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한 번 소개한 적 있는데, 예전에 알고 지내던 지인 중 안양에 살고 있는 '바람의 전설' L군이 있다. 그가 전성기에 쓰던 멘트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재미도 없고 지루해서 그냥 집에나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네가 들어왔다.
문이 열렸고,
네 얼굴이 보였고,
그 순간 모든 것이 변했다."
언뜻 보면 시적인 표현인 것도 같은데, 여하튼 저 멘트는 L군이 나이트에서 자신의 룸으로 부킹 온 여자들에게 하던 멘트다. 저 멘트를 들었던 여자사람만 모아도 중소기업 하나를 차릴 수 있을 텐데, 그 중에는 수 년이 지나서까지도 L군이 했던 멘트를 마음에 간직한 채
'그렇게 날 특별하게 생각했던 L군은 왜 변한 걸까?'
하는 고민을 하는 분도 있었다.
이거 또 이렇게만 적어두면 "저런 남자에게 넘어가는 여자들도 문제가…."라는 이야기를 하실 분이 분명 있을 텐데, 그런 분도 실제로 현실에서 꾸러기를 한 번 만나고 나면
"이 사람은 그런 사람 아니에요. 가벼운 그런 남자들하고 다르다고요."
하는 '꾸러기 변호'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오늘 첫 사연의 주인공인 Y양도
"저는 금사빠 기질도 없고, 누가 저를 좋아한다고 잘 착각하지도 않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저에게…."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살펴봐야 할 것들을 함께 알아보자.
1. 적극적으로 다가오다가 급 식은 남자, 왜?
Y양이 한 말을 보자.
"저는 사실 이런류의 만남은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연애 경험 모두 주변에서 오래 보았거나 정말 신뢰할 만한 사람이 소개시켜준, 인성이 바른 것이 확실한 사람과의 연애만 해 왔습니다. 또한, 술집이나 클럽 등에서의 만남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도 잘 알기에 절대로 그런 곳에서의 만남은 절대 갖지 않습니다."
Y양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는 잘 알겠다. 잘 알겠는데, 썸남을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가?
- 술집에서 게임하다가.
이래서 내가 참 힘들다. 어떤 대원은 자신이 유부남을 만나고 있지만 그는 원래 이혼할 예정이었으니 자신은 '유부남과 만나는 여자'와 다르다고 하고, 또 어떤 대원은 자신이 연하 남친에게 지원을 해주며 만나고 있지만 그건 생각 없이 연하남 뒷바라지를 하는 다른 여자들의 그것과 다르다고 하고…. 이렇게 다들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난 그런 사람 아니다. 모르고 당하는 멍충이들이랑 나랑은 완전 이야기가 다른 거다. 상황이 이렇다고 해서 선입견을 가지고 보진 말아 달라."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나는 눈만 껌뻑이고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하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계속 눈만 껌뻑이고 있을 순 없으니 Y양이 되짚어 봐야 하는 부분들을 함께 보자.
Y양은 썸남과의 만남에 대해
"우연히 두 번 만나게 된 남자가 제 연락처를 받아가서…."
라고 했는데, 난 그걸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두 번 간 술집에서 누군가를 두 번 마주치게 되는 건, 그냥 상대가 그 술집 '죽돌이'이기만 해도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Y양은 '우연히 두 번' 그를 술집에서 만난 이후, 그 술집을 지나다가 다른 여자와 그 술집에서 나오는 그를 마주친 적도 있지 않은가?
"제가 카톡으로 혹시 여자친구냐고 자연스럽게 여러 번 물었는데, 그는 완강히 부인했습니다.(저는 대학교 친구들이랑 있었는데, 아마 그는 제가 다른 남자들이랑 함께 놀고 있는 걸로 오해했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Y양이 그에게 호감을 가졌기 때문인지, 여기서부터 살짝 핀트가 어긋나는 느낌이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면 '아…, 나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었구나.'하는 생각을 할 것 같은데, Y양은 오히려 그가 오해했을지를 걱정하고 있다. 더불어 그와 함께 있던 여자가 그의 여자친구가 아니라는 것에 안심하는 느낌이고 말이다.
나아가 이후에 나눈 대화에서 그가 반말과 존댓말을 오가도 Y양은 그걸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교포인 까닭에 한국말을 잘 못 하는 까닭도 있지만, 난 아무리 봐도 그게 그가 사람을 잠시 혼동했거나 둘이 어떤 수준의 대화를 하던 사이인지를 깜빡해 존댓말을 쓴 것처럼 보이는데, Y양은 그냥 같이 웃으며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넘어갈 뿐이다.
그가 교포이기 때문에 Y양과 Y양의 친구들이 그에게 너무 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스킨십과 관련해서도 그렇고, Y양의 친구들이 그를 두고
"교포라 자유롭지만, 본성은 착한사람 같다."
