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연애를 하다 상대와 헤어진 대원들은, 그 ‘장거리’가 끝나는 시점이 오면 이제 싸울 일도 없을 테니 재결합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고 기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만나면 이젠 연락 안 되는 것 때문에 싸우지도 않을 거고, 장거리 연애 이전처럼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면 나도 참 편하고 좋겠다. 하지만 ‘장거리’ 때문에 헤어졌다고 말하는 대원들의 사연을 보면 장거리는 ‘배경’일 뿐이고, 실질적인 이별은 그 과정 중 보인 모습이나 이별을 전후해 뱉은 말들이 문제가 되는 게 대부분이다. 장거리와 관련된 사연은 아니지만, 전에 소개한 적 있는
- 삼천 원 때문에 헤어진 커플.
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 두 사람에게 내가 삼천 원의 세 배가 넘는 만 원씩 줄 테니 다시 잘 만나보라고 말한다 해서 이별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잖은가. 이처럼 장거리 연애를 하다 헤어진 커플들 역시 그 ‘장거리’가 해결된다고 문제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이와 관련된 K양의 사연, 함께 살펴보자.
1. 헤어진 롱디커플, 남친이 돌아오는데 재회 가능할까요?
장거리 문제 이전에, K양의 남친은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사는 여자친구를 원했는데 K양의 모습이 그의 바람과는 많이 달랐던 것 같다. 특히 K양에게 술 마시고 필름 끊기는 일이 종종 있다는 게, 그에게는 그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이유가 된 것 같다.
“장거리 연애 중, 사람들과 술 마시다가 동기 하나가 저 좋아한다 그랬거든요. 그래서 그걸 오빠한테 말한 적 있어요. 그런데 오빠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저는 오빠한테 ‘불안하지도 않냐’, ‘내가 오빠한테 그렇게 매력이 없냐’라는 이야기들을 해서 자주 싸웠어요.”
K양 입장에선 그게 ‘긴장감을 조성하는 방법’이었을지 모르지만, 남친 입장에서 봤을 땐 ‘답이 없는 관계’라는 생각을 더욱 단단히 굳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K양은 학교 활동을 한다며 맨날 회식하고 술 마시는데, 술만 마시면 필름이 끊긴다. K양 말로는 술 마셔도 집에는 잘 와서 잔다고 하지만, 그의 입장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 날은 연락도 안 되고, 다음 날 늦게 일어난 K양이 ‘집에 잘 들어와서 자고 지금 일어났다’는 메시지를 보낼 뿐이다.
그런 와중에 그 술자리에서 K양이 의지하는 남자도 있었고, 또 그 남자가 K양을 좋아한다고 해서 K양도 잠시 흔들렸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니, 믿음조차 사라지고 만 것이다. 남친은 자신의 다른 조건이 다 괜찮지만 영어가 약해 어학연수를 결심한 뒤 그걸 현실로 옮겨 살고 있는 중인데, K양은 자신을 두고 해외에 가서 장거리연애 하게 만들었다고 남친을 원망한다. 그러면서 술 마신 날 연락 안 되고, 다른 남자와 썸이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며 긴장감까지를 유발하려 하니, 그의 입장에선 필연적으로 이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헤어진 이후로도 K양이 술 마시고 전화를 걸면 상대는 화를 내며 ‘연락하려면 제정신에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얼마 전 두 사람은 통화했는데, K양은 필름이 끊긴 상황에서 연락을 한 거라 그 내용을 기억 못 하고 있다. 이쯤에서, 이 꼭지 도입부 첫 문장을 다시 보자.
“K양의 남친은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사는 여자친구를 원했는데….”
남친이 원하는 모습에 맞추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두 사람이 1년을 어떻게 보냈나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남친은 자신에게 부족한 걸 채우러 계획을 세워 해외로 갔고, 곧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다. K양은 무엇을 했는가?
