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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결혼 못하겠다며 헤어지자는 남친, 왜 그런 걸까?

by 무한 2016. 8. 25.

난 이번 여름을, 내 방 문을 닫고 사느라 엄청나게 덥게 보냈다. 문을 열면 까망이(고양이)가 들어와 순식간에 선들을 끊어 놓는 까닭에, 커피 가지러 나갈 때에도 문틈을 발로 막아가며 나가곤 했다. 그렇게 더위와도 싸워가며 열심히 방어를 했는데, 까망이는

 

결국 이어폰을 또 하나 박살냈다. 다섯 개 째다. 헤드셋 하나, 헤드폰 하나, 이어폰 셋. 까망이가 잠시 방에 들어왔다 나간 자리에서 단선된 이어폰을 발겼을 때의 그 허탈감과 분노는, 만약 내가 여기다 표현한다면 고양이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의 반발감을 살 수 있으니 생략하도록 하자.

 

먹이랑 간식, 모래 가격보다 이어폰 가격이 더 나간 것 같다. 지인에게 물어보니 그 집 고양이는 이어폰뿐만 아니라 휴대폰 충전 잭에도 큰 관심을 가져 벌써 여러 개 구입했다고 하던데, 참 그런 일이 내게도 찾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두렵다.

 

아니, 물어뜯으려면 번들 이어폰 같은 걸 물어뜯지, 바닥에 있는 번들 이어폰은 놔두고 왜 A사 C사 등 돈 좀 들어간 제품을 골라 물어뜯는 거지? 물론 나중에 번들 이어폰 쓰니 그것마저 끊어놓긴 했지만. 아무튼 난 간식에 장난감에 이것저것 챙겨주고, 마트 애완동물 코너 가면 뭐 또 사줄 거 없나 늘 둘러보는데, 나한테 왜 이러는 거? 더 잘 이해하고 고양이에게 맞는 방법으로 사랑해주기 위해 다큐도 찾아보고 책도 읽었는데, 그런 나에게 왜 자꾸 이러는 거?

 

팔 한 쪽이 물린(긁힌) 자국 때문에 상처투성이라 만나는 사람마다 그걸 보곤 그러면서까지 왜 고양이 키우냐고 물어도, 아프게 무는 거 아니고 살짝 무는 건데 이빨이 날카로워서 그런 거고, 발톱 때문에 내가 다칠까봐 내 몸에 올라 왔다가 굴러 떨어지는 순간에도 날 발바닥으로만 잡는 녀석이라고 설명해주는데, 이런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

 

내가 살짝 켈로이드성 피부라 물린 자국이 반들반들 빛나는 형태로 변해버리고, 상처 주변에 색소가 침착되어도, 어차피 난 이미 버린 몸이라 생각하며(응?) 어디 나가서 팔 보여줄 것 아니니 다 참았는데, 이런 내 마음은 몰라주고 방에 들어온 잠깐의 순간에 이어폰 뚝, 끊고 나가버리면…. 참, 가슴이 아프다. 남은 이어폰마저 끊어버리면 나도 이제 더는 쓸 이어폰이 없으니, 이따 다이소에 들러 몇 천 원짜리 어이폰이라도 두어 개 미리 사두어야겠다.

 

신세한탄 하느라 서두가 쓸데없이 길어지고 말았는데, 이쯤에서 줄이고 매뉴얼 시작해 보자.

 

 

1. 우리 부모님은 오빠가 마음에 안 든대.

 

아무리 상대가

 

“왜? 부모님이 뭐라셔? 솔직하게 말해줘도 돼. 그래야 나도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잖아.”

 

라는 이야기를 했다 해도, 거기다 대고

 

- 우리 부모님이 오빠를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세 가지 이유.

 

같은 걸 진짜 솔직하게 말해버리면, 그건 모든 걸 망치는 행위가 되고 만다. 내가 만약 A양 남자친구이며 우리 부모님이 A양과의 결혼을 반대하는 중인데, 그 와중에 A양이 ‘반대 이유’가 뭐냐고 물어본다고 해서, 내가

 

“네 직장도 불안하고, 인물도 별로 마음에 안 든대. 만났을 때 행동하는 걸 보니 싹싹하지도 않은 것 같다고 하시더라. 내조도 잘 못할 것 같대.”

 

라는 이야기를 하면, A양에겐 어떤 마음이 들겠는가? 내가 저 이야기를 한 후, 열심히

 

“우리 부모님이 널 잘 아는 것도 아니면서, 한 번 보고 저런 얘기나 하는 게 나도 화나. 여하튼 어떻게든 극복해야 하는 반대니까, 우리가 천천히 설득할 수 있게 노력해 보자.”

 

라는 이야기로 약을 준다고 해서, A양은 다시 ‘좋은 기분’이 될 수 있겠는가?

 

A양의 경우 저기다 더해, 이후

 

“우리 부모님이 언니 결혼에는 적극적이시다. 내 결혼에는 반대하시면서. 언니랑 결혼할 남자를 마음에 들어 하신다. 그래서 속상하다.”

