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 이런 것도 연애로 치시면 곤란합니다. 아니, 사귀자는 말에 알았다고 답한 것이 무슨 ‘승낙하면 낙장불입’인 것도 아닌데, 이렇다 할 교류도 없던 와중에 자꾸 술 먹이곤 유혹해 승낙받았다고 그걸 핑계 삼아
“이럴 거면 내가 사귀자고 할 때 싫다고 하지….”
라니, 그런 건 저어 미국 땅,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도 효력 없는 겁니다.
사귀자고 해서 승낙받으면 바로 연인 역할극 들어가는, 그런 연애는 이제 그만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만나보는 게 뭐 꼭 나쁜 건 아닙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좀 진지하게 서로의 세계를 탐험하는 관계를 구축하며 만나야지, 어딘가에 매물 올려서 선착순으로 지원자 받듯 받아 만나면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식이라면 연애 수십 회 카운팅 한다 해도, 기억에 남는 건 별로 없을 거고 말입니다.
누님이 서 계신 기반엔 ‘감성’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리고 예민하고 절절하긴 한데, 그렇기에 또 그냥 여리고 예민하고 절절하기만 한 건 아닌가 싶습니다. 거시서 한 발짝 잠시 물러서서
‘근데 내가 이 사람에 대해 뭘 알지? 내가 이 사람을 진짜 좋아하나?’
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냥 ‘요 근래 나와 가장 많이 연락하는 사람이며 만나기도 했으니, 사귀면 좋을 것 같음’의 느낌으로 대시를 한 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뭐, 그렇게도 연애가 시작될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렇게 시작해 ‘연애를 시작했으니 즐거울 수 있게, 행복할 수 있게 노력하기’를 하는 건 아무래도 주객이 좀 전도된 거라 전 생각합니다. 그저 ‘연애를 위한 연애’가 시작된 거라 할까요. 표면상 연애가 시작된 것도 맞고 연인이 생긴 것도 맞긴 합니다만, 그렇게 시작해 아직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사귀기로 한 걸 다시 생각해 보자’라는 얘기가 나오고, 또 그런 얘기에 대해 ‘제발 헤어지지만은 말자’라는 대응이 뒤따르는 걸 종종 보며 전 어리둥절해지곤 합니다.
‘전남친의 지인과 썸을 타거나 연애를 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생각하시기 전에, 그 절박함이나 매달림이 과연 ‘진짜 이러는 게 맞는 감정인지?’를 먼저 좀 보셨으면 합니다. 누님의 그런 행동들이 상대에겐, ‘까닭 없는 절박함, 까닭 없는 매달림’으로 보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감정이야 뭐, 저도 오늘 받아야 할 택배 있는데 빨리 안 오면 수시로 밖에 봉고차 소리 날 때마다 내다보며 다급해지곤 합니다. 평화롭다가도, 뭐 하나에 꽂히면 그거 검색하며 알아보거나 구입하려고 온종일 매달려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때의 다급함이나 매달림, 절박함이 거짓 감정인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제가 수시로 택배 아저씨에게 전화를 해서 어디쯤 오고 계시냐고 묻거나, 중고 거래하며 막 가족 폰까지 활용해 이만 원 네고에 목숨 걸고 있으면 좀 괴상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전남친의 지인’과 관련된 부분에선, 물건 놓을 자리는 내가 알아서 정리하고 주문을 해도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집에 책장 더 들여놓을 자리도 없이 다 어질러 놓고는, 새 책장 갖고 싶다고 다짜고짜 주문만 하면 곤란한 것 아니겠습니까. 누님은 이번에 ‘전남친의 지인’과 관련해
-전남친이 요걸(지인과 교류하는 것) 보고 배나 아팠으면 하는 마음.
이 분명 있었는데, 그걸 쏙 빼놓고는 그 지인에게 ‘그런 거 절대 아니’라고만 하면, 그가 좀 모자란 사람이 아닌 이상 딱 봐도 사이즈 나오는데 ‘아니라고 하니까, 아닌가 보다’하며 그냥 속아 넘어가긴 어려울 겁니다.
바로 저 두 지점에서의 문제 때문에, 저는 누님께서 절박해하며 ‘꼭 잡고 싶다’고 하셔도 별 도움을 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차라리 상대가 의심하는 지점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다면 상대도 누님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은 해봤을 텐데 그것도 안 됐고, 그것 이전에 뭐가 정말 아무것도 없던 상황에서 감정 하나에 기대서, 또 상대를 이용하려는 마음이 분명 조금은 있었던 상황에서 진행된 일이니 말입니다.
아니 그냥, 사귀기로 해서 오케이 했다가 며칠 만에 마음 바꾼 사람 마음 돌리는 방법이나 알려달라고 했더니 웬 다른 얘기만 길게 써놨냐고 하실 수도 있는데, 전 지금이라도 누님이 저 두 지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지점에서의 교정 없이 그저 또 히치하이킹 하듯 다음 연애에 올라타면, 그저 운전자가 가려던 목적지까지만 가서 내리게 되거나, 그저 날 태워주기만 한다면 일단 조수석에 올라타 ‘날 태워주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도록 노력하기’만 하게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일을 막고자 오늘날 이 시점에 생각해 봐야 할 이야기들로 대답을 대신했으니 진지하게 생각해보시길 권하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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