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피우는 남친을 둔 여성대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저도 이 관계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거 압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게 알 거 다 알면서 내게 도움을 요청하면 나는 해줄 말이 없다. 이미 난 강한 어조로 “자기 팔자 자기가 꼬면 방법 없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고, 부드러운 어조로 “그 사람과의 미래가 그려지는지를 보세요.”라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지 않은가. 어느 여성대원의 사연 속 바람둥이 남친이 하는 말들을 하나하나 반박해 준 적도 있고, 상대가 무슨 마음으로 그러는 건지까지를 설명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저 여자들처럼 바보는 아닌데….’
‘이 사람은 저런 남자들과는 다른데….’
라는 생각으로 계속 같은 질문을 하는 대원들이 있다. 그럼 난 또 같은 얘기만 자꾸 반복해야 하니,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막고자 오늘은 ‘바람둥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궤변’을 좀 정리해둘 생각이다. 네 개의 멘트를 소개할 건데, 상대에게 들어본 적 있는 멘트 하나당 25점으로 계산해 스스로 점수를 내보길 권한다.
다른 테스트들이 50점이면 어쩌고 75점이면 저쩌고 하는 것과 달리, 이 테스트는 25점만 나와도 관계를 정리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걸 먼저 밝힌다. 자, 출발해 보자.
1. 그 여자가 찾아오고 연락하는 건데, 나더러 어쩌라고.
바람을 피우는 남자들이 가장 자주 쓰는 궤변은,
“그 여자가 찾아오고 연락하는 건데, 나더러 어떡하라고.”
라는 거다. 그들은 본인이 끊거나 알아서 단속했어야 하는 부분들을 그대로 둔 채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라는 핑계를 댄다. 대시하는 이성이 있더라도 확실하게 거절의사를 밝히거나, 말로 해서 안 되면 차단을 하거나, 무응답으로 대처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놓고 때때로 상대에게 희망까지를 심어주며 그 상황을 즐기는 것이다.
이쪽에서 화를 내면, 그들은
“집 앞까지 찾아와서 만나줄 때까지 안 간다고 하는데, 그럼 그걸 그냥 둬?”
따위의 말로 교묘하게 논점을 옮기기도 한다. 대화의 논점은 ‘왜 단호하게 상대를 끊어내지 않고 여지를 두는가.’인데, 그걸 ‘상대도 사람인데 사람한테 그렇게 함부로 해도 되냐.’로 옮기는 것이다. 거기에 말려든 여성대원 대부분은 ‘알았으니까, 앞으로는 끊으라고’정도의 대답만을 할 뿐이고, 다음에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상대는 또 다시 ‘넌 왜 내게 사람한테 잔인하게 굴라고 하냐’며 이쪽을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상대는 자신이 다른 이성과 연락하며 썸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는 걸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포장할 텐데, 거기에 넘어가지 말고 “내가 지금 너랑 똑같이 행동하면 넌 어떨 것 같아?”라고 물어보길 권한다. 만약 그 말에 상대가 “너도 만나. 난 아무렇지 않아.”라고 대답한다면, 그는 이 관계를 ‘순간의 비즈니스’로 보고 있는 거니 서둘러 돌아 나오길 바란다.
2. 걔는 정상이 아니야.
A를 만나고 있을 땐 A와 ‘우리’가 된 채 B를 ‘타인’으로 두고, B와 만나고 있을 땐 그 반대가 되는 것 역시 그들이 애용하는 방법 중 하나다. 이쪽에 와서는 여자 A가 자꾸 들이대 힘들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만, 여자 A와 만나서는 이쪽을 얼른 정리하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미 많은 선배대원들이 경험했던 일이다. 남친이 자신에게 들이대는 여자를 사이코로 묘사한 까닭에 같이 혀를 차기도 했지만, 그 여자와 남친이 주고받은 메시지를 확인하니 이쪽은 정신병자로 여겨지고 있었던 사례는 흔하다.
이쪽에겐
“내가 연애 중이라고 밝혔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쟤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너도 알 수 있잖냐. 지금 네 옆에 있는 건 너다. 나에게 쟤는 아무 의미 없는 애다.”
