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부터 하나 풀어보자. 만약 남친이 오늘 헤어지자고 한다면 K양의 마음은 어떨 것 같은가?
①갑작스러운 이별통보에 놀라며, 어떻게든 잡아보려 한다.
②헤어지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했는데 잘됐다며, 쿨하게 받아들인다.
사연신청서에서 보이는 K양의 마음은, ①번과 ②번 사이에서, ②번 쪽으로 좀 더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 K양은 직접
“이 오빠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제까지 본 바로는 너무 사람이 괜찮고 하니… 저도 오래오래 연애를 이어나가서 가능하다면 끝까지 가고 싶다는 마음도 없지 않아요.”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현재 둘의 연애는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극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궁금해 하고, 보고 싶어 하고, 더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것이 이처럼 별로 없다면, 이대로 길게 가긴 어렵지 않겠나 싶은 게 솔직한 내 생각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며 K양이 놓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자.
1.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의 마음 할애.
K양이 몇 년 내로 외국에 나가 공부를 해야 하기에, 그것 때문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을
-유효기간이 있는 것.
-어차피 외국 가면 달라질 것.
-온 마음 다 쏟아봐야 결국 소용없을 것.
처럼 여기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 돌아보길 권해주고 싶다.
만약 그런 생각으로 지금 하고 있는 연애에도 ‘상처받지 않을 만큼’의 마음만을 할애한다거나, 유학으로 인해 이별이 찾아올 수 있다 여기며 그 끝을 정해 놓는다거나, 이 연애가 그 기간을 잘 버티고 결혼까지 이어질 수 있는 관계인지 아닌지 만을 먼저 알아보려 한다면, 그건 ‘되면 한다’의 태도가 불러오는 여러 문제들을 발생시킬 수 있다.
될지 안 될지는 해봐야 아는 것이며, 어떻게든 되게 하려 온 힘을 다해도 안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당사자인 K양이 그저 적당한 마음만을 할애할 뿐이며 나머진 모두 상대나 운명에 맡긴다면, 당연히 그 관계는 K양에게 불안할 수밖에 없으며, 염려하느라 둘의 단단한 기반을 만들 기회도 전부 놓치는 까닭에 슬픈 예감은 결국 현실이 될 수 있다.
연애라는 게, ‘딱 맞는 그런 사람, 나와 평생 갈 마음이 있는 사람’을 만나기만 한다고 저절로 유지되며 모든 고민이 사라지는 건 아님을 잊지 말자. 선택은 출발일 뿐이며, 이후 관계를 유지시키는 건 집중과 노력이다. 그 순간들의 축적된 총합이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되는 것이고 말이다. K양의 경우 그저 ‘선택’을 하곤, 이젠 상대가 K양에게 ‘신뢰와 애정’을 확인시켜주길 바라고만 있었던 게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K양은 관중이 아니라, 상대와 함께 달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2. 어쩌다 보니, 연애를 위한 연애로 흐르고….
신청서에 적힌 말을 먼저 보자.
“(서로 어떤 연애를 할 것인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저는 제가 바라는 걸 말했었는데, 그건 바쁘겠지만 내 생각 해주고, 정말 살인적 스케줄인거 알지만 하루에 한번은 연락해주고, 이따금 전화해주고, 내가 불안하지 않게 표현해주면 좋겠다…, 서로 배려 많이 하고 서로 많이 이해해주는 커플이 되고 싶다. 그랬었어요.”
좋은 얘기다. 좋은 얘기긴 한데, 단순히 저런 형식만 따른다고 해서 더 친해지고 애정이 두터워지는 건 아니다. ‘횟수’보다 중요한 건 그 ‘내용과 깊이’아니겠는가.
첫 연애라고 해서, ‘남들이 많이 갈등을 겪는 부분’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원칙들을 세우고 그것을 지켜달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저 위에서 이야기했듯 ‘서로에게 보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 친해지는 것’이 첫 번째이며, 두 번째는 ‘갈등이 찾아와도 둘의 울타리 내에서 해결해 보기’로 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궁금해 하며 어떤 학창시절을 보냈는지, 가족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친한 친구들과는 어떤 추억이 있는 지 등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이야기를 하는 게 바람직한 거지, 그냥 의무적으로 하루에 한 번 10분이라도 통화하며 뭐해, 졸려, 배고파, 웃겨 등의 수다만 떠는 건 전화 끊고 나면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이 될 수 있다.
