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연하 커플, 그것도 여자가 삼십대 중반을 향해가는 사연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갈등은,
- 남친 집안에서의 결혼 반대.
이다. 지방분들을 폄하려는 건 아니지만, 남친이 이십대 중반쯤이며 남친 부모님이 지방에 살고 계실 경우, 통계 상 8할 이상의 확률로 극렬한 반대가 진행되곤 한다.
“뭐어? 여자친구가 너보다 나이가 많아? 한 살도 아니고 몇 살? 일단 난 반대.”
라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어떻게든 그 연애를 깨려 하거나 부모님들께서 아는 집안에 혼사를 넣어 선 자리를 마련하는 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이상하게‘점쟁이’들이 끼는 경우가 많아서, 결혼을 하면 남자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느니, 고생한다느니, 출세 길이 막힌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도 있다.
저걸 극복하고자 ‘점쟁이 배틀’을 뜬 사례도 있다. 남친 집에서 세 군데, 여친 집에서 네 군데를 돌아다녀 거기서 나온 궁합으로 승패를 가리는 것이었다. 해당 사연에선 4:3으로 결혼해도 좋다는 판정이 나왔지만, 아무래도 사람 마음이 ‘안 좋은 점괘’에 더 기우는 까닭에 둘의 결혼을 무산되었다. 서로를 적으로 여기며 전투를 벌이는 이 과정에서 갈라서게 된 사례도 있고 말이다.
1. 연하남친 부모님의 ‘결혼 반대’ 이야기.
노멀로그에선
“부모님께서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이쪽이 부모님께 상대를 어떻게 설명드렸나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대충 ‘회사 다녀요, 몰라요, 그냥 평범하죠.’ 등의 이야기만을 했다면 부모님도 딱 그 정도의 이미지만을 가지게 되실 겁니다. 어떻게 소개하고 말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라는 조언을 하고 있지만, 부모님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대’를 하신다면 문제가 꽤 많이 어려워진다. 부모님께서 가지고 계신 확실한 ‘이상적인 며느리 상’이 있을 경우,
- 우리 아들이 지금 뭘 잘 몰라서 그런 것이며, 상대와는 반드시 헤어져야 함.
이라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왜 헤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고, 더불어 당연히 네가 아까운 거란 이야기도 하시며, 다른 이성을 소개해주시거나 얼굴 볼 때마다 얼른 헤어지라는 이야기를 하시니, 남친 마음엔 정말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더불어 연애에서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그 의심은 무럭무럭 자라나게 되고 말이다.
또, 보통 연상연하 커플의 경우 평소 만날 때엔 남친이 분명 또래보다 어른스러운 것처럼 느껴지지만, 위와 같은 문제가 펼쳐진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딱 그 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저 하소연하듯, 여친에게
“아 근데 사실, 우리 부모님이 반대하시는데….”
라는 가장 투박한 형태로 고민을 털어 놓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또 여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노력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닌 부분 때문에 반대를 하신다는 것과, 아직 뵌 적도 없는 분들께서 벌써 강경하게 반대를 하고 계시다는 사실에 다리에 힘이 풀리곤 한다. 괜찮은 척, 쿨한 척을 해보려 하지만, 분노와 절망과 짜증과 억울함 등의 감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버티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이런 상황에선 남친과 감정적으로 대치하거나, 남친이 저렇게 ‘부모님이 반대하신다’는 사실만을 툭 던지는 것에 자존심이 상해 헤어지자고 하거나, 당장은 뭘 어쩔 수 없으니 자신도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곤 한다. 그렇게 반응하면 남친이 당황을 해서 사과하거나 자신이 해결해 보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며 어쨌든 관계를 이어가긴 하는데, 안타깝지만 그게 반년을 넘기지 못하고 결국 남친이 발을 빼는 식의 태도를 보이며 무너져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난, 그 상황에서 쿨한 척 하거나 남친을 곤란에 빠뜨리지 말고, 이쪽에서도 그 정도까지는 예상을 했다는 식으로 대응하길 권한다. 부모님들께선 당연히 그러실 수 있으며, 또 너희 집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라 우리 집에서도 나이차이 때문에 반대하실 수 있다고. 하지만 난 ‘우리’를 생각하며 만나는 거지, 아직 뵙지도 못한 상황에서 전해 들으신 몇 토막의 말들을 근거로 반대하시는 건, 그분들도 우리가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어떤 생각으로 미래를 준비 중인지를 모르시기에 걱정과 불안함으로 그러실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러지 못하곤
“나도 지금 결혼 생각이 없다. 그리고 난 그냥 지금 네가 좋을 뿐이다.”
라는 식으로 말하고 마는데, 그렇게 ‘마음’에만 호소를 하는 건 임시방편은 될 수 있겠지만, 결국 그 부분이 곪아 문제를 일으키고 마는 걸 막을 순 없다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
2. 경제력과 취업 후의 일에 대한 문제.
