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남과 연애를 하고 있는 대다수의 여성대원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남친은 정말 또래보다 성숙합니다.”
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연하남과의 연애를 희망하는 ‘자존심 센 여성대원’의 경우는, 비슷한 말이긴 하지만
“그는 정말 또래 보다 성숙합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나보다 어린애.”
라며 ‘나보다 어린애’라는 걸 강조하곤 한다. 칭찬할 만한 상대의 특별한 모습에 대해서도, ‘대견하긴 하지만 대단할 정도는 아님’이라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래버리면, 처음에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든 결국 지붕을 쳐다보게 될 수밖에 없다. 상대가 누구든 아무래도
“누나 말 잘 들으면 예뻐해 줄게. 안 들으면 혼날 줄 알아.”
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사람보다는, 자신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사람과 만나고 싶을 테니 말이다. 오늘은 바로 이 지점에서 곤란을 겪고 있는 ‘연하남과의 연애를 희망하는 자존심 센 여성대원’들의 문제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출발.
1. 진심을 말하지 않고 ‘우쭈쭈쭈’만 하는 문제.
어떤 여성대원은
“걔가 철없는 소리 해도 그냥 다 들어주고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행동도 해줘가며 최대한 맞추려고 했는데, 왜 그러면 그럴수록 미지근하게 구는지 모르겠네요.”
라는 이야기를 하던데, 그렇게 ‘연애가 시작될 정도의 환심 얻기’를 목적으로 우쭈쭈쭈를 하고 있다간 결과도 좋지 않을뿐더러 여러 부작용만 경험하게 된다.
우선, 상대가 헛소리를 할 땐 그게 헛소리 같다고 말해줘야 상대도 이쪽이 제대로 사고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런데 그 얘기는 하지 않고 ‘맹목적인 긍정과 경청’의 태도로만 상대를 대하면, 상대는 이쪽이 딱 그 정도의 수다만 떨어도 즐거워하며 그 수준의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
한 여성대원이 연하남인 상대의 ‘결혼 계획’이라는 걸 듣고 한 말을 보자.
“결혼하면 무슨 와이프랑 세계를 돌아다니며 살고 어쩌고 하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보기엔 그건 계획이 아니라 그냥 환상인데, 그냥 어려서 그러겠지 하며 들어줬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그걸 좀 완화시켜 상대에게 말했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도 이쪽이 누나답다거나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상대 마음 얻는 것에만 급급해 억지로 눈을 빛내가며 들으면 상대는 ‘내 얘기에 완전히 빠졌네.’하는 착각만 하게 될 뿐이다.
그럴 경우, 앞으로 이어지는 거의 모든 대화가 ‘상대의 수다와 실시간 감정 보고’로 점철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두길 바란다. 상대가 헬스를 시작했다고 해도 참 잘했어요, 오늘 3대 운동 몇 킬로 넘겼다고 해도 참 잘했어요, 저녁으로 김치 볶음밥 해먹었다고 해도 참 잘했어요, 유학 간 친구랑 통화했다고 해도 참 잘했어요, 하다보면 나중엔
“누나한텐 정말 별 얘기까지 다 하게 되네. 누난 엄마 같아.”
라는 대답이 돌아올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턴가 상대가 잠수 타는 일이 늘다가, 나중에 한 번씩 수면 위로 올라와 지 얘기 하고 다시 잠수를 타는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고 말이다. 상대에게 잘했다잘했다 해주고 칭찬으로 흥을 돋워 주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내 생각’을 아예 접어두고 상대에게 오냐오냐만 해주다간 그저 ‘엄마 같은 누나’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2. 돌려 말하기와 감정싸움의 문제.
자존심 센 대원들의 좋지 않은 습관 중 하나가,
- 대놓고 말하면 자존심 상하거나 마찰이 생길 것 같으니까, 다른 이야기인 것처럼 돌려서 말하기.
라는 것이다. 직접 얘기하는 대신 상대에게 눈치를 주는 쪽을 택하는 건데, 그게 상대가 아주 바보가 아닌 이상 무슨 뜻으로 그러는 것인 줄 알기 마련이며, 대개 상대가 불편함이나 불쾌감을 느낄 정도로 눈치를 주기에 문제가 된다.
