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 편을 작성하기 전에 뭔가 하나 더 이야기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잊었다. 아무리 댓글을 살펴보아도 찾을 수 없는 관계로 그 이야기는 댓글이 달리면 다음 번에 쓰기로 하고, 오늘은 군대, 어릴때 가는 것과 나이들어서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 기억력이 원래 이렇다. 기갑부대를 나온 까닭에 '내 머릿속 장갑차'가 들어있다. 잘 때는 장갑차 운전하는 꿈을 꾸는 까닭에 코로 장갑차 소리를 낸다)
이야기에 앞서 전편 [군생활 매뉴얼, 군대축구의 모든 것] 편에 달린 예비역들의 주옥같은 댓글을 좀 소개할까 한다.
9사백마님 - (간부와 병사간 축구시합때, 인사과장님이 '연~대~장~님~' 이라며 골대 앞에서 공을 패스 하곤 연대장님이 골을 넣자) 연대장님~ 골인이십니다,,백마! 수고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조팝나무님 - 무한의 노멀로그 `군생활 매뉴얼`을 발견하고는 `보충대 마스터 전략`부터 `군대축구의 모든 것`까지 통독하여 매우 유익한 정보를 얻고 있는 78년4월 군번입니다.(중략) 전역한지 28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재입대하는 꿈을 꿉니다. (참고로 1사단 15연대에서 복무했음)
엄탱님 - 언덕 중턱을 깎아서 만든 곳에서 미니 축구(한 팀당 6명이 넘지 않음)를 했습니다. 누군가 공을 언덕 아래로 굴리는 날은 막내들이 열심히 뛰어 다니며 공을 주우러 다녔쬬.
Metalrcn님 - 막내땐 그렇게 하기 싫던 축구가 왕고땐 어찌나 재미있던지 ㅋ
해상병432기님 - 여름철엔 항상 시합종료는... 공이 바닷가로 빠져야 되드라구요..;; 경기 초 바다에 공이빠지면 뜰채로 뜨거나 했는데..2시간정도 게임이 진행되면 최선임이 야~! 경기끝~ 외치고 수영하러 가기도 했었습니다.
looie님 - 그래서 아빠가 공격수였구나 [참고로 아버지는 대대장 입니다]
...님 - 각 팀의 최전방 공격수는 사단장과 부사단장. 승리는 항상 사단장팀. 사단장이 공을 잡으면 주위에 수비수들이 삥 둘러쌈, 그리고 사단장한테 5미터이내로 접근하지 않음. 그리고 사단장이 슛을 날리면 골키퍼를 하고 있는 간부는 항상 최선을 다해서 공이 오는 반대편으로 몸을 날림.
1군사령부님 - 제친구가 훈련소 중대장으로 있는동안 이동국이 훈련소에 와서 축구를 같이 한적이 있다고합니다. 사람에 레벨이 아니라고 하더군요..11명이 공격없이 수비만 했는데도 못막는다는군요....
항상 주옥같은 댓글로 피드백을 주시는 예비역분들께는 시간내서 건빵튀김이라도 대접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현재 내 지갑에 IMF가 찾아와 있는 까닭에, 일단 보류. 나중에 군생활 매뉴얼 완결이 되면 이벤트로 서울시청 앞에서 모여 군복입고 뽀글이 먹어도 재미있을 듯 하다.
자, 그럼 이제 시작, 하기에 앞서 매뉴얼을 처음 보시는 분을 위한 링크
군생활 매뉴얼, 보충대 마스터 전략 (무한)
군생활 매뉴얼, 훈련소 심층분석 1부 (무한)
군생활 매뉴얼, 훈련소 심층분석 2부 (무한)
군생활 매뉴얼, 이등병 생존전략 1부 (무한)
군생활 매뉴얼, 이등병 생존전략 2부 (무한)
군생활 매뉴얼, 이등병 생존전략 3부 (무한)
군생활 매뉴얼, 사진으로 보는 군대 번외편 (무한)
군생활 매뉴얼, 이등병 첫 휴가 완전정복 1탄 (무한)
군생활 매뉴얼, 이등병 첫 휴가 완전정복 2탄 (무한)
군생활 매뉴얼, 이등병 전략 완결편 (무한)
군생활 매뉴얼, 군대축구의 모든 것 (무한)
(이번편 부터는 '군생활 매뉴얼'이라는 말머리가 떼어집니다)
1. 군대를 일찍가다 vs 늦게가다
군대에 나이란 없다. 2-3살 차이, 이정도는 찍소리도 못하고 그냥 계급과 입대한 월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 대학에서 편입생이나 재수생의 경우, 형, 이라고 불러주는 곳도 있겠지만 군대에서 그런 다정한 단어는 꿈꾸지 않는 것이 좋다. 이등병이면 이등병, 일병이면 일병이다.
