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가려달라는 커플의 사연에 지쳐, 오늘은 아예
-연애할 때 싸움을 부르는 대표적인 문제들
에 대해 그 이유와 예방법을 적어두기로 했다. 하나하나 보면 사소한 일일 수 있지만 그게 축적되거나 대처를 잘못하면 이별까지 부를 수 있는 문제들. 출발해 보자.
1. 매번 늦는, 집 앞에서 기다려도 안 나오는 행동.
‘습관적 지각’의 문제는 -연애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대인관계 및 사회생활에서 그렇지만- 십중팔구 상대방을 짜증나게 만든다. 나도 ‘늦는 입장’인 경우가 많아 몇몇 대원들이 연인에게
“지금 가고 있다고. 나도 늦어서 미안한데 버스가 빨리 안 가는 걸 나더러 어떡하라고. 나도 마음이 안 편한데 계속 뭐라고 하면 진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라고 하는 걸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건 말도 안 되는 자기변호이며 안 늦으면 벌어지지도 않을 일이란 얘기를 해줘야 할 것 같다.
특별히 어떤 사정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 이상, 지각은 무조건 지각한 사람이 잘못한 거다.(저 ‘특별한 어떤 사정’이란 말에 정당화나 합리화를 하며 끼워 맞추려고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데, 그건 보험사에서 인정하는 천재지변 등의 경우라고 적어두도록 하겠다.) 나도 지금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계속 왜 뭐라고 그러냐고 하기 전에, 미안할 짓은 아예 벌이지 않도록 노력하자.
이건 뭐 남녀를 떠나 ‘그러는 사람이 매번 그러는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 집 앞까지 찾아가 기다리는데도 대체 뭘 하는지 나오질 않는 사례, 어디 들어가 있으라고 해서 들어가 기다리는데도 오지 않는 사례, 영화 시작시간 이미 지났는데도 도착하지 않아 짜증을 내자 “어차피 10분쯤은 광고하잖아. 진짜 영화 시작 전에는 도착할 거야.”라고 말하는 사례, 상대가 늦어 공연 앞부분을 놓치고 마는 사례, 약속했던 데이트를 상대의 지각으로 인해 다른 데이트로 돌려야 하는 사례 등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일들은 꼭 주의하도록 하자.
2.친구나 지인과의 친밀함, 다른 약속.
‘다른 사람’과 관련해 갈등을 만드는 경우를 보면 사생활이네 인맥이네 하는 이유를 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우선순위에서 늘 ‘우리 관계’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밀린다면, 그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단순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약속이 있다’거나 ‘다른 사람과 시간을 보낸다’는 이유만으로 갈등이 시작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과 만나면 연락 두절
이라는 문제로 인해 다투게 되며,
-바쁘고 피곤하다며 연인과는 주 1회 만나면서, 다른 사람들과는 주 3회 만남
때문에 다투는 경우도 많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상대를 속이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과 만나서 애먼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불평불만을 듣게 된다며 억울해하는 사례도 있는데, 그건 ‘내가 연인을 쳐다보고 있을 때 연인이 다른 곳만 쳐다보고 있으면 서운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어제 피곤해서 나랑 라이딩 못 가겠다고 한 친구가 오늘 다른 친구와의 약속이 있어서 오늘도 못 만나겠다고 하면 좀 씁쓸해지는 게 사실 아닌가.
가벼운 갈등의 경우 ‘다른 사람과 만날 때 연인에게 연락만 잘 해줘도’ 상황이 악화되는 걸 막을 수 있다. 상대가 바라는 건 ‘내팽개쳐져 있는 느낌을 받지 않는 것’이니, 자리를 옮길 때만이라도 이야기를 해줘도 상대가 오만 가지 상상을 하며 홀로 침전하는 걸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단, 카톡 하나 틱 보내놓고는 상대가 곧바로 답장해도 읽지 않으며 다시 막 세 시간씩 침묵하고 그러면 사람 놀리는 것 같을 수 있으니, 가능한 한 짧게라도 꼭 대화하길 권한다.
