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H군에겐, 노멀로그의 이전 매뉴얼들을 좀 검색해서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고백’으로만 검색해도 H군의 문제가 뭔지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8할 이상이 이미 발행한 매뉴얼에 있는 와중에 내게 막무가내로 사연을 보내면 난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또 해야 한다.
H군의 고민은 이미 발행한 매뉴얼들에 있는 이야기들이니, 주제별로 짧고 굵게 훑으며 내려가 보자.
1. 은어와 비속어, 욕설을 사용하면, 끝장 날 확률이 높다.
H군의 사연을 보며 내가 할 말을 잃은 건, 상대와의 카톡대화에서 H군이
“개빡세네 ㅋㅋㅋ”
“아 슈발 ㅋㅋㅋ”
“끝나고 닭갈비 조지자. ㅋㅋ”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H군은 ‘남중남고’라는 솔로부대 세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말인지 욕인지 모를 거친 이야기들을 한다.
“이제 볼 시간 없겠누 ㅋㅋ”
“ㅋㅋ 난 잔다 쉬거라”
“지수띠 금욜 고기 고?”
등의 말들 역시, 내가 설명하는 게 입 아픈 일일 정도로 그냥 딱 봐도 확실히 잘못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게, 계속 저런 모습을 보이면 ‘웃기는 오빠’로서의 점수는 올라가겠지만, 이성으로서의 점수는 낮아지게 된다. 또, 드립도 상대의 대화습관과 반응을 보며 ‘이걸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좀 파악하며 쳐야지, 다짜고짜 “지수띠~~” 하고 있다간 상대의 마음에 찬바람을 불러오게 될 수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2. 카톡 고백. 그것도 욕설을 섞어서….
근 10년간 참 많은 사연을 받아봤지만,
“나 니 진짜 좋아진 것 같다 슈발.”
이라고 고백한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H군이 십대라거나, 또는 이십대 초중반만 되어도 난 이걸 귀엽게 봐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H군은 이십대 후반이다. H군의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나 니를 진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슈발.
저 고백에 상대가 ‘아저씨 여기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요.’라는 이야기를 하는 뉘앙스로 H군을 밀어내려 하자, H군은 다시
“빨리 까줘라.(빨리 거절해줘라.)”
라며 답을 재촉하기도 했다.
난 H군이 저렇게 고백을 한 것에 대해 스스로 지금이라도 좀 후회를 하며 부끄럽게 여길 거라 생각했는데, H군에게서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아 좀 혼란스럽다. H군은 내게
“제가 원래 뭔가 분위기가 만들어져도 장난으로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아서, 관심 있는 이성을 놓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라고 했는데, 저건 H군 혼자만 ‘장난스러운 태도로 얼버무리는 것’이라 생각하는 거지, 남들에겐 그냥 술주정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난 H군이 스스로 ‘장난’이라 말하는 그 행동들만 하지 않아도 많은 것이 해결되리라 생각하니, 장난이든 뭐든 자꾸 뭘 섞어 이상하게 만들지 말고 그냥 마음에 있는 말을 하길 바란다. 평소의 대화든 고백이든.
3. 미션 해결 형 다가감의 문제.
상대와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시는 걸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미션처럼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건 그 자체로 ‘과정’인 거지, 고백으로 가는 ‘수단’인 것만이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H군은
“밥 같이 자주 먹자. 내가 캐리함.”
“이따 죠스 조질래?(먹을래?) 아 그래? 담에 조지자.”
“잠깐 통화나 하자.”
등의 이야기를 하며, 그냥 ‘오케이. 이건 이제 됐고, 그 다음엔….’ 정도의 느낌으로 관계에 임할 뿐이다.
그런 식으로 열심히 점수를 따 ‘고백하면 받아줄 정도의 점수’를 만든 뒤에야 행복이 보장되는 연애를 하게 되는 게 아니라, 그냥 둘의 관계는 이미 시작되어 있는 거다. 저 레벨의 미션을 여러 개 깨야 그 다음 레벨의 미션으로 갈 수 있는 게임과는 다르다. 겉보기엔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으면 수 만 개의 미션을 깬다고 해도 그 레벨일 수 있고, 또 어느 경우엔 처음 깬 미션 하나로 곧장 레벨 업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걸 좌우하는 게 깊이와 밀도와 질량이다. 물론 이건 상대방이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집중을 하느냐의 변수도 달려있긴 하지만, 여하튼 같이 수십 편의 영화를 봤어도 일정 수준의 깊이와 밀도와 질량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면, 둘의 간격은 여전히 그대로일 수 있다. 내가 만약 H군이었다면 상대가 ‘진로를 바꾸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그 고민이 왜 생긴 건지를 여러 질문을 통해 물었을 것 같은데, H군은
“빡세게 조지고 보상으로 여행도 다녀오고 그래라 ㅋㅋㅋ”
라는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대체 왜 때문에 그렇게 조지는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맛있게 먹는 것, 열심히 하는 것, 즐거운 마음으로 집중하는 것’등을 전부 ‘조져라’로만 표현하는 습관도 이 기회에 같이 고치길 권한다.
4. 그녀가 한 건 어장관리일까?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그녀가 한 행위들은 ‘어장관리’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녀에겐 진입장벽이라는 게 없는 듯 보이며, H군이 위와 같은 모습을 보여도 그녀는 다 잘 받아줬고, 또 H군의 고백에 거절의사를 밝힌 뒤에도 그녀는
“나 오빠 좋아하는 거 알지? 오래 보자 우리.”