대화를 하나 보자.
여자 – 친구 썸남이 애매하게 굴어서 친구가 골치 아파 하는 중이야.
여자 – 이놈은 왜 이렇게 애매하게 구는 건지.
남자 – 왜? 어떻게 애매하게 하는데?
여자 – 무슨 데이나 생일날 선물 주고, 어디 간다고 하면 픽업 해주고,
여자 – 고민 들어주고, 밤에 불러내 만나기도 하는데, 진전이 없대.
(중략)
(위에서 여자가 말한 게 이 남자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임)
남자 – 근데 그 썸남이 내 얘기는 아니지?
여자 – 왜? 너도 애매한 것 같아?
대화 속 여성대원은 내게
“저거, 진짜 제 친구의 일이에요. 선물이나 픽업, 고민 들어주고 밤에 불러내는 게 이 친구가 제게 했던 일과 겹치는 부분들이라, 이 친구는 자기 얘기를 하는 걸로 착각을 했나 봅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게 자신은 정당화하고 상대만 바보로 만들면 곤란하다. 그게 친구 얘기인 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 말을 꺼낸 의도는 상대에게 눈치 주기 위함이라는 걸 모를 사람 없는데, 거기서 그저
“난 내 친구 얘기한 건데, 네가 오해했네.”
해버리면, 이후 둘은 서로 눈치게임이나 두뇌게임만 하게 될 수 있다. 둘 모두 진심을 가리고 감춰가며 돌려 말하기만 할 수 있고 말이다.
바로 저 순간부터, 둘은 엇갈린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걸 기억해 두었으면 한다. 이후 관계를 뒤흔들 만한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서로의 말 속에 담긴 숨은 의미가 무엇인지를 찾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이고, 소모적인 감정싸움을 반복하며 황당함과 답답함과 짜증을 경험하는 일이 늘어날 것이다. 그러다 아쉬운 사람이
‘하, 그냥 일단 휴전을 좀 제안해야겠다. 예전처럼 대화 잘 통하는 좋은 친구 사이로 돌아가야지.’
하는 마음을 품기도 하지만, 상대 입장에선 그랬다가 또 무슨 ‘돌려까기’를 당할지 모르니 휴전을 거절하는 일로 이어질 것이고 말이다. 그럼 또 휴전을 제안한 사람은
“그래. 알았어.”
라며 복수의 칼을 갈고, 그것에 대해 상대는 사드 배치를 하고…. 그러니 좋았던 처음의 관계를 여기까지 몰고 가지 말고, 최대한 ‘터놓고 말하기’를 실천하길 바란다.
3. 애라고 여기면서, 애가 아니길 기대하는 문제.
위에서 말한 저 ‘우쭈쭈쭈’를 해줘가며 상대를 만나다가, 이게 대체 뭔가 싶기도 하고 보상심리도 발동해 이상한 부분에서 폭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여성대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예쁘게 보이겠다며 저는 화장품 파우치까지 싸들고 나갔습니다.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고 만났는데, 이 친구가 만나자 마자 어색한 분위기를 풍기는 겁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그 말은 안 하고 계속 이 말 했다, 저 말 했다 하면서 뭔지 모르게 사람을 너무 불편하게 하더라고요. 시덥지 않은 개그까지 쳐가면서 분위기를 점점 더 이상하게 만들었어요. 오랜만에 얼굴 보고 즐겁게 밥을 먹으려던 게, 정말 답답하고 재미없는 분위기가 되었고, 피곤까지 겹쳐서 전 약간 짜증이 났습니다.”
저럴 땐
“너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지?”
정도로 운을 띄워주는 게 좋다. 상대에게 뭔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는 걸 알면서 그 얘기는 하지 않고 상대가 어떻게 하나 보고만 있으면, 둘 중 누구도 나서서 해결하지 않는 그 만남은 결국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또, 지금까지 상대를 애라고 생각하며 ‘우쭈쭈쭈’ 해주던 것과 달리, ‘자존심’이 걸린 문제에서는 상대에게 그 책임을 다 떠맡기고 마는 모습도 종종 등장한다. 역시 대화를 하나 보자.
