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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제가 좋은 여자가 아니라서 헤어진 걸까요?

by 무한 2018. 3. 14.

L양이 ‘좋은 여자’인지 아닌지는 저도 오래 두고 길게 알아온 것이 아니라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연에 적힌 내용들로 미루어봤을 때,

 

-동반자로 여기며 함께할 미래까지를 그려보긴 어려운 상대.

 

라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L양은 자책의 구덩이에서 자기학대를 하다가도, 자신에게 불합격 판정을 내리곤 일순간에 정리해버린 상대를 원망하기도 하고, 그러다 또 ‘내가 좋은 사람이었으면 상대가 날 이렇게 놓아버렸겠는가’라는 생각으로 괴로워도 하고 있는데, 때문에 제가 원인불명으로 시동이 꺼졌다는 차를 점검하곤 결과를 말하듯 하나하나 짚어서 말하긴 좀 부담이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 또 시동 꺼질지 모르는 차를 그대로 몰고 가시라고 할 순 없으니, 이번 기회에 엔진까지 들어내서 함께 살펴본다는 생각으로 같이 이야기를 해봤으면 합니다. 충격과 공포의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완충재로 존대를 택했는데, 이게 얼마만큼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L양을 탓하려고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게 아니라, 다음번에 좋은 사람을 만났는데 같은 이유로 똑같은 이별하는 걸 방지하고자 하는 얘기니, 복근에 힘 꽉 주고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출발하겠습니다.

 

 

1. 데이트 비용에 대한 이야기.

 

종종 제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쓰는 돈은 아깝지 않잖아요. 아깝다면 그게 잘못된 거 아닌가요? 데이트 비용을 전부 부담하는 것 때문에 이별까지 생각한다면, 마음이 딱 그만큼인 거겠죠.”

 

라는 이야기를 대원들이 있는데, 저는 그분들에게

 

“그럼 오늘부터 돈을 전부 내보세요.”

 

라는 대답을 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받는 입장에서야 남의 집에 가서 밥 몇 끼 얻어먹는 것도 수저 하나 더 놓으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하지만, 챙겨줘야 하는 입장에서는 피부로 느껴지는 식비부터 두 배가 되는 게 현실이니 말입니다.

 

이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달만 데이트 비용을 일방적으로 부담해봐도 금방 ‘입장 차이’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쓸 때야 뭐 통장에 잔고가 좀 있고 어차피 다음번에 월급을 받으면 채워질 거라 생각하며 카드 한 번 더 긁을 수 있겠지만, 내역서를 받고 난 뒤 통장에 남은 잔고를 확인하면 손이 덜덜 떨릴 수 있습니다. 이번 달에도, 다음 달에도 그런 생활을 지속해야 하는 거라 생각하면 ‘이러다간 파산하겠구나’ 하는 염려까지 들 것이고 말입니다.

 

또, 일방적으로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다 보면, 부담하지 않는 상대가 염치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문제도 발생합니다. 한쪽은 차를 몰고 가선 밥 사고 영화 보여주고 하며 데이트 하는데 다른 한쪽은 주차비 한 번 내질 않는 것, 커피 한 잔 사지 않으면서 고기가 먹고 싶다 회가 먹고 싶다 하는 것,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등에 대해 얘기만 잘할 뿐 결제해야 하는 순간에는 침묵하는 것 등에 대한 피로는 쌓이기 마련입니다.

 

무슨 사정이 있든 간에, ‘내가 버는 돈은 내가 쓰고, 상대가 버는 돈은 데이트를 위해 쓰고’인 상황은 비정상적인 게 맞습니다. 특히 그 와중에 ‘내가 버는 돈’은 모임에 나가 참가비로 쓰거나 친구들 만나서 놀 때 더치페이로 쓰거나 한다면, 일방적으로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는 쪽은 필연적으로 ‘얜 날 물주로 생각하나?’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 상대가 데이트 비용으로 나가는 돈이 너무 많아 한도를 정해 놓고 쓰자고 했을 때 “난 그러는 건 싫다.”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개념이 없거나 사고방식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고 말입니다.