일단, 군대를 일찍가게 될 경우, 나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받지 않게 된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온 후임이 있었는데, 그 후임이 받은 스트레스는 '나보다 나이 많은 후임 관리를 어떻게 하지' 정도였다. 그것도 좀 특이한 상황 이었던게, 그 후임의 아래로 계속해서 2살 이상 많은 후임들이 들어왔다.
가장 큰 장점이라면, 뭐니뭐니 해도 '나보다 어린 녀석' 한테 갈굼(?)은 당하지 않을거란 얘기다. 나는 군대를 스물 네살이 다 되서야 갔다. 자대에 도착한 뒤 며칠 후 주말, 전화를 하고 싶은데 소대에 일병이 하나도 없는 관계로 혼자 전화를 걸러 갔다. 그 모습이 발각된 뒤 세살 어린 일병 고참에게 들었던 말은,
"미쳤냐? 개념 없어?"
였다. 온 몸의 뜨거운 피와 차가운 피가 섞이며 당장이라도 니킥과 하이킥으로 산산조각 내 버리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누르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은 나이 보다는 군번이 앞서는 곳이 군대기 때문이다. 종합해 보자면, 군대는 늦게 가는 것 보다는 빨리 가는 것이 좋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나보다 어린 고참에게 욕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나보다 나이 많은 후임을 갈굴 것인가.
2. 나이먹고 군대가기
이미 친구들은 다 예비군이고, 자신은 아직 군대를 가지 않은 상황이라면 차라리 아주 늦게 가길 권한다. 23-25세가 가장 애매한 케이스다. 이런경우 왠만한 하사들, 그리고 갓 임관한 소위들보다 나이가 많게 된다. 사회의 비유를 들자면, 학교 선생님보다 자기 나이가 많다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령' 같은 것이 된다면 훈련 나가서 밥도 타다 주고, 밤에 라면 끓이라면 끓이고, 옆에 붙어다니며 비서 역할을 해야 한다.
내가 일병때 우리 소대의 부소대장이 나보다 두살 아래였다. 갓 하사관 교육을 마치고 왔던 녀석이었는데, 어디든 선 무당이 제일 무섭듯 중대전술훈련을 나가 자기 밥을 제때 챙겨주지 않는다며 숫가락을 던지며 병사들에게 난동을 피운적이 있었다. 그렇다. 지독한 하늘의 장난 덕분에 나는 그 녀석의 '전령'을 맡고 있었고, 병사들이 긴장하자 더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나에게
"야, 군생활 꼬이고 싶어? 죽고 싶냐?"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만약 사회의 호프집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이미 '야' 라고 날 부르는 순간 달려가 살려달라고 할 때 까지, 진짜 '이렇게 맞다가 죽을 수도 있다' 는 공포를 심어줬겠지만, 난 일병이였고, 녀석은 하사였다.
"죄송합니다."
그날 이후 일주일은 잠을 못 잔 것 같다. 이런 설움을 누가 알아주겠는가. 나이 들어서 간 자신을 원망하며 그냥 스스로 탓할 수 밖에 없다. 장교와 부사관의 관계를 보자. 50이 넘은 주임원사가 이제 막 소위를 달고 온 이십대 장교에게 존대를 하고, 경례를 해야한다.
가끔 개념없는 '소위'가 들어오기도 한다. 우리 대대에서는 갓 임관한 20대의 소위가 연병장을 지나는 50대 주임원사에게,
"자네가 이 부대의 주임원산가?"
이 얘기를 했다가 대대장에게 불려가 따귀를 맞았다는 얘기도 있다. 사회에서의 비유를 들자면, 20대에 버스기사 사장이 된 녀석이 50대 기사분에게
"자네게 이 버스 기사인가?"
