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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이등병인 군인 남친, 벌써 변해가는 게 느껴져요.

by 무한 2017. 11. 21.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군생활이라는 게 사실 그렇게 빡빡하거나 못 견딜 정도로 힘들진 않다. 몇 년 전 TV에서 군생활에 대한 방송을 할 땐 훈련이나 작전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는데, 그런 훈련이나 작전도 자주 있는 건 아니며,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시간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그 자대 내에서 보내곤 한다.

 

“그쵸? 제가 전화하며 들어봐도 남친 역시 그냥 부대에 있거든요. 그냥 하루 일과 보내면서 일과 끝나면 자유시간인 건데, 아무리 군대에 있다 해도 5분 정도 시간 내서 전화해주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 부대에서 근무를 하고 있든, 짬나는 시간을 모아보면 5분이 아니라 50분도 충분히 될 거라 난 생각한다. 군대에서는 밥 먹을 때에도 소대 별로 모여서 움직이곤 하는데(학교의 경우 한 학급씩 순서대로 밥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차례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만 해도 대략 20분은 짬이 난다.

 

이렇듯 밖에서 보거나 이론적으로만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인데도 왜 군대에 있는 남자들은 그걸 못하며 힘들어 할까?

 

이등병인 군인 남친, 벌써 변해가는 게 느껴져요.

 

 

가장 큰 이유는, ‘시어머니 29명’과 있는 것과 같은 것이 소대생활이기 때문이다. 개인공간이라고는 작은 캐비넷이 전부이며, 나머지는 전부 오픈된 채 대략 29명의 사람들이 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일과 중이든 일과 후든 거기서 그들과 24시간을 보내야 하며, 그들 중 절반과는 좋든 싫든 1년 이상을 반드시 같이 보내야 하는 까닭에 최대한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도 저녁 밥 먹고 나서 두 시간 정도 자유시간이 있잖아요. 남친한테 들은 적 있는데요.”

 

남친이 상병 정도 된다면 그 자유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등병이라면,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외워야 할 것도 많으며 고참 중 누가 ‘뭐 하자’고 했을 때 “전 따로 제 할 일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가 없다. 스케줄 상 ‘자유시간’이니 진짜 누구 눈치도 안 보고 자기 하고 싶은 걸 했다간

 

-관물대 정리 안 하냐? 너 빨래는 다 했어?

-너 나가서 통화하면 소대 정리는 누가 해? 고참들이 할까?

-위병소 일반수칙이랑 특별수칙 외웠어? 안 외우고 나가서 통화해?

-아까 작업병 2명 행정반 앞으로 오라고 했는데 넌 없었지?

-등화관제 안 하냐? 커튼 치는 것보다 전화하는 게 더 중요해?

-소대장님이 너 찾는데, 내가 너 부르러 여기까지 와야 돼?

 

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며, 소대 내에서 삼삼오오 모여 만들어지는 그룹에 끼지 못하거나 소대원과 친해질 시간이 부족해 자꾸 겉돌게 될 수 있다.

 

 

또, 뭘 하든 이등병 땐 몸과 마음 편하게 할 수 없다는 게 두 번째 이유다. 부대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계급이 낮을 땐 ‘더 엄격하게 지켜야 할 것들’이 많으며, 내가 있던 곳에선 통화조차 어디 기댄 채 할 수 없이-짝다리도 짚을 수 없이- 차렷 자세로 해야 했다. 부대원은 많은데 전화는 적기에 대개 고참들이 전화부스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운 좋게 통화를 하다가도 고참이 내 뒤에서 통화하려 기다릴 때에는 얼른 전화를 끊어야했다. 전화를 하러 갈 때에도 휙 나가서 하는 게 아니라 고참에게 전화하러 가겠다고 알린 채 가야했고 말이다.

 

난 이런 사정과 상황을 부대에 있는 남자가 자신의 여친에게 좀 설명했으면 좋겠는데, 답답하게도 대부분의 남자들이 디테일하게 설명은 안 하곤 그냥 ‘나 얼른 들어가야 해’, ‘요즘 분위기가 안 좋아서 전화하기 힘들어’라는 이야기만 하기에 참 안타깝다. 상황이 이렇다는 것만 잘 설명해도, “나랑 통화하려고 5분 시간 내는 게 그렇게 어려워?”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그런 사정으로 연락을 잘 할 수 없다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그럼 첫 휴가를 나오는데 훈련소 동기랑 하루 보내고, 친구들이랑 하루 보내고, 저와도 그냥 하루 보낸다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여자친구는 분명 좀 다르니까 계속 보고 싶어 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남친을 기다리고 있는 건 저 하나지, 솔직히 친구들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여자친구가 친구들과 같은 위치인 것도 아니고요.”

 

서운해 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엔 나도 공감하는데, 그래도 상대의 ‘첫 휴가’인 만큼 이번 한 번은 ‘우리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해’의 느낌으로 일단 좀 놔둬보길 권하고 싶다. 남자에게 입대 후 첫 휴가란, 지금까지의 인생 중 온갖 희망과 다짐과 기대와 설렘으로 범벅이 된 가장 격렬한 ‘사건’이다. 때문에 빈틈없이 휴가를 준비하며 그간 빼앗겼던 자유를 만끽하겠다는 마음을 먹기 마련인데, 막상 나와 보면

 

-사실 내 지인들은 내가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했던 것만큼 날 생각하지 않음.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었고, 가족부터가 좀 무덤덤하게 여김.

-온갖 환영행사와 뜨거운 재회들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조용함.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냥 예전에 어울릴 때랑 별 차이 없음.

-먹고 싶어 하던 걸 먹었는데 큰 감흥 없음. 졸리고 피곤함.

 

등의 경험을 하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남친이 그 경험을 하며 옥석을 가려내고 관계의 최신화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자. 3일 중 하루만 보게 될 경우, 만났을 때 격하게 반기며 쓰담쓰담 토닥토닥 해주는 것으로 ‘역시 여친밖에 없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군대에 있을 때 나만큼 기다리고 편지 써준 사람이 어디있냐는 생각으로 급하게 보상을 받으려 하지 말고, 하루 이틀만 더 참아 남친 스스로 깨닫게 만들도록 하자. 어디냐, 뭐하냐, 누구 만났냐는 걸 30분마다 물어가며 들볶기보단, 차라리 상대로 하여금 ‘왜 연락이 없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상대를 움직이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걸 기억하자.

 

연애 중 상대가 뭔가에 들떠 관계에 소홀한 것 같을 땐, 뒤를 쫓으며 얼른 날 더 보라고 하는 것보다, 관심을 줄이는 게 효과적이다. 그래야 ‘이러다간 이 사람을 놓칠 수 있다’는 긴장감도 생기기 마련이며,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듯한 모습’에 덜컹하며 더 바짝 다가서게 된다. 연인이 ‘나랑 영화 언제 같이 보러 갈 거냐’며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할 때보다, 한 번 얘기한 뒤 혼자 그 영화를 보고 왔다고 말할 때, 자신의 잘못과 소홀함을 뉘우치게 되는 이치라고 보면 되겠다. 이런 부분을 잘 활용해, 조급함과 여유로움의 완급조절을 현명하게 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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