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곧 사귀자는 말을 할 것 같았는데 3주, 4주가 지나도록 별 말 없는 남자들. 이것도 참 끊임없이 내게 밀려드는 사연의 주제 중 하나인데, 오늘 좀 확실하게 정리하고 가자.
우선 난, 저녁 같이 먹자는 얘기를 꺼냈을 때 3일 내로 상대와 먹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일단 그 관계에 대해선 단념하길 권해주고 싶다. 상대가 출장 중이라거나 해서 물리적으로 함께 먹기 어려운 상황인 걸 제외하고는, 바빠서든 피곤해서든 저녁 한 끼 같이 먹을 수 없는 건 ‘썸’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러니 그런 상대를 두곤
“친구들과 얘기를 해봤는데, 친구들은 제가 아깝대요. 제가 좀 더 대시해보라는 의견이 40% 정도, 기다려 보라는 의견이 30% 정도, 그리고 그냥 접으라는 의견이 30% 정도고요.”
라는 이야기를 하진 말자. 어떤 사연에서는 상대가 ‘피부과 치료를 받는 중이라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좀 그렇다’는 이유로 막 2~3주씩 오는 연락만 받던데, 만약 친구가 그런 남자와 만나며 고민을 토로한다면 친구에게 뭐라고 대답해 줄 것 같은지 한 번 생각해 보길 권한다. 친구에게 해줄 바로 그 말이, 현재 자신에게 필요한 말일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자 그럼, ‘썸인 것 같은데 사귀자고는 하지 않는 남자들’의 대표적인 세 가지 유형을 함께 알아보자.
1. 둘 다 서로 미지근한 호감을 가지고 있어서
그러니까 상대가 사귀자는 말을 안 한다고 불평을 하긴 하지만, 사실 이쪽도 상대에게 그렇게 반한 건 아닌 경우가 있다. 둘의 관계를 정의하자면
-그냥 요즘 가장 많이 연락하는 이성
정도인 건데, 이런 와중에
‘이렇게 지내는 거면 사귀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으로 상대의 고백을 기다리는 것이다.
상대에게 크게 호감이 가는 건 아니지만, 상대 말고는 지금 연락하는 이성이 없으니 상대가 연락을 하면 받고, 만나자고 하면 만난다. 상대도 사정이 비슷하기에 연락을 하고 만나기도 하는 건데, 이러다 보니 둘 다 ‘되면 한다’의 마음으로 당장의 연락과 만남에만 관심을 둘 뿐, 거기서 좀 더 나아가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뭐 연애라는 게 꼭 활활 불타야만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 관계가 이쪽에서도 그냥 할 거 다 하고 남는 시간 정도를 할애할 뿐인 관계인데, 그런 상황에서 상대가 얼른 고백도 하고 헌신도 하고 존중과 배려가 가득한 ‘맞춰가는 연애’같은 걸 하게 만들 방법은, 솔직히 찾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 놓인 대원들의 경우 ‘노력한다’면서 일부러 먼저 더 아침인사 하고, 안부를 묻고, 잘 자라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 역시나 그 깊이는 얕으며 ‘생존신고’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1~2주 지내다가 주말쯤 만나 밥 먹자를 얘기를 해 또 만나고 들어오긴 하는데, 역시나 그러고 나서도 또 이전 1~2주 했던 식의 인사만 반복해서 나누곤 한다.
난 이런 대원들에게,
“곧 사귀게 될 것 같은데 상대가 사귀자는 말을 안 한다며 답답해하지만 말고, 상대와 왜 연애를 해야 하는지, 상대와 현재 교류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지, 연애를 시작해서도 지금처럼 안부인사만 주고받는 게 아니라는 보장이 있는지 등을 생각해 보세요. 사실 큰 호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대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껴 궁금해 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현재로선 가장 가까우니 곧 연애하게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고백만 기다리고 있는 건, 애먼 기다림이 될 수 있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실제로 상대 역시 이쪽이 자신에게 별로 호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얼른 연애하고 싶어서 고백을 이끌어내려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에 대해 궁금해 하거나 자신을 위해주는 것은 없으면서, ‘우린 무슨 사이인가?’등의 질문을 해 연애로 이어보려 한다는 걸 눈치 채는 것이다. 이런 상황까지 간다면 서로 ‘온다면 안 막지만, 간다고 잡지도 않겠다’는 마음으로 적당하게만 대하게될 뿐이니, 상대에게 정말 호감이 있는 거라면 연락의 빈도도 늘려가며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서고, 그게 아니라면 기대가 만든 기다림은 거기 두고 ‘진짜 호감 가는 사람’과 만났으면 한다.
2.진도도 다 나갔겠다, 그냥 엮어만 두려는 거라서
스킨십 진도는 이미 다 나갔지만, 아직 ‘사귀자는 말’은 등장하지 않은 사례도 꽤 많다. 보통 첫 만남이나 두 번째 만남에서 술김에 스킨십 진도를 나간 후 한 쪽이
“우리는 무슨 사이냐?”
라고 묻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럼 상대는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
라는 대답으로 응수한다. 저 얘기를 들은 대원은
‘아니 이미 서로 다 봤는데 뭘 더 알아가야 사귈 수 있는 거?’
라는 생각을 하지만, 어쨌든 상대가 ‘알아가는 사이’라고 하니 일단 좀 더 알아보다 사귀자고 하겠지, 하며 만나보게 된다.
이쯤에서 상대의 성실도가 급격히 식는다면 그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채기가 쉬울 텐데, 전과 크게 다르지 않게 다정히 대하면서 ‘알아가는 중’이라고 하니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상황에서 선배대원들이 겪었던 패턴을 보면, 이후
-상대가 ‘속궁합’ 얘기를 꺼내거나 그쪽으로 자극적인 시도를 원함.