이렇게 이야기 한 것과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계급으로만 보자면 소위가 더 높지만, 아무리 군대라고 해도 30년 세월의 짬은 쳐준다. 요즘은 내가 알기로 서로 존칭을 쓰는 걸로 알고 있다. 다시 한 번 이야기 하지만, 선무당이 정말 무섭다. 나이를 많이 먹고 군대간다면, 제일 무서운 것은 병장이나 상병이 아닌 일병과 이등병 일 것이다. 특히 한달 고참, 당신에게 불을 붙이는 행동을 많이 할 수도 있다.
3. 군대도 세월이 약이다
상병이 되고, 같이 짬을 먹어가는 처지가 되면, 그때부터는 좀 얘기가 달라진다. '나이대우' 라는 것이 생긴다. 특히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은 병장들은 나이가 많은 후임에게 '형' 이라고 호칭을 하게 될 것이고, 부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간부들도 대충 그런 정도는 넘어가 주는 모습을 보인다.
단, 나이를 의식하는 순간부터 스트레스는 두배가 될 것이다. 그냥 잊어라. 군대에 가면 자연히 나이는 잊게 될 것이다. 나보다 어리더라도 계급이 높으면 나이가 들어 보이고,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계급이 낮으면 어리버리하고 어리게 보일 것이다. 이건 내가 장담할 수 있다. 군대의 무슨 마력이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등병은 이등병 같고, 병장은 병장 같다. 스스로 나이를 생각하며, 대접받으려 한다면, 고참의 사소한 한마디에도 하극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좋은 것이 뭐가 있겠는가, 군기교육대나 영창가서 벽 보고 앉아 있는 것? 군생활 기간만 늘어날 뿐이다.
그깟 2년인데, 거기서도 무슨 대접 받고 뭐 하고 이런게 뭐가 필요 있는가. 사람이란 간사한 동물이라, 나역시 대부분의 고참들이 '형' 대접을 해줄 때, 끝까지 반말해가며 깐죽대는 고참과 외박을 같이 나간 적이 있었다. 한가지 팁을 주자면, 나이어린 고참이 자꾸 갈구거나 트집잡는다면, 같이 외박이나 휴가를 나가라. 그리고 위병소를 통과해 열 발자국 쯤 걸었을때, 조용히 얘기해라.
"야, 여기 군대 밖이다."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처음엔 좀 어색하지만 나중엔 자연스레 그 고참이 나에게 존대를 하게 되고, 내가 반말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된다. 단, 짬이 안될때 이런 짓(?)을 하는 것은 그저 미친짓일 뿐이다. 복귀해서 눈물의 군생활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짬이 안될 때는 그냥 같이 휴가나 외박 나가는 것을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 군대 밖에서까지 군인과 놀고 싶은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휴가 나와 서로 연락해 만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나도 그랬다)
한가지 더 주의 할 점은, 밖에서 만약 사회서열을 재정비 했다면, 복귀 하는 순간 열발자국을 남겨두고는 다시 존대를 해야 한다. 이미 그 고참에겐 충분히 인식 되었을 테니까, 나중에 단 둘이 있을 때 조심 조심 반말을 꺼내다가 어느 순간 말을 트게 될 것이다. 별 문제없이 지내던 고참과는 괜히 이런 일을 벌일 필요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분명 나이대우를 해 줄 것이다. 그러니 1년만 꾹꾹 참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평균 나이보다 4살 이상 많다면, 굳이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이등병 시절부터 고참들은 어느정도의 나이대우를 해 줄 것이고, 대 놓고 욕을 하거나 혼내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군인들도 사람이다. 아무리 계급사회라고는 하지만, 다들 생각하는 머리는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종종 몇살 차이가 나든 고참 행세를 하려는 부류를 만날지도 모른다. 이런 부류 역시 일년만 버티고, 같이 짬을 먹어가다보면, 분명 복수(?)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욱하는 성질을 조금 줄이고 릴렉스 모드로 들어가는 것을 권장한다.
