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남자들이 좀 그렇다. 타고 난 수다스러움을 지닌 사람이라거나 이성, 또는 타인과의 대화에 많이 노출이 된 사람들은 좀 다르긴 하지만, 그게 아닌 그저 보통의 ‘남자사람’의 경우 특별한 용건이 없으면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이해했다면 별다른 리액션 없이 그냥 그걸로 끝인 경우가 많다.
“남친에게 제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친구가 사귀는 남자가 있는데, 전 그 남자가 좀 별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왜 별로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했더니, 남친이 어떻게 반응했는 줄 아세요?”
혹시 ‘ㅎ’이 네 개 아니었는가?
“ㅎㅎㅎㅎ”
지극히 순수한 남자의 ‘생각구조 프로세서’에 입각해 살펴보면,
여자친구가 말하는 그 친구를 아는가? -> 모른다 -> 모르는 사람이 남자친구와 사귀는 것에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가? -> 잘 모르겠다 -> 여자친구가 현재 저 이야기를 하는 것의 목적이 파악되는가? -> 파악되지 않는다 ->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있으면 되는가? -> 안 된다 -> 그럼 뭐라고 반응해주는 것이 가장 좋은가? -> ‘ㅎㅎㅎㅎ’정도로 웃어주는 게 좋다. ‘ㅎㅎㅎ’는 짧은 대답의 느낌이니 별로고, ‘ㅎㅎㅎㅎㅎ’역시 너무 웃는 느낌이라 알맞지 않다. ‘ㅎㅎㅎㅎ’ 정도가 딱 좋다.
라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 ‘ㅎㅎㅎㅎ’라고 대답했음을 알 수 있다.
여하튼 이런 남자와 사귈 때에는, 감정교류도 안 되고 답장도 밋밋해 ‘나랑 대화하기 싫은가?’, ‘왜 가끔 동문서답을 하는 거지?’, ‘리액션은 자네가 묵어부렀는가?’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황무지 같은 남자도 잘 개간하면 기름진 땅이 될 수 있으니, 오늘은 이런 남자를 개간하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1.서술형보다는 질문형 대화법을 사용하자.
밋밋하고 답답한 남친의 대화패턴을 보면, 지는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지금 끝났음 ㅎ 이제 집 가는 중”
정도의 사실만을 전달하고 있다는 걸 금방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지극히 순수한 ‘남자 대화법’으로, 아마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친구 - 나 좀 늦음. 10분 도착 예정.
남친 - ㅇㅇ
정도의 대화만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오던 중 갑자기
“오빠야 오늘은 많이 피곤했나보다 쉬는 날 없이 고생하는 거 보니까 안쓰럽고 대견해요 프로젝트 기간 동안 많이 수고했어요! 내일 아침에 언제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몸은 힘들어도(안 힘들면 좋겠지만ㅠㅠ) 마음은 행복한 하루 보내면 좋겠다 사랑해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여자친구를 마주하게 되니, 사고회로에 마비가 왔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대체 어느 맥락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상황에 놓인 채, 저 카톡의 중심내용은 ‘프로젝트 기간 동안 많이 수고했다’인 것으로 판단해
“수고는 무슨 ㅎㅎ”
정도의 괴랄한 대답만을 하고 마는 것이다. 여친이 기대한 건 절대 그런 ‘팩트중심’ 대화가 아닌데….
아무튼 이런 남자에게 그저 ‘좀 더 길게 대답해줄 것’, ‘가끔씩 애정표현도 해줄 것’이라는 주문을 해도 ‘ㅇㅋㅇㅋ’하던 것에 겨우 힘겹게 ‘ㅇㅋㅇㅋ!!’라며 이모티콘을 더 찍어 보내거나, “종로 와 있음”, “지금 누움.” 따위의 열성적인 상황보고만 더 듣게 되곤 한다. 가끔
“이런 제 답답함을 남친에게 말로 하기 힘들어서, 얘기해도 달라지지 않는 부분에 대한 걸 편지로 썼어요. 이 편지를 읽고 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은데….”
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그 상황에서 장문의 편지나 카톡은 남친의 우뇌에 쥐가 나는 것을 도울 뿐이다. 그러니 짧게 말해도 안 되는 와중에 더더더 길게 얘기를 할 생각을 하기 보단, ‘질문형 대화’를 적극 사용하길 권한다.
