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에 난 한창 치과엘 다녔는데, 그때만 해도 내 2015년이 그렇게 밋밋하게 다 지나가 버릴 줄 몰랐다. 치과 치료를 끝내고 나니 4월에 친구 하나가 늦은 나이에 유학을 갔고, 5월에 두 친구가 각각 결혼과 파혼을 했고, 6월에 한 친구가 결혼 후 신부가 사는 지역으로 떠났고, 7, 8월엔 내가 더위에 지쳐있었고, 9월엔 생에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10월엔 생일이 있는 달이라 설렜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11월이 되어 있었고, 12월엔 홍콩에 다녀올까 말까 고민하다보니 2015년이 다 끝나 있었다.
난 누구나 나이를 먹을수록 정말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게 되는 건지, 삼십대가 된 이후로는 뭔갈 하기도 전에 한 해가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인데, 어머니께서도 내 나이 때 같은 걸 느끼셨는지 궁금해 여쭤보았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어머, 너 삼십대야?"
라고 하셨다.(엄마 그러지 마 무서워.)
노멀로그도 이제 9년차에 접어드는데, 그래서인지 독자 분들의 평균연령도 훌쩍 높아진 것 같다. 그 영향으로 내가 글을 쓸 때 더 엄격하게 자기검열을 하게 되고 드립도 자제하게 되는 문제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반대로 댓글의 수준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가는 장점이 생기기도 했다.
예를 들면 제 경우에는 제가 자다 깨서 남편을 부르니까 남편이 그 좋아하는 스포츠 중계를 보다 말고 당장 달려와 줬을 때, 이게 이 사람의 방식이구나 하고 기억해뒀습니다.
남편은 별 생각 없이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게 그 사람의 방식이기에 자연스럽게 나온 거겠죠.
그래서 저도 남편에게 애정을 느끼게 해주려고 제가 설거지를 할 때든 뭘 할 때든 남편이 부르면 고무장갑에서 물 떨어뜨리면서라도 당장 달려갑니다.
의식하지 않고 있는다면 나 지금 일 하고 있으니까 이따가 얘기하라고 하고 말겠지만요.
어렵지도 않고 작은 행동이지만 일상 속에서 자주 애정을 확인하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둘만의 신호가 되는 셈입니다.
- 밀크티님의 댓글 중.
서로 무시와 비아냥으로 치킨게임을 하는 중이던 어느 부부가 저 댓글을 읽는다면, 자신들이 무엇을 어떻게 잘못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단순히 배려하라거나 양보하라는 진부한 조언 보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저 이야기가 마음을 더 움직이지 않을까?
여하튼 독자 분들과 함께 나이를 먹을 수 있어서 참 좋다는 말씀을 드리며, 2015년 한 해 노멀로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같이 살펴보자.
2015 총 포스트 수 - 198개 / 총 댓글 수 - 17,113개 / 총 방문자 - 6,477,416명
1. 2015 노멀로그 최다 댓글 포스트 Best 5
1. 노멀로그 죽이기.
2. 남자와의 교류가 거의 없었던 여자, 연애하기 힘든 이유는?
(▼ 아래 두 단락은 평어로 쓰기가 좀 그러니, 이 둘만 예외로 경어를 쓰겠습니다.)
[노멀로그 죽이기]라는 글은, 8월 말에 있었던 사건과 관련된 글입니다. 노멀로그에 글을 발행하는 제 입장에서는, 당시 눈팅만 하시던 분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셔서 애정이 담긴 말씀들을 해주셨던 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신 후 해주신 말씀들도 제 태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흔들릴 때 제 글이 버팀목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던 분들이 제가 흔들릴 때 버팀목이 되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남자와의 교류가 거의 없었던 여자, 연애하기 힘든 이유는?]이라는 매뉴얼이, 바로 저 위의 사건을 촉발한 글입니다. 매뉴얼 말미에 적은 문단 하나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얘기는 접기로 하고 다른 얘기를 하나 하자면, 노멀로그 댓글난이 익명을 허용하고 있으며 광고나 욕설, 도배가 아닌 이상 삭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가끔 놀랍기도 합니다. 노멀로그가 아닌 네이버에 연재를 시작했던 첫 날, 거기서 "이건 또 뭐야? 병시나 꺼져."라는 댓글로 뺨 맞고 나니 노멀로그가 정말 온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진심은 통하는 법인지, 거기서도 지금은 따뜻한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이 많아졌고, 여하튼 뭐 그렇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갑자기 평어로 돌변하면 다중이처럼 보일 수 있으니, 아래부터는 평어로 작성된다는 걸 이렇게 미리 알려드립니다.)