이번 발행글 에서는 24세에 군입대를 앞두고 계시다는 '나쁜민석님'이 던져주신 나이가 많은 사람이 군대에 갔을 때의 상황을 정리해 봤다. 24세라면 위에서 말한 '애매한 나이'에 속한다. 나이를 생각하며 군생활 한다면 절대 할 수 없다. 분명 뭔가 사고를 하나 치거나, 아니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거나, 스트레스와 눈물로 얼룩진 군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나이를 잊으면 편하다. 어느정도의 짬이 되기 전까지는 무조건, 고참은 고참, 동기는 동기, 후임은 후임, 이 계급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들은 생각지도 않고 있는 '나이' 때문에, 혼자 스트레스는 두배로 받는 것은 어리석은 일 아닌가. 조언이라고 해봐야 별거 없다. 나는 그저 군생활을 '놀이'라고 생각했다. 2년간 하는 군인놀이. 그렇게 생각하면 편하다.
분명 적극적이며 긍정적이고, 또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고참이든 간부든 좋게 볼 것이고, 그럼 그만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 빈틈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농담도 꺼내기 힘든 것 처럼, 스스로가 편안한 사람이 된다면, 그만큼 자신의 군생활도 편해질 것이다. 아무리 편해도 군대는 군대지만, 애써서라도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다 보면 짬밥의 양도 많이 축적 될 것이고, 그러다 군번보다 나이가 더 먼저인 사회에 나올 시기가 가까워질 무렵, 좋은 관계와 인연으로 엮인 많은 전우들을 갖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입대전 먹고 싶은 음식은 최대한 먹어보고, 주소록과 전화번호부 챙기고, 입대 후에 어린 고참들에게 갈굼도 당하다 보면 자연히 '군대에서 그런 상황도 겪어 봤는데, 이런 상황을 못 버티겠어?' 라는 또다른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행운을 빈다.
<덧> 네이버 유저분들은 블로그 우측 상단에 있는 오픈캐스트로 구독을 하셔도 새 글이 나오는 소식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덧2> 지금 생각 났는데, rogic님께 '동반입대' 편을 이번에 발행한다고 했는데, 그걸 잊었던 것이군요. 주말 내로 올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계산해 보니, 입대 4일 남으셨군요. 뭘 해도 똥꼬가 타들어가는 느낌일 겁니다. 빨리 가버리고도 싶고, 그냥 무슨 일이 생겨 군대가 없어졌으면 싶기도 하고, 음, 긴장 푸세요.
78년 4월 군번님도 재입대 하는 꿈을 꾸신답니다.
추천을 누르시면, 악몽을 예방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야기에 앞서 전편 [군생활 매뉴얼, 군대축구의 모든 것] 편에 달린 예비역들의 주옥같은 댓글을 좀 소개할까 한다.
9사백마님 - (간부와 병사간 축구시합때, 인사과장님이 '연~대~장~님~' 이라며 골대 앞에서 공을 패스 하곤 연대장님이 골을 넣자) 연대장님~ 골인이십니다,,백마! 수고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조팝나무님 - 무한의 노멀로그 `군생활 매뉴얼`을 발견하고는 `보충대 마스터 전략`부터 `군대축구의 모든 것`까지 통독하여 매우 유익한 정보를 얻고 있는 78년4월 군번입니다.(중략) 전역한지 28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재입대하는 꿈을 꿉니다. (참고로 1사단 15연대에서 복무했음)
엄탱님 - 언덕 중턱을 깎아서 만든 곳에서 미니 축구(한 팀당 6명이 넘지 않음)를 했습니다. 누군가 공을 언덕 아래로 굴리는 날은 막내들이 열심히 뛰어 다니며 공을 주우러 다녔쬬.
Metalrcn님 - 막내땐 그렇게 하기 싫던 축구가 왕고땐 어찌나 재미있던지 ㅋ
해상병432기님 - 여름철엔 항상 시합종료는... 공이 바닷가로 빠져야 되드라구요..;; 경기 초 바다에 공이빠지면 뜰채로 뜨거나 했는데..2시간정도 게임이 진행되면 최선임이 야~! 경기끝~ 외치고 수영하러 가기도 했었습니다.
looie님 - 그래서 아빠가 공격수였구나 [참고로 아버지는 대대장 입니다]
...님 - 각 팀의 최전방 공격수는 사단장과 부사단장. 승리는 항상 사단장팀. 사단장이 공을 잡으면 주위에 수비수들이 삥 둘러쌈, 그리고 사단장한테 5미터이내로 접근하지 않음. 그리고 사단장이 슛을 날리면 골키퍼를 하고 있는 간부는 항상 최선을 다해서 공이 오는 반대편으로 몸을 날림.