라는 판정을 한 것도 그렇다. 만약 토종 한국인(응?)이 했으면 욕먹었을 행동도, 교포인 그가 하면 '자유로우며 활기찬 모습'이란 평가를 받는다. 자유롭고 활기찬 교포면 전에 말한 이쪽의 나이를 기억 못 해도 그냥 쿨하게 넘어갈 수 있는 거고, 술 마시다 옆에 와서 앉고 손을 잡아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난 사실 그의 한국말 실력이 주제에 따라 '한국말 잘 모를 때'와 '갑자기 한국말 엄청 잘 할 때'로 나뉘기도 한다는 것이 좀 의아하기까지 한데…. 뜬금없지만 갑자기 나도 교포이고 싶어진다.
"나 번호 주세요. 연락 하고 싶어요. 안 주면 나빠요. 안 주면 욜라뽕따이."
아, 동남아 교포는 안 되는 건가? 웃자고 한 소리고.
그가 '교포'라는 것에 대한 후한 인심을 좀 거두고 보면 그를 바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난 그가 교포가 아니라면 Y양이 '술집에서 찝쩍대는 다른 남자들'에게 바리케이트를 치는 것과 똑같이 쳤을 거라 생각하는데, Y양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원활하지 않은 소통의 공백을 모두 이쪽의 긍정적인 해석으로만 채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시길!
2. 좋아하는 연하남과의 대화가 점점 끊기고 건조해져요.
이건, 다시 다 부숴서 공구리부터 새로 쳐야 합니다. 이대로면 우리 공사 못 합니다. 전에 친 공구리가 이상하게 굳었는데 여기다 그대로 층만 더 올려봐야 결국엔 무너집니다.
현재 고객님의 심남이는 고객님에게 존대를 하고 있는데, 이것부터 좀 부숴야 합니다.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나이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고 고객님이 '빠른 생일'이라 심남이가 존대 하는 건데, 존대 수준이 뭐 거의 교회 청년부 학생과 장년부 집사님이 대화하는 수준입니다. "그래, 진혁이도 주님의 품 안에서 늘 승리하거라." 뭐 이런 느낌 말입니다. 둘의 관계는 현재 심남이가 고객님께
"네, 누나도 안녕히 주무세요."
라며 인사를 하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이게 계속될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기냐면, 고객님도 이런 좀 이상한 관계에 길들여져
"그래, 고맙다. 너도 잘 자거라."
하는 뉘앙스로 대답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아니, 실제로 이런 문제가 이미 좀 발생하긴 했습니다. 고객님이 심남이에게 한 멘트를 보겠습니다.
"그랬구나. 오랜만에 거기 가서 좋았겠다. 난 거기 가면 좀 어색한 느낌이 있더라."
'그랬구나'와 '그렇더라'의 향연입니다. 역시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고객님 원래 저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게 보낸 신청서를 보면 고객님은
"이때 심쿵! ㅋㅋㅋㅋ 애니웨이, 그렇게 연락을 하다가…."
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산뜻하고 발랄함이 있는 여자사람 입니다. 그런데 심남이랑 대화를 할 때만 유독 무게를 잡습니다. 그래서 대화는 재미없어져 버리고, 서로 의무적인 문답을 하듯 그렇게 진행되고 마는 것입니다. 고객님이 심남이를 대하는 태도로 만약 저와 대화를 한다면
고객님 - 안녕하세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무한 - 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고객님 - 오늘 날시가 춥던데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무한 - 네, 고객님도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라는 대화만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저런 대화를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앞으로 1년 넘게 나눈다고 해도, 결국 우리는 여전히 제자리인 것 아니겠습니까? 현재 고객님은 유학 중이고, 심남이는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상황이라 마땅한 대화 주제를 찾기 어려워 더 그럴 수 있는데, 상황이 어쨌든 간에 이쯤에서 안다리걸기가 한 번 들어가 줘야 합니다. 다짜고짜
"<사진>서핑하다 봤는데, 이 가방 너한테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
정도로 한 번 치고 들어가 주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짚고 들어가는 게, 그냥 막연한 축복을 뭉뚱그려서 다 잘 될 거라는 식으로 말해주는 것보다 낫습니다.
더불어 둘 사이에 흥미로운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몇 월에 한국에 들어가니 그때 같이 뭘 하자고 약속을 한다든가, 어딜 함께 가자고 정한다든가 해야 합니다. 지금은 그런 것 없이 수박 겉핥듯 일상 보고 잠깐 하고 축복 빌어준 뒤 대화가 끝나지 않습니까? 고객님이 지난 해 잠깐 한국에 들어왔을 때를 전후해 둘 사이가 가까워진 것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그땐 둘의 약속이 있었고 그것에 대한 설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없습니다. 아무래도 고객님이 여름이나 되어야 한국에 들어올 것 같으니, 그건 먼 훗날 이야기라 생각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음, 솔직히 말하면 지금 당장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은 건 아니에요. 아무래도 제가 외국에 있다 보니, 지금 당장 관계가 발전된다 해도 장거리이기 때문에 더 힘들 것 같아요."
