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부터, 인터넷 서점 YES24에 들어가면
“책 많이 사서 회원등급 높으신 분들, 전시 무료로 보여드려요. 영국의 다빈치로 불리는 헤더윅 스튜디오 전시에 초대합니다~”
라는 내용의 배너가 떴다. 난 무료로 갈 수 있는 전시회나 공연이 있으면 최대한 챙겨 보는 타입인데다, 마침 내 회원등급이 플래티넘인 까닭에 전시회를 보러 다녀오기로 했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디뮤지엄은 한남동에 있는데, 길을 찾아보니 우리 집에서 그곳까진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고 나왔다. 추천경로는 ‘버스+전철’로 뜨던데, 개인적으로 전철보다는 버스를 선호하는 편이라 ‘버스+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남대문까지 간 뒤, 남대문에서 다시 한남동 디뮤지엄으로 가는 동선을 계획했다. 평일이라 해도 돌아올 때 퇴근시간과 맞물리면 버스를 못 탈 수 있으니, 점심 먹고 12시에 출발해 그곳에서 전시를 본 뒤, 적어도 4시쯤에는 다시 돌아오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디뮤지엄 도착. 난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정류장에서 내려 한남오거리를 통해 올라가는 루트를 선택했다. 옥수역에서 내린 뒤 걸어 올라가는 방법도 있다고 하는데, 거의 등산 수준으로 1Km가 넘는 오르막을 올라가야 하는 까닭에 힘이 든다고 한다.(그쪽으로 걸어 올라가 본 적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을버스라도 타고 올라가길 권하고 있다.)
지금 확인해 보니 YES24에서도 다시 공지를 바꿨던데, 내가 처음 배너를 봤을 때만 해도
“YES마니아 고객님이시라면, YES24 도서앱을 설치한 뒤에 현장에서 앱 화면만 보여주시면 동반 1인까지 전시를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그래서 난 그냥 회원등급만 확인하면 바로 입장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매표소에서 앱을 열어 회원등급을 보여주니
“신분증도 같이 보여주셔야 돼요.”
라고 했다. 난 신분증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그러자 직원은 신용카드에 쓰여 있는 이름이라도 보여 달라고 했다. 카드에 있는 이름을 확인시켜 주자, 직원은 다시
“동반 관람이시죠? 두 분 다 디뮤지엄 앱에 로그인 된 화면 보여주세요.”
라고 했다. 뭐, 무료로 보는 입장이니 까라면 까야 하는 거고, 깔라면 깔아야 하는 거겠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설치라도 하고 올 수 있었던 걸 못하곤, 그 앞에서 앱을 깔고 회원 가입하는 게 번거로웠다. 회원 가입까지 마친 뒤 폰을 내밀었을 때, 다시 나에게 폰을 돌려주며
“바코드 보여주세요.”
라며 다짜고짜 말하는 직원의 태도도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지금 막 설치했는데 바코드가 어디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어디서 바코드를 찾아야 하는 거냐고 물어보니 “멤버십 클릭해 보세요.”라고 하던데, 그 직원이 하는 일이 입장을 도와주는 건지 입장을 막는 건지 궁금할 정도로 좀 짜증이 났다.
마니아 회원을 초대한다고 해놓곤 이런 거지같은 절차를 밟게 한 YES24에도 짜증이 났다. 우리 다음 팀, 다다음 팀도 죄다 그 매표소 앞에 서서 앱 깔고 회원 가입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디뮤지엄 앱 설치와 회원 가입을 유도하려면 애초에 그러고 난 뒤에야 초대권 형식으로 발급받게 하든가, 아니면 뒤늦게야 그런 설명을 추가하지 말고 공지 할 때부터 그 문구를 적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신원 확인이 안 되거나 앱 설치와 회원가입에 동의를 안 하면 입장이 불가하다고 말이다.
여하튼 그건 그거고.
전시장 입구에 저렇게, 리플릿을 사용해 트리처럼 만들어 두었다. 아래에 설치된 선풍기 때문에 리플릿들이 휘날렸고, 관람객들은 그런 리플릿을 한 장씩 뜯어갔다.
헤더윅의 졸업작품과 초창기 작품들을 모아둔 곳이다.
‘이 사람은 비틀고, 꼬고, 휘는 걸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저 나무들을 보면서는,
‘이걸 지금 가구에 활용하기만 해도 엄청난 인기를 끌 것 같네….’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 전시를 특별하다고 느꼈던 건, 다른 전시와 달리 바로 저 ‘아이디어 초기 스케치’들이 포함된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헤더윅에 대해 검색하다 보니
“혼자 욕조에 몸 담그고 있다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한 인터뷰가 있던데, 그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살을 붙이고, 수정하고, 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작품을 만드는 것 같았다.
어디에 설치한 조형물인가 싶었는데, 설명을 보니 지하 변전소의 통풍구였다. 난 전시회를 보러 가는 길에 몇몇 건물들 앞에 덩그러니 설치된 조형물을 보며 ‘나쁘진 않지만 뭔가 따로 노는 느낌이네’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저 통풍구를 보니 ‘이 사람은 그냥 막 만들어서 세워두는 그런 사람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와 같은 형태로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거리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변압기를 볼 때마다 좀 흉물스럽다는 생각을 하는데, 거기에 인쇄만 해서 겉옷을 입힐 게 아니라 저것처럼 거리와 잘 어울리는 조형물로 만들면 어떨까 싶다.
