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제 지인에게도 한 적 없는 얘긴데, 저는 물을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제 키보다 깊은 물에는 들어가 본 적도 없고, 허리까지 밖에 안 오는 얕은 물에도 혼자서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건 제가 꼬꼬마 시절 사촌누나의 취향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촌누나는 자주 저희 집에 와서 비디오를 봤는데, 그게 전부 좀비, 강시, 귀신, 죠스, 괴물 등이 등장하는 영화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영화가 제일 무서웠냐고 물으신다면, 전 <나이트메어>라고 대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이왕 털어놓기로 한 김에 하나 더 털어 놓겠습니다. 전 지금도 샤워를 하며 머리를 감을 때 두 눈을 감지 않습니다. 눈을 한참 감고 있다가 뜨면 뭔가가 그 공간에 함께 있을 것 같아서, 한 쪽 눈씩 번갈아가며 뜹니다. 꼬꼬마 시절 살던 집엔 욕조 위에 판자를 놓고 그 위에 세탁기를 올려놓고 쓰기도 했는데, 그때 두 눈을 감으면 세탁기에게서 누군가 고개를 내밀어 저를 쳐다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그때부터 이런 습관이 생긴 것 같습니다.
털어 놓다보니 하나 더 이야기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것까지 마저 더 털어 놓겠습니다. 저는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혼자 엘리베이터를 못 탔습니다. 사람이 같이 안 타면 3층까지 걸어 올라가기도 했고, 사람이 타서 먼저 내리면 함께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추거나, 오작동을 하거나, 아니면 엘리베이터에 있는 그 창문으로 어느 층에서 저를 쳐다보고 있는 귀신을 볼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제가 이렇게 겁이 많아진 이유는 하나 더 있는데, 그게 어린 시절 다니던 교회에 있던 주일학교 선생님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그 선생님 나이가 스물 셋 정도 될 겁니다. 그런데 수련회 캠프에서, 담력훈련을 핑계로 그 선생님이 한밤중에 애들을 산속 나무 앞에 세워뒀습니다. 자기가 올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고는 그 선생님이 다른 청년부 여자 선생님과 노느라,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걸 깜빡했습니다. 그 시간동안 저는 울지 않고 잘 참긴 했지만, 제게 들리는 모든 소리가 공포로 느껴졌습니다. 한밤 중 산에 가보신 분들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 부스럭 소리와 툭툭 거리는 소리가 나는지를.
1. 상처에 대한 이야기.
대략 세 시간 전까지, 저는 월요일자 매뉴얼에 달린 몇몇 분들이 말하는 '상처'의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전 그게 '방어의 수단'으로서의 이야기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상처'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던 분들의 이전 댓글들도 저는 다 검색해 봤는데, 그 중에는 그 분들이 타인과 대립했을 때 훨씬 더 격한 형태로 상대에게 상처를 내려고 했던 모습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이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을 때릴 때에는 그가 당연히 맞을 짓을 해서 맞는다고 생각하면서, 본인이 맞은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때릴 수 있냐는 얘기를 하네.'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다른 오랜 독자 분께서
"지적 말고, 공감과 이해를 앞세워 주셨으면 어떨까 합니다."
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걸 보고도 저는 당시 억울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건, 지금 저 분이 낙심한 상태에서 털어 놓는 이야기들만 들으셔서 그런 건데, 과거의 댓글들까지 다 가지고 와서 보면, 저와 마찬가지로 저 하소연이 컨셉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분명 가지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 분이 말씀하신 것 중 모순된 점이 있는데, 그건 8월에도…."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평소와 낙심했을 때의 모습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경우만 하더라도, 제가 물을 무서워한단 이야기를 하면 제 지인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그냥 봐도 그럴 사람이 아닌 것 같고, 그간 다른 부분에서 해 온 것들을 봐도 절대 물 따위를 무서워 할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전 누군가와 싸울 때 겁을 내지 않는 것과 달리, 물을 정말 무서워합니다. 9월에 필리핀에 가면 스노쿨링을 할 예정인데, 이미 스노쿨링을 했던 사람들이 남긴 사진을 보곤
'아…,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저렇게 들어가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솔직히 난 자신이 없는데….'
