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먼저 고백해 놓곤 사귀지 말자는 남자, 왜 이래? 외 1편

by 무한 2015. 3. 20.

언젠가 어느 독자 분께서 매뉴얼 글씨 색상이 좀 진해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땐 그 분이 그냥 좀 예민한 타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리뉴얼을 하며 계속 블로그를 들여다보니, 아무래도 글씨 색이 너무 진하고 글 상자들이 아동틱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매뉴얼부터는 좀 달라진 디자인으로 글을 작성해 볼까 한다. 그때 글씨 색상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던 독자 분께는, '이 분이 좀 예민한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사과드리고 싶다.

 

좋은 금요일이다. 오늘 새벽, 뒤늦게 MS의 익스플로러 폐기 소식을 접해서 더 좋은 금요일이다. 이 소식을 좀 더 일찍 접했으면 최신버전의 제이쿼리와 부트스트랩을 사용했을 텐데, 블로그 리뉴얼을 반쪽짜리로 끝내고 나니 익스플로러 폐기가 발표되고 부트스트랩 최신 버전이 나와서 좀 멍하긴 하다. 타이밍을 못 맞춰도 이렇게 못 맞추다니. 내가 하는 일이 늘 이런 식이긴 하다. 과감하게 펀드 시작했더니 세계 경제위기가 오질 않나, 최신형 휴대폰 질렀더니 스마트폰 시대가 오질 않나, 큰마음 먹고 일 년치 헬스장 등록했더니 그 다음 달에 헬스장이 문을 닫질 않나…. 세상이 자꾸 날 속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오늘도 연애 때문에 '무채색 금요일'을 보내고 있는 대원들에게 색을 선물해볼까 한다. 출발해 보자.

 

 

1. 먼저 고백해 놓곤 사귀지 말자는 남자, 왜 이래?

 

이 사연은 좀 쉽다. J양에게 슬픈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이지만, 남자가 '금사빠'인 까닭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라 나는 생각한다. 그는 J양에게 환상을 가지고 있었고, 또 스스로의 '연애 판타지'도 좀 많이 가지고 있었던 까닭에 거기에 충실하기 위해 고백을 했다. 하지만 고백 이후 그는 현실의 J양이 '자신이 상상했던 J양'과 다르다는 걸 알았고, 그런 상황에선 자신의 판타지도 펼 수 없기에 '감정 폐업'에 들어갔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는 '서비스직'인 J양이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 호감을 가졌던 것 같다. J양의 친절한 모습, 잘 웃는 모습, 다른 직원들과도 화기애애하게 지내는 모습 등을 보며 반한 것이다. 이런 일은 흔하게 일어난다. 내 지인 중 한 명은 피부과에서 근무하는데, 남자 고객이 와서 외투를 어디다 놓을지 몰라 우물쭈물 하길래 직접 받아 챙겨 두었다 나중에 챙겨 주었더니, 몇 주 후 그 남자 고객이 그녀에게 고백을 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여드름 짜러 온 남자 고객이 타로점 어쩌구 하는 얘기를 해서 예의상 열심히 들어 주었더니, 며칠 후에 와서 데이트 신청을 한 적도 있고 말이다.

 

사실 그녀의 그 친절과 호의는 그녀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치이며 그녀의 나머지 부분은 다른 모습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빙산의 일각이라 할 수 있는 그 모습에 딱 꽂힌 남자들은, '그녀의 저 모습이 그녀의 전부인 것'으로 오해하며 대시를 하는 것이다. 사귀면 그녀가 늘 웃으며 자신을 맞이해 주고, 또 여드름을 짜주거나 타로점 얘기에 넋이 나가 들을 거라 생각하면서. J양의 썸남 역시 J양의 그런 '빙산의 일각'인 모습들을 보며 J양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고, 그 이미지가 J양일 거라 생각하며 고백했던 것 같다.

 

대화를 잠시 보자 J양의 썸남이

 

"그쪽으로 갈 테니까 나 마중나와~ ㅋㅋ"

 

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J양은

 

"ㅋㅋㅋ 웃기지 말구."

 

라고 대답했다. 와장창, 하고 환상 깨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썸남은 당연히 J양이 "응응!" 하는 리액션을 하며 알콩달콩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이건 그가 꿈꿔왔던 판타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더불어 J양은 어느 날

 

"지금 밖에 날씨 어때? 추움?"

