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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십년지기 남자사람친구와 사귀어도 될까요? 외 1편

by 무한 2016. 5. 25.

새끼고양이 두 마리가 담겨 있는 박스를 어둡게 해줬더니, 이제야 좀 조용하다. 웹에서 새끼 고양이들 사육법을 좀 찾아봤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새끼 고양이들은 우리 집에 있는 녀석들보다 한참 더 크다. 얘들은 손에 쥐면 주먹 밖으로 머리 하나 겨우 나올 정도로 작다. 모래 사다가 놔주면 알아서 배변하는 줄 알았는데, 젖병에 분유 타서 먹이고 난 뒤 살살살 마사지를 해줘야 배변을 한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녀석을 마사지를 해줄 때 그르릉 거리면 행복하다는데, 난 그냥 뭔가 무섭다. 내 인생에 고양이가 끼어드는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별로 춥지도 않은데 부들부들 떨어서, 페트병에 따뜻한 물 받아 넣어줬더니 그 위에 올라가 있다. 소리를 내도 귀만 살짝 움직일 뿐 전혀 반응하지 않고, 바닥에 놓으면 구석을 찾아 거의 기듯이 움직이는데 앞에 손을 갖다 대면 손을 타고 오르려고 한다. 새끼임에도 발톱이 날카로워 피부가 긁히는 느낌이 든다.

 

어제 밤에 공쥬님(여자친구)이 간디(애완견, 푸들)를 데려와 새끼고양이들과 만나게 해봤다. 고양이들이 먕먕 거리며 계속 울어대자 간디는 녀석들의 냄새만 몇 번 맡다가 피해버렸다. 간디가 암컷이라 혹시 모성애를 발휘해 품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TV동물농장>같은 프로그램 보면 자기 새끼 품듯이 고양이 품고 막 그러던데. 차신견(차가운 신도시 개)답게 간디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분유를 세 시간에 한 번 정도 먹이라는데, 이걸 내가 왜 하고 있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당장 어쩔 수 없으니 그래야 할 것 같다. 고양이 구경 온 사람들은 전부 너무 귀엽다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분양 받으라고 하면 “키우겠다는 건 아니고….”라며 발을 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밥을 주고 배변 유도를 해야 하는 지금은 지인들도 분양 받기를 꺼리니, 사료를 줘도 괜찮을 정도 까지만 돌보다 분양할 생각이다. 얼른 매뉴얼 발행한 뒤 어제 사 놓은 고양이 관련 책을 좀 읽어야겠다. 출발해 보자.

 

 

1. 십년지기 남자사람친구와 사귀어도 될까요?

 

나이의 많고 적음이 분별력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이십대 초반인 A양이

 

“저는 마지막 사랑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많은 것을 배웠고, 성숙했고, 관계가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저 짧은 행복을 위한 관계는 시작하고 싶지 않아 이렇게 사연을 보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난 좀 당황스럽다.

 

“저는 이 친구의 지나간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이 친구는 연애할 준비는 되어있지만, 그게 아직 즐겁고 대학생스러운 연애에 대한 준비 같거든요. 좀 더 진지한 연애를 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요.”

 

만약 내가 A양도 대학생이지 않냐고 묻는다면, 그건 ‘정신적 성숙’까지 고려하지 않은 너무 무딘 질문이 되는 걸까?

 

“얘도 (아직 나이가 어리니)여러 여자를 만나고 싶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여자를 좀 더 만나는 동안 친구로 지내다 나중에 이루어져도 되지 않을까요? 또, 혹시라도 제가 고백했는데 얘가 절 안 좋아하면 어쩌죠? 얘랑 사귀면 결혼해야 될 것 같은데 얘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남자인데다 놀고 싶어할 나이니까 다른 여자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이런 이유들로 인해 그간 우리 사이가 ‘친구’였던 것 아닐까요?”