내게 도착하는 연상연하 커플의 사연은 이십대 중반, 또는 이십대 후반의 여성대원이 이십대 초중반의 남성대원을 만나는 사연이 가장 많은데, 그러면 2, 3년 사귈 경우 여자는 삼십대 초반, 남자는 이십대 중반이 된다.
그럼 자연히 슬슬 결혼 얘기가 나오게 되는데, 남자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 월급 몇 번 받지도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취업 전에는 막연히
‘사회에 나가 취업하고 자리 잡으면, 그때 결혼도 구체적으로 생각해 봐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사회에 나와 보니 갈 길은 구만 리이며, 집은 고사하고 결혼자금을 모으는 것에만 앞으로 최소한 1년은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후 방 두 개짜리 셋방의 보증금을 모으는 것에만 또 2, 3년은 걸릴 것 같은데, 그렇게 계산해보니 처음 만났을 때 서른 하나였던 여친은 서른여섯 일곱이 된다.
사실 저렇게까지 생각한다면 그건 양반에 속하는 거고, 대부분이 차를 산다느니 뭐를 산다느니 하며 돈 쓸 생각을 먼저 하며, 이후 데이트비용과 친구들 만나서 노는 비용, 여행비용, 거기다 취미생활과 각종 아이템들을 구입하느라 통장엔 겨우 돈 삼사백만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아직 철이 안 든 경우 이런 상황에서 ‘엄마아빠가 결혼시켜 주시겠지.’하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하시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져 버린다.
거기다 여자는 또 남친이 취업 후에 변했다느니, 연락에 소홀한 것 같다느니, 안 가도 되는 회식까지 찾아가는 것 같다느니, 회사 내 다른 여직원과 연락하는 건 아니냐느니 하는 일이 많기에, 둘은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도 무너져간다. 둘 다 불문율처럼 결혼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덮어만 두었던 것이, 결국 이렇게 터져버리는 것이다.
이런 결과를 바라는 게 아니라면, 막연하고 불확실한 것들에 대해서 꼭 대화를 하길 권한다.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하고 미뤄둔 것들은 결코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고도
“아직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다고 말해 남친을 안심시키면 안 될까요?”
“상황이 안 되니, 결혼은 2~3년 정도 더 있다가 이야기하자고 할까요.”
“제가 당연히 자기랑 결혼한다는 전제를 깔고 말하는 게 마음에 안 드는데, 이렇게 사귀다가 내가 헤어지자고 할 수 있는 거라고 말할까요?”
라는 이야기만 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그런 건 1g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 애써 피하거나 미뤄두지 말고 둘이 함께 마주하길 권한다.
“무한님은 왜 꼭 결혼이 연애의 완성형인 것처럼 말하죠?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저는 결혼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추구하며 만나고 싶은데요.”
결혼이 연애의 완성이라고 말한 적 없다. 무엇이든 좋으니, 그 ‘다른 어떤 것’이 뭔지를 둘 모두 또렷하게 알고 있을 수 있길 권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데이트 메이트, 수다친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채 결국 표류하게 될 수 있으니, 두 사람이 향하고 있는 목적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한다.
3. S양 연애에서 발생한 문제들.
위에서 이야기 한 보편적인 문제들 외에, S양의 연애에서는
A. ‘혼자서도 잘해요’의 문제
B. ‘웬 결혼이냐’의 문제
C. ‘무뚝뚝한 리액션’의 문제
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혼자서도 잘해요’의 문제는, S양이 이상할 정도로 경계심을 가지며 독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걸 말한다. S양의 그런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로는, S양이 남친에게 했던
“내가 얘기하면 너도 지치니까 별로 하고 싶지 않아. 어차피 내 문제니까 내가 해결해야지.”
라는 말이 있다. S양은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고 또 좋은 보호자가 되어주었으면서, 반대로 자신이 도움과 의지를 필요로 할 때에는 혼자서 해결하려고 했다. 참고 참다가 못 견디겠으면
“다 짜증나. 다 지겨워.”
같은 최종의 심정만을 토해냈을 뿐이다. 그러면 상대는 또 원인도 알 수 없는 S양의 힘듦을 앞에 두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는데, 이런 일이 반복되며 그도 서서히 지쳐갔던 것 같다.
‘웬 결혼이냐’의 문제는, 상대가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냈을 때에도 S양이 대수롭지 않게 받았던 걸 말한다. S양은 상대가 이제 막 취업을 한 상황에서 결혼은 먼 이야기인 것 같아 대충 대답했을 수 있지만, 여기서 보기에 상대는 진심으로 그 얘기들을 한 것이었다.