 

상대가 데이트 비용을 전부 부담하는 것에 대해

 

-날 정말 사랑해서 내게 쓰는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은 것.

-이렇게까지 날 위해 헌신하는 건, 내게 정말 잘해주는 것.

 

이라 편하게만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같이 밥을 먹고 나서 이쪽이 돈 낼 생각을 하지 않으니 상대는 쭈뼛쭈뼛하고 싶지 않아 그냥 자신이 반복적으로 결제하고 마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걸 ‘상대가 냈으니 됐다’고 생각하며 디저트 먹으러 가자는 얘기를 하면 상대는 생각이 많아지게 됩니다. 상대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사오고, 그걸 다 먹고 마신 후 치우는 것까지를 하는 건, 배려나 헌신이 커서가 아니라 이쪽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고 말입니다.

 

 

2. 동반자로서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

 

L양에게 어떤 사정이 생겨서, 친구 하나와 집을 같이 써야 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L양에겐 아래 두 친구 중 하나와 같이 살 수 있다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친구 A]

-금전관계 철저하며 연체와는 거리가 멂.

-살던 방을 보면 정리정돈과 청소가 잘 되어 있음.

-샤워 후 뒷정리를 하며 머리카락도 보이는 대로 주움.

-대중교통을 잘 이용하며 귀가시간이 일정함.

 

[친구 B]

-빌려간 돈 갚지 않기로 유명하며, 자주 잠수탐.

-방이 개판. 먹고 난 과자봉지도 아무렇게나 둠.

-샤워를 한 건지 전쟁을 한 건지 모를 정도. 빨래에 곰팡이 핌.

-차 없으면 어디 안 나가고 태워달라고 함. 집에 지인들 데려옴.

 

‘친구 B와 더 친하다면 친구 B를 택하겠다’고 대답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직접 살아보면 ‘얘랑은 진짜 같이 못 살겠다’는 현실적 결론을 내리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런 지점은 우정이나 애정의 깊이가 아무리 깊다 해도, 계속해서 인내하긴 쉽지 않은 부분이니 말입니다.

 

위에 나온 ‘친구 B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이, L양에게서도 좀 보입니다. 똑같은 문제는 아니지만 대략 저런 ‘동반자로 선택하기 망설여지는 부분들’이 있다고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L양은 계속 ‘사랑’, ‘이해’, ‘맞춰감’을 더 강조해서 말하니, 상대에게는 그게 1차 피해에 이은 2차 피해로만 여겨질 수 있습니다. L양은 헤어진 후 상대에게

 

“오빤 왜 내게 고치라는 말 안 했나요. 어차피 결혼할 사이가 아니니 고칠 이유가 없었나요….”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니까 그게 상대가 L양에게 ‘인간적인 실망’까지를 하게 된다면 조율할 의지마저 사라져버릴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지키거나 알아서 주의하는 부분들에서까지 문제가 생기면 ‘왜 내가 그렇게까지 하며 이 연애를 지속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특히 연애 중 상대는 L양의 애정표현이 자신만을 향한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L양이 ‘친한 다른 남자’에게도 비슷하게 행동하는 걸 목격한 적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건 고치라는 이야기를 해서 조율하고 말고 할 수준을 넘어선 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경험의 축적으로 인해 상대의 마음이 뜨고 난 뒤, 그제야 “왜 날 믿지 못하냐. 왜 그때 지적해서 고치라고 하지 않았냐. 어차피 헤어질 생각이라 고치란 얘기 할 필요도 없었던 거냐.”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상대에겐 적반하장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3. 이별 후 시행한 최악의 대처법에 대한 이야기.

 

L양은 ‘헤어지게 된 진짜 이유’를 모르겠다 말하지만, 상대는 이미 헤어질 때 L양에게 그 이유를 말했습니다.

 

“너는 너만 볼 줄 알고 네 감정 해소하는 것만 생각하지 나를 본 적 있어? 난 로봇이 아니야. 내 상황과 감정은 어떨지 넌 생각해 본 적 있어?”

