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매뉴얼은 ‘매력을 느끼는 순간’과 ‘깨는 순간’ 두 편으로 나눠서 발행하려고 했는데, 그래버리면 또
“저는 저런다고 매력 느끼지 않는데요?”
“잘 되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깨는 순간 같은 부정적인 거 말고요.”
라는 댓글만 달릴 것 같아 몇 번 쓰려고 끄적거리다 접어 놨었다. 그런데 둘 다 한 번에 소개하면 투덜거림이 좀 줄어들 것 같아 합쳐서 발행하기로 했다.
아, ‘매력을 느끼는 순간’과 ‘깨는 순간’에 대한 근거는, 그간 받아온 만 편이 넘는 사연이다. 특히 사연신청서 ‘첫 만남 시 분위기’에 적힌 내용을 읽으며 난
‘그래! 이렇게 하면 되잖아! 이 방법을 다른 솔로부대원들에게도 소개해줘야지.’
하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그걸 지금 풀어 놓는 거라 생각하면 되겠다. “그냥 잘생기면 되는 거 아닌가요?”라는 이야기를 할 대원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회의적 시각까지를 고려해 이번 글은
-만남 전 연락만 할 때에는 별로 기대가 안 되었던 사례
-상대가 첫 만남에 지각까지 해서 비호감이었던 사례
-상대의 신체조건이 별로거나, 패션센스가 떨어졌던 사례
였음에도 불구하고 호감을 느끼게 되거나, 연애까지 이어졌던 사례에서 골랐다는 걸 밝힌다. 출발해 보자.
1.느껴지는 호의와 관심 VS 남처럼 구는 태도
이건 은행엘 가거나, 미용실엘 가거나, 마트에 갔을 때에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인데, 어떤 사람은 기계적이고 형식적으로만 대하는 반면, 다른 어떤 사람은 뭐 하나 더 준 것도 없긴 하지만 그냥 정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인사만 나눴을 뿐인데도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상대에게 뭔가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매력남들의 경우, 바로 저런 분위기를 기반으로 이성에 대한 호의와 관심을 표현한 경우가 많다. 상대 입장에서는 어차피 소개 받은 거니 한 번은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온 건데, 만나보니 ‘네 번째 소개팅남’이 아니라 ‘김주원’이라는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대화 중 어쩌다 서로가 겪었던 불행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나오면 공감하며 정말 안타까워하는 것 같고, 그걸 듣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덤덤히 털어 놓기도 한다. 그러면서 공감대가 생기기도 하고, 그때 힘들었을 것 같다며 갑자기 손을 토닥토닥하기라도 하면, 그 훅 들어옴에 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매력남들이 저러고 있는 동안, 깨는남들은
“밥은 제가 살게요. 커피는 지은씨가 사는 거죠?”
라며 열심히 ‘남처럼 대하기’를 시전하곤 한다. 친구사이에서도 저런 식으로 굴면 좀 정떨어지며 계산적으로 보이기 마련인데, 썸을 타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선 이성간에는 어떻겠는가. 돈 걱정이 많이 되었는지 계속 ‘누가 낼 것인가’에 몰두한 사례도 있고, 정류장까지 같이 간 후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린 사례도 있다. 마음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냐고 물으실 분들이 있을 텐데, 상대에게 분명 호감이 있으면서도 저런 거다. 그게 잘못된 거라고 아무도 얘기를 해준 적이 없어 모르는 것 같은데, 혹 이 글을 읽는다면 지금이라도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깨달았으면 한다.
깨는남들은, 대화를 할 때에도 상대의 이야기를 끊고 ‘그 주제에 대해선 내가 더 할 말 많아!’, ‘내 지인은 그것보다 더 대단해!’라는 마음으로 배틀을 뜨려는 경우가 있으며, 자신이 나이가 더 많다는 생각 때문인지 은연중에 상대를 무시하거나 가르치려 하는 경우도 있다.
2.자연스레 지속되는 연락 VS 평가 기다리기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니 이건 혼자 잘한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 여하튼 첫 만남 이후 그 날 저녁에도 연락하고 다음 날에도 연락하며 자연스레 ‘그런 사이’가 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만나고 돌아와서는
‘관심이 있으면 연락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 날 저녁 연락은 했지만 짧은 인사만 주고받은 까닭에 상심해 연락을 안 해 버린다든가, ‘연락할 구실’이 생기면 그 때 연락하겠다는 생각으로 침묵을 지키기도 한다.
매력남들의 카톡을 보면, ‘혹시나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게 없어 보인다. 빙빙 돌리지 않고 다음 주말에 시간 괜찮냐고 묻는 경우도 있고, 장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요일에 그쪽에 갈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레 약속을 잡기도 한다. 깨는남들이 ‘기회를 엿본다’며 계속 카톡만 붙들고 있거나, 안부인사만 반복하는 것과 달리 말이다.
상대가 한 말들과 대화 중 알게 된 상대의 스케줄을 기억한다는 지점에서도 차이가 난다. 매력남들이
“수요일이니까, 오늘 저녁엔 운동 가는 거죠?”
라며 시작하는 것과 달리, 깨는남들은 이미 전에 들었으면서도
“퇴근하고 뭐해요?”
에서부터 시작하고 만다. 매력남들이 자신도 자극받았다며 운동을 시작해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가는 것과 달리, 깨는남들은 ‘언제 시간 되는 거냐’만을 집요하게 묻기도 한다.
이렇게만 적어두면
“저도 연락이야 하고 싶죠. 근데 무슨 얘기를 하냐고요. 주제가 있어야 말을 걸죠.”