 

라는 이야기도 하고 말았는데, A양은 저걸 ‘속상함의 토로’라고 생각해 한 말이겠지만, 남친 입장에서 보면 ‘A양 부모님에게 정이 더 떨어지게 만드는 얘기’가 되고 만다. A양은 내게

 

“저는, 결혼을 할 사이라면 좋은 일 뿐만 아니라 힘든 일도 함께 해결해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라고 이야기했는데, 그게,

 

- 나는 좀 속상할 뿐이지만 상대가 들으면 무너져버릴 수 있는 이야기.

 

를 공유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A양이 남친에게 한 말들은 사과 한다고 풀릴 일 아니며, 같이 힘내자는 말 한다고 괜찮아 질 아니고,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생각하시지만 나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 안 한다는 말 한다고 위로가 되는 것 아니다. 완벽한 형태로 상대 마음에 금이 가게 할 수 있는 일이며, A양 부모님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점점 정이 떨어져 결국엔 바닥 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2. 엎친 데 덮친 ‘해결’의 방법.

 

결혼이라는 게, A양 부모님이 반대하신다고 해서, 남친 혼자 분발해 점수 따가면서까지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잖은가. 남자 입장에서 보자면, 다른 사람과 만났으면

 

“아이고 우리 사위! 밥 안 먹었지?”

 

라는 따뜻한 대접과 호의를 받으며 만날 수도 있는 건데, 이것저것 다 마음에 안 든다는 A양 부모님께 굳이 애써 점수 따가며 만날 이유를 찾지 못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 A양이 한 말은 무엇인가?

 

“저는 남친에게 이제 슬슬 저희 부모님과 친해졌으면 좋겠다고 운을 띄웠습니다. 저희 부모님을 찾아뵙기까진 못하더라도 문자나 카톡 등으로 연락을 하며 조금씩 더 친해졌으면 좋겠다고요. 남자친구가 결혼 생각이 있다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진행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론적으론 크게 틀린 부분이 없는 해결책이다. A양은 실제로 남친의 장점을 자신의 부모님에게 말해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냈고, 그런 와중에 남친의 노력이 더해지면 결혼은 곧 성사될 것 같으니 저렇게 지휘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A양이 감독이고 남친이 배우인 건 아니잖은가. A양 작품에 남친을 캐스팅해서 쓰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같이 만들어가야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A양은 자신의 시나리오와 지시대로 남친이 따라주길 바랐고, 때문에 남친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 관계가 자신만 노력해야하고 자신만 숙제를 부여 받는 관계처럼 여겨졌던 것 같다.

 

남친이 헤어지면서 한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봤을 때, 자신이 없다.”

 

라는 이야기는, 자신은 현재 이직까지 생각하는 중인데 이걸 또 A양 부모님이 아시면 반대가 시작될 것 같고, 그 와중에 A양은 중간에서 힘들다며 부모님의 이야기만 필터링 없이 전할 것 같으며, 그걸 다 감안하고 결혼한다고 해도 결혼생활은 ‘언제 교무실에 불려갈지 모르는 마음’으로 보내는 하루하루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A양은 자신의 이상대로

 

“사람이 살다 보면 이직도 하고, 사업도 망하고, 아플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함께 이겨나갈 수 있는 거잖아요?”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남친이 그간 경험한 A양의 모습은 ‘힘들 때 더 힘든 이야기를 가지고 와 죽을상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예컨대 남친이 회사에서 실수를 해 같은 팀원들에게 다 찍히고 눈치 보는 중이라면, A양은 그 와중에

 

“다른 부서에도 소문 다 났더라. 속상해. 다른 사람들은 오빠가 이러이러한 일들까지 한 줄 알아. 그런 사람 아닌데. 오빠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사내 게시판에다가라도 오빠 심정을 올리는 게 낫지 않아? 그거 아니면, 뭘 어떻게 할 건데? 난 오빠가, 내가 말한 대로 했으면 좋겠어.”

 

라는 이야기를 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거다. 상대도 사람인 까닭에 해답보다는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고, 또 받기 어려운 얘기를 무작정 던지는 것보다는 좀 조심스레 건네야 할 필요도 있는 건데, A양은 미처 그것까진 생각 못한 채 ‘솔직함과 감정공유 ’라는 측면에만 너무 몰입했던 것 같다. 어디서 듣고 온 이야기를 상대에게 “사람들이 너 별로래.”라고 털어 놓는 게 ‘함께 이겨나가는 것’은 분명 아닐 텐데 말이다.

 

 

3. 남친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면, 재회가 가능할까요?

 

남친은 A양에게 회사와 이직에 대한 핑계를 대며 헤어지자고 했지만, 사실 그건 A양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표면적인 이유’를 대기 위함이고, 실제로는 앞서 이야기 한 ‘결혼 진행 중의 갈등’이 가장 큰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때문에 그저 그에게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고 해서, A양과 다시 만날 생각을 하거나 A양과의 미래를 그릴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역시 사람인지라 축복까지는 아니어도 환영 정도는 바랄 텐데, 그런 것 없이 숙제만 가득한 그 관계로 다시 발을 들여 놓을 생각은 없지 않겠는가.

