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인 K양이 주도해서 결혼하셔도 됩니다.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거라면 누가 주도하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행복한 결혼생활이 보장되는 거라면, 둘 중 하나가 아닌 부모님이나, 친구나, 첫사랑 김철민씨나(응?) 그 누가 주도를 하더라도 상관없으니 결혼하시길 권합니다.
그런데 사실 K양의 '진짜 문제'는, 누가 주도하지 않아서 결혼이 안 이루어진다는 게 아니잖습니까? 부모님의 반대도 있고, 남친의 불안정한 직업 문제도 있고, 남친의 대한 K양의 확신 문제도 있고, 결혼 이후의 생활을 그려봐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이 발목을 잡을 게 뻔하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은 채 덜컥 결혼하게 되면 지옥과 같은 결혼생활이 펼쳐질 게 뻔하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K양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K양과 비슷한 환경에서 결혼을 강행했던 선배대원의 사례를 먼저 좀 소개할까 합니다. 그런 뒤 K양 커플의 문제와 해결책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출발하겠습니다.
1. 엄마에게 돈 꾸러 가는 선배대원 A양.
작년에 3월에 결혼한 선배대원 A양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남편 쪽보다 A양 쪽 집이 더 잘 산다는 것, 그리고 모임을 통해 만났으며 남편이 모임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한다는 점 등이 주인공인 K양의 사례와 비슷합니다. 하나 다른 게 있다면,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다는 점입니다.(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이건 A양이 부모님께 남편에 대해 잘 포장해서 말하며 자신의 돈까지도 남편이 마련한 것처럼 좀 연기를 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다정함, 그 부분에서도 A양 남편이 K양의 남친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K양은
"남친이 절 보고 싶어 하고, 또 보러오려고 노력하는 등의 모습은 참 한결 같습니다."
라고 적어주셨는데, A양의 남편은 실제로 A양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매일 A양 직장까지 데리러 갑니다. 부부동반으로 스키장 갈 계획도 그가 다 알아서 짜며, 다음 달에는 무슨 축제가 있다는 일본 어디로 갈 여행까지도 그가 다 계획해 놓았습니다. 이렇게까지 다정하고 아기자기한 이벤트와 계획을 짜는 남자 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러면 A양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하실지도 모르겠는데, 결정적으로 남편이 놀고 있다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결혼 전에도 그는 2년 일하고 6개월 놀거나 얼마 안 되는 월급을 받느니 차라리 하는 만큼 돈을 버는 영업직을 하겠다는 식의 몇 차례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그런 태도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퇴근 때쯤 남편이 데리러 오는 걸 A양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도, 그가 '데리러 오는 것'을 핑계로 한 시간 일찍 와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거나, '오늘의 내 할 몫은 다 했다'는 생각으로 안심을 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둘이 연애할 때 주변 사람들은 죄다 A양 커플을 부러워했습니다. 해외를 집처럼 드나들고, 철따라 놀러 다니며, 여기저기 먹고 마시러 다니는 사진들을 SNS에 올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모습들을 보며
- 무절제한 생활을 둘이 정신줄 놓고 즐기고 있는 건 아닌가?
- 미래에 대한 무계획을 현실을 즐기는 것으로 착각하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기도 했지만, 마냥 좋다는 두 사람에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싱가폴 다녀왔다는 SNS게시글에 "무절제한…생활이…크윽…미래를…파괴한다." 따위의 댓글을 달 수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어차피 그 둘의 인생을 제가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니니, 게시글에 '좋아요' 버튼만 눌렀을 뿐입니다.
두 사람이 결혼할 때 결혼비용과 관련해 두 집안 어르신들이 서로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시거나 서로를 참 뻔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벌어지긴 했습니다만, 여하튼 결혼까진 여차저차 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는데, 이제 두 사람이 버는 돈이 '공동의 돈'이 되고 나니 연애할 때는 아무렇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문제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 남편이 멋쟁이라고 생각했는데, 결혼하고 보니 그냥 옷과 신발에 사치를 부리는 것임.
- 남편이 여행을 좋아하는 낭만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대책 없이 사는 것임.
- 남편이 발이 넓고 대인관계를 잘 한다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노는 것 좋아하는 것임.