또, 그저 ‘끊김 없는 연락’을 위해 동선이 바뀔 때마다 중계하듯 알려주고 바쁜 와중에도 영상통화 걸어선 마치 CCTV처럼 켜놓는다고 해도, 감정이 상했을 때 전화를 툭 끊거나 일어서서 집에 가버리면 그런 건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런 걸로 모든 문제가 예방 가능한 거라면, 나도 이런 긴 글을 쓸 필요 없이 “무제한 요금 신청하십쇼. 잠 잘 때도 영상통화 켜놓고 주무십쇼. 못 만나는 날엔 24시간 서로를 시청자로 둔 채 1인 방송 하십쇼.”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이고 말이다.
난 K양이, ‘철저히 계획된 연애, 불안요소가 모두 제거된 연애’를 하려 노력하지 말고, 일단 그냥 좀 상대와 만나서 바보스러운 짓도 하고, 함께 시행착오도 겪어가며 놀았으면 좋겠다. 이건 실수가 있어선 안 되는 거래가 아니라, 연애이지 않은가. 그럼 친구랑 만나서 놀 때처럼 그렇게 어울려 놀면 되는 건데, 자꾸 원칙을 세우고 계획을 세우고, 그것들이 지켜지는지 아닌지를 가지고 이 관계의 한계까지를 판가름하려는 것만 같아 좀 아쉽다.
K양이 하는 말들을 종합하자면,
-지금은 상대가 날 좋아해주고 잘해줘서 좋은데, 이러다 상대가 변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된다. 또, 상대가 내게 더는 매력을 못 느껴 질리거나, 그래서 헤어지게 되는 건 아닐까 불안하다. 연애 시작 첫 1주에 비하면 상대는 벌써 좀 달라진 것 같은데, 이 연애를 오래 유지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건데, 그러기 위해선 K양이 이 연애에 더 바짝 다가서야 한다. 잘못돼도 크게 상처 받지 않을 만큼만 마음을 할애해 만나면, 딱 그 정도의 관계밖에 안 만들어진다는 걸 기억하자.
또, 연애에 대한 K양의 생각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K양은 끊임없이 상대에게 ‘사랑스러운 사람’의 모습만을 연출해서까지 보여주고, 그래서 상대는 처음 대시할 때의 헌신과 애정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걸 연애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 건 항상 정장 입고 만나고 허리 꼿꼿하게 펴고 앉은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 같기에 K양 스스로도 결국 지치고 말 것이다. 상대로서는 자신이 그만큼 다가왔으면 K양이 다가오길 바랐던 건데, K양은 한 발짝도 다가오지 않은 채 계속 ‘구애의 대상’이 되기만을 바라는 것 같으니 마음을 접게 될 수 있고 말이다.
상대가 K양을 계속해서 사랑하게 만들 방법은, K양도 상대를 사랑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상대를 사랑하게 되면 누군가에게 요즘 유행한다는 빵 하나 선물 받아도 상대랑 나눠서 맛보고 싶어지고, 늦게 들어가면 부모님께 한 소리 듣는 상황에서도 같이 핑계를 고민하며 좀 더 있고 싶어지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무언가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상대에게 말하고 싶어지는 것 아닌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면 K양이 하는 고민들은 저절로 해결될 테니, 지켜만 보지 말고 K양도 이 연애라는 배에 올라타 함께 항해를 해봤으면 한다. 일단 오늘 만나서, 맛있는 돼지갈비부터 먹어보자. 혹시 문제가 생기면 내가 구조선 타고 출동할 테니, 지금은 더 마음껏 푹 빠져도 괜찮다.
* 'K양'이란 호칭은, 사연자가 매뉴얼에서 불리길 원한 호칭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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