라는 이야기로 여지를 남겨두었다. 그녀가 이 글을 본다면 자신은 여지를 남긴 게 아니라 정말 ‘좋은 오빠동생’으로 잘 지내고 싶어 그랬을 뿐이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이후에도 H군이 여전히 호감이 있다는 걸 돌려서 표현했을 때
“내가 요즘 너무 힘들어서 오빠 마음 못 챙겨줘서 미안해.”
라고 대답한 것 등은, 분명 가두리 양식업자의 그것이 맞다.
어딜 같이 가자거나 같이 뭘 먹자는 이야기를 했을 때, 당장 대놓고 거절하면 자신에 대한 호감을 거둘까봐 일단 ‘YES’라고 한 뒤 나중에 이런저런 핑계로 거절한다거나, 같이 가자고 하면 정말 같이 갈 것처럼 분위기 다 잡아 놓고는 결정적인 순간에 ‘안 간다’고 하는 것 역시, 어장관리에서 사용되는 방법이다.
그리고 거절을 할 거면 분명하게 거절을 해야지, 어차피 나중에 말해도 같이 안 갈 거면서
“내가 지금은 좀 애매해서. 나중에 그러는 건 어때?”
라고 말하는 것 역시, 상대를 희망고문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모든 것들을 다 ‘좋은 마음’으로 ‘상처받지 않게 거절’한 거라고 말한다면 나도 뭐 더는 할 말이 없지만, 아무튼 상대에게
“우와 진짜 좋겠다. 나도 그거 진짜 보고 싶은데.”
라고 얘기해 놓고는, 같이 가자고 하면
“아 나도 진짜 보고 싶은데, 지금 상황이 이래서 갈 수가 없어….”
라는 이야기를 할 뿐인 건, 어장 속 참치에게 ‘희망’이란 떡밥만 주는 거라고 적어두도록 하겠다.
5. 기다리면 올까요?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인가요?
‘온다, 안 온다’에 돈을 걸어야 하는 거라면, 난 ‘안 온다’에 올인 하도록 하겠다. 우선 H군은 상대에게 “조지자.”라는 이야기를 하며 응원하는 걸 ‘노력’이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건 노력이 아니다. 그리고 정황 상 상대는 남친과 헤어진 후 새로운 사람과 비밀연애를 하고 있는 게 거의 확실한데, 그러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다른 일 때문에 H군과 못 만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기에, H군이 현재 가지고 있는 기대와 희망은 그녀가 일부러 남긴 여지만을 근거로 만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H군은
“그녀의 연애경험은 다수이며, 전남친들의 집착이 심했다고 합니다.”
라고 말했는데, 이런 식이라면 그녀의 남친들이 정말 그녀에게 애정이 있을 경우 집착을 하게 되는 건 당연한 거다. 그녀는 H군 외에 그녀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내지 않았는가. H군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 진입장벽이라는 걸 두지 않은 채 말이다.
또, H군은
“(그녀의)성격이 매우 매력적이라 인기가 많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난 그녀의 매력은 ‘잘 들어주고 리액션을 해주는 것’ 또는 ‘다 들어주고 리액션을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게 그녀의 처세법일 수도 있고 또 ‘좋은 관계’라고 생각하는 관계에 대한 허용도가 높아서 그러는 것일 수 있는데, 이걸 나쁘게 보자면 이성을 대하는 것에 있어 오는 사람 안 막으며 절대 밀어내지도 않는 것일 뿐이다.
때문에 난 이 관계를 두고 굳이 거창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타이틀 까지 달아가며 고민할 것 없이, 상대의 성향이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H군이 이해했으면 한다. H군이 상대에게 재고백이라도 해보려고 생각하는 것 역시, 따지고 보면 ‘어쩌면 사귈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게 8할 이상이지 않은가.
상대가 선톡을 보내기도 하며 H군의 연락에도 성실히 대답해준 것, H군이 무슨 얘기를 하든 다 반응해주며 긍정적인 대답을 해준 것, 그리고 ‘좋은 오빠로서’라는 앞 문장이 생략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나 오빠 좋아한다’고 직접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는 것 등이 H군의 마음에 불을 붙인 것 같으니, 일단 불부터 좀 끄고 천천히 생각해 봤으면 한다. 그러면 그녀의 그런 모습들이 H군만을 향해있는 게 아니라, 만인을 향해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정도 살펴보면, H군도 좀 다른 시각에서 이 관계를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H군은 못내 아쉽고 억울하기도 한 듯
“제가 어깨동무를 한 적도 있고 서로 팔이나 얼굴 등을 터치하면서 장난을 친 적도 있는데요.”
“회식할 때 저보고 자기 옆에 앉아 달라고 한 적도 있고, 그녀가 술 마시고 연락해서 고민을 털어 놓은 적도 있는데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전 매뉴얼들에서 이야기 한 적 있듯 ‘이성과 팔짱을 끼는 것’이나 ‘이성과 옆자리에 앉는 것’을 “동성친구랑도 그럴 수 있기에 이성친구에게도 그랬던 것일 뿐인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것만 두고 그린라이트였다거나 썸이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진 말았으면 한다. 아무튼 모쪼록, ‘사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거기서 너무 오랜 시간을 줄 서서 기다리진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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