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양의 이 사연은, 그냥 둬도 결혼을 하긴 할 것 같다. 하지만 결혼 이후엔 K양의 불만족이 더 커질 것이며, 남친은 딱 그만큼을 후회로 받아들이게 될 것 같다.
내가 이런 예상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두 사람에게
-결론만 꺼내 놓고 대화하며, 결론을 이미 듣고 난 후엔 조율하지 못하는 문제
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K양은 얼핏 보면 ‘함정수사’처럼 보이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그런 지점들에 대한 부분이 상대에게는 피로로 쌓일 수 있을 것 같다. ‘결혼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다고 말한 다음 날 K양이 한 행동을 보자.
“다음 날 제가 전화로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상대는 K양이 속마음을 터놓고 말해보자고 해서 말한 건데, 말하고 나니 다음 날 이별통보가 날아든다. 이래 버리니 상대는 점점 더 소극적으로 변하며, 동시에 K양의 ‘어느 날 갑자기 따지는 듯한 화법’에 ‘나도 반대로 따지기(’너도 그랬잖아‘류의 방법으로)’를 사용하는 일이 늘게 되었다.
또, ‘답정너’의 질문을 던지거나, 어떤 지점에 대해 ‘Yes/No’의 딱 두 가지로만 해석하는 것 역시 문제다.
나랑 결혼할 생각이 있다는 대답 -> 날 사랑하는 것.
결혼에 대해 아직 잘 모르겠다는 대답 -> 날 그만큼 안 사랑한다는 것.
저런 식의 해석이라면, 당장 결혼을 추진할 수 없는 모든 연인들은 ‘그만큼 안 사랑하는 것’이니 헤어져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나아가 ‘당장은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대답을 듣고는, 그걸 꼭
-앞으로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일체 꺼내지 않겠다. 그러면서 만나보는 걸로 하자.
라고 결론 내릴 필요도 없다. K양과 상대의 대화를 읽으며 내가 가장 답답했던 지점이 바로 저것으로, 저건 마치
“우리도 발리 다녀올까? 당장 가자는 건 아니고 이번 휴가쯤? 휴가 때 일 생길지 모른다고? 봐서 결정하자고? 난 같이 여행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자긴 없나 보네. 그럼 앞으로 우리 여행은 가지 말자. 여행 얘기 다시는 안 꺼낼게.”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다. 때문에 그냥 갈등만 생길 뿐이며, 같이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런 이야기를 한 까닭에 ‘앞으로 여행 가자는 말 안 꺼낼 것’이라고 선포한 K양만 더 답답해질 수 있다.
K양의 시도와 노력이라는 게, ‘되는 방향’이 아닌 ‘비참해지는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아무래도 엄청난 자존심이 원인인 것 같은데, K양은 혼자 생각하고, 참고, 분노를 축적하다가
“근데 자기는 나한테 왜 이러이러한 거 안 해?”
라는 이야기를 하는 버릇이 있다. 그걸 여기서 보면 K양도 안 그랬기는 마찬가지인 건데,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무수한 기회는 다 날린 뒤 나중에야 따지듯 물을 뿐이다. 이래 버리니 상대 입장에선 K양이
-얘는 나중에 또 무슨 불만을 가지고 날 공격할지 모르는 애.
-얘는 지금 침묵하지만, 속으로는 분노를 축적하고 있을 애.
-얘가 전에 말한 걸로 미루어보면, 이 지점에서 지금 열 받고 있을 애.
로 보이게 되며, 거기에 더해
“왜? 그러면 자기도 변호사 와이프랑 결혼하지 그랬어?”
라는 식의 질문을 하니 K양은 K양 대로 자신이 원한 답이 돌아오질 않으면 상처받게 되고, 안타깝게도 답정너에 대한 모범답안을 말할 줄 모르는 남친은 곧이 곧대로 ‘난 근데 변호사 와이프랑은 못 살 것 같다’라는 식의 형편없는 대답을 하고 만다.
반면 저렇게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부분이 많은 것과 달리, K양이 상대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 존경스러운 부분, 고마운 부분, 믿음직한 부분들에 대해 표현하는 건 적다. 이걸 나나 남에게만 말할 게 아니라 상대에게 표현해야 상대도 알 텐데, K양은 마음속으로만 ‘이 정도면 참 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겉으로는 ‘그래서 이제 확인할 부분이 하나 남았는데, 나랑 결혼할 건지, 아닌지?’를 확인받으려 할 뿐이다.
끝으로 내가 K양에게 권하고 싶은 건,
A.결혼 얘기 전에 지인, 친구, 가족들도 만나보기.
B.상대가 하는 말을 이해하려 노력해 보기.
라는 거다. 특히 K양과 상대는 당황스럽게도 ‘친구들을 소개시켜 주느냐, 아니냐’로 자존심 싸움을 하다가 ‘너 안 하면 나도 안 해’라는 결론을 내곤 냉전 상황에 있는데, 위에서도 말했지만 제발 ‘되는 방향’으로 좀 이끌어갔으면 한다.
또, ‘당장은 결혼 생각없다’는 이야기는 남친이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으며 한 얘기다. 그걸 객관적인 입장에서 들으면 이직 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상대의 사정이 충분히 이해 가는데, K양은 그의 말을 이해하려 하기보단 ‘그가 말한 답이 아닌 부분’에 꽂힌 나머지 실망과 낙담만 했던 것 같다. 그러니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라고 다시 한 번 물어 대답만 들으려 하지 말고, 그가 K양을 점점 더 자기 삶 속에 들이는지, 부모님께 교제 사실을 알리며 인사드릴 생각은 있는지 등을 옆에서 보며 직접 확인해 봤으면 한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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