공사가 끝나기 전까지 김칫국은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새로운 공구리가 제대로 쳐질지 안 쳐질지도 모르는데 더 힘들어질 것 같네 마네 하며 혼자 쉐도우 복싱하고 계시면 안 됩니다. 혹시라도 지금 더 가까워져 버리면 장거리로 힘들어질 것 같아서 일부러 거리를 둔 채 "그랬구나. 그렇더라."하시고 계신 거라면, 그러실 경우 그냥 '좋은 누나동생'으로 관계가 딱딱하게 굳을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몇 가지 더 이야기 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우선, 심남이와 대화를 할 땐 심남이가 현재 대화를 나누기 적합한 상황인지를 얼른 파악해야 합니다. 제가 둘의 카톡대화를 봤을 땐, 심남이가 카톡하기 어려워서 대화를 끊으려고 하는데도 고객님이 자꾸 질문을 해서 대화가 더 건조해 질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상대가 얼른 대화를 마치려는 느낌이 들면 그땐 질문을 그만 하시길 권합니다. 대화는 나중에 또 해도 됩니다.
그리고 질문을 너무 많이 하는 대화법도 좀 수정하셨으면 합니다. 자꾸 대화를 하니 대화가 인터뷰처럼 변하고, 산만해집니다. 제가 만약 고객님과 대화를 하는데 고객님이 심남이와 대화할 때처럼
무한 - 식사 하셨어요?
고객님 - 아까 먹었어요. 식사 하셨어요?
무한 - 네 먹었습니다. 뭐 드셨어요?
고객님 - 삼계탕 먹었어요.
무한 - 삼계탕 드셨군요. 닭 한 마리 삼계탕인가요?
고객님 - 아뇨. 반 마리였어요.
무한 - 반 마리였군요. 인삼도 들었나요?
고객님 - 인삼은 없던데요.ㅎㅎ
무한 - 인삼은 없었군요. 국물도 괜찮았나요?
고객님 - 네. 먹을만했어요.
무한 - 먹을만했군요. 저녁은 뭐 드실 건가요?
고객님 - 글쎄요. 이따 친구 만나기로 해서….
무한 - 친구 만나기로 하셨군요. 어떤 친구 인가요?
라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가면, 대화창을 닫고 싶은 생각이 좀 들 것 같지 않으십니까? 저렇게 계속 질문을 한다고 해서 '깊은 대화를 하는 사이'가 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장문의 메시지를 권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시차가 있는 와중에 깊은 대화를 하고 싶다면 차라리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 메일 교환하듯 카톡을 이용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질문 하나 하고 폰 놔뒀다가, 다음에 답장 오면 그거 보고 또 질문 하나 하는 방식은 지양하시길 권합니다.
매일 길게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런 관계를 만들고자 억지로 계속 질문을 하는 것보다는, 겨우 두세 마디를 나누더라도 여운이 남는 대화를 하는 게 좋습니다. 신데렐라가 유리구두를 벗어 놓고 집에 갔으니까 왕자가 찾아 나선 거지, 그게 아니라 그녀가 새벽 네 시까지 앉아서 졸린 왕자 깨워가며
"무도회는 자주 여시나요? 그렇군요. 보통 이런 왕궁은 얼마쯤 하나요? 보증금이? 그렇군요. 학교는 어디 나오셨나요? 아, 가정교사. 그렇군요. 이웃나라에서 소개팅 많이 들어올 것 같은데, 안 들어와요? 그렇군요."
하고 있었으면 왕자는 사람 시켜서 신데렐라를 내보냈을 것입니다. 그러니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일단 다 철거를 한 뒤 공구리를 새로 쳐 보시고, 다시 한 번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최근 블로그 리뉴얼을 하며 밤낮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또 깨알 같은 사연들을 읽다 보니 눈이 더 나빠진 것 같다. 블로그 본문 폰트를 너무 키워놔서 에디터의 작은 글씨가 잘 안 보이는 건가? 아무튼 글자가 흐릿하게 보여 이 글을 겨우 썼다. 한쪽 눈을 번갈아가며 가려보니, 오른쪽 눈으로 볼 때 모니터의 글자가 겹쳐 보인다. 근데 또 멀리 있는 걸 볼 때에는 오른쪽 눈이 잘 보이고 왼쪽 눈이 흐릿하게 보인다. 이거 뭐지? 여하튼 내일은 안과에 갔다가 안경점에 들러야 할 것 같다. 올해 들어 이상하게 병원엘 자주가고 있다. 내과에 치과에 안과까지…. 독자 분들은 아픈 곳 없으시길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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