 

저 말에 대한 L양의 대답은,

 

“그럼 오빠는 나처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어필하고 한 적 있나요?”

 

이지 않았습니까? L양은 상대더러 허심탄회하게 말하라고 하는데, 상대가 진짜 허심탄회하게 말했더니 L양은 방어전을 시작합니다. 게다가 그 방어전이라는 게

 

-오빠가 그러지 않았다면 나도 그러지 않았을 것 아니냐.

 

라는 식의 이야기인 까닭에, 무슨 얘기를 해도 답이 나오질 않으며 결국 상대가 잘못한 것으로 결론이 나야 끝날 수 있는 논쟁이 되고 맙니다.

 

-오빠가 못 먹는 걸 함께 먹으러 가서도, 난 내가 맛있게 먹어서 오빠를 뿌듯하게 해주려는 노력을 했다.

 

라는 부분 같은 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괴상한 논리라고 적어두도록 하겠습니다. 보통의 경우 상대가 못 먹는 메뉴 같은 건 최대한 제외하기 마련입니다. 상대가 해산물 잘 못 먹는 거 알면서 회를 먹자는 가자고 하진 않습니다. 게다가 그 비용을 부담하는 것도 상대이며, 만나기로 하면 또 L양을 태우러 갔다가 집에 데려다줘야 하지 않습니까? 사랑과 연인, 애정 뭐 그런 걸 잠시 접어두고, 저런 관계인 친구가 있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L양은 계속 그 친구와 만나시겠습니까? 그 친구가 우정 운운한다고 해서, 그 친구 편한 대로 다 맞추며 비용도 다 부담하고, ‘내가 맛있게 먹어주는 노력하지 않았냐’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시겠습니까?

 

이별 후에도 L양은 계속 상대에게

 

“와줘요. 이래줘요. 저래줘요.”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실 재회를 원하는 쪽에서 이렇게 상대에게 이래 달라 저래 달라 하는 사연은 흔치 않습니다. 또, 그러면서도 L양은

 

“나에게 마음이 없으니 만나주지 않는 거겠지. 그래서 안 오는 거겠지. 본인 마음 정리 끝났으니 내가 내 마음 정리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해도 안 응해주는 거겠지.”

 

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오빤 해결하려 하기보단 포기한 거다. 갑자기 헤어진 건 오빠만 생각한 거다. 헤어지고 나서 냉정하게 대하는 것도 오빠의 독단적 판단이다. 그 방식이 틀렸다는 거 언젠가 알았으면 좋겠다.”

 

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도 했고 말입니다. 저게 이별통보를 받은 입장에서는 당장 상대가 원망스러우니 저렇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합니다만, 이별 후에도 감정, 사랑, 애정 같은 것만 반복해서 말하는 건 아무 효과도 없을뿐더러, L양과 같은 상황에서 저러는 건 자기 잘못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채 상대만 나쁜 사람 만드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끝으로 하나 더. L양이 이별 후 상대에게 한

 

“난 오빠가 베푸는 걸 받으면서 안 초조했을 것 같은지?”

 

라는 말은, 그간 L양의 행동과는 상반된 주장이라는 것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보통의 경우 상대가 일방적으로 베푸는 걸 받기만 하면, 그때그때 그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출하거나 어떻게든 작게나마 보답을 하려 애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L양에게선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헤어진 후에야 ‘나도 그간 받기만 하면서 초조했다’는 이야기를 할 뿐입니다.

 

“내가 그리던 미래엔 오빠가 있었는데.”

 

라는 말 역시, 이별을 통보한 게 상대라는 걸 두고 계속해서 상대를 나쁜 사람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L양이 그와 함께라면 평생 함께해도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L양의 노력으로 된 게 아니라 그의 노력으로 된 것이지 않습니까? 지금은 계속되는 L양의 미련과 공격에 상대도 ‘너한테 헤어지자고 한 거 난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 상황이니, 몇 번의 확인사살까지 다 해본 상황에서 “와서 얼굴 보고 말해주고 가요.”라는 요구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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