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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남친과 끝내고 싶은데 제 마음이 안 편해요. 외 1편

by 무한 2016. 2. 25.

정신을 차릴 수 있게 욕을 해달라, 채찍질을 해달라, 마음이 떨어져나갈 수 있게 비난이라도 해달라는 요구를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러지 말자. 자꾸 그러시면, 매뉴얼로만 사연을 접할 뿐 속사정을 모르는 독자 분들은 나를 신경질적이고 괴팍하며, 보듬어줘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냉정하게만 말하는 사람으로 보게 될 수 있다.

 

또, 채찍질을 해달라고 해서 냉정한 어투로 매뉴얼을 작성하면,

 

"글을 읽고 상처 받았습니다."

 

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어 난 당황하게 된다. 채찍질을 해달라고 해서 채찍질을 하면, 채찍질 때문에 상처 받았다고 하셔서 내가 괜히 나쁜 짓을 한 사람인 것 같고, 뭐 그렇다.

 

정말 채찍질을 원하시는 분들은, 고양시에 위치한 원당종마목장에 들러 사육사 분에게 채찍질을 좀 당하고 싶은데 해주실 수 없냐고 요청하시길 바란다. 빈손으로 가서 해달라고 하면 안 해줄 수 있으니, 베이커리 빵이라도 좀 사들고 가거나, 한 번 요청해서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삼고초려의 마음으로 찾아가면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거 내가 이렇게 혼자 상상하며 글로 쓸 때에는 참 재미있는데, 써 놓고 나서 읽으면 재미가 없다. 마중글이 실패한 것 같으니, 바로 매뉴얼 시작해 보자.

 

 

1. 남친과 끝내고 싶은데 제 마음이 안 편해요.

 

A라는 남자가 있다고 해보자. 그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으며 근검절약의 태도가 몸에 배있다. 여자친구와는 2년을 사귀었는데, 커플 티나 커플 운동화를 맞추는 것까지도 부담을 느낄 정도다. 커플링 얘기가 나왔을 떈, 나중에 금 값 떨어지거나 결혼 예물을 대신해 하자는 이야기를 한다. 교외로 놀러가는 것도, 그런 곳은 괜히 비싸기만 할 뿐이며 그 돈으로 차라리 동네에서 놀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니, 그냥 동네에서 놀자고 여친을 설득했다.

 

그런데 A가 연애에서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과 반대로, 그는 결혼하는 친구에게 TV를 해줘야 한다며 할부로 TV를 구입해 선물한다. 군대 동기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일산에서 창원까지 차를 몰아 다녀오기도 하고 말이다. 또, 그는 불우한 이웃에게 후원해줄 것을 요청하는 TV프로그램을 보다가 전화를 걸어 결제하기도 하고, 거리를 지나다 구걸을 하는 사람을 보면 주머니에 있는 것을 털어 건네주기도 한다.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다가 잡상인이 들어와 물건을 팔면, 모른 체 하는 남들을 괘씸하게 생각하며 보란 듯 껌 한 묶음을 다 사주기도 하고 말이다.

 

K양은 위의 A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만약 내 누이나 여동생이 A라는 남자와 결혼까지 생각하며 만나는 중이라면, 식장에 들어가기 전 날 쏘고 가라는 얘기를 할 것 같다. 희생과 양보, 의리와 박애를 가장 중요하시 하시는 분들은 A의 태도를 고결한 것으로 보실 수 있겠지만, 난 A가

 

- 본인 앞가림도 못 하면서 오지랖을 펴는 사람.

- 이타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사람.

-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경영엔 소질이 없는 사람.

- 그렇게 가까운 모두를 힘들게 만들어 놓곤, 자기 탓을 하라는 얘기만 할 사람.

 

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A와 같은 남자와 연애하며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여성대원들이 있다. 그녀들은, 상대가 분명 나쁜 사람인 것 같진 않은데, 무슨 도 닦는 사람과 같은 태도를 이쪽에게까지 요구하니 그게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A와 같은 남자들은 부모님과 관련된 일에 대해선 '효도'라는 주제로 무조건 자기 뜻을 따르라 말하고, 친구와 관련된 일에 대해선 '의리'라는 주제로 역시 자신의 뜻을 따르길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구여친에게 어떤 일이 생겼을 때, 현여친인 이쪽을 놔두고 구여친을 돌보러 가는 경우도 있다. 그는, 여자친구가 따지자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 구여친과 난 인연이 있던 사람이고, 지금 가장 도움이 필요한 것은 구여친 아니냐. 내가 가지 않으면, 걔는 따로 돌봐줄 사람도 없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이 변하거나 흔들리는 것도 아닌데, 왜 이해를 못 해주냐."

