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씨의 연애패턴은,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다 모두 잃고, 결국 빈털터리가 되고 마는 패턴입니다. 이건 어딜 가나 예쁘단 소리 들으며 남자들의 구애를 받는 ‘인기 많은 여자’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인데, 현주씨가 그 함정 가장 깊은 곳에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현주씨는 상대에게도 감정이라는 게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본인이 지인들을 만나느라 남친과의 데이트를 미루는 건 다 사정이 있어서 이해받을 일이지만, 남친이 아파서 연락을 못 하면 왜 사람 기다리게 하냐며 화를 내는 식입니다. 때문에 지금과 같은 패턴대로라면, 그 누구와 만나더라도 결국 상대에게 현주씨의 인간성에 대한 완전한 실망만을 안겨주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 이런 사연을 잘 다루지 않으려 하는데, 그 이유는 아무리 얘기를 해봐야
“저도 힘들고 아팠는데요?”
라는 대답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이쪽은 힘들고 아팠을지 모르지만 상대는 죽을 뻔 한 거라는 얘기를 하는 건데도,
“저도 힘들고 아팠다고요. 저만 잘못한 건가요? 제가 그렇게 잘못한 건가요? 그래서 걔는 잘했다는 건가요? 공평하지 않네요.”
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연애 할 때 자기감정밖에 모르고 나쁜 건 다 상대 탓하던 버릇이, 저를 대할 때도 나오는 거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외에 ‘을’의 입장에서 구애하던 사람들을 주로 대해와서인지 제게도 마치 맡겨 놓은 매뉴얼을 찾으려는 듯 이번엔 어떻게 쓰라고 지시하는 경우까지 있어 참 당황스러울 적도 있는데, 뭐 제 신세한탄은 이쯤하고 매뉴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출발.
1. 남친을 무시하고 사람들 앞에서 창피하게 만드는 행동.
사람들 앞에서 남친을 등신 취급한다고 현주씨가 대단해 보이는 거 아니고, 함부로 대해 쩔쩔 매게 만든다고 해서 현주씨가 엄청난 존재로 보이는 거 아닙니다.
정 반대의 사연이 있었습니다. 남친이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 여친을 데려가선,
“야, 얜 샤넬이 어느 나라 건지도 모르면서 샤넬 가방 산대. ㅋㅋㅋㅋㅋ”
라는 이야기를 한 사연입니다. 여친을 개그소재로 삼아 친구들을 웃기는 저 모습이 좋아 보이십니까? 현주씨가 저 정도로 남친을 우스꽝스럽게 만든 건 아니지만, 현주씨의 주변 사람들이
“너 걔한테 그러면 안 돼.”
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라면 문제가 꽤 심각한 겁니다.
사람들은 현주씨가 그러는 걸 보며
‘쟤랑 사귀는 남친이 불쌍하다.’
라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를 지속하는 남친은 호구로, 현주씨는 상대의 마음을 이용하며 갑질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여겼을 수 있습니다. 현주씨는 남친과 단 둘이 대화를 할 때에도
“살 빼라.”
“사람들 앞에서 나대지 마라.”
등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럴 거면 그냥 안 사귀는 게 둘 모두에게 좋은 일입니다. 마음에 안 들지만 당장 딱히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 상대가 구애하니 그냥 받아주고, 그렇게 사귀게 된 후에는 ‘마음에 안 드는 것’을 리스트로 뽑아 상대보고 개조프로젝트에 돌입하라며 채찍질만 하면, 현주씨는 현주씨대로 성격만 더 나빠질 뿐이며 상대는 상대대로 괴로움만 늘어갈 것입니다.
현주씨는 상대에게 이별통보를 받고 난 후 ‘내가 남친에게 너무 의존했던 것 같다’는 후회를 했다고 하셨는데, 그걸 후회하실 게 아니라 저렇게 남친을 막대하고 하인처럼 대했던 것을 반성하셔야 합니다. 높은 충성도를 보이던 남친이 이별을 말하니 현주씨는 다급해져서 사과도 하고 애교도 부려봤다고 하는데, 무시와 모욕의 상처는 영혼에 새겨지는 것이기에 사과나 애교로 퉁 칠 수 없습니다. 다음에 연애를 하신다면, 현주씨가 이기적인 태도로 연애에 임하고 있는 게 아닌지 수시로 체크해 보시길 권합니다.