 

A양은 지붕 위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그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한 것과 같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렇게 관조하며 혼자 상상하던 것들이 현실과 일치한다면 참 좋은 일이겠으나, 지붕에서 내려가 상대와 관계를 맺을 땐 모든 것이 변한다. A양도 그냥 그 많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될 수 있고, 놀라울 정도로 상대는 A양에 대해 별 생각이 없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수 있으며, A양은 자신은 절대 실수할 리 없다 굳게 믿고 있지만 헛발질을 하는 주인공이 바로 A양이 될 수도 있다.

 

나도 근 10년을 연애사연을 읽고 매뉴얼을 써왔으며 또 연애중이지만, 지금도

 

‘아, 방금 내가 한 저 말은 안 하는 게 더 나았을 뻔 했네.’

 

하는 후회를 한다. 의도치 않게 공쥬님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 정말 별 일 아닌 걸로 토라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새롭게 배우는 것들도 있고, 멀리서 남들의 이야기를 볼 때 왜 저럴까 답답하기만 했던 부분이, 직접 겪게 되면 삶을 뿌리 째 흔드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걸 새삼 깨닫기도 한다.

 

현재 타이어와 오일 컨디션 완벽하고 워셔액까지 충분히 채워둔 차라고 해도, 결국은 타면서 계속 소모품 갈고 정비해야 오래 탈 수 있는 법이다. A양이 현재 고민하는 지점은

 

"정말 괜찮아 보이는 차가 있는데, 이 차 사면 50년 탈 수 있을까요?"

 

라고 묻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이니, ‘현재의 상태’만으로 미래의 모든 보장까지 받으려 하진 말길 권한다.

 

또,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하고 정비를 철저히 해도 중앙선 넘어서 달려드는 차가 있으면 사고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A양과 상대가 친구로서 정말 완벽한 한 쌍이고 이어 연애까지 하더라도, 뜬금 없이 푼수성향 다분한 상대 사촌이 한 마디 던진 걸로 둘의 분열이 시작될 수 있다. 그러니 상대와 ‘일주일에 한두 번 연락하는 사이’인 지금 모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서 한 획도 어긋나지 않을 방법을 찾지 말고, 만나면서 생각해 봤으면 한다.

 

끝으로 하나 더. 연애는 내가 시나리오 다 쓰고 감독까지 하며 상대에게 “넌 내가 정해준 역할만 충실히 연기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상대도 이쪽과 동등한 한 사람이고, 그렇기에 상대의 의견도 이쪽의 의견만큼이나 충분히 존중 받아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둘이 함께 하는 거지, A양이 상대 데리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기억하자.

 

 

2. 완벽한 남친을 만났는데 가치관이 달라서 자꾸 싸워요.

 

남자친구와는 ‘가장 친한 친구보다 한 뼘 정도 더 친하게’만 지낸다고 생각하자. 서로에게 누구보다 연락 많이 하고, 또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면 충분하다. 완벽에 가까운 연애를 떠올린 뒤 그것과 자신의 연애를 비교하며 계속 ‘불만족’을 이야기 하면, 상대가 누구든 결국 지치게 된다.

 

난 공쥬님과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거의 매일 만날 수 있고, 밥도 함께 먹을 수 있으며, 시간을 조절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은 까닭에 매일 출퇴근까지를 도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는 이유는, 그랬다간 ‘내 생활’이라는 게 무너지며 연애를 위해 모든 걸 뒤로 미루거나 다른 걸 다 끊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느니 한 번 더 만나고, 공부를 하느니 한 번 더 만나며, 챙겨보는 미드를 보느니 역시 한 번 더 만나고, 웹서핑을 하느니 한 번 더 만나다 보면, 내 직업은 ‘연애’가 되고 상대와 같이 있지 않을 땐 별 의미가 없는 인간이 될 수 있다.

 

남친이 하는 거의 대부분의 일에 대해

 

“그게 나보다 더 중요해?”

 

라고 말하는 순간 그 관계엔 이별이 예약되어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 성별이 반대라도 마찬가지다. 저건 외로움 많이 타고 의존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집착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내게 되는 소리인데, 저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상대가 노력해도 늘 부족해 보이게 된다.