라는 생각을 할 정도입니다. 상어나 해파리가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고, 안전요원은 계속 곁에 있는 건지까지 확인해 봤습니다.
이런 생각까지 하며 다시 돌아보니, 상대의 평소 모습으로 상대의 연약한 지점까지를 짐작하려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남겨진 댓글들을 읽다 보니, 제가 큰 오해와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상처'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은 없지만, 그것까지 마음으로 돌아보지 못하며 그저
'아이피…. 아이피를 봐야지. 저 닉으로 달린 아이피는…. 그리고 이전 댓글은….'
하는 생각으로, 미친 사람처럼 아이피와 이전 댓글에만 치중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이 하소연하신 '상처'라는 게, 제가 완전히 똑같이 공감할 순 없겠지만, 물을 무서워하는 것 이상으로 공포스러워 하는 부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누군가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는 물인데 뭐가 무섭다는 건지. 물에 들어가기 싫다는 핑계로 밖엔 안 보이네."
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이야기에 반박하고 싶은 제 마음, 또 제게 그렇게 이야기 한 사람이 타인에 대해서도 본인의 잣대로 이야기를 하고 다닐 때 저의 마음이 어떨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월요일자 글에서 6월부터 시작된 누군가의 증오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저런 마음이었다면, 그 이야기를 한 상대를 댓글마다 쫓아다니며 비판을 하고 시비를 거는 것도 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멀로그를 운영하는 제 입장에서 '반박과 비판은 하되 아무도 쫓아내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한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겐 어떻게 해서라도 몰아내고 싶은 사람을 블로그 주인이 두둔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 그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월요일자 글에서마저 반박당한 듯 느껴졌을 그 마음에 대한 사과를 드리고 싶습니다. 좀 더 일찍 댓글 창에 끼어들어 예의에 어긋난 표현에 대해 제재를 하고, 또 글로 반박할 힘이 없어 억울하지만 눈물만 삼킬 수밖에 없는 상황들에 대해 돌아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지금까진 최대한 독자 분들의 자율에 맡기는 게 가장 바람직한 거라 생각하며 완장질로 보일 수 있는 참견을 미뤄두었는데, 앞으로는 댓글에 대한 룰을 정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 대립과 갈등, 그리고 증오가 커지는 걸 막도록 하겠습니다. 그간 따뜻하게 남겨주신 댓글들도 많은데, 세 시간 전까지도 그저 '용의자'로 둔 채, 아이피와 이전댓글만 조회하고 있었던 제가 부끄럽습니다. 죄송합니다.
2. 편 가르기에 대한 이야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정말 오늘까지 참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어느 분께서 댓글로 '선동이나 전복의 의도는 전혀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적어주셨음에도, 그게 금방 와 닿지 않았습니다.
제 입장에서 이렇게 한 번 생각해봐 주셨으면 합니다. 블로그에 대립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대립에 대해 제가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논란의 중심은 자연히 저로 옮겨갔습니다. 갈등이 고조되던 와중에 댓글이 달렸는데, 무한과 자신 중 누가 잘못한 건지를 봐 달라는 댓글이었습니다. 예전에 카톡을 보냈는데 반응도 차갑고 자신이 답을 늦게 하자 사연으로 보내달라는 답글을 보내고 대화를 마쳤다고 말입니다.
안 그래도 같은 아이피로 달린 다른 댓글에 민감하고, 비슷한 아이피에 대한 의심을 하고 있던 중이었던 저는, 저 댓글에 뭔가 의도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아주 평범한 날에 달렸다 하더라도, 조언을 받고 싶었는데 기분이 안 좋았다, 차가워서 서운했다, 내가 실례되는 행동을 한 거냐, 등의 질문이 그닥 유쾌하진 않았을 텐데,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저런 댓글을 쓴다는 건 악의적인 의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해당 아이피로 달린 댓글을 검색했더니, 논란에 참여 중인 아이피였고, 본인과 반대 의견을 남긴 누군가에게는 조금도 공감이 안 간다는 댓글을 달기도 했고, 또 같은 의견을 가진 다른 분에게는 호감을 드러내며 블로그 개설을 추천하는 글을 올린 아이피였습니다.