1군사령부님 - 제친구가 훈련소 중대장으로 있는동안 이동국이 훈련소에 와서 축구를 같이 한적이 있다고합니다. 사람에 레벨이 아니라고 하더군요..11명이 공격없이 수비만 했는데도 못막는다는군요....
항상 주옥같은 댓글로 피드백을 주시는 예비역분들께는 시간내서 건빵튀김이라도 대접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현재 내 지갑에 IMF가 찾아와 있는 까닭에, 일단 보류. 나중에 군생활 매뉴얼 완결이 되면 이벤트로 서울시청 앞에서 모여 군복입고 뽀글이 먹어도 재미있을 듯 하다.
자, 그럼 이제 시작, 하기에 앞서 매뉴얼을 처음 보시는 분을 위한 링크
군생활 매뉴얼, 보충대 마스터 전략 (무한)
군생활 매뉴얼, 훈련소 심층분석 1부 (무한)
군생활 매뉴얼, 훈련소 심층분석 2부 (무한)
군생활 매뉴얼, 이등병 생존전략 1부 (무한)
군생활 매뉴얼, 이등병 생존전략 2부 (무한)
군생활 매뉴얼, 이등병 생존전략 3부 (무한)
군생활 매뉴얼, 사진으로 보는 군대 번외편 (무한)
군생활 매뉴얼, 이등병 첫 휴가 완전정복 1탄 (무한)
군생활 매뉴얼, 이등병 첫 휴가 완전정복 2탄 (무한)
군생활 매뉴얼, 이등병 전략 완결편 (무한)
군생활 매뉴얼, 군대축구의 모든 것 (무한)
(이번편 부터는 '군생활 매뉴얼'이라는 말머리가 떼어집니다)
1. 군대를 일찍가다 vs 늦게가다
군대에 나이란 없다. 2-3살 차이, 이정도는 찍소리도 못하고 그냥 계급과 입대한 월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 대학에서 편입생이나 재수생의 경우, 형, 이라고 불러주는 곳도 있겠지만 군대에서 그런 다정한 단어는 꿈꾸지 않는 것이 좋다. 이등병이면 이등병, 일병이면 일병이다.
일단, 군대를 일찍가게 될 경우, 나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받지 않게 된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온 후임이 있었는데, 그 후임이 받은 스트레스는 '나보다 나이 많은 후임 관리를 어떻게 하지' 정도였다. 그것도 좀 특이한 상황 이었던게, 그 후임의 아래로 계속해서 2살 이상 많은 후임들이 들어왔다.
가장 큰 장점이라면, 뭐니뭐니 해도 '나보다 어린 녀석' 한테 갈굼(?)은 당하지 않을거란 얘기다. 나는 군대를 스물 네살이 다 되서야 갔다. 자대에 도착한 뒤 며칠 후 주말, 전화를 하고 싶은데 소대에 일병이 하나도 없는 관계로 혼자 전화를 걸러 갔다. 그 모습이 발각된 뒤 세살 어린 일병 고참에게 들었던 말은,
"미쳤냐? 개념 없어?"
였다. 온 몸의 뜨거운 피와 차가운 피가 섞이며 당장이라도 니킥과 하이킥으로 산산조각 내 버리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누르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은 나이 보다는 군번이 앞서는 곳이 군대기 때문이다. 종합해 보자면, 군대는 늦게 가는 것 보다는 빨리 가는 것이 좋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나보다 어린 고참에게 욕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나보다 나이 많은 후임을 갈굴 것인가.
2. 나이먹고 군대가기
이미 친구들은 다 예비군이고, 자신은 아직 군대를 가지 않은 상황이라면 차라리 아주 늦게 가길 권한다. 23-25세가 가장 애매한 케이스다. 이런경우 왠만한 하사들, 그리고 갓 임관한 소위들보다 나이가 많게 된다. 사회의 비유를 들자면, 학교 선생님보다 자기 나이가 많다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령' 같은 것이 된다면 훈련 나가서 밥도 타다 주고, 밤에 라면 끓이라면 끓이고, 옆에 붙어다니며 비서 역할을 해야 한다.