[오래 사귄 여자친구의 프로포즈 거절과 이별통보]라는 매뉴얼은, '신경질'을 달고 살던 한 남성대원에 대한 이야기였다. 회사 앞으로 찾아온 여자친구에게 "나 언제 끝날지 몰라. 그러게 왜 안하던 짓을 해가지고…."라는 이야기를 하면, 그 결과가 이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그 대원은 몰랐다.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분명 더 조심하고 예의를 갖춰야 하는데, 그 대원은 안타깝게도 "또 시작이네. 한동안 좀 나아졌나 싶더니."라는 말까지 할 정도로 선을 넘고 말았다. 그는 여자친구에 대해 그녀의 단점을 서른두 가지나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분석했는데, 자신이 여자친구에게 어떻게 존재일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지 못했다.
[여자들이 경악하는 삼십대 남자의 행동 BEST5]는, 너무 서툴러 뭘 모르거나, 알 거 다 안다고 생각해 소개팅에 나와서도 상대를 가르치려 들거나, 아니면 계산적인 태도로 간만 보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분명 뭔가 좀 이상한 사례들에 대해 다룬 글이다. 한 사연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 쓸 때보다, 이렇게 핵심정리를 하는 게 나도 덜 힘들도 읽는 독자 분들도 부담 없이 읽으실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엔 베스트 워스트 카테고리를 신설해서라도 이런 '요점정리' 매뉴얼 쪽을 더 발행할까 싶다.
[이별 후 남은 건 빚과 파탄 난 인간관계 뿐]이란 매뉴얼은, 정말 사랑 하나에 눈이 멀었던 여성대원의 사연을 다룬 매뉴얼이었다. 그녀는 연애 내내 남자친구 때문에 힘들고 아팠는데, 그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라도 하면 그게 또 남친의 흠이 될까 싶어 그저 혼자 속으로만 앓았다. 남친이 돈 없어서 기가 안 산다는 떡밥을 뿌리면 그녀는 자신의 카드까지 내어줬는데, 남친은 한도가 초과되도록 카드를 써댔고 그녀는 투잡까지 뛰어가며 그 돈을 메웠다. 매뉴얼 발행 이후 소식이 없으면 '무소식이 희소식'인 경우가 많은데, 잘 살고 계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 2015 노멀로그 황당유입 키워드 Best 5
1. 남친에게 맞는 꿈.
2. 번호 알려줄걸.
3. 남자가 택시비 안 주면 관심.
4. 유부남이 싫어하는 여자.
5. 여자한테 돈 빌리는 법.
[남친에게 맞는 꿈]이 대표적인 키워드였고, 그 외에 '죽는 꿈', '싸우는 꿈', '헤어지는 꿈' 등의 키워드로 유입된 경우가 많았다. 왜 꿈해몽과 관련해 노멀로그로 유입되는 경우가 많은 건지 모르겠는데, 올해는 언제 한 번 관련된 조사를 한 후 '연애와 관련된 꿈'에 대한 매뉴얼을 발행해 볼까 한다. '~하는 꿈'은 매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워드다.
[번호 알려줄걸]에선, 그냥 키워드 자체만으로도 깊은 후회가 느껴졌다. 나도 가끔 인터넷 검색을 할 때 별다른 목적 없이 '배고픈데 뭐 먹지' 같은 문장을 넣어 검색해 보곤 하는데, 그것과 비슷하게 후회조의 문장으로 검색했다가 유입된 사례가 아닌가 싶다. 비슷한 키워드로는 '욕하지 말걸'이나 '말하지 말걸' 등의 키워드가 있다.
