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무거운 월요일이니 좀 가볍게 가자. 최근 봄맞이 소개팅 사연이 많이 도착하고 있다. 소개팅에 대해선 초기 매뉴얼에 많은 이야기를 한 적 있는데, 그 매뉴얼들이 책으로 출판되며 블라인드 된 까닭에 노멀로그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이후 [소개팅에서 여자를 질색하게 만드는 남자는?] 같은 매뉴얼을 발행하기도 했지만, 그건 초기 매뉴얼에서 한 이야기들을 제외한 '보태기' 형식의 글이라 많은 대원들이 갈증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현재 24부작의 '소개팅 매뉴얼'을 준비하고 있긴 하다. 그런데 그건 노멀로그가 아닌 다른 곳에 연재할 예정이고, 더불어 그 매뉴얼에서 오늘 이야기 할 부분들은 중반 정도에나 나오는 까닭에 읽으려면 한 달은 기다려야 한다. 그 한 달 동안 많은 남성대원들이 '이유도 모르고 맞는 퇴짜'를 맞는 걸 막아 보고자 이 매뉴얼을 발행하게 되었다.
매뉴얼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하나 고백하자면, 나도 남자라서 그런지 여성대원들이 보내는 소개팅 후기를 볼 때마다 '이건 너무 까다로운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신은 눈 별로 안 높고 상대에 대해선 그저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어느 여성대원도, 소개팅에서 상대가 밥 먹고 나서 큰 소리로 가글을 했다는 것에 확 깼다는 이야기를 하니 말이다. 남자들은 상대가 마음에 들었으면, 그녀가 첫 만남에서 이에 낀 고기를 명함으로 빼고 있어도 흐뭇해 할 텐데….(응?)
여하튼 뭐, 그래도 어쩌겠는가. 계속 모른 채 퇴짜를 맞기 보다는 갸우뚱하더라도 알고 있는 게 분명 나을 테니 함께 알아보자. 아래에서 이야기 할 것들엔 나도 해당되는 것이 있어 반발하고 싶은 마음이 좀 있는데, 일단은 전부 공개할까 한다. 내게 도착한 사연들에서 추린 '소개팅 식사 시 남자들의 비호감 행동', 출발해 보자.
1. 숟가락으로 한 대 때리고 싶어진다는 행동들.
식사 중 여자들이 비호감을 느끼게 된다는 남자의 행동들은, 대개 식사예절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 중 1위를 한
- 쩝쩝대며 먹는 것.
에는 나도 동의를 할 수 있다. 내 친한 친구 중에도 쩝쩝대며 먹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그 친구가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아 그러지 좀 말라고 하는데도 그 친구는 쩝쩝대며 먹는다. 정말 아무리 들어봐도 밥 먹을 때 자연스레 날 수 있는 쩝쩝소리가 아니라, 뭔가를 먹고 있다는 걸 의식적으로 표현하려고 할 때 나는 소리 같은데….
순위권에 든 또 다른 비호감 행동으로는
- 혀마중을 하는 것.
- 반찬을 털어 먹는 것.
등이 있다. 혀마중이라는 건, 뭔가를 먹을 때 혀가 미리 마중 나오는 걸 말한다. 군대에 있을 때 '백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고참이 떠오른다. 그 고참은 계절과 관련 없이 이상하게도 콧물을 많이 흘렸는데, 밥 먹을 때 코에서 백사(하얀 콧물)가 나와 국을 먼저 한 번 먹고 들어간다고 해서 '백사'라고 불렸다. 난 혀마중을 하는 사람을 '아주머니'들 빼곤 본 적이 없는데, 그런 혀마중을 하는 남자들이 소개팅 자리에 꽤 빈번하게 출몰하는 듯하다.
반찬을 털어 먹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지적을 받은 적이 있어 좀 찔린다. 난 국물이 있는 깍두기 같은 것을 먹을 때 국물이 떨어질까 봐 털어 먹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털지 말고 밥그릇이나 앞 접시를 가져가 덜어오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함께 먹는 국을 먹을 때에도 국그릇 귀퉁이에 수저 밑을 훑을 게 아니라 역시 밥그릇이나 앞 접시를 사용하라고 하던데, 고치기가 쉽지 않다.