1년이 지나도 K양은 변함없이 술에 취해 연락을 하고, 다음 날 자신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기억 못한다는 걸 그는 확인했다. K양은 그 전에 자신이 남친에게 연락했을 때 남친이 한 번 보자고 한 걸 두고 내게
“재결합 의사가 있어서 승낙한 걸까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난 그가 그런 의사를 가지고 승낙한 건 아닐 거란 답을 해주고 싶다. 시간이 지나 이제 감정이 잔잔해진데다 두 사람이 과거에 연인이었던 사이니 밥 한 번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 정도지, 재결합을 생각하고 승낙한 건 아닐 것이다. 그리고 K양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생글생글 웃으면서 맞이하면 될까요? 또, 혹시 분위기가 예전처럼 흘러간다면 스킨십은 해야 하나요, 피해야 하나요?”
라고 물었는데, 반갑게 맞이하되 ‘오빠동생’정도로 생각하며 만나길 권한다. 그리고 그런 걸 다 떠나서, 지금까지 애기했듯 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K양에게 비전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2. 헤어지자고 해서 잠수 탔더니, 진짜 헤어진 것 같아요.
상대가 나를 더 먼저 좋아했고, 또 많이 좋아한다고 해서 계속 마음대로만 행동하면 곤란하다. 누구든 처음엔 좀 기울어진 관계로 시작하더라도 친해지고 정 들며 서로를 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내가 갑으로 시작한 연애’라고 해서 횡포만 부리면 상대는 지칠 수밖에 없다.
“제가 하루이틀 잠수를 타도 남친이 언제나 매달렸었는데….”
“같이 술 마시고 제가 심술을 부려도 항상 다 받아주던 남친인데….”
“싸워도 저를 좋은 말로 설득하려고 하고 안심시키던 사람인데….”
그게, 그간 L양의 남친이 ‘늘 그래주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저절로 그래왔던 게 아니라, ‘연인 찬스’라는 기회를 L양이 사용해 온 거라고 생각하길 권한다. 친구가 그랬다면 당장 절교할 만한 일도 ‘우린 연인이니까’라는 이유로 몇 번 넘어가 줄 수 있는 건데, L양은 그걸 ‘남친은 원래 이래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마음대로 대하다 기회를 모두 소진한 것 같다.
“어떤 말로 카톡을 보내야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감동을 줄 수 있는 기회 역시 이미 모두 다 날린 것 같다. 이별 후 L양은 사흘 쯤 잠수를 타다가 남친이 매달리지 않자 연락을 했는데, 연락을 해서 한 이야기가
“네가 사과할 때 내가 받아주지 않았냐. 지금 내가 사과하니 너도 받아줘라. 진짜 잘할 테니 이렇게 끝내지 말아라. 내가 너를 포기하게 만들지 말아라.”
였다. 저때는 그래도 ‘이러다 또 날 붙잡으러 오겠지’하는 마음이 아직 강할 때라 저렇게 보낸 것 같은데, 남친은 저 메시지를 받곤 오히려 ‘얘는 끝까지 이기적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또, 연애 중 남친이 계속 부탁한 건
“싸우더라도 하루 넘게 연락을 안 하진 말자. 대화를 하자.”
였는데, 이별 과정에서 L양이 남친이 보낸 메시지에 답도 하지 않고 ‘대답 없음’으로 궁지로 몰려 했던 것이 그의 마음을 이 관계에서 뜨게 만들었을 것 같다.
“남친과 저를 모두 아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만나서 저 교통사고 났었다고 한 번 말해볼까 하는데, 이건 어떤가요?”
정말 잡고 싶은 거라면 자꾸 머리 굴려 무슨 ‘방법’만 찾으려 하지 말고, 당장이라도 찾아가서 얼굴 보고 대화하길 권한다. 연애 중에도 L양은 남친을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둔 채 원하는 지점으로 움직이게 만들려고 했는데, 이번 이별을 통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채 계속 그러고 있으면 곤란하다. 남친을 조종하려 들지 말고, 만나서 L양의 진심을 전할 수 있길 바란다.
상대는 잦은 실망으로 인해 점점 이 관계를 체념하게 되는 건데, 그걸 모른 채 “날 더 사랑해라.”, “사랑한다는 더욱 확실한 증거를 보여라.”라는 이야기를 하는 대원들이 많아 안타깝다. 이건 남녀 구분 없이 벌이는 일인데, 이럴 땐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난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보길 권한다.
자 그럼, 다들 즐거운 월요일 저녁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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