 

라는 대답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남자와 헤어질 생각을 하면 자신의 속 좁음 때문에 헤어지는, 또 자신이 속물이라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못 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약 누군가 그런 걸로 욕한다면 그 욕은 내가 다 먹어줄 테니, 걱정 말고 헤어지길 권한다. 누가 욕하면 지금 그냥 한 번 욕먹고 마는 것이, 선장을 잘못 세워 망망대해에서 말라 죽는 것보다 낫다. 남의 배 걱정하느라 내 배엔 신경 안 쓰며 선원들에게 남의 배를 위한 양보와 희생만을 요구하는 선장은, 그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안에서도 잘하고 밖에서도 잘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박수를 받을만하지만, 밖에서만 좋은 평가를 받을 뿐 안의 사람들을 힘들게 만든다면-나아가 밖에서의 좋은 평가를 위해 안의 사람들에게까지 희생을 요구한다면-, 그건 그냥 그 사람의 멍청함을 증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만약 누군가가 매주 독거노인을 돕는 봉사활동을 다니는데, 그가 정작 자신의 어머니는 팽개쳐 두고 한 달에 전화 한 통 하지 않는다면, K양는 그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겠는가. 이타적인 남친의 헤어짐을 고민할 땐 내가 속 좁은 것 같고 내가 속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망설여지겠지만, 계속 더 있다간 K양의 현재와 미래가 모두 망가질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이미 K양은 이별을 고민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연애는 그만 내려놓자.

 

 

2. 구남친, 저에게 왜 이러는 걸까요(1/2)

 

일단 저는, 구남친이 특별히 J양에게 복수를 하려고 그런 일들을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새로운 여자친구에게 하는 행동들은, 그냥 연애 시 그의 레퍼토리가 그런 거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제 지인 중 미술을 전공한 지인이 있는데, 그는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면 여자친구의 초상화를 그려주거나 여자친구 이름 영문 이니셜을 장식해 주곤 합니다. 영문 HJ나 KY에서 꽃이 피어나는 것 같은 걸 그린다든가 하는 겁니다.

 

그가 새로운 사람과 막 연애를 시작했을 때, 상대에게 불러주는 노래도 비슷비슷합니다. 환생, 세 가지 소원, LOVE, 뭐 그런 것들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 다들 미니홈피를 하던 시절엔, 지인의 배경음악이 저 셋 중 하나로 바뀐 걸 보며 '아, 얘 여자친구 바뀌었구나.'하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구여친들은 그 사실을 잘 모릅니다. 당시엔 지금처럼 SNS가 발달하기 전이라, 이별 후 상대의 행적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구여친이, <세 가지 소원>을 단 둘만의 주제가라고 생각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제게

 

"그 노래가 Y랑 내가 사귈 때 Y가 불러준 거거든. 그런데 Y가 나랑 헤어지곤 싸이 닫았다가, 지금 그 노래만 배경음악으로 해놨잖아. 이건 무슨 의미일까?"

 

하는 질문을 한 적도 있고 말입니다. 그때 제가 솔직히 말을 해주지 않고 모른 척한 까닭에, 어쩌면 그녀는 지금도

 

"라디오에서 <세 가지 소원>이 나오더라. Y가 많이 생각났어."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런 사례 수백 가지를 들어가며 일주일 내내 J양을 설득하려 해도, J양은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J양이 제시한 부분이 오해라면 그것 말고 다른 이유, 다른 이유도 아니라면 또 다른 이유 들을 들어가며 확인 받고 싶을 겁니다. 지금 J양이

 

"그것까지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꼭 그래야만 했는지에 대한 부분이 이해되질 않습니다. 일부러 제게 보여주기 위해 그런 거라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파고, 또 파고, 또 파고 들어가다 보면, 결국

 

- J양이 아직 이별 이후의 감정에서 못 헤어나와 그렇다는 것.

 

이라는 게 발견 될 겁니다. 나에게만 그런 줄 알았던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나를 생각한다면 그런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일부러 내게 보란 듯이 저러는 건 아닌가, 이런 남자를 내가 사랑했다는 게 억울하다, 쟤는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이러는 것인가, 나는 지금 이런데 쟤는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는 생각들이, 결국 전부 '놓지 못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0.1%의 지분도 갖지 못하는 '숨은 의미'만 보려하지 마시고, 99.9% 드러나 있는 '사실'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J양에게 이별통보를 했고, 다른 사람과 연애하고 있으며, J양이 무슨 얘기를 하든 이제 대답하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그 사람'인데, J양은 이걸 인정하지 않은 채 '그 시절, 그 사람'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실 아무 의도 없는,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그렇게 빨리 잊을 수도, 또 새 사람을 만날 수도 없는 거잖아요."

