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이상의 장기연애를 할 경우, 이별위기가 찾아와도
‘우리가 사귄 기간이 얼만데 이 말 한 마디에 끝나겠어?’
‘매번 이러다가도 다시 화해하고 잘 지냈으니 이번에도 그럴 거야.’
‘뭐 또 주말쯤이면 연락 오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진짜 그게 둘의 마지막인 경우가 꽤 많다. 그 즈음이라도 분명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고는 같이 고민한다면 이별을 막을 수도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 타성에 젖어 있다가, 진짜 끝났다는 게 피부로 느껴지고 나서야 뒤늦은 후회를 하곤 한다.
어제 오늘 읽은 사연 중 세 편이 ‘5년 이상의 장기연애’를 하다 이별 위기에 놓인 커플의 사연이라, 오늘은 이걸 묶어 통틀어 발행하기로 했다. 출발해 보자.
1.다 안다고 생각해서, 또는 편해서 함부로 하는 말.
영화 <봄날은 간다>하면, 명대사
“라면 먹고 갈래요?”
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렇게 썸과 유혹의 대표적 아이콘이 된(응?) ‘라면’이, 영화 후반부에는 다른 형태로 등장한다.
상우 - 나 어디 좀 갔다 올게.
은수 - 빨리 와서 라면이나 끓여. 어?
상우 - 나 일…, 일 있어.
은수 - 무슨 일? 내가 모르는 일 있어? 또 어디 가서 술이나 마시려고 그러지 뭐.
상우 - 은수씨. 내가 라면으로 보여? 말조심해.
저런 일은 현실의 연애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며, 노멀로그를 갓 접한 어느 독자는 ‘어제 싸운 자신의 오래된 연인’에게
“이거나 읽어.”
라며 연애매뉴얼을 링크한 적도 있다. 사귄 기간이 길어지며 상대를 다 안다는 생각에 얕잡아 보거나, 편하게 하던 말의 수위가 높아져 ‘함부로 하는 말’이 되고 만 것이다.
“그마안~ 잔소리 그마안~”
“그렇게 때지들이랑 자꾸 밥 먹으면 너도 때지 된다 ㅋㅋ”
“나 같으면 그럴 돈으로 딴 거 하겠다.”
“그럼 이게 이거지, 저거냐? 답답해. 짜증나.”
등의 이야기가 반복되며 그 수위는 점점 높아진다고 생각해 보자. 저런 얘기를 하는 입장에선 ‘그럴 의도가 절대 아니었다’, ‘농담으로 한 말이다’, ‘너도 나한테 그런 적 많지 않냐’ 등의 이야기를 하곤 하지만, 듣는 입장에선 피로가 축적되며 무시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둘 사이에 애정표현은 찾기 힘든 반면 지적이나 놀림만 넘쳐나는 건 아닌지, ‘내 의도, 내 속마음’은 그게 아니라고 하지만 드러난 것들만 보면 상대를 무시하거나 하대하는 사람에 가까운 건 아닌지, 다른 사람들에겐 절대 하지 않을 무례한 행동들을 자신의 연인에게는 생각 없이 보이고 있진 않은지 꼭 한 번씩 돌아봤으면 한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내가 외할머니에 대한 애틋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 년에 전화 한 통 하지 않는다면, 그 마음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 아닌가. 사귄 기간이 오래 될수록 ‘해야 할 말과 표현’에 대해서는 굳이 꼭 보여주지 않아도 알 거라 여기며 생략하고, 반면 남에게도 쉽게 하지 못할 무례한 말과 행동을 연인에게는 하고 있지 않은지 꼭 점검해 보길 바란다.
2.둘의 미래는 계획되어(또는 계획되고) 있는가?
스물넷에 처음 만나 5년을 사귀었다면, 지금은 스물아홉이다. 그러면 결혼할 나이가 된 두 사람은 지금까지 서로의 사정이 어떠하며 앞으로 둘이 뭘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꽤 많이 나눴어야 하는데, 그런 것 전혀 없이 5년 전 연애하던 모습으로 지금까지 그냥 계속 연애만 즐기고 있는 사례가 종종 있다.
오늘 친구 집들이가 있으니 친구네 갔다가, 연인이 데리러 오면 연인 만났다가, 만나서 놀고는 집에 들어와 자고, 다음 날엔 또 어제나 오늘과 별반 다름없는 날을 연속해서 보내는 거라고 할까. 진지하게 대화를 할 때라고는 갈등이 생겨 싸울 때가 전부일 뿐, 나머지는 그냥 “앙앙, 응응, 히히.” 하며 하루를 보내고, 한 달을 보내고, 한 해를 보내다 5년이 지났다.
5년을 만났는데, 여전히 서로의 사정이 어떤지도 잘 모르고, 미래에 대해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커플들이 있어 난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내 남친’ 또는 ‘내 여친’이라는 크고 막연한 개념으로만 상대를 두고 있을 뿐, 상대라는 한 사람에 대한 디테일엔 별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거라고 할까. 크게 나쁜 부분 없이 상대와 연락하고 데이트 하면 좋으니 계속 만나오긴 했지만, 데이트메이트로서만 5년 만났을 뿐인 까닭에 서로를 그냥 하나의 덩어리진 개념으로만 두고 있는 거라 할 수 있겠다.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니 연애 중인 자신도 곧 결혼할 거라 막연하게만 생각하며, 그렇게 그냥 ‘결혼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넋 놓고 있진 말자. 4박 5일의 여행을 가도 알아보고 챙겨야 할 게 수두룩한데, 앞으로 4~50년 둘이 함께 살기로 하는 일에 그렇게 넋 놓고 있으면 안 되잖겠는가.
