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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과여행/물고기가좋다

30큐브 구피어항에 유목과 수초 투입.

by 무한 2015. 5. 24.

조금 '덜' 열정적으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요일 새벽, 알람을 맞춰둔 시간에 일어나 어항을 청소하고, 바닥재를 씻어 삶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이 짓을 대체 왜 하고 있는가?'

 

그냥 어항 하나 놓고 물고기들 먹이 주며 기르다 치어까지 받는, 그렇게 '보통의 평범한 물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난

 

'어항을  하나 더 들여놓아 네 개를 만들기 위해선, 집에다 어떤 포인트를 적립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니,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이미 네 번째 어항을 들여 놓기 위해 필요한 바닥재와 여과기를 구입해 놨다. 이런 내가 싫다.(응?)

 

 

여하튼 이번 주엔, 가재를 키울 땐 엄두를 못 내던 '수초'에 도전했다. 가재 어항에 수초를 넣어두면, 녀석들이

 

'어? 뭐지? 이거 뽑으라고 이렇게 둔 건가? 먹는 건가?'

 

하며 죄다 뽑아두는 까닭에 수초를 심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젠 얌전한 새우와 구피만 키우게 되었으니, 수초에 도전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재를 키울 때의 어항 모습이다. 사진에선 보이지 않지만, 뒤쪽에 은신처도 만들어져 있다. 녀석들은 호기심이 강하고, 어항에 뭔가가 들어오면 일단 집게발로 집어서 휘두르는 성향이 있기에 수초를 키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개운죽'을 넣어두는 사육자들도 있긴 한데, 그게 가재에겐 탈출의 도구로 쓰여 애를 먹기도 한다. 가재 중엔 에어호스를 타고 어항을 넘어 탈출하는 녀석들도 있다.

 

 

 

 

이번에 새로 세팅한 '음성수초 어항'이다. 긴 잎을 가지고 있는 건 미크로소리움, 유목에 감긴 것은 미니삼각모스, 좌측 네모난 화산석에 붙어 있는 건 피시덴모스, 가운데 작은 판석에 붙어 있는 것은 자와모스월로모스의 혼합이다. 저 녀석들은 빛이 조금만 드는 환경에서도 자라기 때문에 '음성수초'라고 불린다.

 

수초와 유목은 우리 동네에 사는 물고기 동호회 회원 분에게 받았다. 구피와 토종 민물고기, 새우 등을 키우시는 분인데, 동네 마트 수족관에 있는 어항보다 그 분 집에 있는 어항이 더 많다. 집 전체에 축양장을 설치하신 까닭에 잠 잘 곳이 없다고 하시던데, 남자끼리지만 그 분과는 네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눈 것 같다. 정말 말 그대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물고기 얘기를 했다. 

 

저것 외에 부화통과 어항 용품 등 다양한 걸 더 주셨는데, 얼마를 드려야 할 지 여쭤보니 선물이라며 그냥 가져가라고 하셨다. 조만간 보답 차 맛난 거 사서 방문할 예정이다. 그때 허락을 구하고 축양장 사진도 찍어볼까 한다.

 

 

 

모스(이끼)류 수초는 3~5mm로 잘게 다져 유목과 돌에 묶어 두었다. 긴 걸 그대로 묶는 것보다, 저렇게 하면 잘린 부분 곳곳에서 새 순이 나와 더욱 예쁘고 풍성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잘게 잘라 묶은 뒤 투입했더니, 새우들이 달려들어 죄다 건드리고 있다. 엉성하게 묶인 부분은 이미 좀 빠지기도 했다. 아, 저거 전부 자르고 묶는 데만 세 시간 쯤 걸렸던 것 같다.

 

 

 

음성수초들을 유목과 돌에 묶어둔 지 이제 일주일 정도 지났다. 난 금방 새 순이 날 줄 알고 매일 어항 앞에서 관찰했는데, 찾아보니 대략 4주 정도는 지나야 눈에 띌 정도의 변화가 있다고 한다.

 

 

 

조만간 포란을 할 것으로 보이는 체리새우 암컷이다. 암컷은 저렇게 머리 부분에 노란 난황이 보인다. 저게 배 쪽으로 서서히 이동해 노란 알이 되는 것 같다. 수초가 풍성해지면 치새우(새끼새우)들이 숨을 곳이 많아 생존율이 올라갈 것 같다.

 

 

 

그런데 이게 그냥 이렇게 마냥 기다린다고 해서 마냥 수초들이 자라는 건 아닌 것 같다. 어항에 투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초들이 저렇게 색이 바래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영양분이 부족해서 녹는 거라고 하길래 일단 다이소에서 파는 관엽식물용 영양제(액체 비료)를 사다가 투입했다. 많이 투입하면 어항이 이끼로 뒤덮인다기에 한 자(30큐브) 기준 일주일에 두 방울 떨어뜨려 주고 있다.

 

또 수초는 pH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해서, 바닥재를 소일로 바꾸고 오리나무 열매를 투입할 예정이다. 광합성을 위한 이산화탄소도 공급해주라고 하는데, 산소통 비슷한 곳에 담긴 이산화탄소까지 사다가 설치하는 건 일을 너무 크게 만드는 것 같아서, 일단은 바닥재만 바꿔 볼 생각이다.