이 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평소에 하던 행동들이 튀어나오는 게 문제가 되기도 했다. 다리를 떨거나, 몸을 앞뒤로 흔들거나, 주변 사람들이 쳐다 볼 정도로 목소리가 커지는 행동 등이 이에 속한다. 다리를 떠는 것에는 나도 해당한다. 조금 전에도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무의식중에 다리를 떨고 있었다. 누군가를 만날 땐 당연히 나도 의식해서 다리를 떨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끔씩 나도 모르게 다리를 떨고 있을 때가 있다. 근데 다리 좀 떨면 정말 안 되는 것일까. 이런 사연들을 받으며, 난 소개팅에 나갈 일 없다는 사실에 참 감사했다.
2. 어휴, 욕 하고 싶다?
'대화 중 말 끊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다. 말 끊는 사람들은 누굴 만나도 계속 그렇게 말을 끊으며 살아온 경우가 많기에, 자신이 말을 끊는다는 걸 인식하지 못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말을 끊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 상대에 대한 공감 없이 자신의 얘기나 주장만 주입하려는 경우.
- 대화에 집중하지 못 해 상대가 말하는 도중 다른 얘기를 하는 경우.
둘 중 어느 쪽이든 문제가 된다. 특히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상대가 자신의 취미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근데 그거 위험하지 않아요? 위험한 걸 왜 해요?"
따위의 이야기를 해 찬물을 끼얹는 일을 저지르곤 한다. 후자는 자신의 관심사가 아닌 이야기가 나올 경우 흥미 없어 한다는 걸 표정이나 행동에서 들키고 마는 까닭에 결과가 좋지 않다.
순위권에 든 또 다른 행동들로는
- 상담을 해주겠다며 "괜찮아요, 말해봐요."따위의 말로 파고드는 것.
- '과거 연애 조사단'에서 나왔는지 이전 남친과 왜 헤어졌는지 등을 묻는 것.
등이 있다. 이 두 행동을 '비호감 행동'이라고 단정지어도 되는 건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저걸 '비호감 행동'이라고 말하는 대원들보다 더 많은 수의 대원들이, '그와는 첫 만남에서 그런 깊은 이야기들까지 했다'면서 상대에게 호감을 가지고 연애까지 이어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이렇게 같은 행동에 대해서도 해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내가 개별사연을 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라면 상대의 과거 연애를 캐는 일은 당연히 하지 않을 거고, 상대에게 상담을 해주려기 보단 '맞장구' 정도만을 쳐줄 것 같다.
이 외에 '고해성사 하러 나오신 분', '자랑하러 나오신 분', '사회 비판하러 나오신 분' 등이 있는데, 그건 현재 노멀로그에서 읽을 수 있는 다른 매뉴얼들에 자세히 설명해 두었으니 생략하도록 하자.
3. 배려, 상실의 시대.
이것 역시 크게 나누자면,
- 밥 먹으러 나오신 분.
- 밥 먹고 나오신 분.
이라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전자는 대화보다 밥 먹는 게 중요한 까닭에 식당에 가서 폭풍흡입한 후 먼저 수저 내려놓는 경우고, 후자는
"전 밥 먹었어요. 소개녀씨 식사 하세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다. 이거 자꾸 내가 해당되는 부분들이 나와서 좀 긴장되는데, 나도 밥 먹는 자리에선 일단 밥에 집중하고(응?) 다 먹은 후 이야기를 하거나 자리를 옮겨 후식을 먹으며 대화를 하는 편이다. 그리고 식사를 좀 이상하게 한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데, 라면을 먹어도 면을 다 먹고 국물을 마시며, 밥과 국을 먹을 때에도 밥을 다 먹고 국을 마시거나 국을 다 마시고 난 뒤 밥을 먹는 편이다. 연애 초기엔 공쥬님(여자친구)도 내게 천천히 대화하며 먹자고 말했었는데, 지금은 둘이 레스토랑 가도 둘 다 1차로 배부터 채우고 2차로 후식 먹으며 대화를 하게 되었다. 여하튼 이런 모습을 비호감으로 생각하는 여성분들이 생각보다 많았으니, 남성대원들은 참고하길 권한다.