 

라는 하소연만을 하게 되는 것이고 말입니다.

 

 

3. 구남친, 저에게 왜 이러는 걸까요(2/2)

 

아래는 J양이 신청서에 작성한 절규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그럴 수 없는 겁니다. 저도 이전 연애들을 했을 때,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는 저를 누구보다 진심으로, 절실히 사랑했습니다. 사랑을 받아본 제가 압니다. 정말 많이도 사랑해주었습니다. 그걸 너무 잘 알기에, 지금 이 상황이 더 믿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하는 말이 너무나도 차가운 사망선고처럼 들리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전 그가 연애에 올인한 채 오로지 연애만을 생각하고 있다가 깨어나게 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가 J양의 말 한 마디에 일희일비 할 정도로 빠져있었으며 맹목적으로 헌신했다는 것엔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게 '진정으로 사랑한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가 그런 태도를 보인 건 그의 성향, 그리고 그가 당시 고립된 채 있었다는 상황이 더 큰 작용을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말 미안하지만, J양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그는 그렇게 연애했을 겁니다. 지금은 제 말에 분노하며 "당신이 뭘 아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시겠지만, 마음이 잔잔해진 뒤 이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며 상대에 대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으면 집착했고, 그러다 실망하거나 분에 못 이겨 이별통보를 한 적도 있습니다. 때문에 전 이걸 'J양 이어서' 그가 매달린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연애 중 헤어졌다가 재회를 요구할 때, 그리고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이별할 때 했던 말들은, 그가 로맨티스트처럼 보이기 위해 한 말에 더 가깝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유효기간이 있는 낭만적인 말들은 그냥 낭만적인 말일 뿐입니다.

 

"네가 날 좋아하든 아니든, 난 너에게 갈 거야."

 

라고 했던 말이,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난 아무리 생각해도 널 다시 만날 자신이 없다. 안녕. 잘 가."

 

라는 말로 바뀌는 걸 보시기 바랍니다. 저 두 말을 두고 전자가 그의 본심을 말한 것이며 후자는 그저 화가 나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거라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이별의 순간에 한

 

"너로 인한 상처 때문에, 평생을 혼자 살더라도 너는 못 만나겠다."

 

라는 말 역시,

 

"우리가 인연이라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겠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라는 말로 바뀌었고, 이후엔 또 그가 새 여자친구에게 J양과 연애할 때 해줬던 것들을 다 해주며 SNS에 자랑스레 올려놓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J양은 "그런 사람,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아요."라고 하셨는데, 만날 수 있습니다. 연애만을 생각하며 연애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다 버릴 수 있는 남자들 꽤 많습니다. 아직 여자와 연애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는 사람을 만나 본능과 호르몬의 도움을 받으면 그런 연애 또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저 서로의 얼굴만 마주본 채 연애하는 것엔 분명 유효기간이 존재할 것이고, 이번 이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별을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이 글이 J양의 소중한 연애를 모두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지실 수 있지만, 훗날 J양이 '초보맘' 등의 닉으로 활동하게 될 때쯤이면, '저땐 내가 왜 저런 폐허더미에 앉아서 울고만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시게 될 게 분명하다는 예언을 좀 해두도록 하겠습니다.

 

 

J양이 그 폐허더미 옆에 쭈그리고 앉아 멍하니 있게 된 지도 벌써 반년 입니다. 정말 거기서 벗어나 버리면 J양이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계신 거라는 걸 저도 모르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마침표를 찍고 거기서 나와야, 이야기를 이어 쓰든 새로 쓰든 할 수 있는 거라는 걸 꼭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2016년 2월도 이제 끝나가는 시점인데, 혼자 2015년 어디쯤에 앉아 계시면, 남들은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은데 자신만 박제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서 일어나 어디로 가든 거기보다 나을 거라고 제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고 있으니, 속는 셈 치고 한 번 믿어보시길 바랍니다. 넋두리를 안 하고는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을 때 제게 메일을 주셔도 좋고, 다리에 힘이 풀려 다시 주저앉고 싶을 때 또 제게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니 우선 일어서서, 툭툭 털고 걸어가겠다는 마음을 가지시길 권합니다.

 

마침 노멀로그 옐로아이디도 만들어져서, 이제 카톡 추가도 하실 수 있습니다. 받은 메시지가 제 폰에는 안 떠서 이걸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매뉴얼 올려두고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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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다. 행복합시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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