 

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이것 역시 썸남이 가지고 있던 연애 판타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의 판타지에선 추우니까 옷 따뜻하게 입으라거나, 아니면 추우니까 얼른 들어가라는 멘트가 와야 정상인 건데, 현실에선 자신이 '날씨 알리미'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그에게선 콩깍지가 벗겨지게 되었고, 그간 J양의 마음을 얻기 위해 했던 공약들을 모두 폐기처분 하게 되었다. J양은 그가 인연이면 또 나중에 만나지 않겠냐고 말한 것, 그리고 자신은 한동안 솔로로 있을 거라는 등의 이야기를 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내게 묻는데, 난 J양에게

 

"그거…, 아무 의미 없음."

 

이라는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다. 그건 그냥 내가 옷가게에 갔다가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서 그냥 나올 때, "더 돌아보고 올게요."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러니 그 말에 희망을 품거나, 아니면 그 말에 큰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기다리진 말자. J양은 내게 '사귀지 않더라도 바로 직전처럼 돌리는 방법'을 물어봤는데, 그건 불가능하다. J양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그의 연애판타지가 폐기된 까닭에, 그가 J양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여러 공약을 내걸 때와 같은 상황으로 돌린 순 없다는 대답을 해주고 싶다.

 

 

2. 8년 만의 사랑, 120일 만의 이별.

 

안녕하세요, 벼리양. 저도 오글거리는 거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널 잊겠다는 것마저도, 결국은 날 위한 이기적인 것임을…."

 

따위의 글을 적기도 했습니다.

 

"그대가 괜찮기를 빌어야 하는데,

정말 괜찮아져 버릴까봐 난…."

 

따위의 글도 적은 적 있고 말입니다. 얼마 전 저는 제가 이십대 초반에 적었던 글들을 모두 복구해냈는데, 한 번 쭉 훑어 본 이후 두 번 다시 그 글이 있는 공간에 들어가지 않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저를 지금의 제가 만날 수 있다면, 진지하게 병원치료를 권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글들을 만인에게 공개한다는 건,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 한 일일 테니 말입니다. 당시 제가 쓴 저런 글들에

 

"무한님…. 저도 그래요. 그래도 살아지고 있다는 것이 참 우습고 슬픈…."

 

이라는 댓글을 달아주신 분도 있는데, 그 분과 같이 손 붙잡고 병원을 찾길 권해줄 것 같습니다. 아, 이번 개그는 좀 위험수위입니까? 그럼 병원 드립은 저에게만 해당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뭐, 이십대 초반에는 좀 저래도 됩니다. 흑역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삼십대 초반에 저러면 참 곤란해집니다. SNS에서 오글백일장 하다보면, 안 그래도 빨리 가는 시간이 더 빨리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저기에 빠지면 글을 적고도 공개로 했다가 비공개로 했다가 이웃공개로 했다가 하는, 감정의 플로우를 타고 항해를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항해하다 더는 여력이 없어 훗날 육지에 발을 디디면, 시차적응이 곤란해 또 한 반 년 쯤 고생해야 하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 글을 보는 즉시, 가장 먼저 육지에 발부터 디디시길 권합니다.

 

벼리양이 남친과 헤어지게 된 건, 남친이 '유희형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유희열이 아니라 유희형입니다.(응?)- 애초부터 이 연애는 만기일이 정해져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에겐 결혼 할 생각도, 또 결혼 할 의지도, 그리고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도 없지 않습니까? 혼자 살기도 힘든데 결혼해서 둘이 살면 두 배로 힘들어질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만약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도 아이 역시 행복할 리 없다는 생각, 아이를 위해 자신이 뭔가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 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그는 명확히 밝혔습니다. 벼리양은 이것에 대해

 

"저는 그의 그 부정적인 강도가 큰 만큼, 오히려 결혼에 대한 생각이 많고 가족, 아이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라고 하셨는데, 그러시면 또 곤란합니다. 가끔 이런 와중에도, 오히려 저런 상대를 안쓰럽게 생각하며 모성애로 품으려고 하거나, 아직 철이 안 들어서 그런 거라 생각하며 철이 들게 만들려 노력하는 대원들이 있어서 저는 참 가슴이 아픕니다. 상대는 저러면서

 

"네 인생은 네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다. 각자가 처리해야 할 것과 스스로 감당해야 할 감정들은 좀 알아서 하자."

 

라는 이야기를 할 뿐인데, 그것마저도 이쪽에선 품으려 하니 말입니다.

 

착각하면 안 됩니다. 벼리양이 뭘 잘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닙니다. 그와 연애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결말을 맞이했을 겁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차가운 머리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각자 알아서 감정처리 하자고 해 놓고 그 시간에 다른 여자 SNS에 댓글 다는 사람.