신혼집 마련하려 대출 받은 것 갚아야 하고 당장 생활비도 모자라 보일러 간헐적으로만 돌리고 있는 상황에서, 여행계획을 짜며 신상 보드복을 사려고 하는 사람을 제정신으로 보긴 힘든 것 아니겠습니까? A양도 남편에게 이 부분을 지적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지적하게 되면 그는 자신이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벅차하거나, 다 취소하고 다 안 하겠다고 말하며 삐져서는 며칠 가는 까닭에, 그냥 또 그렇게 몇 달 살다 보니 이제 곧 결혼 일년이 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A양은 지난달에도 엄마를 찾아가, 백만 원을 꿔왔습니다. A양의 부모님들이 딸에게 백만 원 내주는 것 정도는 큰 무리가 안 되는 경제력을 지니고 계시다는 게 다행이긴 합니다만, 그렇게 사는 A양을 보며 부모님들은 또 한숨을 쉬시게 됩니다. 결혼 초에 하셨던 '손주' 얘기도 이제 더는 하지 않으시고, 그냥 둘이서라도 얼른 자리 잡고 좀 먹고 살만해 지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런 와중에 A양 남편은 중고나라에서 나이키 한정판 신발 사서 나중에 되팔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며 신발을 사려하고 있고 말입니다.
이래버리면, 농담이 아니라 정말 원형탈모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착하고 다정한 거랑 무절제하고 무계획적인 거랑은 별개입니다. 그래서 전 K양에게, 후자에 대한 부분의 확신을 가질 수 있냐고 묻고 싶습니다. 그 부분이 걱정된다면, 남친과 터놓고 상의를 해 함께 결론을 낼 수 있는지도 묻고 싶고 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면, '여자인 내가 결혼을 주도해도 되는가'라는 고민은 아무 의미 없는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2. K양 커플의 문제와 해결방법은?
K양 부모님께서 K양과 상대의 결혼을 반대하시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봐야 합니다. 사연만 본 저도 반대하고 싶어지는데, K양을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 입장에선 오죽하시겠습니까. 자신이라도 주도해서 결혼을 해야 하는 거냐고 묻는 K양은 동시에
"이런 상태로 결혼을 할 순 없는 거 아닌가요?"
"결혼해도 이 상황이라면 행복할 것 같진 않은데요?"
"남친과 상의를 해도 결국 돈 이야기가 될 거고, 그럼 남친 자존심만 건드리게 될 텐데…."
라는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저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하는 건 K양과 K양 남친인데, 자존심 건드릴 수도 있을 거라는 걱정에 아예 말도 꺼내질 못하고, 그걸 가족이나 친구, 또는 제게 묻고 있다는 게 황당한 일 아니겠습니까.
K양 부모님께서 결혼을 반대하시게 된 건, 세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남친의 불안한 직업과 허약한 경제력.
- 얼굴 한 번 비추질 않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의지 없음'.
- K양 자신도 갖고 있지 못한 남친에 대한 확신.
부모님 입장에서 보자면, K양이 밖에서 놀다가 친구를 하나 사귀곤 그 친구와 유럽여행을 가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유럽여행 갈 준비가 된 거냐고 물었더니, K양은 그 친구가 여행갈 표를 구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합니다. 또 K양은 이미 그 집에 가서 함께 여행가는 것에 대한 허락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친구는 K양 집에 찾아와 얼굴 한 번 비출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K양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유럽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건 K양이고, 그 친구는 K양이 같이 가자고 하는 것에 동의할 뿐 능동적으로 그 여행을 준비할 마음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은 듯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님들이 반대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여행이라면야 가서 일이 주 놀다 돌아오는 것이니 여비를 단단히 챙겨줘서라도 다녀오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혼을 무슨 '우리 딸과 같이 가서 좀 놀다 돌아오게'하는 마음으로 시킬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최소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며 둘이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한 둘의 계획도 있어야 하는 거고, 또 함께하고 싶다는 의지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K양과 K양 남친의 관계에선 그런 게 보이질 않습니다. 그냥 꼬꼬마시절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오겠다는 허락을 받을 때처럼 그렇게 결혼허락을 받으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남친에게 결혼할 생각이 있는 건 분명해요. 하지만 제가 먼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이야기하질 않아요. 제가 왜 결혼 이야기를 안 하냐고 물어보면, 아직 생각이 정리가 되질 않아서 말하지 않는 거라고 대답하네요."
저는 K양 남친의 '생각 정리의 문제'라는 게, 사실 한 꺼풀 더 벗겨보면 '돈 문제'일 거라 확신하는데, 제가 잘못 생각하는 걸까요?
현실적인 부분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남친과 K양이 모아둔 돈은 얼마나 됩니까? 두 사람은 현재 벌이 중 얼마를 저축하고 있습니까? 결혼하게 된다면, 두 사람이 부모님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건 얼마이며 은행에서 대출을 받게 된다면 얼마를 받으실 생각이십니까? 또, 이후 대출금과 이자를 갚아나가고 생활비까지 부담한다고 했을 때, 두 사람의 벌이에선 얼마가 빠져나가는 거고 나머지 돈을 저축한다고 했을 때 3년, 5년 내로는 얼마가 모이게 됩니까?
