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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과여행/물고기가좋다

애완가재 외과수술, 그리고 베타 사육 재시작

by 무한 2012. 3. 3.
애완가재 외과수술, 그리고 베타 사육 재시작
가재는 탈피를 할 때마다 죽을 고비에 놓인다. 사람으로 치자면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더 살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는 것과 같다. 자연에서의 가재도 탈피사 하는 경우가 많은지는, 같이 살아 본 적이 없어서(응?) 모르겠다. 여하튼 어항 속에 사는 가재들은 헌 갑각을 다 벗지 못한 채 죽는 경우가 많다.

가재의 탈피사는, 거꾸로 뒤집힌 사슴벌레가 일어나려고 발버둥 치다 기력이 다해 죽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엔 거꾸로 눕거나 옆으로 누워 계속 헌 갑각을 벗으려 노력한다. 집게발을 휘젓고 다리들을 버둥거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버둥거림의 속도가 늦어진다. 등갑이 열린 까닭에 새 갑각이 조금 보인다. 조금만 힘을 내서 빠져나오면 될 것처럼 보이는데, 그러지 못하고 결국 천천히 굳어간다.

몇몇 사육자들의 경우 가재가 탈피사 할 것 같은 조짐이 보이면, 가재의 헌 갑각을 벗겨 탈피를 도와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탈피를 도운 가재는 모두 며칠 지나지 않아 죽는다. 헌 갑각을 벗지 못해 버둥거리는 가재를 보며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조금 더 힘을 내기를 빌어주는 것뿐이다.


1. 애완가재 외과수술.


안타깝게도, 내가 사육 중인 플로리다 허머 암컷이 탈피사의 징조를 보였다.








▲ 차례대로 허머의 치가재 때 모습, 성장기 때 모습, 번식기 때 모습.
 


포란 한 이후 자꾸 돌 틈으로 숨거나 땅을 판 까닭에 갑각에 상처가 많은 녀석이었다. 녀석은 어항 바닥에 뒤집어져 버둥거리다가 천천히 굳어 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도와줘야 해. 조금만 등갑을 들어주면 쉽게 벗을 수 있을 거야.'


라고 생각했다. 평소에 자주 가는 가재 관련 커뮤니티에다 '탈피 돕기'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가재의 탈피를 도운 적 있다는 한 가재 사육자는

"탈피를 도와도 죽는 건 마찬가지지만,
꼭 탈피를 돕고 싶다면 갑각을 벗을 수 있게 도와 준 후
산소공급을 최대로 하세요."



라고 말했다. 난 서랍에 넣어 두었던 기포기를 꺼내 녀석의 어항에 연결했다. 그러곤 점점 움직임이 느려지는 녀석을 꺼냈다. '가재 헌 갑각 제거수술'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대략 위와 같은 느낌으로 가재의 수술을 준비했다. (출처-FOX, <하우스>강력추천.)

 
수술을 위해 커터칼과 족집게, 손톱깎이, 바늘, 일자드라이버(응?) 등을 준비했다. 녀석은 많이 지친 듯 물 밖으로 꺼낼 때에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등갑 아래로 말랑말랑한 부분이 보였다.

'저게 새 갑각이군.'


족집게로 등갑을 잡은 후, 헌 갑각 아래로 커터칼을 집어넣었다. 옆쪽의 헌 갑각을 먼저 벗겨 줄 생각으로 살짝 벌려 보았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쉽지 않은 수술이 되겠군.'


수술에 방해가 되는 헌 갑각을 먼저 제거하기로 했다. 손톱깎이로 섬세하게 헌 갑각을 잘라나갔다. 위쪽의 갑각을 먼저 자르고, 옆 갑각을 자를 때였다.

'어? 잠깐만...'


다리로 이어진 부분의 갑각까지 잘라냈는데, 새 갑각이 보이지 않았다. 새 갑각이 있어야 할 자리엔 가재의 속살이 보였다.

'내가 새 갑각까지 같이 잘라버렸어...'