- 자신의 사생활에 신경 쓰거나 터치하지 말라는 사람.

- 그냥 보면 좋은 연애, 만나면 웃는 연애만 하고 싶은데 넌 왜 그러냐는 사람.

- 나에게 서운할 게 있을 거면 나랑 왜 만나냐는 사람.

- 만나서 데이트 하다가도 갈등이 생기면 이런 기분으로 만나고 싶지 않다며 가는 사람.

 

이러면 뭐,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자신의 20% 이상은 연애에 할애하고 싶지 않다는데, 방법이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보면 좋고 아니면 마는 '편한 연애'를 하겠다는 사람과는 결국 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유희형 인간'이라는 말이 너무 단정 짓는 것 같아 불편하실 수도 있는데, 상징적인 의미로 달아 놓은 이름표라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유희형 인간'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연애도 그저 유희를 위해 하곤 합니다. 때문에 썸을 탈 때부터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친절과 호의를 앞세우며, '두뇌게임'을 하듯 연애를 합니다. 그러다 훗날 사귀고 난 후엔 "썸 탈 때 내가 그런 말을 했던 건, 널 테스트 하려 했던 말들이다." 따위의 말을 자랑스레 하기도 합니다. 벼리양의 남친도 딱 이 레퍼토리를 펼치지 않았습니까?

 

아…, 그런데 제가 너무 뼈대만 드러낸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렇게 다 떼어내고 보면 '저런 사람을 왜 만나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사실 현실에선 '유희형 인간'이 보통 이상의 매력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스스로가 어느 정도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애초에 저런 일을 벌일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상대는 다재다능하거나 많은 경험이 있는 까닭에 이성이 반할만한 지점도 잘 알고 있고 말입니다. 게다가 연출력도 뛰어나고 궤변도 늘어놓을 줄 알기에, 헤어진 쪽에선 '분명 아프고 억울한 건 난데, 잘못한 것도 나인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희형 인간'의 비밀을 하나 알려드리자면, 아니, 이것까지 알려드리면 공짜로 너무 많이 알려드리는 것 같아 이건 접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위의 이야기들만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20%로 만족 못 할 것 같으면 연애 하지 말자는 사람에게선, 하루 빨리 벗어나는 것이 스스로를 돕는 일입니다. 오글백일장은 어제까지 열심히 적은 걸로 그만 폐막하고, 오늘부터는 새로운 날들을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사연을 하나 더 다루려고 열심히 읽었는데, 아무래도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은 사연이라 그냥 두기로 했다. 가끔 진짜로 고민이 있어서 보낸 것 같기보다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가 소개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낸 것 같은 사연이 있는데, 이런 사연을 다루면 십중팔구 문제가 생긴다. 제보한 분이 노멀로그에 와서 자신의 사연에 달린 댓글에 답글을 하나하나 다 달기 시작하는 문제가 생긴다거나, 그 글을 상대에게 다시 연락하는 수단으로 사용해 사연에 등장하는 분으로부터 삭제요청이 들어온다거나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다루지 않기로 했다는 걸 밝히며, 혹 위와 같은 생각으로 사연을 보내시려던 분이 계시면 그러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그간 만 편이 훌쩍 넘는 사연을 읽은 까닭에, 꽤 쓸만한 필터링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몇 주 전부터 내게 오는 카톡에 거의 답을 못 드리고 있다. 평소엔 주말마다 몰아서 답을 드리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카톡 대화에만 반나절이 지나거나 하루가 다 가버리는 일이 발생했다. 그래서 답장을 미루다보니 계속 밀리게 되었고, 지금은 이틀 정도 시간을 잡고 답장을 드려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카톡으로 상담해줄 거 아니면 왜 카톡 아이디 공개한 거냐고 항의하는 분들도 계셨는데, 그게 원고의뢰나 연재, 광고요청 등을 받아 업무를 하고자 공개한 건데…. 혼란스럽게 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오늘부로 확실하게 다시 공지글에 표시를 해두도록 하겠다.

 

자 그럼, 오늘 저녁은 좋은 사람과 함께 감자탕 드시길 권하며(나중에 밥까지 꼭 볶아 드시길), 이만 줄여야겠다. 불금 보내시길!

 

 

 

카카오스토리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바뀐 매뉴얼 디자인에 대해 의견 주시는 분은, 애독자 인정.

카카오뷰에서 받아보는 노멀로그 새 글과 연관 글! "여기"를 눌러주세요.

 새 글과 연관 글을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