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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연애도 일도 대인관계도 엉망, 반짝이던 전 초라해졌네요.

by 무한 2017. 11. 8.

‘내 이번 인생은 망한 것 같다’는 생각은, 스물여섯에서 일곱쯤 한 번 찾아오기 마련이니 너무 긴장할 건 없다. 그때가 되면 ‘늘 공짜로 추가되고 갱신되던 대인관계’도 유입이 적어지게 되며,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손가락 사이로 모래 빠져나가듯 빠져나가고 정제된다.

 

그 즈음 아직 사회에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여전히 진로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라면, 앞서 말한 난감한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과 동시에 불안과 다급함이 더해질 수 있다. 남들은 이미 고속도로에 올라타 달리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아직 진입도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들 수 있고, 나아가 상황이 그렇다 보니 누구 얼굴 보고 대화하는 것도 싫으며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의 만남 요청에도 ‘나중에 보자’며 미루다 인연의 끈이 느슨해질 수 있다.

 

연애도 일도 대인관계도 엉망, 반짝이던 전 초라해졌네요.

 

 

그런 상황에 처할 경우, 가장 먼저 하게 되는 건 ‘남 탓’이다. 날 더 밀어주지 못했던 가정환경, 내가 하려고 하던 걸 못하게 했던 부모님, 믿었지만 배신한 친구,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대인관계 등에 대한 불평과 원망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울부짖으며 부모님께 반항을 해보거나, 가장 가깝게 지내던 친구와 의절하는 일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는 걸로 문제가 해결되는 거라면 다행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행동은 스스로를 더 고립시킬 뿐이다.

 

겁은 많아지고 마음은 더 여려지며, 점점 더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더는 ‘남 탓’을 할 카드도 남아 있지 않은 까닭에, 이젠 스스로를 모욕하려 들기도 한다. 어디에서든 깍두기밖에 되지 않는 것 같은 자신을 저주하기도 하고, 그런 현실을 마주하지 않으려고 잡기에나 눈을 돌리고 있는 자신을 힐난하기도 하고, 자신의 의지박약과 한심함을 아프게 꼬집어대다 자신은 그냥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 것 같다는 자조 섞인 체념을 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연애를 할 경우, 연인에게 응원을 받거나 자극을 받아 그 늪 같던 환경에서 빠져나오는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기도 하지만, 함께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거나 연인에게 의존하는 것에 길들여져 관계에 고립되고 마는 부정적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후자의 사례 중 가장 흔한 건, 연인의 지원과 응원을 받는 것에 안주한 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삶에 대한 불만과 불평을 이야기 할 때마다 연인이 받아주고 달래주니 습관적으로 기대게 되고, 그렇게 기대고 나면 잠깐 동안은 또 괜찮으니 연애의 달달함만을 맛보며 산다. 하지만 바뀐 게 아무 것도 없으니 이전과 다른 없는 삶을 계속 유지하게 되고, 그럼 또 다시 불만과 불평을 이야기 해 연인의 관심과 위로와 응원을 얻으려 하게 된다.

 

뭐 그렇게라도 연인이 언제까지고 받아준다면야 문제가 없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서른에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며 손을 놓곤 한다. 이대로라면 결혼해서도 상대의 삶까지 짊어지고 살아야 할 것 같다는 부담이 들며, 계속되는 의존으로 인해 애정은 어느새 그저 동정으로 바뀌어 있기 때문이다. 기대는 쪽에서는 예상하지 못하지만, 그걸 다 받아주던 상대는 언젠가부터

 

‘내가 지금 헤어지자고 하면 쟤가 잘못될 것 같아서.’

 

라는 이유로 연애를 지속해온 사례가 많다.