발전소의 모습이다. 일산과 파주에도 열병합 발전소들이 있는데, 그런 발전소도 굴뚝 몇 개에서 연기 나오는 똑같은 디자인 말고 다양한 형태로 만드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그러면 또 그게 다 돈인 거라 어렵긴 하겠지만. 파주는 발전소 디자인은 둘째 치고 방치된 가온 호수공원 제발 신경 좀….
발전소 모형이다. 내가 디자인을 한다면, 한국의 멋을 살려 신선로 형태로 디자인 하는 걸로….(응?)
광장이나 공항에 몇 개쯤 갖다 놓으면 좋을 것 같은, ‘스펀 체어’다. 우리 동네에 도입하는 건 반대한다. 우리 동네 공원 광장에 갖다 둘 경우, 미친 듯이 돌려대고 뒤집어 대는 등의 변태사용으로 금방 망가질 게 분명하다. 동네에 ‘그네 의자’가 있었는데, 그걸 대체 어떻게 이용들 한 건지 사슬을 끊어 놓고 나무를 긁어 놓고 해서는 결국 없어지고 말았다. 수차례 수리를 했지만, 부수지 않으면 성이 안 풀리는 사람들 덕분에 결국 최종 철거되고 말았다.
역시 초기 ‘아이디어 스케치’를 볼 수 있다. 다빈치의 메모에 대해
- 그 때는 그게 멋이자 유행이라, 다들 아무거나 막 그리고 메모해 그렇게 들고 다녔음.
이라는 설명을 들은 적 있는데, 헤더윅의 메모를 보며 생각해 보니 그게 그냥 ‘아이디어 스케치’였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배가 지나갈 때 들어 올리는 다리 모양이 너무 흉측해서, 헤더윅은 저런 형태의 다리를 고안했다고 한다. 신기하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난 ‘안전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국에 저런 다리가 설치 될 일이 없을 텐데, 왜 내가 안전 걱정을 하게 된 건진 모르겠다.
집의 크기나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제품들이 있었다. 위의 사진은 탁자이며, 지금은 소재를 철로 바꾸어 식탁까지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 외에 러그나 바구니 등 크기를 마음대로 줄이고 늘릴 수 있는 제품들이 있었다.
싱가포르 한 대학에 있는 ‘러닝허브’다. 둥글게 앉아서 수업할 수 있으며, 어디서든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든 건물이라고 한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저런 걸 보면 독특하고 참신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한편으론
‘저거 먼지 장난 아니게 낄 텐데…, 청소는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도 든다. 언제부터 이렇게 변해가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점점 ‘때 잘 안 타고, 청소하기 쉬운 것’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컵 같은 것도 디자인이 아무리 예뻐봤자 ‘설거지하기 힘들겠네.’하는 생각이 들면 구입하지 않는다.
위의 건물을 재현해 놓은 모형이다. 실제 모습을 웹에서 찾아봤는데, 야경도 아름다웠다. 실제로 저 건물에서 수업을 듣거나 공부를 하고 있는 현지인들은 건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상하이 엑스포 전시를 위해 만든 ‘영국관’의 모습이다. 어디에서 보든 영국 국기의 형태가 나타나도록 만들었으며, 6만 개의 아크릴 막대 끝에는 밀레니엄 종자 은행으로부터 제공받은 씨앗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비슷한 걸 구상했다면, 왠지 빨간색, 보라색, 파란색 등의 불빛이 계속해서 변하도록 만들었을 것 같다. 우리나라 대표 조형물들에는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이 빠지지 않으니까. 검색해보니 저기서도 밤이 되면 조명을 비추긴 하는 것 같다.
아크릴 막대 끝에 들어간 씨앗들의 모습이다. 중국에서는 아크릴 막대 끝부분에 모두 볍씨를 넣은 뒤, 영국 국기 대신 쌀 미(米)자가 보이는 건물을 카피 중이라고 한다. 조킹 조킹.
내부는 저렇게 생겼다고 하던데, 내부에서 뭘 하는 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현재 운행되고 있는 런던의 2층 버스 디자인도 헤더윅 스튜디오의 작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엔 꼬꼬마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타요 버스가 있으니, 비긴 걸로 하자.(응?)
다리 위를 공원처럼 조성한 작품이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앞에 청학동에서 오신 듯한 분이 가로막아서 저렇게 찍히고 말았다. 청학동에서 오신 것 같은 분이 공쥬님(여자친구)이라는 게 함정.
저것보다는 훨씬 짧지만 비슷한 테마의 다리는 우리 동네에도 있는데, 무식할 정도로 크고 두껍다. 게다가 사람이 떨어지지 않도록 밖에 전부 안전장치를 해놔서, 밖에서 보나 안에서 보나 생각만큼 예쁘진 않다. 뭐, 우리 동네의 다리는 나무 몇 그루 심고 잔디 깔아둔 게 전부라서 그럴 수 있지만, 한강을 가로지를 정도로 큰 다리를 저런 형태의 공원으로 사용한다면 괜찮을 것 같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성화도 헤더윅 스튜디오의 작품이라고 한다. 난 ‘성화’하면 1988년 서울 올림픽의 비둘기 대참사가 떠올라서….