내가 일병때 우리 소대의 부소대장이 나보다 두살 아래였다. 갓 하사관 교육을 마치고 왔던 녀석이었는데, 어디든 선 무당이 제일 무섭듯 중대전술훈련을 나가 자기 밥을 제때 챙겨주지 않는다며 숫가락을 던지며 병사들에게 난동을 피운적이 있었다. 그렇다. 지독한 하늘의 장난 덕분에 나는 그 녀석의 '전령'을 맡고 있었고, 병사들이 긴장하자 더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나에게
"야, 군생활 꼬이고 싶어? 죽고 싶냐?"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만약 사회의 호프집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이미 '야' 라고 날 부르는 순간 달려가 살려달라고 할 때 까지, 진짜 '이렇게 맞다가 죽을 수도 있다' 는 공포를 심어줬겠지만, 난 일병이였고, 녀석은 하사였다.
"죄송합니다."
그날 이후 일주일은 잠을 못 잔 것 같다. 이런 설움을 누가 알아주겠는가. 나이 들어서 간 자신을 원망하며 그냥 스스로 탓할 수 밖에 없다. 장교와 부사관의 관계를 보자. 50이 넘은 주임원사가 이제 막 소위를 달고 온 이십대 장교에게 존대를 하고, 경례를 해야한다.
가끔 개념없는 '소위'가 들어오기도 한다. 우리 대대에서는 갓 임관한 20대의 소위가 연병장을 지나는 50대 주임원사에게,
"자네가 이 부대의 주임원산가?"
이 얘기를 했다가 대대장에게 불려가 따귀를 맞았다는 얘기도 있다. 사회에서의 비유를 들자면, 20대에 버스기사 사장이 된 녀석이 50대 기사분에게
"자네게 이 버스 기사인가?"
이렇게 이야기 한 것과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계급으로만 보자면 소위가 더 높지만, 아무리 군대라고 해도 30년 세월의 짬은 쳐준다. 요즘은 내가 알기로 서로 존칭을 쓰는 걸로 알고 있다. 다시 한 번 이야기 하지만, 선무당이 정말 무섭다. 나이를 많이 먹고 군대간다면, 제일 무서운 것은 병장이나 상병이 아닌 일병과 이등병 일 것이다. 특히 한달 고참, 당신에게 불을 붙이는 행동을 많이 할 수도 있다.
3. 군대도 세월이 약이다
상병이 되고, 같이 짬을 먹어가는 처지가 되면, 그때부터는 좀 얘기가 달라진다. '나이대우' 라는 것이 생긴다. 특히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은 병장들은 나이가 많은 후임에게 '형' 이라고 호칭을 하게 될 것이고, 부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간부들도 대충 그런 정도는 넘어가 주는 모습을 보인다.
단, 나이를 의식하는 순간부터 스트레스는 두배가 될 것이다. 그냥 잊어라. 군대에 가면 자연히 나이는 잊게 될 것이다. 나보다 어리더라도 계급이 높으면 나이가 들어 보이고,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계급이 낮으면 어리버리하고 어리게 보일 것이다. 이건 내가 장담할 수 있다. 군대의 무슨 마력이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등병은 이등병 같고, 병장은 병장 같다. 스스로 나이를 생각하며, 대접받으려 한다면, 고참의 사소한 한마디에도 하극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좋은 것이 뭐가 있겠는가, 군기교육대나 영창가서 벽 보고 앉아 있는 것? 군생활 기간만 늘어날 뿐이다.
그깟 2년인데, 거기서도 무슨 대접 받고 뭐 하고 이런게 뭐가 필요 있는가. 사람이란 간사한 동물이라, 나역시 대부분의 고참들이 '형' 대접을 해줄 때, 끝까지 반말해가며 깐죽대는 고참과 외박을 같이 나간 적이 있었다. 한가지 팁을 주자면, 나이어린 고참이 자꾸 갈구거나 트집잡는다면, 같이 외박이나 휴가를 나가라. 그리고 위병소를 통과해 열 발자국 쯤 걸었을때, 조용히 얘기해라.