의료사고였다. 바닷가재 요리를 먹을 때처럼, 난 녀석의 등갑을 아예 열어버린 것이다. 갑각을 다시 붙일 수도 없었다.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도와주고 싶었을 뿐인데...'


인공호흡도 할 수 없었다. 혹시 다시 물속에 넣어주면 녀석이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을 어항에 다시 집어넣었다. 녀석은 미동 없이 어항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집게로 녀석을 건들 보았으나 녀석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잠시 기절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좀 더 기다려 봤다. 하지만 역시 녀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어쩌면, 만약에, 다음 날 아무렇지 않게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하루를 더 기다렸다.

생자필멸 거자필반 회자정리. 가재는 갔지만 나는 가재를 보내지 아니하...
미안해 허머야.


2. 베타 사육 재시작.


기억하는 독자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다시 시작한 물생활의 첫 식구가 베타였다. 노멀로그에는 짝짓기 모습을 잠깐 소개한 적 있다. 짝짓기 이후 수컷이 암컷을 공격해 알을 낳기도 전에 암컷이 죽었고, 수컷은 죄책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요단강을 건넜다.




▲ 전에 키웠던 베타 커플. 거품집 만들고 짝짓기 하는 장면.


지난 번 베타를 키울 때의 상황과 달리, 이번에는 어항도 두 개나 더 늘은 까닭에 좀 더 쾌적하게 사육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트 수족관을 찾았다. 암수 한 쌍을 사려고 했는데, 죄다 수컷만 있었다.

무한 - 암컷은 왜 없어요?
수족관직원 - 베타 암컷은 안 예쁘잖아요. 그래서 찾는 손님들이 없어요.
무한 - 그럼 얘네 짝은 어떻게 지어줘요?
수족관직원 - 사실 원래 암컷도 가져다 놔야 맞는 건데, 그게 업체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직원 분이 수족관 쪽의 업무가 괜찮을 것 같아 수족관 판매관리에 지원했다는 얘기부터, 결혼 할 때 신랑 친구가 수족관을 했었는데 결혼 선물로 큰 어항세트를 받았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그 때만해도 마트 수족관 코너에서 일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물고기를 징그러워하던 자신이 관리를 하고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었다. 마트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 중 지느러미가 거의 다 잘린 녀석이 있는데 3개월 째 죽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다는 얘기를 할 땐,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모성애가 가득했다.

암컷은 나중에 다른 곳에서 데려오기로 하고, 우선 레드와 블루 수컷 두 마리를 데려왔다.










▲ 마트 수족관에서 데려온 레드베타 수컷과 블루베타 수컷.


마주보고 있는 어항에 넣어 놨더니, 알아서 지들끼리 플레어링을 하고 있다. 먹이도 잘 먹고 거품집도 지을 정도로 건강한 녀석들인데, 문제가 하나 있다면 바로 가재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응?) 베타가 상층에서 팔랑거리면, 가재들은 '뭐야? 새로운 먹인가?'라며 집게발을 든다. 그러고 보니, 현재 우리 집 어항에 살고 있는 모든 녀석들이 수컷이다. 이번 주말엔 짝들을 좀 찾아주고, 분양도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오늘 아침 어항을 보니, 물달팽이가 알을 낳았다. 이끼 청소나 좀 하라고 보름 전 두 마리를 넣어 두었는데 손톱만한 녀석들이 벌써 2세를 낳은 것이다. 기특해서 특식이나 좀 넣어줄까 하고 검색했더니,

"물달팽이 어서 버리세요. 빨리 버리세요. 녀석들이 곧 어항을 점령할 겁니다."


라는 글이 많았다. 어느 사육자는 수초어항에 물달팽이 두 마리를 넣었을 뿐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어항이 물달팽이로 뒤덮였다고 한다. 물달팽이가 어항을 뒤덮는 날엔 소문으로만 들었던 '달팽이 귀신'을 소환 해야겠다. 아니면 달팽이를 오독오독 씹어 먹는다는 오스카나, 쏙쏙 빨아먹는다는 남미복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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