K양과 K양 남친은 저 질문 중 첫 번째 질문에도 대답을 못 하시지 않습니까? 서로 대략의 월급은 알고 있지만, 그 돈을 받아 어느 정도 지출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그간 얼마를 모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왜 자꾸 돈 얘기만 하냐고 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서른 이후의 경제력은 때론 여러 가지를 증명하기도 합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자신이 버는 돈을 집에 보태왔다거나, 사기를 당했다거나, 사업을 시작했다 실패해 돈을 다 잃게 되었다거나 하는 특별한 이유 없이 경제력이 허약하다면, 그건 그 사람의 무절제한 생활과 무계획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남친이 알고 지내는 사람 많고, 놀러 다니는 것에 적극적이며, 패션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만 하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이 상황에서 정신 줄 놓고 같이 즐기기만 하면, 겨울이 찾아왔을 때 <개미와 베짱이>에서의 베짱이 처지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돈 쓸 줄 몰라서, 받는 월급으로 신상 신발 하나 지를 형편이 안 되어서 못 지르는 게 아닙니다. 제게 도착하는 사연을 보면 서른 기준으로 평균 여자는 2천만원, 남자는 3천만원 정도 모았던데, K양과 남친은 얼마를 모으셨습니까?
K양은 남친과 오래 사귀었다는 것을 강조하시던데, 5년 사귀고 6년 사귀고, 뭐 그런 게 다가 아닙니다. 십 년을 만났어도 그저 소비하는 연애하며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다면, 현실적인 많은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K양과 남친이 최근에 나눈 이야기를 보면 맛집 얘기, 쇼핑 얘기, 여행 얘기던데, 이러면 연애가 즐겁긴 하겠지만 미래에 대한 답은 없어질 수 있습니다.
제가 저 위에서 이야기 한 선배대원 A양의 사례와는 반대로, 두 사람이 2년 간 1억을 모으기로 한 뒤 아무에게도 손 벌리지 않고 결혼하게 된 사례도 이야기 한 적 있지 않습니까? 그 사례에서 경제력 점검을 한 뒤 계획을 세우고 주도한 것은 여자 쪽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그 전까진 네 돈 내 돈 안 가리고 연애 쏟아 부으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그냥 사먹고 보는 연애를 해왔던 까닭에, 그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도 아마 결혼에 대해선 꿈만 꾸고 있었을 것입니다. K양이 제게 사연을 보냈듯, 그녀 역시
"결혼을 생각하고 있긴 한데 형편이 안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하면 고생할 게 뻔하겠죠?"
라는 사연을 제게 보냈을 수도 있고 말입니다. 결혼을 언제 하고 누가 주도하느냐 보다 중요한 건 바로 이 지점이니, 하루라도 빨리 점검하시고 계획을 세우시길 권합니다. 이대로라면, 작년에 '2016년 결혼'이라고 생각한 게 올해는 '2017년 결혼'으로 미루어진 것처럼, 내년엔 또 '2018년 결혼'으로 미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해엔 그저 숫자가 또 하나 더 더해질 것이고 말입니다.
애먼 곳에서 답을 구하려 하지 말고, 관계에 더 바짝 다가앉아 상대와 머리를 맞대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혹 그런 K양의 노력에 대해 상대가 '자존심 상한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런 상대와 과연 앞으로 함께 하는 게 가능할지, 왜 함께해야 하는 건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티스토리 우수블로그 발표가 오늘 났는데, 노멀로그도 속해있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투표에 참여해주셨던 독자 분들께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우수 블로그 수상자에게는 순금 기념품을 준다고 합니다. 순금 기념품을 담배 한 보루, 또는 커피원두 1kg과 교환하실 분 모집한다는 건 훼이크고, 독자 분들께서 안겨주신 상이라 생각하며 어머니 한식조리사 자격증 옆에 진열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2016년엔 부지런히 사연을 다뤄 밀리지 않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26일이 지난 지금 347통의 사연이 밀리게 되었습니다. 중복으로 보내신 분들을 제외해도 300통 이상이 될 것 같습니다. 읽어야 할 사연 많다고 징징거릴 시간에, 한 편이라도 더 읽고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아, 신청서 파일이 누락되었다거나, 비밀번호가 걸려 있는데 알려주시질 않으셨다거나, 잘못된 파일을 보내셨다거나, 깨져서 열리지 않을 경우엔 따로 메일을 드리지 않고 그냥 넘어가고 있습니다. 꼭 다시 한 번 확인하신 후 메일을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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