이것과 연관된 또 다른 문제로는, ‘다음 날 만나기로 했는데, 다른 사람과 새벽까지 노는 것’이 있다. 당사자야 ‘빠질 수 있는 자리도 아니었고, 오랜만에 만나니 할 얘기가 많아 만남이 길어졌다’는 좋은 핑계가 있겠지만, 상대 입장에선 그렇게 놀아 놓고 다음 날 못 일어나서 만날 시간 두 시간 지나 연락이 오거나, 아니면 만나서 졸린 눈을 한 채 피곤하다는 얘기만 달고 있으면 짜증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러니 오로지 자신의 입장에서 자기 억울한 것만 말하지 말고, 상대에게 내 행동이 어떻게 느껴질 것인지에 대해서도 꼭 한 번 생각해 보자.
3.갈등을 싫어하거나 피하려고만 해서 싸움.
그냥 무작정
-어떠한 경우에도 안 싸우는 게 가장 좋은 것
이라는 생각으로, 싸움을 피하려고 드는 경우가 꽤 많다. 그런 대원들은 그냥 자신이 참거나, 이해하거나, 말 안 하고 넘어가거나, 사과하는 것으로 갈등을 얼른 진화하려 하는데, 통계상 그게 한 반 년까지는 가능하지만 계속해서 무조건적인 회피를 할 경우 그것 자체가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참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 까닭에 오랜 기간 축적해두었다가 한 방에 터트리면 그게 곧장 이별로 이어질 수 있다.
맹목적으로 덮고 넘어가려 하거나 무작정 갈등을 회피만 하는 것은, 상대에게 ‘또 다른 답답함’으로 여겨질 수 있음을 기억하자. 상대가 서운함이나 섭섭함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그것에 대해 사과하거나 더 노력해보겠다고 응답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일단 상대의 얘기를 끝까지 듣는 거다.
당장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상대가 불평과 불만을 말하니 마음이 불편하겠지만, 그것에 대한 해결책을 얼른 제시하거나 사과를 해야 풀릴 거란 예상과 달리, 놀랍게도 상대의 그런 불평과 불만은 이쪽에서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하며 다 듣는 것으로도 절반은 풀릴 수 있다.
‘무조건적인 인내’와 ‘회피를 위한 사과’가 만드는 또 다른 문제는, 늘 상대방이 화내고 이쪽은 사과하는 관계로 굳어질 수 있다는 거다. 상대로서는 웬만큼 화내지 않으면 이쪽이 ‘알았어,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좋게 좋게 넘어가자’는 식으로 나오니 점점 더 과격한 표현과 극단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고, 그래버리면 이쪽도 강철로 된 사람이 아니니 어느 순간 반격을 시작하거나 누적된 피로로 인해 결국 이별을 생각하게 될 수 있다.
그렇게 버티다가,
“저는 그냥 즐겁고만 싶은데, 왜 자꾸 이렇게 싸워야하는지 모르겠네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대원들도 꽤 많은데, 그 아무 것도 아닌 폰 타이핑만 하더라도 손에 자판이 익기 전까지는 오타도 많이 내고 타자속도도 느릴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런 과정을 겪고 나야 숙련될 수 있는 것처럼, 연애 역시 서로 최소 20년 이상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서로에게 맞게 다듬어가며 맞춰가는 과정이라 생각하자.
가끔 어긋나거나 틀어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며 무조건 피해버리면, 간단한 처치로 끝날 수 있던 부분이 곪을 수 있고, 심하면 썩게 될 수 있다. 발목 아프다는 상대 무작정 엎고 가려 하지 말고,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얘기를 듣고 함께 걷는 속도를 맞추거나, 아픈 부분 치료한 뒤 함께 걸어간다고 생각하자. 그래야 오래, 멀리 함께 갈 수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들만큼이나 문제를 만드는 것으로는
-상대가 기분나쁠만한 장난(또는 매사에 장난식으로 대처하는 것)
-내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시작되는 지적질
-습관적인 짜증, 비아냥, 예전 일 들먹이기
정도가 더 있다. 짧게 정리하자자면, 학력 가지고 기분 나쁘게 하는 동료가 있다는 연인의 말에 “넌 버클리 음대 사물놀이 학과 나왔다 그래 ㅋㅋㅋ”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솔직히 어이없어서 살짝 웃기긴 하지만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맞지 않는 드립이다. 상대가 화가 나 “진짜 내가 별...”이라는 얘기를 했는데 거기다가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역시 옳지 않다. 어렸을 때 싱크빅을 한 까닭에 창의력 대장이 되었더라도, 매사에 드립만 치려는 태도는 자제하도록 하자.