 

 

 

EMB(일렉트릭 모스코 블루) 암컷의 모습이다. 현재 알배가 차오르고 있으며, 수컷들이 계속 구애를 하는 것으로 봐선 한 달 내에 치어를 낳을 것 같다.

 

내 어항에 짝짓기가 가능할 정도로 큰 수컷은 두 마리다. 그 중 한 녀석은 발색이 뛰어나며 체형이 멋있고, 다른 한 녀석은 배만 나온데다 발색이 떨어져 암컷인지 수컷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그 녀석과 짝짓기 하는 걸 막으려 어제 부화통에 격리해 두었었는데, 이게 참 조건만 우선시 하며 사랑하는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부모님 반대'처럼 생각되어 다시 합사시켜 줬다. 믿기 어렵겠지만, 난 정말 한 시간 내내 고민했다. 구피 짝짓기 조건이냐, 사랑이냐.(응?)

 

 

 

EMB 암컷과 체리세우 암컷의 모습이다. EMB 암컷은 허리부분까지 까매야 하는데, 아직 유어라서 발색이 전부 안 올라온 건지 아니면 발색이 떨어지는 개체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난 저렇게 눈 주변이 까만 게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잠시 격리되었던, 문제의 EMB 수컷(으로 추정되는 녀석)이다. 눈 주변이 까맣지 않고, 아무래도 그 모양이 암컷을 닮아있다. 검색해 보니 중성인 녀석들도 있는데, 어쩌면 이 녀석이 중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암컷에게 가장 열렬하게 구애하고 있으며, 먹이활동에도 제일 적극적이다.

 

생김새만 놓고 보자면 아무래도 암컷인 것 같은데, 실제로 보면 고노포디움(수컷의 생식기)처럼 보이는 것도 달려 있고, 암컷에게 계속 구애를 한다. 좀 더 크면 녀석의 성별을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으니, 몇 주 정도 두고 봐야겠다.

 

 

 

미크로소리움을 화산석에 활착시켜둔 모습이다. 미크로소리움 잎의 뒷면을 위로 향하게 한 후, 저렇게 묶어 바늘로 찔러두면 찔린 부분에서 새순이 돋는다. 이것도 대체 언제 돋아나는 건가 매일 지켜보는데 아직 소식은 없다. 다른 사람들의 사례를 찾아보니, 이것 역시 대략 3~4주 정도 지나야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

 

 

 

하프블랙 옐로우 치어의 모습이다. 현재 이 녀석들에게 전염병이 돌아 소금욕을 시키고 있으며, 증세가 심한 녀석은 격리시켜 두었다. '마우스 펑거스(또는 마우스 펀거스)'라는 병인데, 치료과정은 증세가 호전되면 올리도록 하겠다.

 

처음 입양한 게 7마리, 이후 한 마리가 죽어 6마리가 된 건데, 첫 녀석이 죽었을 때 자세히 살펴볼 걸 그랬다. 난 녀석이 자꾸 수면 위쪽으로 와서는 명상의 시간을 가지길래 그런 걸 좋아하는 타입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마우스 펑거스 때문에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 해서 그랬던 것 같다. 속눈썹 길이 밖에 안 되는 녀석들이라 제대로 살펴보질 못 했는데, 조만간 하나하나 접사를 찍어 확인할 예정이다.

 

 

 

 

현재 어항에서 제일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알풀(알비노 풀레드)이다.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난 빨간 눈의 물고기들을 좀 무서워하는 편이다. 왠지 영혼이 없는 것 같은 느낌도 좀 들고, 인조 물고기 같은 느낌도 좀 든다. 그래서 녀석들을 분양할지 말지, 며칠 고민해 볼 생각이다.

 

 

취미가 바뀌면 세상을 보는 시각과 생각이 바뀐다. 별생활에 빠졌을 때에는

 

'아, 저걸 가져다가 망원경 후드로 쓰면 되겠다.'

'오! 이 제품이라면 열선 대신 쓸 수 있어.'

 

하며 모든 걸 별생활과 연관지어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걸로 부화통을 만들면 생존율을 높일 수 있겠군.'

'수초를, 실 대신 망사로 된 저 제품으로 묶는 거야!'

 

하고 있다.(뭐 이건, 나 뿐만 아니라 실험정신 투철한 모든 취미생활자(응?)들이 그런 것 같다.)

 

오늘 어항 바닥재를 교체하는 김에 축양장 매트도 전부 바꿔 줄 생각이다. 여과기 필터도 새로 만들 예정인데, 이건 A4용지 담는 클리어파일 겉 부분을 잘라서 만들면 될 것 같다. 유리가게 가서 어항 뚜껑도 하나 맞춰야하고, 화분에서 넘치려고 하는 산세베리아 분갈이도 해줘야하고, 지인에게 선물 받은 전동 달리도 조립해야하고, 촬영용 조명박스도 만들어야하고, 물벼룩도 잡으러 가야하고, 오리나무 열매와 뽕잎도 따러 가야하고….

 

쓸데없이 바쁘다. 누가 돈 준다며 시켜도 안 할 일들인데, 취미에 빠지면 돈을 써가면서 까지 이런 일들을 한다. 연휴 내에 끝내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 다들 즐거운 연휴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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