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상대에겐
“지금 사귀는 여친은 내가 헤어지자고 하면 자살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음 정리 할 때까지만 옆에 있어주는 거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저런 말에 넘어가 남자가 다리 하나 걸치고 있는 상대를 ‘이상한 여자’로만 여기고 있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상대 여성이 전화를 걸어와 “오빠는 나랑 만나는 중이다. 넌 뭔데 끼어드냐. 그만 해라.”라는 이야기를 해도, 그저 집착증을 앓고 있는 사이코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중간에서 남자가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려 둘을 사이코와 정신병자로 소개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서로가 서로에게 혀를 차고 만다.
한 여성대원은
“그 여자가 오빠 카스에 남기는 댓글 보면 가관이에요. 저 보란 듯이 하트 이모티콘 남기고, 저를 겨냥하는 듯한 댓글까지 남기더군요. 오빠는 저보고 이해하고 참으라는데, 진짜 그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이야기도 하던데, 그런 일이 일어나는 연애가 과연 정상적인 연애일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길 권해주고 싶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은 채 중간에서 그때그때 안심 시키려는 말만 하는 사람과는, 일찍 헤어지는 게 축복이다.
3. 나 못 믿는 거야?
소제목 1번에서 이야기 한 것이 ‘인간애’로의 논점이동이라면, 이 부분은 ‘믿음’으로의 논점이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믿음은 믿을만한 행동을 하면서 요구하는 게 정상적이 것이며, 믿어달라는 부탁을 했으면 이후 상대가 믿을 수 있도록 그 증거들을 보여주는 것이 맞다. 상대가 그런 과정 없이 다짜고짜 신뢰를 요구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불신이 이별사유가 될 수 있다는 뉘앙스로 위협까지 하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속이 타들어갈 일만 예약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별 생각 없이 상대가 하는 말을 마냥 듣고 있다간 ‘믿는다, 못 믿는다’에 대한 대답만을 하게 될 수 있는데, 그땐 한 발짝 물러서서 ‘믿음’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정확하게 따져야 한다. 피곤하니 오늘은 각자 집에서 쉬자고 했던 상대가 그날 다른 여자와 만났다면, 그 만남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걸 믿는 게 문제가 아니라, 피곤해서 만날 수 없다고 했던 사람이 다른 여자와는 만나서 몇 시간씩 같이 있었다는 게 문제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나 못 믿는 거야?”
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 대부분이, ‘배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행동을 저지른 뒤에 믿음을 요구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경우만 하더라도, 오늘 너무 피곤하니 다음에 보자고 한 연인이 다른 이성과 만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면 누구라도 피가 거꾸로 솟을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런 전력이 있으니, 이쪽은 필연적으로 상대가 친구 만나서 밥 먹는다고 해도 의심이 되고, 미드 본다고 한참 연락을 안 해도 의심이 되며, 씻을 때도 폰을 가지고 들어가 씻으면 의심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럴 땐 ‘나도 널 믿고 싶고 믿으려고 노력할 테니, 너도 내가 믿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하길 권한다. 단순히 못 믿어서 의심하는 게 아니라, 이전의 일 때문에 상대가 폰에 메시지가 와도 일부러 확인 안 하고 슬쩍 감추는 게 의심스럽다고 말하면 된다. 그렇게 말하면
“그럼 지금 확인시켜줄게. 대신, 확인하는 순간 우린 끝이다. 넌 날 못 믿은 거야.”
라며 자신이 쥔 칼자루를 보여주며 위협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상대와는 계속 사귀더라도 단두대에 목 올려놓고 만나듯 늘 불안에 떨어야하는 연애를 할 수밖에 없으니 이별을 고려하길 권한다.
4. 곧 정리할게. 정리할 거야.
곧 정리하겠노라는 상대의 말을 들을 땐 잠시 안심이 될 수 있겠지만,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곧 정리하겠다’는 말 자체가 이상한 거다.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괴상한 상황인 건데, 잘못을 빌며 당장 해결하겠다고 약속하긴커녕 ‘곧 정리하겠다’니.
한 여성대원의 남친은
“그 여자는 내 연락만 기다리고 있다. 그게 너무 불쌍해서 연락했던 거다. 곧 정리하겠다.”
라는 말인지 막걸린지 모를 소리를 했는데, 그 말을 들은 여성대원은
“네가 매정하게 굴어야 떨어져 나갈 거다. 연락 기다린다고 연락 해주면 걔는 희망만 갖게 될 뿐이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 아니, 이게 친구가 연애상담을 한 것도 아니고 남친이 일을 저질러 놓고는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건데, 거기에 대고 왜 조언을 해주고 있는가. 그렇게 한 번 궤변에 말리기 시작하면 계속 말리게 된다. 곧 정리하겠다던 저 남자가, 시간이 지나 한 말을 보자.