이어 몇 시간 후, 자신은 옛날에 애독자였는데 이제는 잘 안 들어온다는 내용의 댓글이 달립니다. 콘텐츠의 다양성 저하, 연재 수 감수, 품질 정체, 편 가르기, 블로거 및 블로그에 대한 지나친 립서비스 등이 보이며 시들해 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 외에도 떠난 사람이 많으며, 그들이 모두 연애나 육아 때문에 떠난 것은 아닐 거라고 말합니다.
이 논란 중에 자신은 여길 떠났다는 걸 밝히면서 굳이 그 이유를 설명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도 떠난 사람 많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을, 해당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 반갑게 맞으며 '예전 애독자신데, 마침 좋은 조언 해주시려 들르셨나보구나.'라고 생각한다면 대뇌엽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또 아이피와 닉을 조회합니다. 그런데 처음 보는 닉과 아이피 입니다. 이쯤 되면 이게 분명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편 가르기와 선동에 대한 제 염려와 의심은, 위와 같은 상황을 겪으며 점점 증폭되었다는 변명을 좀 적어두고 싶습니다. 평소라면 누가 와서 저런 얘기를 해도, '아, 그런가 보네.'하며 어머니께서 마트 다녀오신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위와 같았고, 어느 분께서 '오비이락'이라고 표현해주신 것처럼,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지니 저는 까마귀를 의심하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보다 좀 더 일찍 들었던 염려는, 7월 논란에 참여하셨던 분들 중 몇 분이, 8월 들어 조롱, 비아냥, 비웃음 등이 섞인 댓글을 남긴 적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피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에서 할 거니 접어두고, 여기선 우선 닉만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는 걸 밝히겠습니다. '상처'와 관련된 저 위의 이야기에서 이야기 했던 대로, 자신에게 정말 상처가 되었다는 논란의 댓글과 다를 바 없는, 그런 댓글을 자신은 남들에게 쓰기도 한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상처는 화 낼 구실이고, 그 사람이 나가면 다른 사람을 다시 겨냥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또 누군가는, 같은 아이피로 닉만 바꿔 자신이 자신의 편을 들기도 하고, 공통된 주장을 하던 누군가를 거론하며 싸움을 붙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A와 B가 의견 대립 중일 때, A가 자신과 의견이 같은 C를 거론하며 B씨보고 C에게게 따지라는 듯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굉장히 유치한 발상이긴 합니다만, 이런 일을 다른 독자 분들도 계속 경험하게 된다면 노멀로그가 엉망이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좁혀가다 보니 의심이 증폭되었는데, 이걸 제가 월요일자 글에서 정확하게 짚지 않은 채 뭉뚱그려 이야기 한 까닭에 다른 분들까지 자신을 의심하는 것 아닌가 하며 낙심하신 것 같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제가 전부 정확히 짚고 인용해 말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다는 걸 좀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캡쳐도 다 해놨고 수첩에 아이피와 닉네임까지 적어가며 메모했지만, 그걸 공개하는 건 마녀사냥이며, 어느 모로 보든 선을 넘는 게 분명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또 월요일자 글을 올린 이후, 애먼 독자 분들이 떨리는 손으로 본인의 것이 아닌 혐의를 벗으려 증거를 내밀어주시기도 했고, 또 어느 분은 논란과 관련 없지만 고정닉이 싫어 유동으로 썼던 것에 대한 애먼 미안함을 표시하시기도 했습니다. 월요일자 글에서 상황을 설명하며 제가
"본 적도 없는 닉을 가진 분이 애독자임을 자처하며 고정닉을 공격하고…."