2. 썸탈 때 보인 호의와 배려와 헌신을 계속 바라는 문제.
의대에 갈 경우 평생 수련과정만 거쳐야 하고, 법대에 갈 경우 평생 사법연수원에만 묶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아무도 의대나 법대에 갈 생각을 안 하지 않겠습니까? 의대나 법대에 가는 게 몇 년 빡세게 익혀 전문지식을 쌓게 되면 사회에서 전문직으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인 것처럼, 썸을 탈 때 상대가 호의와 배려와 헌신을 120% 보이게 되는 것 역시 연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연인이 되면 썸 탈 때와는 좀 다른 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귀기 전 아직 잘 모르기도 하고 그래서 믿음도 안 가 거리를 두었다면, 사귀기로 한 다음엔 옆 자리도 허용하고 서로 신뢰할 수 있게 마음을 열어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전까진 상대를 받아들일까 말까 고민하는 입장이었다면, 사귄 후엔 서로 같이 걸어가기로 했으니 서로 챙길 줄도 알아야 하는 거고 말입니다.
그런데 현주씨의 경우는 이게 전혀 안 됩니다. 놀라울 정도로 안 됩니다. 현주씨는 연애가 썸의 연장이라 생각하며, 상대의 구애를 받아줬으니 이제 상대는 더 큰 호의와 배려와 헌신으로 그 은혜를 갚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밖에서 볼 일이 있다고 하면, 남친은 ‘그럼 내가 가서 기다리다가, 일 다 보면 내가 집에 태워다 줄게’라고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귄 지 한 달이 좀 지나자, 제가 밖에서 볼 일 보고 있는데 연락도 없고 피곤하다며 잔다고 하더군요.”
그걸 그렇게 딱 한 부분만을 가지고 ‘남친이 변한 증거’라고 내미시면 곤란합니다. 현주씨는 이런 증거를 가지고는 남친을
- 금사빠라서 열정적으로 구애해 놓곤, 사귄 뒤 마음이 식자 이기적으로 이별통보 한 남자.
정도로 여기고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저 ‘연락도 없고 피곤하다며 잔다고 한 날’ 바로 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 (현주씨가)토요일은 가족 모임이라 못 만난다고 함.
- (현주씨가)일요일은 친구 생일이라 못 만난다고 함.
현주씨의 마음이 딱 저 정도라는 게 그냥 훤히 보이는데, 무시당하고 창피당하며 순위에서까지 다 밀린 와중에 데리러 가겠다고 말하는 남자는 호구 아니겠습니까? 상대는 그 이전까진 자신이 그렇게 호의와 헌신을 베풀면 현주씨도 그걸 알아주거나 최소한 그 반 정도는 자신에게 베풀어 줄 거라 생각했던 건데, 현주씨는 호이가 계속되자 상대를 둘리로 볼 뿐이었습니다.
“또 어느 날은, 집에 어머니가 누나 없이 혼자 있다고 하며 빨리 가봐야 한다고 저를 그냥 중간에서 내려주더군요. 거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저희 집이 가까워지는데, 거기까지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힘들다며 딱 중간에 내려줬습니다. 저는 그 정도도 안 해주나 싶어 너무 섭섭했습니다.”
현주씨는 그 연애를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데이트 할 때 현주씨가 하도 돈을 안 내니 상대가 하소연 하듯 그 부분을 좀 고쳐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도 한 적 있지 않습니까? 남친을 무시하기만 할 뿐 돈도 안 쓰고, 또 그 와중에 집까지 안 데려다 줬다고 섭섭해 하는 건, 심하게 잘못된 겁니다. ‘상대에게 서운한 지점’만 돋보기로 보지 마시고, 현주씨는 그 연애에서 무엇을 했는지, 상대에게 어떤 존재였을지도 꼭 곰곰이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3. 모심을 기다림, 리액션 없음, 상대를 심사함.
현주씨는 이 부분에 대해
- 누군가를 사귀게 되면 연락과 관심을 기다리는 편이라서.
라고 말하는데, 현주씨의 그 말은 일반적인 여자들이 말하는 그것과는 좀 다릅니다.
