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S양의 이번 소개팅엔 마침표가 찍힌 거라 할 수 있겠다. 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와주고 싶지만, S양이 안 해오던 걸 단번에 잘 할 수 있게 만들기도 어렵고, 상대의 반응이 ‘레드라이트’라는 것이 확실한 까닭에 어떻게 좀 파고들어갈 수 있는 틈이 보이질 않는다.
S양은 그래도 소개팅 이후 상대에게 답장이 왔다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 같은데, 난 그 이후 아무 연락이 없다는 게 그의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올림픽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번 소개팅은 참가에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로 하며, 왜 이렇게 되었는지, 또 다음번에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이번과는 다른 결과를 이끌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자.
1. 속으로 하는 생각을 지우고, 앞의 상대를 봐야 한다.
낯가리는 사람들이 소개팅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건 필연적인 일일 수 있다. 낯가림이 심한 사람들은 외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내면으로 생각에 잠기는 편인데, 그러보니 사람 앞에 놓고 자기만의 세계에 들어가 여러 가정과 분석, 예측을 해보느라 저절로 침묵을 지키게 된다.
아주 간단히 생각해보자. 명절에 친척동생 둘이 왔는데, 한 명은 내 방까지 와서 노크를 하며 이것저것 묻고, 다른 한 명은 거실에서 자기 엄마 옆에 딱 달라붙어 시선은 TV에 고정한 채 귀만 열어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친척동생이야 다음 명절에도 보고 또 그 다음명절에도 보니 그러다 친해질 수 있겠지만, 그게 단 한 번의 기회라면 아무래도 붙임성 있고 살갑게 구는 쪽과 더 가까워지지 않겠는가. 후자는 내가 무슨 질문을 해도
“네.”
“아니요.”
“괜찮아요.”
라는 세 가지 답으로 돌려막기만 할 가능성이 높고 말이다.
소개팅을 더 할 생각이 없는 거라면 그냥 자신에게 더 편하고 어울리는 ‘의무적으로 여러 번 접하며 점점 알아가는 방식’을 택하면 되겠지만, 만약 소개팅을 또 할 생각이라면 앞에 앉은 사람을 그렇게 가만히 놔둬선 안 된다.
매끄럽게 치고 빠지며 상대를 수다쟁이로 만들긴 어렵더라도, 최소한 상대에게 미소를 보이고, 되묻고, 때에 따라선 아주 흥미로운 건 아니더라도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라고 물을 줄 알아야 한다. 상대가 무슨 얘기를 해도 이쪽에선 낯가리느라 “아, 네.”, “아뇨. 괜찮아요.”로 돌려막으며 헛기침을 하거나 머리만 매만지면, 매력을 보여주고 못 보여주고를 떠나 상대에겐 그냥 그 자리가 ‘한국어 튜터’가 되어 한국말로 좀 답해보라고 묻고 있는 자리가 되고 만다.
자꾸만 속에서 내면의 비판자나 분석가, 예측가가 활동을 하려 들 때엔, 일부러
‘난 얘랑 친해. 우린 친한 사이야.’
‘얘랑 난 내일도 보고, 모레에도 볼 거야.’
‘얘는 나에게 관심이 있어. 지금 내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있어.’
라는 자기최면이라도 걸길 권한다.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응원하며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될 거라 생각해야 되도 뭐가 되는 거지, 불편해하는 표정이 순간순간 그대로 읽히며 혼자 여러 생각을 하고 있다 보면 그 자리에서 익숙한 것들의 낯설고 새로운 면만을 발견하느라 바빠질 뿐이다. 소개팅 자리에서
‘파스타가 이렇게 생겼었나? 여기에 뭐뭐 들어가는 거였더라?’
라는 괴상한 생각까지를 하다, 파스타 면을 코에 넣는 일까지를 벌일 수도 있단 얘기다. 다행히 입을 잘 찾아 넣더라도 ‘내가 파스타를 씹는 모습이 상대에게는 어떻게 비춰질지’ 따위를 고민하다 입맛도 없어져 음식도 다 남기게 될 수 있으니,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신경은 잠시 접어두고 앞에 앉은 ‘상대’에게 집중하길 권한다. 상대가 지금 시험범위와 예상문제를 알려주고 있는 거라 생각하면 저절로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2. 말과 표현이 안 되면, 행동으로라도 보여주자.
