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양은 내게
“제가 무한님 여동생이라면, 무한님은 뭐라고 대답해주시겠어요?”
라고 했는데, A양이 내 여동생이면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소꿉놀이 같은 연애 그만 하고, 이젠 결혼까지 생각하며 만나보는, 길고 지속 가능한 연애하자.”
라는 이야기를 해줬을 것 같다.
사귀면서 맞춰갈 수 있는 부분은, 기호의 차이라든가 민감함의 차이, 또는 서로 다른 표현법이나 화해법에 대한 차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종종 ‘가치관의 차이’까지 맞춰가겠다며 상대의 방치를 이해하려 하거나 무관심을 견디는 대원들이 있는데, 그건 같은 길을 함께 가면서 서로의 다름을 조율해 보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른 길을 걸어가는 것에 더 가깝다.
“남친은 우리가 데이트를 못 하게 되는 것에 대해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어요. 사정이 생기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전 저를 전혀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은 모습에 서운함과 실망을 느꼈습니다.”
할 말이 참 많긴 한데 그걸 다 접고 결론만 말하자면, 1~2주에 겨우 한 번 볼 수 있는, 그것도 상대에게 갑작스런 사정이 생기면 못 보며 이쪽은 상대가 또 어떤 핑계로 데이트 약속을 미룰지 전전긍긍해야 하는, 그런 관계엔 희망을 걸지 말자. 상대가 이쪽에 대해
‘만나서 데이트 해주고 애정표현 해줘야 겨우 잠잠해지겠군.’
정도의 생각밖에 하고 있지 않은 관계는 고쳐 쓰는 게 아니다. 상대가 아무리 말로 ‘그런 거 아니’라고 해도 눈에 보이는 상대의 행동이
-내 관심사 먼저.
-내 일과 공부 먼저.
-내 가족 먼저.
-내 (이성, 동성)친구들과 대인관계 먼저.
이면 그는 연애에 2~3할 정도만 할애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야지, 그 차이를 맞춰가겠다며 거기서 4, 5순위가 되는 걸 견디며 어쩌다 한 하소연에도 “그럼 대인관계 다 끊으라는 거냐.”라는 식의 대응만을 듣고 있으면 롯데리아 케쳡 쿠폰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그게 모양만 쿠폰이지, 어차피 그냥 하나 더 달라면 주는 거 굳이 쿠폰씩이나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이해를 하고 맞춰가보려 하면 할수록, 이쪽의 마음은 더 만신창이가 되며, 무관심에 허덕이고 상대 눈치만 보게 되는 건 습관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특히 아직 사회경험이 없으며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는 이십대 중반 꼬꼬마를 남친으로 두고 있을 경우
-그냥 놀고 싶어서 사람 만나 노는 걸 자기 인맥관리라고 함.
-자기 여친 놔두고 모임의 여자 만나 연애 상담 들어주고 있음.
-피곤해서 못 만난다고 약속 미루더니 나았다며 나가서 놀고 있음.
-웬일로 먼저 보자고 했나 했더니, 담주에 이성 껴서 놀러가도 되냐고 함.
등의 어마무시한 일을 경험할 수 있는데, 저런 무책임과 철없는 모습까지 다 감내하며 버티다간 어이없이 ‘집착녀’나 ‘불만족녀’같은 판정을 받은 후 유기될 수 있다. 상대에게 존중과 책임은커녕 그냥 지 놀고 싶을 때 노는 것 말고는 관심 없다는 듯 팽개쳐 둘 뿐인데, 그 무관심에 열심히 호소해봐야 결과는 뻔하지 않겠는가.
“싸움의 계기가 된 것도, 그 날 남친이 다른 여자후배와 단둘이 만났던 일과 관련이 있는데, 남친은 나중에 거기에 대해서 자신은 그 후배와 직접 마주한 시간은 X시간이며 제가 생각하는 X시간 만큼 같이 있었던 게 아니고, 또 술은 안 마시고 밥을 먹었다고 하며….”
그만하자. 거기서 시간 따지면서
‘그래도 남친이 저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걸 보니, 내가 오해한 건가….’
하고 있으면 너무 슬퍼진다. 이별통보까지 카톡으로 하는 그 꼬꼬마와 뭘 더 어떻게 조율할 생각하지 말고, 이건 못 쓰는 거니까 정리하자. ‘내년에 내가 연락할 지도 모르니까 이게 끝이라고는 하지 않겠다’는 상대의 풀 뜯어 먹는 소리까지 다 들어주며 기다리고 있으면, A양은 상대에게 그냥 그래도 되는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다.
“많은 게 후회됩니다. 제가 마지막에 전화로 싸울 때 전화를 끊지만 않았어도…, 그 전에 데려다 달가고 하면서 거기서 그 일만 안 일어 났어도….”
그만 하자고. 그거 다 안 하고 지금까지 사귀었어도 상대는 A양에게 ‘이성을 포함한 친구들이랑 놀러 가는 것’에 대한 허락만 받으려 했을 거라니까? 연애 중이라서 친구들이랑 놀러도 못가는 거냐고, 나에겐 이성 동성 다 똑같은데 왜 안 되는 거냐고, 난 네가 놀러 갔다 온다고 해도 허락할 것 같은데 넌 왜 아니냐고, 따위의 소리나 들으면서.
흠흠. 답답함을 견디다 못 해 반말이 나온 것 같은데 여하튼 이해해 주길 바란다. 여하튼 꼬꼬마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 그저 자유분방함에 들떠있는 ‘애색희’의 단계에 접어들 수 있는데, 그 단계에 접어든 채 이쪽을 ‘난 나가서 놀고 싶은데 그런 날 단속하려는 엄마’ 정도로만 생각하며 반항하고 일부러 심술부리는 상대에게선 벗어나도록 하자. 같은 나이면 거기서 좀 서로 쿵닥쿵닥 싸워도 시간이 충분하니 괜찮은데, 서른을 바라보는 오늘날 이 시점에 철없는 연하남친 땜에 속 태우고 있으면 그건 좀 곤란하다.
내년에 자신이 연락할지도 모르겠다는 상대의 보험증서 손에 쥔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지 말고, 찢느라 들일 힘도 아까우니 그냥 구겨서 던지곤 갈 길 가자. 이번 주말에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에겐 에너지를 쏟아선 안 되는 건데, 상대는 이번 주말만이 아니고 내년에나 ‘연락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사람이니,
“무한님 근데, 보통 저 나이때 저러다가, 몇 년 지나고 나면 인맥관리나 노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마련이잖아요. 그럼 남친도 언젠가는 저희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하는 얘기로 어떻게든 이 관계에서 1g의 희망이라도 찾으려 노력하진 말자. 밖에 무수히 많은 인연이 널려 있는데, 뭐하러 주인도 집 나가버린 그 빈 집에서 마냥 기다리려 하는가. A양이 해야 할 건 육아가 아니라 연애니, 이 매뉴얼을 읽고 얼른 거기서 일어나 나왔으면 한다.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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