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아저씨 말고는 평소 '새로운 남자'를 만날 일이 없다는 대원, 엄마와 누나가 '아는 여자'의 전부라는 대원, 수녀원 정도의 성비를 가진 직장에서 수녀가 되어가는 것 같다는 대원, 연애 이론은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공부했는데 이론을 펼칠 남자가 없다는 대원, 자신은 첫 키스도 해보고 싶고 백 허그도 해보고 싶은데 주변에 이성이 없어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순결을 지키고 있다는 대원 등, '만날 계기'가 마련되지 않아 고민에 빠진 대원들이 많았다.
그들이 보낸 사연 중엔 정말 답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연들도 있었다. 거의 주7일 근무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직장에 다니고 있다든지, 컵라면 하나를 사러 갈 때에도 차타고 나가야 하는 곳에서 근무하고 있다든지, 업무특성 상 남들 잘 때 일 하고 남들 일 할 때 잔다는, 그런 사연들 말이다. 회사에서 오늘은 중국에, 모레엔 홍콩에 다녀오라고 하는 상황 같은 건 아무리 봐도 갑갑하긴 한데, 그런 와중에도 연애를 하고 있는 대원들은 많으니 너무 상심하진 말자. 조상님들께서는
"될 사람은, 산 속에 들어가 꼭꼭 숨어도 되더라."
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던가. 오늘은 월요일이니 좀 가벼운 마음으로, 남들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이성을 만나는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1. 학교 친구, 또는 선후배.
내게 도착한 사연 중엔,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된 친구, 또는 선후배와 썸을 타게 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들은 아래와 같다.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가 SNS를 통해 친해진 사례.(SNS 파도타기 등)
-친구나 선후배 경조사에 참석했다가 만나 새롭게 매력을 발견한 사례.
-전혀 모르는 사이였는데 얘기하다보니 '같은 학교'라는 연결고리가 있던 사례.
-동창 모임에 가입했는데 상대로부터 연락이 와 만나게 된 사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마주친 상대가 학교 친구거나 선후배였던 사례.
내 경우를 봐도, 위와 같은 상황을 통해 이성과 가장 많이 마주했던 것 같다. 가구를 사러 갔는데 그 가구점에서 일하는 직원이 초등학교 동창이라든가, 동네를 돌아다니다 누가 불러서 돌아보니 고등학교 동창이라든가, 아니면 난생 처음 가보는 회기역 부근을 돌아다니다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는데 학교 후배였다든가, 미용실에 갔는데 학교 후배가 있었다든가, 친구 결혼식에 갔는데 친구 동생의 친구가 고교시절 날 아는 후배였다든가, 빛 축제 행사장에 갔는데 거기 책임자가 학교 선배였다든가, 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들과 만났을 때를 돌이켜 보면, 학창시절엔 인사 한 번 하지 않던 사이라 해도 이상하게 반가우며, 상대 역시 반갑게 맞이해 줬다. 심지어 난 상대의 이름도 모르는데 상대가 "저기 혹시, 정발고…?"하며 말을 건 적도 있었다. 공쥬님(여자친구) 역시 우리 동네에 왔다가 아느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와 마주쳤는데, 후배가 성형을 너무 많이 해서 긴가민가 하는데다가
"저 혹시, 고등학교 다닐 때 컴퓨터부?"
할 수 없어서 아직 알은 체는 안 하고 있다. 그 외에 출근길에 계속 마주치는 -서로 얼굴만 아는-동창생, 어느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 오빠, 같은 동네 살고 있는 학교 선배 등이 있는데, 역시 그들에게도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면 이상할 정도의 격한 반가움과 인연의 신기함을 서로 나누게 될 것이다.
과거엔 인연이 얕게만 닿아 그저 얼굴만 아는 사이로 지내거나, 아니면 그때는 타이밍이 맞질 않아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기회가 없었을 수 있다. 시간이 그 틈새를 메워 지금은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징검다리가 마련되었을 수 있으니, 지금까지 아무 일 없었다고 다 접어두지만 말고 누구와 어떤 관계가 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예전에 알던 사람을 만났을 땐 이산가족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 해보자.
2. 종교활동.