 

물론 상대도 잘못한 부분이 있다. A양의 어떤 부분이 자신을 힘들게 하면 그게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고 조율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그것을 A양의 한계로 받아들이며 차곡차곡 마음속에 쌓아둘 뿐이었다. 그래서 연애 중엔 전혀 서운한 내색도 안 비치던 것들을, 이별 후 둘을 소개시켜준 선배에게 하나하나 다 쏟아 놓았다. 주선자에게 그 얘기들을 전해들은 A양은

 

‘그럼 그때 왜 말을 안 했던 거지? 그땐 전혀 그런 내색도 안 해놓고….’

 

하는 생각을 할 뿐이었고 말이다.

 

“저에게 한 번도 얘기한 적 없습니다. 짜증을 낸 적도 없고요.”

“전 좋은 마음으로 그랬던 건데 이걸 서운했다고 하니, 제가 더 서운한 상황입니다.”

“저에게 말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닌데, 왜 한 번도 말하지 않았을까요?”

 

남친도 A양처럼 뒤끝 없이 앞에서 하고 싶은 말 턱턱 하고, 자기주장에 대한 확신에 찬 채 상대에게 회유하듯 말하는 타입이라면, 말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분명 어려울 수 있다.

 

A양의 말투에는 은근히 상대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것으로(또는 자신이 양보했다는 걸 드러내며) 본인의 주장을 내세우는 뉘앙스가 있으며, 대화라기보다는 과외 선생님이 학생에게 뭔가를 지도하듯 말하는 버릇이 있다. 때문에 A양이 바라는 것과 반대 되는 이야기를 제시했다간 A양이 기분 상했다는 것을 앉아서 혼나듯 들어야 할 것 같고, A양이 생각하는 ‘상식적인 진행’과 현재 이쪽이 잘못한 것을 비교하며 지적당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도 A양의 잘못이란 얘기가 아니다. 속마음과는 반대의 행동을 하며 마음에 쌓아두기만 그가 잘못한 게 확실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건, A양이 그럴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조성했던 건 아닌지, 그가 진짜 속마음을 얘기했으면 그게 받아들여지기보단 A양에게 혼나는 일이 벌어지진 않았을지, 하는 부분을 돌아보자는 의미라고 여겨줬으면 좋겠다.

 

난 두 사람의 재회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그래도 꼭 한 번 어떻게든 다시 노크해 보고 싶다면, 그때는 ‘결혼’을 목적으로 둔 채 ‘상황 정리 되었으면 이제 다시 못 다 한 결혼 얘기 좀 해보자’라며 다가가기 보다는, 상대라는 사람에 대한 관심부터 보여야 할 것이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두 사람이 헤어질 당시 대화한 걸 보면, 상대는 자신의 미래 때문에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었음에도, A양은 오로지 결혼만이 가장 중요한 듯 결혼 날짜 잡는 것과 본인 부모님들에게 연락해서 빨리 친해지고 점수 따라는 얘기를 앞세웠으니 말이다.

 

비자가 필요한 해외여행이라고 생각해 보길 바란다. 여행을 앞두고 상대가 아파서 앓아누웠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에게 죽을병은 아닐 테니까 일단 가서 비자부터 얼른 해결하라고 말하는 사람과 여행을 가고 싶을까, 아니면 상대의 건강부터 살피며 여행은 나중에 가도 되는 거니까 얼른 몸부터 나으라고 하는 사람과 여행을 가고 싶을까. 전자는 상대를 내 여행의 들러리로 생각하는 태도, 후자는 상대를 내 여행의 동반자로 생각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부분을 A양이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마음이 온통 이어폰과 헤드폰에 가 있는 까닭에, 매뉴얼을 쓰는 내내 좀 조급했다. 낮에 쓰다 잠깐 멈추곤 밥 먹다가 검색도 좀 했는데, 싸구려 이어폰은 휴대폰 번들 이어폰보다 좋지 않다고 해서 다이소 이어폰은 사지 않기로 했다.

 

이어폰 하나 사려고 웹서핑을 하다 보니

 

“그거 사느니 만 원 보태서 이거 사는 게 나을 텐데요.”

“이만 원만 더 써도 차원이 다른 이어폰 살 수 있습니다.”

“십만 원 미만이면 다 거기서 거기죠. 한 번에 가세요.”

 

하는 조언들 투성이라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대륙의 실수 시리즈라는 이어폰을 검색하러 가야하니, 배웅글은 이쯤에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조만간 녹음한 콘텐츠도 올릴 예정이라 헤드폰도 사야 하니, 아마 오늘은 밤새 검색을 하게 될 것 같다. 내가 열심히 검색하는 동안, 다들 오랜만에 내리는 비 만끽하며 즐거운 목요일 저녁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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