"야, 여기 군대 밖이다."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처음엔 좀 어색하지만 나중엔 자연스레 그 고참이 나에게 존대를 하게 되고, 내가 반말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된다. 단, 짬이 안될때 이런 짓(?)을 하는 것은 그저 미친짓일 뿐이다. 복귀해서 눈물의 군생활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짬이 안될 때는 그냥 같이 휴가나 외박 나가는 것을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 군대 밖에서까지 군인과 놀고 싶은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휴가 나와 서로 연락해 만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나도 그랬다)
한가지 더 주의 할 점은, 밖에서 만약 사회서열을 재정비 했다면, 복귀 하는 순간 열발자국을 남겨두고는 다시 존대를 해야 한다. 이미 그 고참에겐 충분히 인식 되었을 테니까, 나중에 단 둘이 있을 때 조심 조심 반말을 꺼내다가 어느 순간 말을 트게 될 것이다. 별 문제없이 지내던 고참과는 괜히 이런 일을 벌일 필요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분명 나이대우를 해 줄 것이다. 그러니 1년만 꾹꾹 참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평균 나이보다 4살 이상 많다면, 굳이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이등병 시절부터 고참들은 어느정도의 나이대우를 해 줄 것이고, 대 놓고 욕을 하거나 혼내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군인들도 사람이다. 아무리 계급사회라고는 하지만, 다들 생각하는 머리는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종종 몇살 차이가 나든 고참 행세를 하려는 부류를 만날지도 모른다. 이런 부류 역시 일년만 버티고, 같이 짬을 먹어가다보면, 분명 복수(?)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욱하는 성질을 조금 줄이고 릴렉스 모드로 들어가는 것을 권장한다.
이번 발행글 에서는 24세에 군입대를 앞두고 계시다는 '나쁜민석님'이 던져주신 나이가 많은 사람이 군대에 갔을 때의 상황을 정리해 봤다. 24세라면 위에서 말한 '애매한 나이'에 속한다. 나이를 생각하며 군생활 한다면 절대 할 수 없다. 분명 뭔가 사고를 하나 치거나, 아니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거나, 스트레스와 눈물로 얼룩진 군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나이를 잊으면 편하다. 어느정도의 짬이 되기 전까지는 무조건, 고참은 고참, 동기는 동기, 후임은 후임, 이 계급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들은 생각지도 않고 있는 '나이' 때문에, 혼자 스트레스는 두배로 받는 것은 어리석은 일 아닌가. 조언이라고 해봐야 별거 없다. 나는 그저 군생활을 '놀이'라고 생각했다. 2년간 하는 군인놀이. 그렇게 생각하면 편하다.
분명 적극적이며 긍정적이고, 또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고참이든 간부든 좋게 볼 것이고, 그럼 그만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 빈틈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농담도 꺼내기 힘든 것 처럼, 스스로가 편안한 사람이 된다면, 그만큼 자신의 군생활도 편해질 것이다. 아무리 편해도 군대는 군대지만, 애써서라도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다 보면 짬밥의 양도 많이 축적 될 것이고, 그러다 군번보다 나이가 더 먼저인 사회에 나올 시기가 가까워질 무렵, 좋은 관계와 인연으로 엮인 많은 전우들을 갖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입대전 먹고 싶은 음식은 최대한 먹어보고, 주소록과 전화번호부 챙기고, 입대 후에 어린 고참들에게 갈굼도 당하다 보면 자연히 '군대에서 그런 상황도 겪어 봤는데, 이런 상황을 못 버티겠어?' 라는 또다른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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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2> 지금 생각 났는데, rogic님께 '동반입대' 편을 이번에 발행한다고 했는데, 그걸 잊었던 것이군요. 주말 내로 올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계산해 보니, 입대 4일 남으셨군요. 뭘 해도 똥꼬가 타들어가는 느낌일 겁니다. 빨리 가버리고도 싶고, 그냥 무슨 일이 생겨 군대가 없어졌으면 싶기도 하고, 음, 긴장 푸세요.
78년 4월 군번님도 재입대 하는 꿈을 꾸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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