내가 주일학교에서 달란트 모을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요즘 종교들은 청춘들의 연애사업을 전후방에서 지원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적극적이다. '교회 오빠'와 관련된 사연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몇 년 전부터는 '성당 오빠', '절 오빠', '여기다 이름을 밝히기 어려운 종교의 오빠' 등으로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관련된 사연 역시 예전에는 '같은 교회 오빠'나 '같은 교회 여동생'등과의 썸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엔
-연합 예배.
-청년 총 모임.
-지역 부흥 모임.
-연합 성경공부.
등으로 그 모임들이 확대된 까닭에, 다른 교회사람과도 썸을 타게 되는 사연들이 줄을 잇고 있다. 종교 간 장벽은 있지만 교회 간 장벽은 많이 허물어진 것이다. 게다가 난 어느 정도 개방적인 개신교에선 이렇지만 아무래도 좀 더 근엄하게 생각되는 카톨릭에서는 장벽이 존재할 줄 알았는데, 성당에서도 다른 성당들과 연계해 청년 모임을 갖는 등의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매주 얼굴을 보고, 예배를 위해 연락을 하고, 예배가 끝나면 주말을 같이 보낼 수 있다는 건, 세속적으로 표현하자면 '불꽃이 튀기 좋은 환경'이다. 또 요즘은 '같은 종교인은 종교인끼리 만나야 한다'라며 같은 종교인끼리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강의나 만남을 주선해주는 커뮤니티도 있던데, 이 정도면 휘발유와 장작을 한 곳에 모아두는 것 정도의 환경이 아닌가 싶다.
유학생의 연애도 절반 정도가 '종교활동'에서 비롯된다. 유학생의 경우는 대개 어딘가를 이동할 때 차가 필요하기 마련인데, 교회 오빠가 태우러 오고 또 데려다 주며 자연스레 친해지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타지에서 외로움을 느끼던 중 위안이 되어 주는 같은 종교의 사람들과 더욱 끈끈한 사이가 되거나 하며 말이다.
위와 같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좋은 모습을 봐 온 같은 종교의 어르신이 만남을 주선하거나, 같은 종교활동을 하며 친해진 사람이 소개팅을 주선하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신성한 종교활동을 두고 뭐 하는 짓이냐며 화를 내시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이게 연애를 목적으로 신성한 종교활동을 이용하라는 얘기는 아니고, 이런 사례들이 있다는 걸 설명하기 위한 것임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3. 학원, 연수.
재수나 편입 학원에서의 연애사연은 끊이질 않는다. 엄격한 학원 규칙에 따라 이성간의 대화를 아예 차단해버리는 곳도 있던데, '동병상련'의 감정에다가 그 엄격함으로 인해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까지 더해져 서로를 더 신비롭게 여기며 갈구하는 사례들이 많았다.
직장인이나 취준생의 경우엔, 어학원이나 연수원에서 만나 썸을 타는 경우가 많았다. 그냥 수동적으로 강의만 듣고 오는 경우엔 별 일이 안 생기기도 했지만,
-먼저 말을 건 경우.
-먹을 것을 준 경우.
-발표나 질문을 할 때 매력이 느껴지는 경우.
-마주쳤는데 인사를 한 경우.
-그냥 보자자마 호감을 가질 정도의 외모를 가진 경우.
등의 사건이 일어났을 땐 마음 속 궁금함과 호기심 같은 것들이 동작해 불꽃이 튀곤 했다.
여기서 하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저들이 뭔가 대단한 얘기를 해서 가까워진 게 아니라는 거다. 무슨 말을 어떻게 걸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대원들이 종종 있는데, 저들 역시
"여기까지 해 오는 거 맞죠?"
"준비 많이 하셨어요?"
"그런 펜 어디서 살 수 있어요?"
"껌 하나 드세요."
"저, 아무래도 선생님이 혀가 좀 짧은 것 같죠?"
등의 아주 평범한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몇몇 대원들은 상대를 바라보며 혼자 마음을 키우다 종강 때 쯤 고백을 할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지 말고 일단 말부터 걸어보길 권해주고 싶다.
4. 스터디, 서포터즈, 동호회.