“오빠랑 통화하고 나니까 힐링 되는 것 같다 ㅎㅎ”라고 말하면 돌아올 대답이라곤 “ㅎㅎㅎ” 정도일 게 뻔하니 “오빠는?” 정도의 부가의문문을 달아도 되고, “점심 먹었어?”라고 물으면 “응ㅎ 넌?”이라는 밋밋한 대답이 돌아올 수 있으니 “점심 뭐 먹었어?”하며, 옹알이수준의 대답이라도 할 수 있게 멍석을 깔아주는 거라 생각하면 되겠다.
2.구체적으로, 당장 실천 가능한 걸 말해주는 게 효과적이다.
그러니까
“애정표현을 좀 더 해주고, 내가 꼭 묻지 않아도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정도로만 말하면, 남자의 머릿속엔
‘난 지금 혼나고 있다.’
‘아까 내가 대답 안 한 걸로 여친은 삐쳐있다.’
‘어제 하트 찍어서 보냈는데, 그걸로는 애정표현이 부족한가보다.’
하는 생각만 들 수 있다. 그래서 얼른 알았다고 대답해 그 위기를 넘기려하거나, 눈치가 없을 경우 “왜? 화났어? 화 풀어.” 따위의 이야기만 해 더 화를 돋우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상대에게 말할 땐 구체적으로, 또 당장 실천 가능한 걸 말해주도록 하자. 그걸 딱 짚어 이야기하는 게 뭔가 엎드려 절 받는 느낌도 들고 그걸 직접 얘기해야 한다는 게 살짝 자존심도 상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얘기를 해야 상대가 확실하게, 잘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지 않을 경우 당장 상대에게서 ‘미안해’같은 얘기는 듣겠지만, 그게 거듭될수록 상대는 이쪽이 하는 얘기를 전부 잔소리나 지적으로 여기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이쪽이 “밥 먹었어?”라고 물을 경우 상대가 “어. 좀 아까.”라고 대답하고 만다면, 그런 대답밖에 할 줄 모르는 남친 때문에 속상해만 하지 말고,
“뭐야~! 나 밥 먹었는지도 물어봐줘야지!”
“아까 언제? 뭐 먹었어? 빨리 말해.”
“오빤 좋겠다. 난 오빠가 부러워.”
정도로 얘기를 하면 된다. “오빤 좋겠다.”고 할 경우 상대는 “왜?”라고 물을 텐데, 그럴 땐 “예쁜 여자친구가 다정하게 밥 먹었냐고 물어봐 주잖아.ㅎㅎㅎ” 정도로 대답하면 된다. 그럼 또 저게 질문이 아닌 까닭에 사고회로가 정지한 상대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ㅎㅎㅎㅎ”하고 말 수 있는데, 그러면 “요즘 편해서 웃음이 나오지? 긴장하자.”정도로 보내면…, 싸우겠지?
그 외에 상대가 참 건조하게 “8시에 통화가능?”정도로만 톡을 보내오면, “오빠가 좀 더 예쁘게 요청하면 가능할 수도 ㅎㅎㅎ”정도의 이야기를 해 교정하는 방법도 있고, “어. 나도.”하고 마는 대답만 하고 만다면, “답장은 10자 이상으로 입력하셔야 합니다.”하며 드립 섞어 짚어주는 방법도 있다. “ㄱㅊㄱㅊ(괜찮 괜찮)”으로 대답할 경우, “고추고추?”하며 다시 대답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고 말이다. 그냥 삭히거나 묻어두고 넘어가지 않기로 하면 다양한 방법들이 생각날 테니, 서운하지 않은 척하며 분노 마일리지 쌓지 말고 그때그때 명확하게 짚어가며 디테일하게 말하도록 하자.
아, 그리고 쪽도 습관적으로 일기나 메일을 쓰듯 “그래도 오늘 A했어. B를 못한 건 아쉽지만, 아무튼 나중에 그건 C로 하면 되는 거니까 뭐. 아 그리고 D는 어떻게 되었나 궁금하네. 앞으로는 E랑 F도 해야지.”라고 말하는 타입이라면, 카톡대화에선 좀 더 빠른 호흡으로 실시간 문답을 주고받는 대화를 시도해보길 권한다. 한 번에 너무 많을 걸 다 얘기하면 상대는 타석에 서서 날아오는 공 다섯 개를 받는 느낌이 들 수 있으니, 한 번에 하나씩만 차례대로 말하는 연습을 해보자.
