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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점점 지적받고 무시당하다 이별, 근데 미련이 남아요

by 무한 2017. 10. 10.

지적받고 무시당하다 이별하게 되는 사례들은, 대개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정서적으로 완전히 의존하며 지내온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일상을 상대에게 중계하거나, 자신에게 찾아오는 희로애락의 감정들을 실시간으로 상대에게 이야기 하며 공감과 리액션을 받으려는 것이다.

 

 

 

그런 모습이, 썸을 탈 때에나 연애를 막 시작했을 땐 문제가 안 된다. 오히려 상대가 이쪽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쪽이 열심히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니, 상대 입장에서는 행운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이쪽이 A군이라는 훈남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A군이 막 자신의 일상도 중계해주고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들도 모두 이쪽에게 말해준다면,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으며 뭔가 서로 잘 맞는 듯해 금방 비밀까지 털어 놓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사귄 지 반 년이 지나도, 일 년이 지나도, 이 년이 지나도 그냥 계속 그 틀대로 유지되는 까닭에 갑갑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사귈 때에야 뭐 앞으로 네가 넘어지면 손을 잡아 일으켜주고 그러지 못하면 옆에 함께라도 앉아서 괜찮아질 때까지 있어주겠다 어쩌겠다 하지만, 그게 오랫동안 지속되면

 

‘난 뭐 일으켜주기만 하는 사람인가? 그럼 내 인생은 뭐야? 오늘도 아침부터 쟤 친구네 집 강아지 중성화 하는 얘기 들어주고, 동물병원 원장이 신뢰 안 간다는 얘기까지 듣고 있잖아. 지금은 또 아이스크림 먹는데 맛이 변했대. 계속 이렇게 사귀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때문에 그냥 영혼 없이 ‘ㅇㅇ’, ‘ㅋㅋㅋ’, ‘ㅇㅋ’ 같은 리액션만 하고 마는 일이 벌어지며, ‘다이어트 해야 하는데 배고프다-너무 배고파서 먹어야겠다-참았어야 하는데 먹어서 어떡하냐-살 더 찐 것 같아서 짜증난다-다이어트해야하는데 배고프다’ 등의 지속되는 징징거림에 독설을, 나아가 욕설까지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눈치 채곤 얼른 의존을 줄이거나, 한 부분에서의 의존이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까지 얕잡아보고 있게 만들고 있다는 걸 발견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많은 대원들이 그걸

 

-상대가 변해서

-권태기가 찾아와서

-난 단점과 약점이 많은 사람이라, 상대도 답답할 것이기 때문에

 

등의 이유로 인한 것이라 생각하며 애먼 부분에 대해 상대에게 하소연하거나 자책하고 만다. 게다가 자신을 과소평가하며 상대에게 의존하는 대원들은

 

‘이런 날 포용해줄 수 있는 사람은 상대 뿐’

 

이라는 생각을 기저에 두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버리니 고문과 같은 상대의 지적질과 무시는 심해지고, 그걸 온 몸으로 견디며 이쪽은 계속 작아지고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져, 더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를 하게 되기도 한다.

 

참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지적질을 하고 무시하는 상대 역시 객관적으로 보면 이쪽의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진짜 대책이 없을 때가 많다는 거다. 상대가 존경심이 생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성실히 사는 모습과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라면 그의 지적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런데 상대가 게임에 중독된 아웃사이더에 가족과도 불화를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상대는 남 지적할 게 아니라 본인 인생부터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 P양의 경우를 보자

 

-상처 줄 수 있는 이야기를 상대가 하면 농담이지만, P양이 하면 상대가 분노함.

-상대는 자신의 생활방식과 다른 P양의 생활방식을 모두 ‘틀린 것’이라고 함.

-대화를 하려고 하면 ‘어차피 싸움이 되니 대화하기 싫다’며 거절함.

-상대가 성매매를 하던 걸 걸림, 이후에 또 하려던 걸 걸림.

 

상대 외모와 성격, 스펙에 대한 단점들을 모두 접어두고 봐도 저만큼의 문제가 보인다. 이것에 대해 P양도 말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닌데, 둘의 대화는

 

상대 - 넌 그게 문제야. 그걸 고치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을 거야.

P양 - 너는? 너는 이러이러한 일들까지 실제로 저질렀잖아.

상대 - 그런 식으로 나오면 무슨 말을 못하는 거지 너랑은.

P양 - 왜? 넌 나한테 이러이러하다며. 그래서 나도 얘기하는 건데 난 안 돼?

상대 - 넌 진짜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할 거면 말을 하지 말자.

 

라는 식으로 진행될 뿐이며, 상대는 할 말이 없어지면 욕을 하기 시작한다.

 

“사연 신청서를 쓰며, 이렇게 글로 쓰니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모습들에 많이 놀랐어요. 하지만 제 기억 속 남자친구는 제가 힘이 들 때에도 곁에 있었던 사람이기에, 정말 잡고 싶습니다. 만약 제가 잡아 다시 만난다면, 저희 관계가 발전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단순히 ‘그 시절 그 사람’을 떠올리며 애틋하게만 생각할 게 아니라, ‘지금 그 사람’의 모습이 어떤지를 찬찬히 살펴보길 바란다. 과거에 그가 P양을 위해 금방 목숨이라도 걸 정도의 모습을 보였다 해도, 지금의 그가 P양에게 화를 내고 욕이나 한다면 후자의 모습이 그의 본색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이제는 그 흔적도 찾기 힘든 상대의 애정과 호의를, 어렵게 떠올리며 애써 합리화 하지 말고, 지금 상대가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바라보길 권한다.

 

지금 P양이 해야 할 건 재회가 아니라, P양이 꼭 누군가에게 포용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렇게 포용해줄 사람은 상대 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P양은 주 몇 회 나가는 취미모임에서도 친구를 못 사귀는 걸 보니 자신에게 정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취미모임에 몇 번 나가 서로 속내를 다 털어 놓을 수 있으며 세상에서 날 제일 잘 아는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부터가 좀 잘못된 거다. 그런 관계는 나무가 자라듯 오랫동안 함께하며 뿌리내리는 거지, 어디 가서 찾거나 저절로 찾아오는 게 아니다.

 

내가 부족하고 형편없는 사람이기에 늘 누군가로부터 이해와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깍두기 정신’을 내려놓지 않으면, 어느 관계에서든 허덕이며 아쉬워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내 장점을 보고 칭찬을 해도, 그 이면에 있는 단점들을 알게 되면 상대가 결국 날 무시하거나 싫어하게 될까 염려하며 늘 걱정의 노예로 살게 되는 것이고 말이다.

 

이미 지금까지의 인생이 다 얼룩졌으며, 때문에 이제는 이렇게 되어버린 나를 이해하고 보호해줄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P양이 오늘부터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모든 걸 새로 시작한다면, 지금까지의 경험을 밑천삼아 좀 더 나은 ‘인생 2막’을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으로 살기 시작한다면 신선하게 느껴질 새 날들을, 상대가 이별로 위협하다 두고 가버린 자리에서 무너진 채 보내지 말자.

 

거기서 목 놓아 상대를 불러 상대가 다시 찾아온다 해도, 그는 또 헤어지네 마네하며 이별로 위협이나 하려 들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만나더라도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만나는 거라 생각하며, 일단은 그 자리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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