스터디를 위의 '학원, 연수'와 묶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호회와 묶은 건, 출석의 강제성이 없을 뿐더러 대개는 스터디의 목적이 '같은 분야의 공부'에서 '같은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는 사람들의 친목 모임'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스터디 모임의 구성원들은 역시나 동병상련의 상황이며, '공부법 공유' 등을 핑계로 연락을 하다 가까워질 수 있기에 확실히 '커플 탄생의 산실'이긴 하다. 물론 이 와중에도
-정말 공부 하러 온 사람에게 연애하자고 졸라 퇴짜 맞는 경우.
-합격하고 나서 연애할 건데 같은 처지의 사람이 대시해 거절하는 경우.
-공부가 아니라 연애를 목적으로 스터디에 나온 게 모두에게 읽히는 경우.
-금사빠라 새 이성회원이 오면 무조건 들이대다 퇴출당하는 경우.
-같이 공부하러 왔으면서 잘난 척 해서 따돌림 당하는 경우.
등의 슬픈 일이 일어나긴 한다. 시나브로 가까워지며 끓을 만큼 끓어 밥이 될 수 있는 걸, 미리 뚜껑을 열어 망치진 말길 권해주고 싶다.
대학생들에겐, 과거에 없었던 '서포터즈 활동'이 새 '연애의 산실'이 되고 있다. '서포터즈'란 기업이나 단체에서 '끼 있고 재능 많은 대학생들'을 선발해 여러 가지를 지원해가며 자사나 자사 물품을 홍보하게 하는 건데, 그만큼 적극적이고 활발한 인원들을 모아 놓은 까닭에 옷깃만 스쳐도 불꽃이 튀는 등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내게 도착하는 사연 중에는, '서포터즈에 들어가 썸을 탔다'는 사연 보다는 '서포터즈 활동을 시작한 연인이 바람났다'는 사연이 더 많다. 기업이나 단체에서 인원을 선발한 후 그 인원들끼리 여러 활동을 하라고 돈까지 주니, 낮에 같이 서포터즈 활동 하고 저녁에 뒤풀이 하다 보면 옳지 않은 감정까지도 생겨나게 되는 것 같다. 서포터즈의 적극적인 여성회원이 상대에게 여자친구가 있는 걸 알면서도, 뒤풀이 자리에서 여친의 전화까지 대신 받아
"현규 너무 멋져요! 미안하지만 오늘 하루만 빌릴 게요~"
라는 이야기를 한 사연도 있었는데, 그 얘기를 듣곤 손을 덜덜 떨며 내게 사연을 적어 보낸 어느 대원이 생각나서 가슴이 시리다.
동호회와 관련해서는 뭐 워낙 많이 알려져 있으니 자세히 적진 않겠다. 한동안 난 '댄스동호회' 사람들이 보내는 사연 때문에 다른 내용의 사연을 소개하기 힘들 정도였다. 어느 지역이라고 얘기만 해도 대략 다들 알기 때문에 절대 비밀에 부쳐 달라고 했는데, 사연을 보다 보면 겹치는 사례가 있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인연은 끊어도 춤은 끊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초반에 비밀연애를 제안한다면, 한두 번 그래 본 게 아닐 거라 생각하며 거절하길 권한다. 레퍼토리가 대개 다 같았다.
종종 "저도 이제 동호회 활동 좀 하며 이성을 만나보려고요."하는 대원들이 있는데, 그들이 선택하는 동호회 이름을 들어보면 그냥 좀 답답하다. 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지만, 이왕 전략적으로 동호회 활동을 시작한 거면 '내가 하고 싶은 동호회' 보다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몸담고 있을 것 같은 동호회'에 들어가야 할 것 아닌가.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어느 여성대원이 디퓨저 만들러 동호회 들어가면 거기엔 디퓨저 만들러 온 동성들이 가득할 수 있다. 또, 그냥 친목이나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동호회에 들어가면 그런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 가득할 수 있고 말이다. 꼭 연애를 목적으로 동호회 활동을 하길 권하는 건 아니지만, 만약 사심 가득한 동호회 활동을 시작하는 거라면 좀 더 똑똑하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5. 여행.