 

S양의 연애를 보자.

 

“남친은 한다고 노력했고, 카톡 시간나는 대로 해주고 혼자 쉰 적 없이 모든 시간을 저에게 다 줬어요. 게임을 해도, 드라마를 봐도, 공부를 해도 항상 저한테 옆에 있으라고 했어요. 근데도 저는 남친이 가족들과 통화하거나 친구들하고 놀러가면 (저를 데려갔지만) 왜 그럴 시간은 있냐고 삐지고.. (민망하네요) 남친이 피곤해서 말 안하고 있으면 뭐 기분 나쁘냐고, 근데 남친은 정말 피곤한 거라고, 근데 저는 분명 뭔가 제가 잘못한 것같고, 그래서 삐지고. 그렇게 많이 싸웠네요.”

 

집착 2기에 접어든 모습이다. 사연을 읽으며 내가 가장 놀랐던 건, 남친 친구들과 S양이 함께 놀러갔는데, 거기서 기분 나쁜 일이 생겼다고 모두와의 대화를 차단한 채 S양 혼자 있었다는 거다. S양은 이것에 대해

 

“예전이었으면 그냥 집에 와 버렸을 텐데, 저도 나름 노력한다고 참은 거예요.”

 

라고 말하던데, 그거나 그거나 크게 다를 게 없다. 반대로 S양 친구들과 놀러간 자리에서 남친이 그런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해 보자. 그럼 S양은 그 사이에서 가시방석 위에 앉은 듯한 느낌으로 괴롭지 않겠는가.

 

예민하기 때문에 쉽게 불안해질 수 있고, 또 여리기 때문에 작은 것에도 상처 받을 수 있는 거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럴 때마다 사람들에게서 등을 돌리거나 상대에게 그 불안을 해결하라고 요구하면, 역시 상대는 ‘이별’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S양은 사과에도 익숙하지 않은 까닭에 상대를 기분 나쁘게 만들 위험이 높다.

 

“오빠에게 ‘피곤한 거 알겠고, 내가 칭얼대서 미안하다’고 말했어요. 그러고는 ‘그런데 오빠도 나한테 짜증낸 건 사과해줘라’고 했고요. 그래서 잘 풀긴 했는데, 오빠가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은 안 하는 거예요. 제가 오빠한테 ‘오빠 나한테 안 미안해?’라고 하니까 그제야 미안하다고 하는데, 너무 속상했어요.”

 

꼬투리를 잡아 먼지 털 듯 털면 안 된다. 갈등이 잘 풀렸는데도 꼭 ‘미안해’라는 말을 듣고 싶은 거라면, 차라리 같이 있으면서 귀엽게 카톡으로 “나한테 빨리 미안하다고 해.”라고 보내거나, “SORRY가 한국말로 뭐지?”라고 묻거나 해서 듣길 바란다. 같이 있으면서

 

“지금부터 침묵의 형벌을 시작하겠습니다. 피고는 내가 왜 화 났나 알아맞히세요.”

“10분간 투명인간 취급을 시작하겠습니다. ‘화났어?’라고 물어보면 5분 연장 됩니다.”

 

라며 분노 게이지가 차오르고 있다는 걸 생중계만 하면, 상대는 다음 데이트에도 이런 일이 또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이 사람과 함께 하면 늘 이럴 수 있다는 생각에 점점 이 관계에 대한 회의를 품을 수 있다.

 

“남친이 주말만큼은 저랑 보내고 싶다며 집안 일이 있는데도 제게 와주기도 하고,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데이트를 하는 사람이긴 해요. 싸운 날도 그냥 무시하고 자도 되는데 끝까지 저랑 싸워줬고, 아무리 화나고 짜증나고 지쳐도 전화 절대 먼저 안 끊어요. 오히려 제가 먼저 끊죠. 하지만 전 남친이 저를 더 우선순위에 놓았으면 좋겠어요. 연애란 서로 노력해야 하는 거잖아요.”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의사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인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그저 전공을 의대로 선택한 보통의 학생이라기보다는, 청춘의 절반 이상을 미리 저당 잡힌 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의대생뿐만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전문직이 마찬가지다. 사회에 나오는 그 순간에는 반짝반짝 빛날지 모르겠지만, 그 전까지는 대부분 필기한 것만 봐도 보통 사람은 토가 나올 정도로 공부를 한다.