청학동 그 분이 성화를 찍고 있는 걸 사진으로 담아봤다.
이렇게까지 안 찍어도 되는데, 그냥 ‘전시회 증명사진’을 찍는다는 생각으로 전부 다 찍었던 것 같다. 나만 그런 건 아니고, 전시회를 보러 온 거의 모든 사람들이 줄지어선 설명, 작품, 모형의 순으로 사진을 찍었다. 시험문제 족보를 놔두곤, 너도나도 일단 폰에 담으려 할 때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스펀 체어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저 의자는 기존의 스펀 체어를 더 발전시켜, 사람이 앉아 있지 않을 땐 자동으로 회전할 수 있도록 만든 ‘스펀 훌라’라고 한다. 전시회장에서 내내 침묵을 지키던 사람들이 저 의자에 앉는 순간 다들 즐거운 표정으로 웃는 걸 볼 수 있었다.
사실 난 헤더윅 스튜디오 전시회에 가면, 저렇게 스펀 체어처럼 대부분의 작품들을 직접 보거나 경험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낚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 스펀 체어를 제외한 모든 작품들이 ‘모형 전시’였고, 이럴 거면 집에서 사진으로 볼 걸 뭐하러 여기까지 왔나 하는 생각도 좀 들었다.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면 느낌이 또 다르다고 하던데, 난 시간이 많지 않아 생략했지만 나중에 가실 분들은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시길 권한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시 정각에 도슨트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면, 저렇게 관련 제품들은 구매할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난 어려서부터 어머니께
“이런 데서 뭐 사는 거 아니야. 비싸.”
라는 교육을 받은 까닭에 구입은 하지 않았다. 물론 웃자고 한 소리고, ‘이건 사야 돼’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끌리는 제품이 없어서 구입하지 않았다. 아, 스펀 체어도 팔고 있길래 집에 들여놓을 만한 가격인가 봤는데, 70만원이라서 얼른 퇴장했다.
요런 크립 하나 살까 하다가, 누구한테 문서 줄 일도 없고 해서 그만 두었다. 예전엔 그래도 종종 우편으로 원고를 보낼 일이 있어 클립을 사용할 일이 있었는데, 요즘은 전부 이메일에 파일첨부를 해서 보내는 까닭에 쓸 일이 없다.
저 연필꽂이가 마음에 들긴 했는데, 책상위에 올려놓고 쓰면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하는데다 모니터를 가릴 것 같아서 사지 않았다. 나중에 나무로 연필꽂이를 만들 때 저런 형식으로 만들면 괜찮을 것 같다. 까망이(새끼 고양이)집도 골판지를 사용해 저런 형태로 만들어 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전시회 관람을 마치고 출구 쪽으로 나오면, 디뮤지엄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 메뉴판 사진을 찍어오긴 했는데 어차피 업로드하면 자동 리사이즈가 돼서 안 보일 테니, 대략만 적어둘까 한다. 가장 싼 커피인 아메리카노가 2,500원이고, 나머지는 3,000원 3,500원 정도 한다. 케이크는 4,500원 정도이며, 아메리카노 두 잔에 케이크 하나 해서 8,500원에 파는 세트메뉴가 있다. 난 이후에 또 약속이 있었던 까닭에 카페는 그냥 지나가며 잠시 쳐다보기만 했다.
아, 남대문 방면에서 넘어갈 땐 남산 1호터널 정체가 심하다는 걸 적어둬야겠다. 특히 오후 4시쯤 한남동에서 남대문으로 넘어올 때, 길찾기 앱에는 15분 걸린다고 나와 있었지만 45분 정도 걸렸다.(그날 시청 쪽에서 시위가 있어는데, 그것 때문에 막혔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론 헤더윅이 혹시 ‘금수저’로 태어나서 편안하게 계단을 밟고 올라온 사람이 아닌지 궁금해서, 집에 와 좀 찾아보았다. 집안환경에 대해선 어머니가 앤티크 가게를 운영했으며 비즈공예를 했었다는 것 말고는 나오지 않던데, 아무튼 수저 덕 하나로 편안하게 걸어온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사업 초기 유명한 건축가에게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해 지원과 조언을 구했다고 적혀 있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난 전시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뭔가 이뤄 놓은 것이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봤을 때, 지금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닥치고 더 열심히 써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전시회에 갔을 땐 그저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며 즐기곤 했는데,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아이디어 노트’가 포함되어 있는 까닭에 치열한 고민의 흔적에 자극을 받게 된 것 같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대충’이 아니라, 한 수 한 수 둬서 큰 그림 하나를 완성하듯 작품들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도전 받았다. 경로당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로맨스와 게이트볼에 대한 열정을 그린 <실버타운 로맨스>도 얼른 집필을 시작해야겠다. 자 그럼 다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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