라는 표현을 썼는데, 역시 저 말에 평소 댓글을 잘 달지 않고 어쩌다 유동닉으로 댓글을 다시던 애먼 독자 분들이 상처를 입기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정도로 여린마음이신 분들이 있을 거라는 걸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당시엔 갈등과 대립의 분위기로 꽉 찬 노멀로그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유동닉과 고정닉을 차별하는 의미로 한 말이 아니며, 그런 상황에서 제가 침착하게 표현 하나하나를 돌아보며 글을 쓰기 어려웠다는 점,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 번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3. 아이피와 댓글조작에 대한 이야기.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건 지금도 어디까지가 진실인 건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전 월요일에 그 글을 발행하고 나면 당사자가 부끄러움을 느끼며 더는 그런 일을 안 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아, 정말 모르겠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제가 이런 의심을 하게 된 건, 앞서 말씀드린 닉네임 바꿔가며 댓글을 다는 걸 확인하기도 했고, 의심의 대상이 되었던 분 중 한 분이 '그 사람이 숨어서 닉네임 바꿔가며 글을 달 지도 모르는 거 아니냐.'하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으며, 또 다른 한 분은 문체에서 동일인임이 강하게 느껴지는 글을 달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께서 지적해주셨던 대로 댓글을 한 번 쓰고 나면 다음번엔 닉네임이 자동완성 되어있을 텐데, 그걸 새로 바꿔 다른 닉으로 댓글을 달고 잠시 후 다시 이전 닉으로 돌아와 글을 올렸다는 것도 제 의심을 완전히 지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 너무 지친다며 어제 노멀로그를 떠나겠다고 했던 아이피가, 오늘 같은 아이피의 새로운 닉으로 등장해 더욱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이건 뭐 엄마한테 이른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고, 제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참 딱하기까지 합니다. 아이피가 신분을 증명하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는 건 잘 알지만, 자라 보고 놀란 이후라서 그런지 솥뚜껑만 봐도 심장이 얼어붙게 되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논란이 있지 않은 이상, 이 시간 이후로 이제 아이피는 조회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낮에 아예 댓글 창에 아이피 일부가 표시되게 하는 방법이 있나 찾아봤는데, 그런 기능은 없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혹 티스토리 내에서 댓글 창에 아이피가 표시되게 하는 방법을 아시는 분이 계시면, 가르침을 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SNS 로그인 허용 댓글로 바꾸자니, 통계를 내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SNS를 사용하지 않으시는 분들의 애로사항이 있을 것 같아 마음을 접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동닉으로 댓글을 다는 것도, 악용하지만 않는다면 좀 더 유연한 표현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생각해 우선 두기로 했습니다. 좀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역시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평소의 저였다면, 월요일자 글에 댓글로 남겨주신 이야기들에 거짓이 섞여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같은 아이피로 다른 닉의 댓글이 달려도, '저 분이 쓰던 걸 이 분이 배정 받았나보네. 역시 세상 좁아.'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말입니다. 그 마음으로 모든 댓글을 읽고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그리고 아이피 때문에 제가 의심을 했던 분들에겐, 저도 이런 상황에 있다 보니 평소와 다르게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걸 조금만 더 양해해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4. '팬'과 '애독자'에 대한 이야기.
전 평소에 '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단어에 대한 개인적 의미부여이긴 하지만, '팬'이라는 말은 왠지 맹목적인 느낌이 들어 피하고 있습니다. 대신 '애독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노멀로그를 통해 저를 알게 되신 분들 중, 저와 실제로 만난 적 있는 독자 분은 단 한 분도 없으실 겁니다. 심지어 제가 책을 두 권 낼 동안, 출판사 관계자와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이메일과 전화, 우편으로만 필요한 모든 것을 주고받았습니다. 이 원칙이 올해들어 한 번 깨졌는데, 제게 어항용품을 분양해주신 남성 독자 분께 용품을 받으러 가느라 딱 한 번 뵌 적 있습니다.