 

다른 학과를 무시하려는 건 절대 아니지만, S양은 늦깎이 의대생인 남친에겐 좀 더 많은 이해심을 베풀어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는 점점 빡세지는 과 실습으로 녹초가 되어가는 와중에도 카톡 꼬박꼬박 해주지 않았는가. 그에게 현재 직장인인 S양과 같은 정도의 관심과 노력과 에너지를 연애에 쏟으라고 하면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 집에 와서도 과제 때문에 쉬지 못 하고 그거 끝낸 뒤 게임 한 판 하고 자겠다는 사람에게,

 

“게임할 시간은 있고 나랑 통화할 시간은 없어?”

 

라고 물으면 연애고 뭐고 다 싫어질 수 있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S양이 상대에게 하는 말들이 ‘너무 많은 일상의 공유’는 아닌지도 한 번 돌아보길 권한다. S양의 절친이 S양이 남친에게 보내는 것과 똑같은 얘기들을 S양에게 하면 S양도 벅차지 않을지, 또 S양이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들도 있을 텐데 너무 과하게 모든 걸 다 ‘함께 하면 좋으니까’라고 생각하며 같이 하길 권하고 있는 건 아닌지도 생각해 봤으면 한다.

 

남친은 공부할 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S양과 더 같이 있으려고 공부할 거 들고 밥 까지 사서 S양의 집에 찾아왔다. 그게 그의 ‘노력’이다. 그냥 공부 핑계로 집에 있다가 끝내고 미드 한 편 보고 잘 수도 있는 건데, 그러지 않고 찾아온 거다. 그런 남친을 두고 ‘공부를 해야 하더라도 내 얼굴 한 번 더 보고, 말 한 번 더 걸고, 손 한 번 잡아줄 수 있는 것 아닌가’하는 건, ‘안 되는 부분’만을 보며 서운해 하는 거라 할 수 있다. 어떤 여성대원은 병원에 입원해도 남친이 택시비가 없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병문안도 안 오는데, S양 정도면 축복받은 것 아닌가.

 

S양은 충분히 사랑 받고 있으며, 남친 역시 괜찮은 사람인 게 맞다. 화나고 짜증나고 지쳐도 절대 전화 끊지 않고 끝까지 모든 얘기를 다 들어주는 사람이 흔한 게 아니니, 그런 부분에 감사하지 않은 채 ‘그가 못 하는 부분’을 자꾸 파내며 ‘더욱 완벽한 사람’으로 개조하려 들진 말았으면 한다. ‘잘 되고 있는 부분’에 감사하며 사랑하자.

 

 

매뉴얼을 쓰는 중간 중간 고양이 먹이 주고 배변까지 시키고 나니, 벌써 이 시간이다. 검은 녀석은 그래도 순하게 안겨 잘 먹는데, 누런 녀석은 앙냥냥냥 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고 난리를 친다. 검둥이 누렁이라고 지을 순 없으니 이름을 지어줘야 할 것 같은데, 내일쯤 노멀로그에 사진을 올린 뒤 이름 공모를 할까 한다. 검은 녀석이 완전 검은 건 아니고 회색과 카키색과 검정색을 믹스해 놓은 느낌이다. 누런 녀석도 흰색 바탕에 누런 무늬와, 검둥이와 비슷한 무늬가 섞여 있다.

 

녀석들은, 강아지처럼 먹을 거 줄 때 좀 얌전히 먹는 게 아니라, 늬야옹 거리면서 손을 막 할퀸다. 아, 얼른 고양이 사육 관련 책 마저 읽으러 가야겠다. 다들 편안한 수요일 저녁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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