기예요. 그러니 현명하게, 선미씨의 바람에 대해서도 꺼내놓고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거 계속 꾹 참고 있다가 갈등이 생긴 날에야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라고 말하는 게 둘의 관계엔 더 안 좋아요. 그것들을 '함께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털어 놓고 말하는 건 나쁜 게 아니니, 다음엔 꼭 그럴 수 있길 바랄게요. 자 그럼, 선미씨도 이쯤에서 페이지 한 장 넘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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