제 글을 즐겁게 읽어주신다면, 전 그것으로 충분하고 감사합니다. 많은 돈이 목적이었다면 리뷰의뢰 등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고, 유명해지고 싶었다면 방송출연과 강연요청 등을 거절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도 '우리'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만, '우리의 노멀로그'가 아닌 '우리만의 노멀로그'가 되는 건 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열정적인 팬임을 자처하시는 분들 중엔 '우리'의 의견이 다를 경우 그 열정만큼의 실망을 갖게 되거나, 내가 당신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니 당신도 맹목적으로 지지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근래에 본 댓글 중 위험하다고 느꼈던 댓글 하나는,
"이런 사연들까지 다루는 건 무한님의 에너지 낭비다. 이런 별 의미 없는 사연은 내버려두고 괜찮은 사연을 다뤄줬으면 좋겠다."
라는 뉘앙스의 댓글이었습니다. 전 지금도 혹 그 분이 이 글을 읽고 엄청난 실망감을 느끼며 애정을 증오로 금방 전환하는 게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되긴 하는데, 좀 더 건강하고 성장의 여지가 있는 관계를 위해 이 이야기를 하는 거지, 비난하거나 비하할 목적이 아님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안타나 홈런을 칠 순 없습니다. 그래서 제 어느 글을 형편없을 수도 있고, 또 어느 글은 실망스러울 수 있으며, 또 어느 글에선 우리의 가치관이 정면충돌할 수 있습니다. 노멀로그에 논란이 생겼을 때 제가 미숙한 대처를 해 허점을 보게 된다든지, 아니면 반대되는 입장에서 뭔가를 주장해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고 말입니다.
제가 종종, 오래 전부터 노멀로그를 구독해 오신 원로독자 분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건, 그 분들은 제가 '돼'와 '되'도 잘 구별하지 못 하며 글을 쓸 때부터 애정을 가지고 변함없이 제 글을 읽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노멀로그 카운터를 보면 7천5백만이 넘어가는데, 그만큼의 방문이 있는 동안 소란과 논란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을 다 경험하면서도 꾸준히 빛을 비춰주시고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합니다. 월요일자 글에서 제가 제 많은 것을 기억하고 계신 독자 분이 제게 뭔가를 요구해 슬펐다고 했는데, 그땐 정말 친구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글을 통해 드러낸 제 속마음과 생각에 대해선, 그 분이 기억하고 계신 제 친구 H군보다, 그 분이 더 많이 알고 계실 테니 말입니다.
지속적인 애정을 부탁하려, 또는 잘못도 실수로 생각해주시길 부탁하려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서로에게 실망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좋았던 순간도 분명 있었다는 걸 기억하며, 당장 몽둥이를 들기 보다는 일단 이야기들 들어보기로, 멱살을 잡기 보다는 일단 손을 잡은 채 애기해 보기로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꺼낸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행동을 돌아보면, 이번 논란에 대한 제 대처는, 범인을 잡겠다는 생각에 몽둥이부터 들고 말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은 마음과 작은 생각으로 많은 분들에게 상처를 드린 것 같아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한 번 넘어지고 만 것 같습니다.
월요일자 글에 대한 댓글과 논란은, 중간에서 어리석은 이야기를 한 저에게 책임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제 의혹을 그대로 드러낸 글이 다른 분들에게도 의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때문에 저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제 결론까지를 그대로 받아들이셨을 수 있습니다.
반면 제 의심의 대상이 되신 분들은, 거리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는데, 인파 때문에 오도가도 못 하게 된 심정이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상황에서 당연히 도움을 줄 거라 믿었던 무한이 확성기를 잡은 채 방송만 하고 있으니, 아무 곳에도 더는 기댈 수 없이 패닉에 빠지셨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미 제가 엎지르고 만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더는 늦진 않길 바라며 이렇게 사과를 드립니다. 다급한 상황에서 발을 구르는 걸 보면서도, 하루 종일 그걸 '자멸해 가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는 것이 정말 죄송합니다. 어제 어느 분이 남겨주신 '이해와 공감'에 대한 조언을 봤을 땐 제가 더 답답했기에 억울함까지 들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그때라도 빨리 깨닫고 바로잡았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듭니다. 말 몇 마디로 치유될 리 없다는 걸 알지만,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 전하고 싶어 이렇게 사과드립니다. 제 잘못에 대한 보상은 두고두고 갚아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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