“흔들리지 말고 기다려줘. 진짜 정리할 거야. 속 썩여서 미안해.”
그건 오는 연락을 안 받거나 상대에게 연락하지만 않아도 그 즉시 해결될 일인데, 말도 안 되는 이해와 배려와 기다림이 거듭되니 결국 기형적인 관계가 되고 말았다. ‘곧 정리하겠다’는 말만 믿고 한 발짝씩 따라가다 보니, 너무 멀리까지 가게 된 거다.
이 정도면 내가 매뉴얼을 통해 강조하는 ‘책임감과 존중’이 있는 관계인지를 살피는 건 고사하고, 이걸 ‘연애’라고 할 수 있는지조차 의문인 거다. 여자친구 생일에 여자친구는 일찍 들여보내고 자신의 연락을 기다리는 여자가 불쌍하다며 만나러 가는 남자는, 결혼 후 아내를 집에 방치해두고 이혼한 옆집 여자가 불쌍하다며 와인 사들고 옆집에 갈 수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 현재 남친이 다리 하나 걸쳐두고 있는 그 여자만 어떻게든 떼어내면 다 해결될 거라 생각할 수 있는데, 이 정도까지 선을 넘어본 사람에게 다음 번 선을 넘는 건 일도 아니라는 얘기도 해주고 싶다.
난 제발 좀, 위와 같은 상황에 놓인 여성대원들이 판단력을 발휘했으면 한다. 썸을 탈 때, 또는 연애 극초반에 상대가 보인 모습만을 상대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자. 지금 겪고 있는 상대의 모습이 그의 본색에 더 가깝다. 상대의 말만 따라갈 게 아니라, 중심을 잡고 스스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또, 위에서 말했지만 ‘이번 일만 해결되면 다 잘 될 거야’라는 착각에 빠지지 말았으면 한다. 내게 종종
“이런 남자도 어쨌든 결혼을 할 거 아녜요. 그게 제 자리면 돼요. 더 바라는 거 없어요. 점점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가고 있는 그를 돌릴 방법만 알려주세요. 제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무슨 짓을 해야 하든, 이길 수 있으면 돼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여성대원들도 있는데, 결혼이 모든 걸 다 해결해주는 거라면 나도 어떻게든 도와주겠다. 하지만, ‘상대의 첫 결혼상대’라는 트로피 하나 받는 대가로 남은 인생을 말라비틀어지게 사는 건 불행에 가깝지 않은가. 상대가 구애할 때만 해도 그다지 마음에 안 찬다는 생각까지 했던 사람이, 몇 주 경험한 상대의 초반 모습만 부여잡고 대체 어디까지 망가진 건지를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뒤돌아서면 이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져있는데, 왜 이걸 다 등지고 그 시궁창 같은 곳에서 목을 축일 생각만 하고 있는가. 시궁창에서 더 허우적대봐야 입에 들어오는 건 구정물 밖에 없으니, 지금이라도 양지바른 곳으로 나와 젖은 몸과 마음부터 말리길 권한다.
돌아 나오면 외톨이나 패배자가 될 것 같다는 불안 때문에 쉽진 않겠지만, 나오는 순간 ‘대체 내가 왜 거기서 그러고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게 정상궤도로 돌아올 것이다. 그간 상대는 충분히 믿어봤으니, 이번엔 나를 한 번 믿어보길 바란다. 내가 보장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는 내게 “그땐 참 제가 잠시 미쳐서….”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행복해질 것이 분명하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선례를 난 목격했고 지금도 목격하는 중이니, ‘연애 재부팅’ 한다 생각하며 지금 바로 리셋 버튼을 누르자.
▼ 새끼 고양이 분유 먹이고, 배변 유도하고, 체온 유지해주다보면 하루가 다 감.
'연애매뉴얼(연재완료) > 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지식한 사람들에게 연애가 어려운 이유는? (50) | 2016.06.07 |
---|---|
사내 심남이, 떠보는 걸까 아니면 장난일 뿐일까? 외 1편 (74) | 2016.06.03 |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썸, 제 착각이었을까요? 외 1편 (44) | 2016.05.28 |
십년지기 남자사람친구와 사귀어도 될까요? 외 1편 (107) | 2016.05.25 |
차단 위기에 놓인, 월요일 사연의 조장오빠 외 1편 (82) | 2016.05.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