더불어 '자기 마음대로 메뉴 선택하는 남자'도 순위권에 있었다. 이건 뭐, 먹고 싶은 거 말하라고 하면 리드 안 한다는 소리 듣고, 이거 먹자고 리드하면 자기 마음대로 메뉴선택 한다고 하는 것 같아 참 어려운 부분이다. 어느 결혼정보회사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 여성들은 상대가 자기 마음대로 메뉴선택을 할 경우
- 배려심이 없어 보여 비호감. (54.1%)
이라고 답했다고 하는데, 반대의 경우일 때 남자들은 상대의 메뉴선택에 대해
- 특이하고 재미있다. (67.4%)
- 털털해서 매력적이다. (14.4%)
라고 답했다. 남대문 갈치조림을 메뉴로 정해놓곤
'내 메뉴선택이 특이하고 재미있겠다고 생각하겠지?'
라는 생각을 했던 남성대원들은, 상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이번 기회에 알아둬야 할 것 같다.
4. 거울도 안 보는 남자?
상대의 외모를 별로 안 보는 편이라고 말하는 여성대원이라 해도, 상대의 옷차림에 대해선 예민한 경우가 많다. 어떤 여성대원은
"전 외모가 좀 별로인 건 이해해도 패션센스가 떨어지는 건 싫거든요."
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패완얼(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말을 떠올려 보면 좀 슬퍼지는 부분이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갈 때 입는 옷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옷이 그냥 평상복인 게 보통 남자들의 사정인 까닭에, 옷차림을 '성의'나 '예의'로 보는 일부 여자사람들에게는 좋지 않게 보일 가능성이 높다. 내 지인 중엔 평소
"바지 롤업이 그 사람의 자신감을 나타내는 거다."
라는 이야기를 하며 청바지 길들이기 위해 욕조에 뜨거운 물 받아 놓곤 청바지 입고 들어가 핏을 잡는 지인이 있는데, 그렇게 패션에 관심이 많은 지인마저도 여자사람들에겐
"걔 좀 부담스럽게 입고 다니더라."
라는 이야기를 듣기에 상황이 더욱 참담하긴 하다. 한국에 없는 거 산다며 해외 직구로 옷 구입하고 막 그러는 지인인데…. 패션 커뮤니티에 사진 올리면 긍정적인 댓글이 많이 달려서 그 자부심으로 사는 지인인데….
여하튼 옷에 대해선 없던 패션센스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순 없는 거고, 최대한 깔끔하게 입고 나간다는 생각으로 준비하면 될 것 같다. 무릎 나오거나 뭐가 묻은 바지, 목이 늘어나거나 깃에 때가 묻은 셔츠 등을 피하자. 상대가 뺏고 싶을 정도로 예쁜 셔츠를 입고 나와서 마음에 쏙 들었다고 말하는 여성대원이 있긴 했는데 이런 여성들의 욕구까진 충족시키기 어려운 거고, 평소 엄마를 제외한 '아는 여자'에게 코디 조언을 받아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성과 말 한 마디도 더 하게 되는 거고.
이것 외에 면도와 이발은 했지만 코털 깎는 걸 잊고 만 남자, 턱에만 집중해 면도하다가 목에 있는 수염을 놓치고 만 남자, 기네스북에 오르려는지 손톱을 기르고 있는 남자, 이에 치석 키우고 있는 남자, 말 하다가 중간에
"아 미영씨 그런데, 크흠 쿼어어억(꿀꺽), 그런데 거긴 버스가…."
라며 코를 먹어 상대로 하여금
'이, 이 사람, 방금 사…삼켰어.'