그리고 전에 이야기 했듯 자신은 등산을 하면서 헬스 하는 상대에겐 “무거운 쇠 들었다 놨다 뭐하러 하는 거?”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사람이다. 거꾸로 보자면 “어차피 내려갈 거 뭐하러 올라가는 거?”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따지고 보면 이쪽은 평소 개차반처럼 굴면서 상대의 작은 실수에는 쥐 잡듯이 뭐라고 하는 것일 수 있고, 연인에게만 짜증나, 피곤해, 지겨워, 힘들어 라는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러니 혹 자신이 그러고 있는 건 아닌지, 가끔씩 제 3자가 되어 자신의 연애를 조망하는 시간도 가져보자.
오늘 매뉴얼은 이쯤으로 마무리 짓고, 요즘 노멀로그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댓글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적어두기로 하자. 노멀로그를 부분폐업하는 일까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댓글러는 이때다 싶었는지, 아예 노멀로그 댓글창을 놀이터로 삼고는 어그로를 끌며 여기저기 시비를 걸고 다니게 되었다. 댓글을 삭제하고 닉과 아이피를 차단해보기도 했지만, 마음만 먹으면야 그런 건 문제가 안 되는 까닭에 여전히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분란을 유도하는 뻘 댓글을 써서 어그로를 끌고 있다. 교묘하게 꼬아서 댓글을 써놓고는 ‘욕설은 안 썼는데 지우나 안 지우나 보겠다’며 두고보고 있기도 하고, 닉을 바꿔가며 노멀로그가 비판을 수용 안 하니 망할 거라느니 듣기 싫은 얘기는 왜 안 듣냐느니 하며 노는 중이다. 배설해 놓은 걸 말없이 치웠더니, 왜 치웠냐고 따지는 것이다.
좀 더 강하게 통제할까 싶다가도, 언젠가 받았던 사연에 등장했던 “본인 삶이 얼마나 미저러블하면 저러겠나.”라는 멘트가 기억나서 가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익명에 기대 몇 달이 지나도록 저러고 사는 삶에, 행복과 즐거움이 과연 손바닥만큼이라도 있을지 의문이니 말이다. 아무에게나 침을 뱉고는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궁금해 하며 얼른 다시 와서 확인을 하고, 자신의 댓글이 지워져 있으면 이 공간이 다양한 의견을 수용 안 해 망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쓴 댓글은 대단한 댓글이고 다 깊은 생각이며 누구보다 크게 선심을 써서 작성한 것인데 거기에 성의있게 응답하지 않았으니 ‘소통 안 하는 사람’이라고 낙인찍던 시대를 지나왔다. 그때에도 ‘나랑 안 놀아주는 것’을 ‘독자와 소통하지 않는 것’이라며 노멀로그가 곧 망할 거라 말하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지금 없고 노멀로그는 여전히 항해 중이다.
소통이 이슈였던 시대를 지나고 나니 이제는 혐오의 시대가 되었다. 듣도 보도 못했던 단어들을 주워섬기며 내가 여자 대표인 듯, 내가 남자 대표인 듯, 나 홀로 깨어있는 듯 우쭐거리는 게 유행인가보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은, 유명한 사람이 TED강연에서 말한 거거든요??”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없던 건 아니지만, 요즘은 혐오 커뮤니티에서 집단혐오에 숙련된 채 바깥으로 나와 거기서와 똑같이 굴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화장실에서 하던 낙서를 화장실 바깥으로 나와서까지 하는, 막 살기로 작정한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런 댓글들 때문에 힘들어서 어제 글을 안 올린 거 아니냐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던데, 이래봬도 이 바닥에서 살아온 지 10년이다. 소싯적 잔뼈는 디씨에서 굵었다. “워싱턴 디씨요?” 아니, 디씨인사이드. 어제는, 그제 만든 적외선 촬영장비를 들고 너구리 탐사에 나선 까닭에 밤을 샌 까닭에 글을 못 올렸다.
기다리던 너구리는 안 오고 길냥이만 다녀갔는데, 여하튼 오늘은 역시나 직접 만든 물고기 촬영장비를 들고 계곡에 갔다가, 저녁에는 얼마 전 목격했던 족제비 야간촬영에 나설 계획이다. 이런 글 없이 그냥 오늘 잘 다녀와 내일 매뉴얼 올려도 아실 분들은 다 알아주실 거라 생각해 넘어가려 했는데, 진심으로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계서서 이렇게 적어두게 되었다. 자 그럼,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거 먹으며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어젯밤에도 나갔다 오신 것 같은데요? 어제는 고양이 한 마리도 안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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