어설프게 무슨 밀당을 하려 든다든가, 아니면
- 내가 이러이러하면, 그걸 상대가 이러이러하게 볼 것 같아서.
라는 이유로 마음과 다른 행동을 하지 말자. 좋으면 어쨌든, 차라도 한 잔 더 마시자는 얘기를 해서라도 잡아야 한다. 예컨대 남자에게 마음이 있으면서, 갑자기 낯가림이 발동해
남자 – 그러면, 치맥 한 잔 할까?
여자 – 제가 술을 잘 못 해요.
남자 – 아…. 그럼 뭐 다른 거 먹을까?
여자 – 아뇨, 저 괜찮아요. 배불러요.
라는 대처를 했더라도,
“커피나 차는 어떠세요? 커피 드세요?”
정도의 이야기로 다시 흐름을 만들라는 얘기다. 분명 마음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헛발질 한 번 했다고 그대로 수습도 못한 채 집에 돌아와 버리면 곤란하다. 이렇다 할 게 떠오르지 않으면 그냥
“혹시 인형 잘 뽑으세요?”
“혹시 사격 잘 하세요?”
라고 물어도 된다. 주절주절 길게 얘기하는 걸 잘 못하는 타입이라 해도, 저런 말 한 마디로 ‘난 너와 더 같이 있고 싶다’는 걸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거다.
상대가 열심히 얘기할 때 눈을 빛내며 들어주는 것, 상대의 말에 맞춰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 상대와 너무 거리를 두진 않고 서거나 걷는 것, 작별인사 했다고 휙 뒤돌아 성큼성큼 가버리는 게 아니라 그냥 좀 아쉬운지 머뭇거리는 것, 뭐 이런 것들도 적극 활용하길 권하고 싶다.
말과 행동 둘 중 하나라도 되어야 뭐가 되는 거지, 이거 둘 다 안 되면서 다음 날 연락을 해보네 마네하고 있으면 그냥 참 답답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아, 그리고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늘 얘기하지만 질문은 ‘응, 아니’로 답이 올 수 있는 거 말고, 서술형으로 대답해야 하는 질문으로 하길 바란다. 안 그러면 낯가려서 대화도 어려운데, 단답 듣고 또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둘 다 난감해질 수 있다.
3. 연락 없다고 의기소침하지 말자.
애프터 한 번 못 받았다고 자신에 대한 이성들의 평가가 땅바닥까지 떨어진 듯 의기소침하진 말았으면 한다. 안 해봤으면 잘 못할 수도 있는 거지, ‘어버버’ 하며 헛발질 한 번 했다고 인생이 끝장난 건 아니잖은가. 그리고 이런 일들을 겪은 대원들 중엔
“재미있게 해야 하나요? 재미있는 여자가 되면, 좀 결과가 다를까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그게 그렇게 컨셉을 잡아서 노력하는 게 아니다. 노력은 ‘나를 드러낼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 거지, 개그 같은 걸 연습해 ‘재미있는 여자’가 되려하다간 이도저도 아니게 될 수 있다.
자신이 미술전 같은 것에 관심이 많은데 관심은 많지만 사실 그닥 많이 가본 것은 아니며 잘 모른다면, 그냥 그런 얘기를 해도 된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상대도 ‘내게도 그런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될 수 있고, 저 애기가 자기비하와 자폭의 이야기만 아니라면 ‘우리가 감추려던 부분’의 공감대를 느끼며 서로의 인간적인 면을 더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러니 뭘 연기하거나 감추려고 하지 말고, 작은 진실 하나만이라도 털어 놓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길 바란다. 그게 안 되면, 그냥 나가서 서로가 서로를 접대하고 집에 들어와 피곤해하는 일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또, 이쪽이 정말 ‘무(無)’의 상태에서 새로운 시작을 생각하며 소개팅에 임한 것과 달리, 상대는 아직 정리되지 못한 게 있다거나, 홧김이나 호기심 때문에 나왔다거나, 오는 소개팅 거절 안 하기에 그냥 이벤트 정도로만 생각하며 나왔을 수 있다는 얘기도 해주고 싶다. 내게 도착하는 사연을 보면 ‘혼자’라는 것에 처절히 몸부림을 치며 외로워하다 소개팅을 나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그런 대원들은
- 아직은 내가 소개팅에서 빛을 발한 타이밍이 아니다. 난 더 준비를 해야 한다. 사실 들어오는 소개팅이 없기도 하다.