3.다 떠안지 말고, 상대 몫은 상대 앞에 두자.
감정교류 잘 안 되는, 심지어 긴 대화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상대와 만나고 있을 경우, 그 밋밋함에 목 타는 건 이쪽이니 필연적으로 이쪽이 리드하게 되며 이것저것 제안하고 확인하려 들 수 있다. 때문에 늘 이쪽이 먼저 말을 꺼내고 도맡아하는 것으로 굳어질 수 있는데,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상대가 해야 할 몫’을 상대에게 둘 필요가 있다.
간단하게는, 영화를 고르고 예매하는 일부터 상대에게 맡겨보자. ‘답답이 남친’을 둔 여성대원들의 경우 자신이 영화 보자는 얘기를 꺼내고, 볼 영화를 고르고, 알아서 예매하고, 이어 어디서 몇 시에 보자는 이야기까지를 하곤 하는데, 그건 ‘노력’이라기보다는 혼자 다 짊어진 채 끌고 가는 것에 가깝다. 그러다 보면 앞서 말한 대로 늘 이쪽이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고 말이다.
물론 저렇게, 당장 상대에게 ‘리드할 기회’를 준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전부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여행에 대한 정보를 상대가 알아보고 계획하기로 했는데 며칠이 지나도록 한 마디도 없어 답답해질 수 있고, 진짜 딱 알아보라는 것만 알아보고는 눈만 꿈뻑꿈뻑하고 있는 상대를 보며 몸에 돌이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이라 생각하며, 그래도 전과 달리 노력한 상대에게 ‘참 잘했어요’하는 칭찬을 해주도록 하자.
사실 그들이 그간 그렇게 가만히 있었던 건,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뭘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그러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단풍을 보러 가거나, 야경을 보러 가거나, 바다를 보러 가거나, 야구장엘 가거나 한 적 없으니, 그냥 안 하던 걸 안 하며 하던 것만 하는 거라고 할까. 때문에 이런 상대에겐 “난 이러이러한 것들을 함께 하고 싶은데, 오빠는 아닌가봐?”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말을 꺼낸 후 함께 준비하고 계획하는 방법을 쓰는 게 좋다.
아, 그리고 저 위에서 이야기를 못했는데, 이런 남자들의 경우
여친 - 여기 눈 와! 눈 오니까 오빠 보고 싶다~
남친 - 나 어제 말한 대로 오늘 야근이야.
하며 분위기며 산통이며 다 깨는 특징이 있으니, 저런 대화 한 번에 실망한 채 또 혼자 속앓이만 하지 말고, “아니아니, 이럴 땐 그냥 ‘나도 보고 싶어’하면 되는 거야. 자, 다시 해봐~ 오빠 보고 싶다~”정도로 가르쳐주도록 하자.
끝으로 하나 더. 진짜 잘 모르고 못해서 그러는 것과, 그냥 마음이 딱 거기까지라서 그러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뭘 잘 모르고 못해도, 이쪽의 생일인데 연인의 생일에 게임하느라 답장도 제대로 안 하는 경우는 없으며, 이쪽이 알아서 챙겨주는 선물은 다 받으면서 본인이 절대 선물 안 하는 것에 대해 “난 원래 선물 같은 거 잘 안 하는데?”하며 괴상한 소리나 하고 있는 사람과는 헤어지는 게 낫다.
더불어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일주일에 한 번 보는 것도 어려워하거나, 만나서 할 얘기 있으면 카톡으로 하면 되는데 그냥 카톡으로 하고 만난 걸로 퉁 치차는 사람 역시, 이쪽이 애써
“이게 오빠의 속도라면, 내가 오빠의 속도에 맞출 수 있게 노력할게.”
하는 소리를 하며 붙잡고 있는 것보다, 걘 그냥 그렇게 살라고 두고 우린 우리 갈 길 가는 게 맞다. 이쪽이 응급상황에 처해도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며칠간 소식도 모를 것 같고, 다급한 호출을 해도 달려올 것 같지 않은 사람과는 정리하도록 하자. 그런 상대에게 맞춰가며 연애하려 하다간, 연애 가장이 되는 습관만 들 수 있다.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건 그간 많이 했지만 별 변화가 없다면, 이젠 상대도 돌보지 않는 나를 나부터 돌본다 생각하며, 상대에게만 쏟던 애정과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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