(여자의 고백 후)
남자 – 진짜? 장난하는 거 아니고?
여자 – 장난 같아? 내가 너한테 관심 있는 거 정말 몰랐어?
남자 – 아니. 장난 같지 않아~ 그런 뜻으로 얘기한 건 아니고,
남자 – 그럼 내일 저녁에 볼까?
여자 – 거절할 거면 보지 말자. 그냥 말해.
여자 – 월초부터 스트레스 받기 싫어.
열심히 요리해 밥상 다 차려 놓고는, 상대가 빨리 와서 앉지 않자 화나서 밥상을 엎어 버리는 느낌이랄까. 어떻게 보면 이해하지 말고 반박해야 할 부분에선 이해하고, 반박하지 말고 이해해야 할 부분에선 반박해 버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역시 자존심 센 사람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청개구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위 대화 속 여성대원을 보며 내가 참 안타까운 건, 그녀의 속마음이
“저는 이 친구를 만나면서 많이 즐거웠고, 이 친구를 위로해주면서 저 역시 많이 위로 받았습니다. 생활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고요.”
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때,
“나 너 좋아해. 장난치는 거 아니야. 거절할 거면 그냥 지금 말해.”
라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자기 마음을 전달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 그 마음을 털어 놓는 게 뭔가 부끄럽거나 쑥스러운 것 같아도, 포기하거나 돌려 말하지 말고 하나 둘 그대로 상대에게 전달하는 게 꼭 필요하단 얘기를 해주고 싶다. 이건 연애를 시작한 뒤에도 마르고 닳도록 해야 하는 일이니, 당장 옹알이 같다고 피하지 말고 천천히 한 문장씩이라도 전달해 보길 권한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 다른 식으로 얘기를 해버리면, 상대는 그 ‘다른 식으로 한 얘기’를 이쪽의 속마음으로 오해해 버리니 말이다.
저 위의 대화에서 상대에게 가장 크게 들렸던 말은
“거절할 거면 보지 말자. 그냥 말해. 월초부터 스트레스 받기 싫어.”
였을 것이다. 나야 사연의 주인공인 여성대원이 보낸 신청서를 읽었으니 그녀의 ‘진짜 속마음’을 알 수 있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저걸 짜증이 섞인 신경질적 반응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사연의 주인공은 저렇게 말한 걸 자신이 ‘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그랬다고 말했는데, 그건 ‘칼 같은 성격’이라기보다는 ‘칼 들이대고 묻는 성격’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간 이후로는 그 칼을 좀 내려놓고, 중요한 얘기를 할 땐 만나서 같이 뭐라도 먹으면서 눈 마주보고 이야기하길 권한다.
연하남과 썸을 타며 그가 가끔씩 보이는 정말 애 같은 모습에 울화가 치밀 수 있다는 거 안다. 이 매뉴얼이 여성대원들을 대상으로 작성되었기에 ‘그녀들이 돌아볼만한 점’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한 거지, 위 사연들 속 여성대원들의 잘못이 더 크다는 얘기는 아니라는 걸 밝혀두고 싶다.
나 역시 사연 속에 등장하는 연하남들의 모습을 보면서
‘얘는 무슨 엄마한테 칭찬 받으려는 꼬꼬마처럼 얘길 하네.’
‘우쭈쭈쭈 계속 해주니까 썸녀한테 저런 투정까지 하는구나.’
‘누나는 내게 여자보다 은인에 가깝다? 이건 또 뭔 소리야.’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어느 사연에선 연하남이 썸의 달콤함만 다 즐겨 놓곤 “누나는 이제 결혼을 생각하며 누굴 만나야 나이이고….”하며 무책임하게 빠져나가는 모습에 화도 났고 말이다.
늘 얘기하지만, 상대에게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면 비오는 날 같이 동동주에 파전 한 장 먹을 수 없는 썸남과는 굳빠이 하길 권한다. 특히 연하남이나 구남친의 경우엔 받아주면 받아줄수록 지 얘기만 하거나 지 심심할 때만 연락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니, 거기다 아까운 청춘 소진하지 말고 이쪽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과 만나도록 하자. 잊지 말자. 좋은 사람과 맛있는 음식 먹기에도 인생은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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