하는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는 남자 등의 사례들도 있었다. 전에 소개한 물수건으로 앞니 닦는 남자도 있었고, 같이 노래방에 갔는데 신발을 벗곤 손으로 자꾸 본인 발가락을 긁고 후벼 파던 남자도 있었다. 발가락 긁던 남자의 사연을 보내주신 여성분은 그 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지금도 회색양말을 보면 속이 좋지 않다고 하니, 이 글을 보는 남성대원들은 그런 피해자가 더 생기지 않도록 유의하자.
5. 말할 수 없는 비밀.
위의 네 가지 정도만 소개하고 매뉴얼을 마칠까 하다가, 그럼 또 너무 정이 없는 것 같아 순위권 밖에 있는 이 문제를 하나 더 다루기로 했다.
"소개팅남이 은근슬쩍 제 눈을 피해 자꾸 자신의 중앙 부위를 만지더라고요. 그건 왜 그런 거죠? 이상한 사람은 분명 아닌 것 같았는데, 자꾸 그러니까 무섭기도 하고 더럽기도 하고…. 그러던 손으로 길을 걷다 제 어깨를 잡기도 했는데, 이 사람 '급한 남자'인 건가요?"
라는 질문이 종종 온다. 이것 역시 예전에 한 번 이야기 한 적 있는데, 그 매뉴얼이 출판 이후 블라인드 처리 되어서 현재 노멀로그에서는 볼 수 없다.
그를 대신해 잠시 설명하자면, 그건 전문용어로 '꼬지션 수정'이라고 하는 행위다. 불편함을 느껴 위치를 재조정 하는 것인데, 새 옷의 제봉선 때문에 위치가 틀어졌거나 긴장한 까닭에 평소보다 예민해져 꼬지션을 바로 잡는 경우가 있다.
전혀 이상하거나 음흉한 행동이 아니다. 그대로 설명하기 어려워 아무래도 비유를 해야 할 것 같은데,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고 싶다면, 지금 자신의 새끼발가락을 네 번째 발가락 위에 올려놔 보길 바란다. 평소와 다른 새끼발가락의 포지션으로 인해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바로 그런 상황에서, 새끼발가락을 자신의 의지만으로 네 번째 발가락 위에서 내릴 수가 없으니, 손으로 새끼발가락을 내려놓는 행위와 같다고 보면 된다. 이 정도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테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자.
며칠 전 웹서핑을 하다가, 외국 사이트에서 어떤 문장을 하나 읽었다. 지나가다 본 거라 그걸 찾아 링크할 수가 없는데, 내가 기억하고 있는 대로 소개하자면 그 문장은 아래와 같다.
"마음이라는 건 낙하산과 같다.
그것을 활짝 펴야만 비로소 그 진가가 발휘된다."
저 뜻인 게 확실한 거냐고 물으면 솔직히 자신은 없는데, 여하튼 내 마음엔 저런 의미로 다가왔다. 위에서 이야기 한 것들에 해당하는 남자를 만나면 유쾌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마음을 낙하산처럼 펴서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대해보길 권해주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주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면서, 이쪽에선 "비듬이 있으시군요. 탈락입니다."하면 좀 그런 것 아니겠는가. 나중에 같이 손 붙잡고 피부과로 지루성 피부염 처방 받으러 가면 되니, 입구에 있는 나무 하나만 보고 판단해 숲을 놓치진 말았으면 한다.
누군가는 경악할지 모를 콧물을 흘리는 내 고참 '백사'도, 좋은 사람 만나 둘이 햄볶으며 잘 살고 있다. 소개팅에 매번 실패하곤 마음 달래려 종교활동 하다 거기서 제수씨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는 게 함정이긴 한데, 여전히 겨울이나 뜨거운 거 먹을 때 콧물을 흘리긴 하지만 사랑하는 것엔 아무 문제가 없다. 찾기만 하면 못 찾을 수 있지만 만들기 시작하면 분명 뭔갈 만들 수 있으니, 돋보기로 상대의 디테일만 살피시기보단 열린 마음으로 만들어 가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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