라는 이야기를 할 대원들이 분명 있을 텐데, 뚜렷한 주제가 없더라도 그냥 안부를 묻던 중 이어지면 그게 대화가 되는 거고 거기서 주제를 찾으면 되는 거다. 연락을 했는데 상대가 스타필드 간다고 하면, 스타필드가 뭐냐고 묻거나, 집에서 가깝냐고 묻거나, 어떤지 후기 공유해 달라고 하거나, 뭐 살 거냐고 묻거나, 타 아울렛이랑 비교했을 때 어땠는지를 묻거나, 무슨 브랜드를 좋아하는지를 묻거나 하면 된다.
그냥 저렇게만 풀어가도 하루 종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를 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뭔가 꼭 새롭고 흥미로운 주제를 꺼내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두고 대화하길 권한다. 자신은 이성과 대화를 많이 못해봐서 대화가 어렵다고 하소연할 대원들도 있을 텐데, 대화는 해야 는다. 내년, 내후년, 5년 후, 10년 후까지 그런 핑계를 댈 생각이 아니라면, 미루지 말고 지금부터 시작하자.
3.절반만 할애하기 VS 올인하기
매력남이 ‘남의 집에 초대 받아 간 느낌’으로 다가간다면, 깨는남들은
-짐 다 싸들고 왔어요. 어디다가 짐 풀면 되나요?
의 느낌으로 들이댄다. 당장의 관심사가 이 관계가 된 것 맞고 인연이 닿았으니 연인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법이긴 하지만, 모든 걸 다 제쳐두곤 24시간 상대와 연결되어 있으려 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라 할 수 있겠다.
매력남은 운동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가족들과 밥도 먹는데, 깨는남들은 그냥 계속 상대와 대화하고 싶어 하며 모든 걸 다 제쳐두고 그 관계에만 올인한다. 뭐, 둘 다 금사빠인 까닭에 이렇게 불붙어 활활 타오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알다시피 빠르고 쉽게 불타오른 관계는 빠르고 쉽게 식을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시작부터 ‘아쉬워하며 기다리는 을의 입장’이 되어버리면, 아무래도 실망과 서운함을 느낄 일이 많아지게 된다. 상대가 가족들과 이모 댁에 가서 저녁을 먹는다고 했으면 대략 잘 시간이 되어서나 돌아올 거라 생각하며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 관계에 올인하고 있는 대원들은
-언제 집에 갈 거냐.
-이모 댁 쪽으로 가면 잠깐 볼 수 있냐.
-부모님과 이모 대화하시라고 하고 잠깐 나오면 안 되냐.
하며 급한 마음으로 재촉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곤 한다. 그 중 여린 마음을 지닌 대원들은
‘나라면 잠깐이라도 보고 싶어 할 텐데, 안 보고 싶어 하는 걸 보니 나에 대한 호감이 없나보네….’
하며 포기하느니 마느니 하는 얘기를 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이렇듯 ‘잠깐이라도 만나려는 열정’을 보이는 건 분명 깨는남쪽인데, 놀랍게도 정작 상대와 만나면 깨는남들은 어색해하거나 과한 드립만 치다 실패해 시무룩해한다. 이건 마치 내가 택배로 공구를 받을 때와 같아서, 그 공구가 없어서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느낌에 영업소에 연락해 직접 찾아왔지만, 집에 가져와서는 내용물만 확인한 채 한편에 두곤 그저 안심하며 다시 할 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내 이런 성향에 대해 ‘성격이 변태라 그렇다’는 진단을 내리셨는데, 어쩌면 마음만 급해할 뿐 정작 멍석 깔리면 아무 것도 안 하는 그대 역시….
균형을 잡자. 현재는 떨어져 있을 때 만나고 싶어 하거나 연락이 안 닿을 때 연락하고 싶어 하는 것에 8할의 관심을 둔 채 정작 만나면 2할밖에 하지 못하니, 최소한 그게 각각 절반씩은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통제해보자. 매력남들의 경우 떨어져 있을 때의 관심이 3할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지만, 만났을 때에는 7할을 한다. 그러니 ‘정작 만나면 뭐 별 거 없는 관계’가 되지 않도록, 떨어져 있거나 연락이 안 되는 시간에는 만나서 할 것들을 생각도 하고 준비도 해보도록 하자.
남자가 소개팅녀에게 반하는 순간이 ‘상대가 예쁠 때’로 거의 획일화 되어있는 반면, 여자의 경우는 위에서 말한 것들 외에
-상대 목소리가 좋아서
-상대 손이 커서
-상대 손톱이 단정히 정리되어 있어서
-상대 가방에 책이 들어 있어서
-상대에게 좋은 향기가 나서
등으로 참 다양한편이다. 그래서 더 어렵기도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아 저절로 계기가 마련되기도 하니,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만나본다는 생각으로 여유롭게 대해보길 권한다. 우리 관계가 어떻게 되든 지금 난 좋은 사람을 만난 거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라는 생각을 기본으로 깔고 가면, 크고 아름다운 헛발질을 하지 않는 이상 내쫓기듯 차단당하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구애에만 너무 신경 쓰며 리액션 기대하지 말고, 그대의 생활로 초대한다는 마음으로 대해보길 바란다. 자 그럼, 데이트하기 딱 좋은 요즘 날씨에 마음껏 행복하시길!
▼드릴세트를 구입했습니다. 어구(語句)만들기 보다 어구(漁具)만들기에 열심인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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