-만나면 늘 나갔던 진도만 복습할 뿐 별다른 이슈 없다가, 바빠졌다며 연락두절.
-외롭고 심심할 때 몇 번 더 만나다가, 뭐 하나 꼬투리 잡아서 사귈 수 없다고 함.
이라는 셋 중 하나의 결말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알아가는 중’인 까닭에 아직 사귀지 않는 거라고 대답하면서, 그 ‘알아가는 중’이라는 게 스킨십일 뿐이라면, 십중팔구 위의 패턴대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관계의 운명이 오로지 상대의 선택에 달려 있는 그 이상한 상황을 이어가지 말고, 상대의 현재 그 모습까지가 상대라는 사람인 거라 생각하며 현명한 선택을 하길 권한다. 그리고 늘 하는 얘기지만, 정회원 등업 안 해도 커뮤니티이용에 아무 문제가 없는 곳에선, 굳이 정회원이 되려 힘쓰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울 거라는 것도 기억해두었으면 한다.
3.처음부터 얕은 마음으로 시작한 거라서
이건 주로 만남어플이나 소개팅어플로 만난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그렇게 만난 상대와 3~4주 정도 연락하며 지내다가, 뭐에 하나 실망하거나 흥미를 잃게 될 경우 “자, 다음 사람~”하며 다시 어플에 접속하는 경우가 있다.
지금까지 내가 받은 사연을 기준으로 통계를 내자면, 평균 두 달 내에 썸은 와해되고 다시 새로운 썸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 썸도 정확하게 말하자면 ‘썸의 형태를 한 8주간의 베타서비스’의 느낌이 강한데, 여하튼 대략 6주 정도 불타올랐다가 다음 1주에 약속 취소나 연락 두절 등이 등장한 후, 그 다음 주엔 완전히 차게 식어버리는 형태로 진행된다.
물론 좀 더 길어져 세 달까지 가는 사례도 있긴 한다. 주로 이해심과 배려심이 깊은 여성대원들이, 그렇게 되어버린 관계도 홀로 지키며 이어가곤 한다. 갓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일주일에 세 번 만나는 것도 부족한 듯 굴던 상대가 이제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것도 힘들다는 식으로 나오는데, 그것마저 이해하고 배려하며 맞춰간단 생각으로 상대를 챙기며 기다리는 것이다.
“무한님 저, 오빠가 다른 것도 아니고 일 때문에 바쁘고 지친다는 거 알아요. 그래서 지금은 복잡한 일이나 심각한 일을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것도 알아요. 그럼 저는, 오빠가 바쁜 일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지금은 오빠한테 도움이 되고 싶고 기운을 주고 싶어요….”
그런 거 하지, 말자. 이쪽에서는 사귀는 건 줄 알고 100일 된 기념일을 챙기려고 하는데, 거기다 대고
“우리 지금 사귀는 사이 아니지 않아? 우리 그냥 만나는 사이 아니야?”
라고 말하는 남자에겐 기대나 희망 같은 걸 거는 게 아니다. 우리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는 복잡한 일과 심각한 일 다 지나가고 난 다음에 말해주겠다는 건 어장관리이며 희망고문일 뿐이니, 그런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기운을 주고 싶다며 힘차게 물살을 가르려 들진 말자. 이유가 무엇이든 일주일에 한 번 보는 것도 벅차다는 사람에게서는, 로그아웃 하는 게 답이다.
아무래도 사연들이 ‘친구찬스’까지 썼지만 답이 나오지 않은 사연들이라 매뉴얼의 결론도 전부 부정적으로 흐르게 된 것 같은데, 정리하자면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다’는 것과 ‘지금도 서로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좀 구분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적어두고 싶다.
연애와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노멀로그를 운영하다보면 이제 막 노멀로그의 매뉴얼을 읽었다며 자신이 애독자가 될 것이니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 중에 계절 하나를 넘긴 분을 본 적 없으며, 관심사가 달라지거나, 흥미를 잃거나, 아니면 더 재미있는 일이 생기거나, 연애를 시작해 햄볶느라 정신이 없거나 하면 ‘특별히 나빠진 건 아닌데 그냥 흐지부지되듯 인연의 끈이 느슨해지는 사이’가 되고 만다.
이런 변화는 썸을 탈 때에도 일어나곤 하는데, 아직 서로의 단단한 연결고리가 만들어지기 전 그렇게 마음이 떠버리면,
“지난주까지 시간 내달라던 사람이 갑자기 왜 변한 거?”
라고 따져 묻는다고 해도 해결되진 않는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보통 이럴 경우 ‘내가 뭔가 잘못을 했나?’하는 생각을 하게 될 텐데, 그게 아니어도 그냥 그의 성향이 그랬다거나, 아니면 둘 다 금사빠라 곧장 불타올랐다가 4주 만에 식었다거나, 더 흥미로운 일이 생겨 그쪽에 온통 정신이 팔렸다거나 하는 이유들로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거나 ‘문제’만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그 모습까지가 상대의 모습이거나 두 사람의 관계인 거라 생각하자. 그렇게 전체를 바라보고 판단해야지, ‘초반 3주’의 모습만이 상대의 모습인 거라고, 또는 그게 두 사람의 관계인 거라고 생각하며 상대가 내미는 핑계와 변명만 붙들고 있진 말자. 자신이 그러고 싶지 않을 땐 바쁘고 힘들어서, 만나기도 연락하기도 힘들다는 썸남에겐, 알았으니까 푹 쉬라는 얘기를 해주고 우린 새 길로 가자.
▼닭간까지 사다가 밤새 낚시했는데 한 마리도 못 잡음. 충격과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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