어떤 이는 다음 주 수요일에 만날 약속을 오늘 확실히 잡아두는 걸 좋아하고, 어떤 이는 그때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으니 주말에 봐서 다시 정하자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바로 이와 같은 성향의 차이가 S양의 남친은 전자로, S양은 후자로 나타났던 것 같다. S양이
“그땐 (남친의 말에 대해)제가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라고 말한 부분들을 유심히 보기 바란다. 그러면 상대는 계속 진지하게 조율하려 시도했지만, S양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해 일단 상대의 말을 대충 듣기만 할 뿐 큰 의미가 담긴 말들이라 생각하지 않는 걸 볼 수 있다. 이때 좀 S양도 바짝 다가앉아 남친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무뚝뚝한 리액션’의 문제는, S양이 단답의 대답을 하며 건조한 방식의 대화를 하는 걸 말한다. 대화를 보자.
상대 – 가족들 다 모였어?
S양 – 아니 아직 언니네는 안 왔어.
상대 – 글쿠나. 난 작은아버지 댁에 가는 중.
(이후 대화 없음)
상대 – S양아!
S양 – 응?
상대 – 뭐해?
S양 – 좀 전에 집에 왔어. 왜?
상대 – 잘 거야?
S양 – 밥 먹으려고. 왜?
S양의 대화 8할은, 상대가 물어보면 S양이 대답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S양은 상대에 대해 별로 궁금해하지 않으며, 상대가 물으면 그것에 대한 대답만 하고 되묻진 않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S양은 ‘용건이 없는데 길게 대화하면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들을 답을 다 듣거나 상대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나면 거기서 대화를 마친다.
상대 – 밥은 먹었어?
S양 – 응 먹었어 대충
상대 – 뭐 먹었어?
S양 – 삼각김밥 핫바 커피
상대 – 그래? 편의점 세트네
S양 – 응
전생에 제습기였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건조하다. S양은 스스로에 대해 신청서에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애교도 많고 표현도 잘함!’라고 적었는데, 애교와 표현을 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건지 난 알 수가 없었다. 그게 혹시, 평소엔 거의 대부분 저렇게 얘기하다가, 정말 아주 어쩌다 한 번씩
“힘내요 자기♡”
“보고싶고 사랑합니다♡”
“코오 잘자용♡”
하는 걸 말하는 건가? 난 차라리 가끔 저렇게 하트 붙여서 보내는 건 안 해도 좋으니까, 그냥 평소 대화를 좀 촉촉하게 하길 권해주고 싶다. 완벽하게 두 사람이 집중해서 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순간이 찾아오면 그때 대화할 거라 미루지 말고, 평소에 상대에게로 계단 스무 개 정도는 더 내려가서 대화했으면 한다. 지금의 태도는, 상대에게서 너무 멀다.
보통 이런 사연을 주시는 분들은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지’, ‘헤어지려는 남친의 마음을 돌릴 방법은 없는지’를 묻곤 하는데, S양의 경우 ‘혼자서도 잘 하는 습관’이 발휘되어서인지, 이미 기대는 접고 힘듦까지 자신이 감당하기로 한 채,
“정말 헤어질 마음이었다면, 이별 직전에 왜 갑자기 몇 달 제게 잘 했던 걸까요?”
“제가 남친의 마음을 아프게 한 부분은 없는지 알고 싶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쩌면 S양의 저 독립심에다, 상대가 S양보다 훨씬 나이가 적다는 사실까지 영향을 끼쳐 더욱 딱딱하게 굴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남친이 고민을 할 때에도
“나는 지금 너랑 결혼할 생각이 없다. 아니, 나 자체가 지금 결혼 생각이 없다.”
“사귀다 헤어져도 (더해질 나이는)내 문제지 네 문제가 아니다.”
라는 말로만 대응을 했으며, 또 스스로도 정말 그런 거라 최면을 걸려 했던 것 같다. 사실 이건 참, 속상하고 슬프며 마음 아픈 일인데 말이다.
S양이 보이는 모습들은 너무 일찍부터 어른이 되기를 요구받은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한데, 그렇게 다 꽁꽁 싸맨 채 혼자 앓지 말고 풀어 놓았으면 좋겠다. 누구에게 내 힘듦을 이야기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으며 어차피 결국 내가 감당해야 할 거란 생각이 들겠지만, 그 힘듦을 알게 된 사람은 S양의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이고, 그러면 S양은 상상 이상의 든든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 인생 내가 책임지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혼자서만 다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덜고 나누고 내려놓고 가끔 기대기도 하면 어떨까 싶다. 연상연하 커플의 이야기로 시작해 너무 오래 혼자 서있었던 S양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는 것 같은데, 혼자 감당하는 건 지금까지 질리도록 많이 해봤으니, 앞으로는 함께 감당하는 연습을 조금씩 해나가길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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