 

저런 와중에 당장 만나면 좋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최악의 경우, 둘 모두 게임이나 술에 중독되어 삶을 돌보지 않고 살다, 감당하기 힘든 결말을 맞는 사례도 있으니 말이다. 둘 다 연애를 도피처로 생각한 채 언젠가는 우리에게도 볕들 날이 올 거라며 건배하지만, 훗날 찾아오는 건 그렇게 마신 술로 인한 엄마도 모르는 알코올중독이거나, 덮어두고 쓰다가 얻게 된 신용불량이라는 꼬리표다. 그러던 중 둘 중 하나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할 경우, 그 관계는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대상이 될 수 있고 말이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연애를 하다 헤어진 대원들은

 

“전 아직 이 사람이 너무 좋고,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달라질 거라고 약속하고 바뀌고 싶어요. 헤어지지 않고요.”

“이 사람이 없는 저를 상상할 수 없어요. 바뀌려면 이 사람이 필요해요.”

 

라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안타깝게도 상대에게 매달리는 그 모습이 상대에겐 여전한 의존으로 보일 수 있으며, 상대로서도 한두 번의 실망으로 이별을 결심한 것이 아닐 수 있기에 매달리는 것만으로 재회하긴 어렵다. 이미 그렇게 붙잡은 전례가 수차례 있어 더는 신뢰하기 힘들다거나, 또 받아줘 봐야 눈치 보며 하는 척 좀 하다가 다시 태만해질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때문에 난 재회를 위해서든 자신을 위해서든, 일단 움직이길 권하고 싶다. 간단하게는 오늘 저녁부터 나가 걷거나, 게임을 삭제하고 ‘내일의 나를 도울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달라질 수 있다. 타성에 젖어 살던 삶을 정돈하는 건 ‘나중에 그런 일을 할 완벽하고 확실한 시간’이 와서 하게 되는 것이 아니며, 꼭 누군가의 도움과 응원과 지지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기억하자.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나중에 달라지겠다’, ‘점점 좋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건 징징거림처럼 들릴 수 있다.

 

더불어 주도적인 삶을 위한 첫 걸음은, ‘밥벌이를 하는 것’이라는 것 역시 기억해뒀으면 한다. 내 먹고사니즘을 책임질 수 있어야 누군가와 함께할 때에도 신세지거나 눈치 보지 않고 만날 수 있다. 내 밥벌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드는 밥벌이를 새로 골라도 되며, ‘밥벌이는 밥벌이일 뿐’이라 생각하며 그 외의 삶을 꾸려나갈 수도 있다.

 

나중에 누군가가 좋은 제안을 해주길, 운이 좋아 지금과는 다른 일로 잘 풀리길, 언젠가는 이것도 이루고 저것도 이뤄 행복한 즐거움이 가득하길, 바라기만 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자. 꿈을 가지는 건 좋지만 꿈만 꾸고 있으면 곤란하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 오늘 같은 내일을 맞게 될 수밖에 없다. 가장 바보 같은 건 이제 겨우 스물예닐곱 된 시점에, 자신이 여전히 반짝이며 아직 무궁한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걸 모른 채, 반짝이던 시절 다 지나가고 완전히 실패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버리면, 세 살쯤 더 먹어 서른의 문턱에 섰을 때

 

‘왜 그 시절의 난, 아무 것도 안 하면서 그저 쭈구리가 된 채 시간을 다 보냈을까. 그때 뭐라도 시작했으면 지금쯤 뭐라도 되었을 텐데. 그 연애를 더 이어가봐야 마지막 순간처럼 무시당하고 지적받을 뿐이었을 텐데, 난 뭘 기대하며 매달렸던 걸까.’

 

라는 후회를 하게 될 수 있다. 아직 끝난 건 아무 것도 없으며 좀 늦는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니, 사회에 첫 발을 디딘지 고작 2~3년 지난 시점에 주저앉아 허송세월하지 말자. 80년 인생에서 앞 뒤 10년씩 빼고 60을 기준으로 인생을 1시간으로 본다면, 이제 겨우 16분 지난 것에 불과하다. 지금 체념한 채 나머지 44분을 살아지는 대로 살 것인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바짝 달려들어 살 것인지는,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대와 똑같은 마음으로 산 적 있는 사람이 여기 하나 살고 있다는 게 위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여린마음동호회장인 나도 온 몸으로 버티며 살고 있으니, 그대도 그 순간을 잘 극복해내길 바란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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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결전의 날인데, 오늘 택배가 안 왔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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