결혼하기 전에는 그냥 결혼하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나니 그게 아니라며 부모님이나 지인에게 하소연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그러는 건 ‘같이 여행가자’는 이야기에만 이끌려 같이 갔다가 식사도, 숙박도, 렌트도, 심지어 누가 뭘 준비하고 돈은 얼마를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눈 적 없기에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과 같으니, 개봉한 영화 보고 맛집 찾아가며 놀러가서 인생사진 건지는 것에만 몰두하지 말고 지금 준비하길 권한다. 그게 나중에 ‘그런 얘기를 할 완벽하고 온전한 시간’이 찾아와서 그때 하게 되는 게 아니다.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틈틈이 준비하자.
그러지 않을 경우, 이제 마음먹고 삶에 바짝 달려들어 제대로 살기로 했을 때 그 연애가 ‘정리대상 1순위’가 될 수 있으며, ‘연애상대’로는 괜찮지만 ‘반려자’로서 괜찮은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5년을 사귀었는데, “전에 한 번 지나가는 말로, 결혼은 내년쯤에 하면 어떨까 하는 얘기를 한 적 있긴 해요.”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분명 문제가 있는 거다. 둘의 이야기를 그렇게 어디서 들은 소문 전하듯 얘기해야 할 정도로 멀리 있지 말고, 가까이에서 함께 준비하길 바란다.
3.탓하고 변명하고 반격하는 일에 밀려 사라진 타협.
갈등이 생겼을 때, 연인의 말에 욱하게 되고 반격할 거리들이 생각나더라도 일단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자. 장기연애 중 사소한 말 한 마디로 헤어지게 되는 사례들을 보면,
-하도 들어서 무슨 말인지 다 안다는 생각을 말을 막거나 끊음.
-상대가 뭔가를 지적했을 때, 공격당했다는 생각에 바로 반격을 시작함.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사과하는 건 새삼스런 일이라 생각해 그냥 넘어감.
등의 태도로 인해
‘앞으로 상대와의 미래는, 늘 이런 식이라 아무 것도 제대로 되지 않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을 불러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데리러 가서 기다리다 매번 늦게 나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 연인은 1시간도 기다린다는 소리를 하거나, 넌 늦은 적 없냐고 하거나, 늦으려고 늦은 것도 아닌데 그것 가지고 뭐라고 하면 어쩌자는 거냐고 해버리면, 얘길 꺼낸 사람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더불어 둘은 오랜 기간 알고 지낸 까닭에 서로의 단점과 약점도 잘 알고 있고, 때문에 ‘작은 공격’이라 할지라도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도 기억해뒀으면 좋겠다. 연인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토로한 적 있는데, 갈등이 생겼을 때 그걸 예로 들어선 “넌 네 친구들과도 그러더니 내 친구들과도 그러냐.”라는 이야기를 할 경우, 상대는 방어적으로 변하게 되며 이쪽에 대한 믿음을 갖기 어려워질 수 있다. 상대의 콤플렉스를 헤집어가며 공격한 것이, 상대에겐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말이다.
또, 갈등의 시작은 사소했을지 모르지만, 그 일로 인해 식당에서 밥 먹다 수저를 집어 던지는 등의 모습을 보일 정도로 폭력적으로 변했다든지, 웬만큼 표현해서는 자극이 안 될 거라 생각해 사람 앞에 두고 투명인간 취급하며 물어도 대구를 안 했다든지, 내가 잘못하긴 했지만 요즘 예전에 잘못한 일로 내가 상대에게 화를 내던 상황이라 굳이 사과를 안 하고 넘어가려 했다든지 하는 일로 이어지다 이별하게 될 수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서두에 예로 든
‘매번 이러다가도 다시 화해하고 잘 지냈으니 이번에도 그럴 거야.’
라는 생각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강철로 만든 판이라고 해도 굽혔다 폈다를 계속 반복하면 결국 두 조각 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끝으로 하나 더 얘기하고 싶은 건, 단 한 번의 행동이나 한 마디의 말로도 이전의 모든 좋았던 시간을 다 빛바래게 만들게 될 수 있으니, 긴장의 끈은 언제나 쥐고 있자는 거다. 5년 내내 늘 상대를 데리러 가고, 기다리고, 그것에 대해 아무 소리 안 하며 참아왔다 해도, 그렇다고 해서 어느 날 폭발해 화를 내다 상대보고
“내려.”
하면 둘의 관계는 깨질 수 있다. 상대의 지적과 잔소리를 꾹 참다가, 어느 날 폭발해
“너나 잘해. 지는 무슨….”
할 경우에도 둘이 쌓아온 관계가 전부 무너질 수 있고 말이다.
누가 오늘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나를 만나주고, 나와 함께 밥을 먹어주고, 나를 위해 여러 가지를 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긴 연애를 하다 보면 점점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니 그것을 망각하지 않도록, 일 년 중 딱 머리하러 가는 날 만에라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고마움을 표현하길 권한다. 그런 뜬금없는 애정표현이 둘의 관계를 환기시킬 테니, 그렇게 가끔씩 새 마음으로 여인과 연애를 대하며 관계를 보살펴가길 바란다.
▼감성돔은 포기했고, 광어 잡으러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소박하게 두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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