라는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소개팅에 나가는 건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거나, 주선자와의 관계가 부담 없기에 ‘많이 만나보면 좋지 뭐’하는 생각으로 나가는 경우가 열에 일곱은 된다.
더불어 이전 소개팅에서 상대에게 87%정도의 매력만을 느꼈기에, 한 번 더 해보면 90% 이상의 호감을 느끼는 사람이 나오지 않겠나 싶어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나와서는 이전 소개팅 상대와 이번 소개팅 상대를 비교하다 전자를 택하기도 하고, 아니면 ‘한 번만 더’라며 다음 소개팅을 또 준비하기도 한다. 구여친이나 여자동창과의 연락이 닿아 다 팽개친 채 그쪽으로 가는 사례도 있고 말이다.
그러니 소개팅이 잘 안 됐다는 걸, 자신에 대한 평가나 결론이라고 생각한 채 좌절하진 말았으면 한다. 난 연애에 대한 글을 쓰는 까닭에 참 다양한 사연을 받기도 하고 주변의 여러 사례도 접하게 되는데, A양의 사진만 보고 A양과의 소개팅 거절했던 B군은 여전히 솔로부대원이고, A양은 좋은 사람 만나 현재 애가 둘인 사례도 있다.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거나, 또는 그 순간 서로가 추구하는 것이 좀 달랐다거나, 또는 옥석을 가려보는 눈을 가지지 못해 놓치게 된 걸 수도 있으니, 그걸 전부 자신의 탓이라 여기며 시무룩해하는 바보 같은 일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S양 사연 속 소개팅남은 이성을 전혀 어려워하지 않으며 S양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질 거라는 걸 진작부터 알았다는 듯 행동하며 리드하던데, 그런 소개팅 베테랑에겐 S양이 말릴 수밖에 없으니 너무 심각하겐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가 그렇게 S양을 잘 대해준 걸 잘못이라고 하긴 어렵겠지만, 마음이 없는 거면 차라리 끼나 부리지 말지 ‘카톡할게~’라며 사람 마음에 바람 불어넣어 놓고 연락두절 되어버린 게 난 좀 그렇다. 다음 날 S양이 아침 내내 고민하다 겨우 한 문장 생각해 내 연락을 하니
“너도~”
라며 ‘대답은 하지만 대답이 아닌’ 반응을 보였던 것도 좀 괘씸하고 말이다.
이거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서른 넘으면 이제 서로 저렇게까지 해가며 에너지 소진하는 일 없이 첫 만남에서도 대놓고 싫다는 걸 표현하는 걸 보게 될 테니…, 아 이 얘긴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아무튼 그가 부려놓은 끼에 너무 빠져 앓지 말고, ‘선톡 없음’이 그의 대답인 거라 여기기로 하자. 잠시 씁쓸해하며 마음 접는 게, 희망을 품은 채 계속 고문당하는 것보다 나을 테니 말이다.
S양은 자꾸 저 만남 이전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는 것 같은데, 난 그럴 수 있는 거라면 차라리 만남 훨씬 전으로 돌아가 두 사람이 카톡이나 통화부터 좀 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수단으로 좀 더 가까워진 후 만났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었을지 모르겠는데, 안타깝게도 낯가림을 지닌 채 대면으로 첫 순간을 시작했기에 결과가 이렇게 된 건 아닌가 싶다. 만남 직후라도 혼자 ‘아 나 뭐 한 거지? 아 진짜 미쳤었네.’ 할 게 아니라, 그냥 전화를 걸어 통화라도 했으면 나았을 텐데…. 아무튼 오래 전 주말에 한 소개팅에 대한 후회를 지금 여기까지 끌고 오며 하지 말고, 그만 내려둔 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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