일반적인 여자들이 저런 얘기를 할 때에는, 상대에게 충분히 연락과 관심과 애정을 줬는데 상대에게서 그만큼의 반응이 돌아오지 않을 때입니다. 그런데 현주씨가 저 얘기를 하는 건,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기다리고 바라기만 할 때입니다. 상대가 ‘알아서 모시는’ 것을 하지 않으면, 현주씨는 자신이 상대를 기다렸다고 이상하게 해석하며 상대를 피의자로 둡니다.
매번 먼저 연락하고 마지막까지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상대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별 전 하루 종일 연락 안 한 건 현주씨나 상대나 마찬가지인 건데, 그걸 두고 현주씨는 상대 탓만 합니다. 본인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락 안 했으면서, 왜 상대보고 하루 종일 연락이 없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연락은, 사실 필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이유도 있지만, 그걸 제외하고도
- 상대가 안부 묻는 것을 시작으로, 현주씨를 인터뷰 하듯 이어나가야 하는 대화.
라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 대화의 주제가 현주씨일 땐 현주씨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지만, 그 주제가 상대로 넘어가면 “그래~” 정도의 반응만을 할 뿐입니다. 이렇게 자기 할 말 할 때에는 상대가 눈을 반짝이며 듣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상대가 말을 꺼내면 별 관심 없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영혼 없는 대답 정도만 하면, 상대는 결국 그런 대화를 더는 이어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말 걸어서 의무적으로 인터뷰해야 하는 게, 짐처럼 느껴질 것이고 말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들 외의 또 다른 문제는, 현주씨가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결혼’까지 생각하며 만나려 상대를 평가하는 것에 집중한다는 점입니다. 현주씨는 상대에게, 자신의 가족들과 만나 본 뒤 가족들이 다 사귀어도 좋다고 하면 사귀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자신의 오빠를 만나보고 오라고 하고, 또 엄마도 만나보고 오라고 하는 건 사실 좀 괴상한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만 봐도 현주씨는 전혀 손해 보는 것 없이 득이 될 게 확실하면 그때 움직이겠다고 한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계속 변치 않을 호감을 가지고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서로 좋아하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시기에 그 마음을 돌려보려 부모님을 뵙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가서 만나고 돌아오면 가족들과 평가점수 종합한 뒤 결과를 통보해주겠다니요.
그리고 사귀기 전 저런 평가를 받아 그 관계의 안전성이 확인될 수 있는 거라면, 전 출장을 다니면서까지 솔로부대원들의 안전진단을 돕겠습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먹었던 마음이 몇 분 후에 달라질 수 있는 게 사람이고, 또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는 겪어 보며 알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현주씨는 이 지점에서 큰 실수를 했고, 상대는 처음엔 현주씨가 좋은 사람일 거라 생각하며 열렬히 구애했지만, 이 모든 일을 경험하며 함께하긴 어려운 사람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현주씨에게 권하고 싶은 건, 대단한 희생이나 양보, 이해가 아닙니다. 남녀를 떠나,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서 그러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지 말자는 겁니다. 위에서 한 이야기들 모두, 친구에게라도 저러면 절교당하고 말 행동들이지 않습니까? 상대가 날 좋아한다고 해서 칼자루를 쥔 채 휘두르려고만 하지 말고, 친구에게 보이는 그 정도의 존중만이라도 보이자는 얘깁니다.
그리고 연애라는 게, 현주씨만 주인공이고 상대는 들러리인 게 아닙니다. 제가 이걸 구석기 시대부터 이야기해왔던 것 같은데, 매뉴얼을 읽는 분들이
‘저건 나쁜 여자들 얘기겠지? 난 좋은 여자니까 관련 없을 거야.’
라고 여기며 그냥 지나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의 일들은 나쁜 여자보다는, 오히려 겁 많고 여린 여자들이 더 많이 벌입니다. 나쁜 여자는 그냥 계속 나쁜 짓을 하러 다니느라(응?) 저런 고민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현주씨도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 합리화와 방어본능은 잠시 접어두시고,
- 나와 사귀었던 남자들에겐 내가, 그리고 우리 연애가 어떻게 느껴졌을까?
라는 지점을 꼭 돌아보셨으면 합니다. 그들에게 정말 현주씨의 옆자리를 줬는지, 아니면 그저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서 있다가 알아서 날 모시라고 했는지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오늘 준비한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들 즐거운 수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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