여행을 가기 전, 같은 시기에 여행 가는 사람들과 연락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 가입해 활동을 하며 이성을 만나는 사례들이 있었다. 이건 어려운 게 아니니 설명은 생략하고, 이런 경우 조심해야 할 것을 몇 개 적어둘까 한다.
-적극적인 금사빠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할 것.
-여행을 일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여행지에서의 낭만'을 경계할 것.
-날 좋아하면 내 여행일정에 맞출 거라 생각하며 떠보기만 하진 말 것.
손 발 오그라들게 만드는 이성의 멘트도 여행지에서는 '낭만'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어제 우린 12시간만큼 떨어져 있었지만 오늘은 바로 옆에 있네, 따위의 멘트가 통한다는 거다. 그리고 이거, 여행을 갈 때마다 어디어디 같이 갈 사람을 모집하는 '꾼'들이 있으니 주의하길 바란다.
물론 여행과 관련된 건전하고 풋풋한 사례들도 많다. 너무 건전해서 제주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 한라산을 왕복하는 데이트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뭐 여하튼 그들은 저녁에 고기 구우며 도란도란 얘기도 하고, 다음 날 바닷가를 함께 걸으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곤 한다. 이후에도 그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연을 맺곤, 거기서 또 그 사람들과 이어진 다른 사람을 만나 '생각지도 않았던 인연'을 만나는 계기가 되곤 하니 여행지에서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인연의 새싹이 다치지 않게 잘 보살피길 권한다.
무엇보다, 여행지에서의 만남이 긴 연애나 결혼으로 이어진 사례들은, 여행지에서 사귀거나 여행지에서 진도를 다 나간 게 아니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그들에게 여행지에서의 만남은 '계기'가 된 것이고, 그 이후 두 사람 다 마음을 쏟아가며 무럭무럭 키워낸 것이다. 여행지가 주는 감정에 들떠 정신줄을 놓거나, 복귀하면 끝날 불장난은 하지 말길 바란다.
위에서 말한 것들 외에 널리 알려진 소개팅, 클럽, 나이트, 채팅, 어플, 회사, 헬스클럽이나 수영장, 술집, 도서관 등이 있다. 그 중 가장 최근 많이 도착하는 사연은 '술집'과 관련된 사연이다. 술집 중엔 그 안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도 간단한 게임을 즐기거나, 같은 주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술집이 있다고 한다. 이성들끼리 생일 파티 등을 하러 그 술집을 들렀다가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과 게임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불꽃이 튀는 사례들이 있었다. 언젠가 내 지인 중 하나도 개인 다트를 사가지고 다닌다길래 대체 저게 뭐 하는 건가 했는데, 주말마다 사람들과 다트게임을 할 수 있는 곳을 다니고 있는 것 같다.
'뭐뭐 비어' 등의 술집이 많이 생기다 보니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썸을 타는 사연도 심심찮게 오고 있고, 개인 커피숍도 늘어나다 보니 역시 그곳과 관련된 사연도 늘어나고 있다. 커피숍에서 일하는데, 근처 가게에서 일하는 또래에게 커피 한 잔 줬다가 인연이 발전하는 사례도 있고 말이다.
뜬금없는 사례들로는, 외할머니께서 미용실에 파마하러 가셨다가 손녀 얘기를 하게 되어 미용실 주인과 연이 있는 사람을 소개 받아 만나다 결혼한 사례도 있고, 동네 슈퍼 아저씨가 같은 동네 사는 남자를 만나보라며 오지랖을 발휘해 연애하게 된 사례도 있다. 그 외에 동물병원에 애완견 진료 받으러 갔다가 수의사와 만나게 된 사례, 면허 학원 다니다 다른 학원생의 대시를 받아 사귀게 된 사례, 신호등에서 건널 차례 기다리다 옆에서 신호기 조작하고 있던 경찰과 연이 닿아 연애를 시작한 사례 등이 있다. 이처럼 인연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상상도 못했던 사고처럼 찾아올 수 있으니, 나중에 때가 되고 다 준비 되면 멍석이 깔릴 거라 생각하며 넋 놓고 있지 말고, 사랑 할 준비를 미리미리 해두길 권한다. 잊지 말자. 집 현관문 열고 나가는 순간부터 기회도 열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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