[남자가 택시비 안 주면 관심]이란 키워드도 있었는데, 이런 키워드로의 유입도 많은 편이다. '안 데려다 주는 남자 관심'이라든가 '생일축하 연락 안 하면 관심' 등의 키워드로 노멀로그를 찾게 되시는 분들이다. 이런 분들에겐, 상대에게 관심이 없어 보이면 생기게 만들면 된다는 얘기를 해드리고 싶다. 매뉴얼을 통해 바로 그 '방법'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으니,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보자.
[유부남이 싫어하는 여자]라는 키워드로의 유입은, 아마도 '유부남'과 관련된 매뉴얼 때문에 발생하는 일 같다. '유부남 상사', '유부남 연락', '유부남 이혼', '잘 해주는 유부남', '유부남 선물' 등 유부남과 관련된 다양한 키워드로 유입되는 분들이 있다. 관련된 사연을 보면 대놓고 즐기자는 식의 저돌적인 사례와 아내와는 그냥 간판만 부부라는 식의 말을 하는 사례가 있는데, 전자든 후자든 '세컨드'라는 것은 마찬가지니 서둘러 발 빼내길 권한다. 상대가 그 어떤 남자보다 다정하고 잘 해주기에 상대를 믿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대원들이 종종 있는데, 그건 세컨드로 있어주는 것에 대한 보상이기 때문이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현재 상대의 아내가 받고 있는 기만과 고통이, 훗날 그대에게 예약된 자리일 확률이 높다는 걸 잊지 말길 권한다.
[여자한테 돈 빌리는 법]이라는 키워드가 있었고, 그 키워드와는 반대라고 할 수 있는 '돈 빌리는 남자', '사달라는 남자' 등의 키워드도 있었다. 뭔가 나쁜 목적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하더라도, 되도록이면 연인 간에 돈을 빌리거나 빌려주진 말라는 얘기를 적어두고 싶다. 그렇게 돈이 왔다갔다하게 되면, 나중엔 돈을 빌리는 것에 무감각해지는 일이 벌어지거나, 어렵다는 말만 해도 상대가 알아서 빌려주길 바라게 되거나, 사정이 생겨 당장 갚을 수 없는데 돈 달랜다고 짜증을 내다 관계에 금이 가는 사례가 많다. 데이트 비용에 대해서도, 그간 받은 사연 통계 상 9 : 1 이거나 8 : 2 로 부담하는 경우 부담이 심화되거나 피로도가 쌓이는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한 쪽의 사정이 어려워지면 둘 다 긴축하는 쪽을 택하길 권해주고 싶다. 어려움을 대신 감당해주는 것보다는 함께 겪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적어두겠다.
3. 2015 노멀로그 최다 댓글 애독자 Best 20
1. AtoZ 님
2. 아포가토 님
3. 혈이 님
4. 진사유 님
5. 하루살이 님
6. 동이 님
7. greenjs 님
8. 스윗독자(구 싱가독자) 님
9. 기억안나 님
10. 속이 다 후련 님
11. 린 님
12. 새우튀김 님
13. 별꽃소녀 님
14. 아메리칸 님
15. 투우소 IX 님
16. 피안 님
17. 아마그럴껄 님
18. 스트로베리 님
19. 소피 님
20. 저그 님
그간 매년 결산 때마다, 한 해 동안 댓글을 가장 많이 남겨주신 열 분을 선정해 연하장 보내는 마음으로 글을 적어왔다. 난 그 분들과 댓글로 대화해 왔다고 생각하며 사적인 이야기들까지 적어왔던 건데, 작년 8월사건 이후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란이 벌어졌을 때 사적인 부분들까지 공격의 소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걸 보며 식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열 분이 아닌 스무 분의 명단을 적는 걸로 인사를 대신하려 하니, 양해해 주시길 좀 부탁드린다. 위에 닉이 등장한 애독자 분 외에 카카오 스토리 채널과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버튼과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 외부 연재 중인 네이버 포스트에 관심을 갖고 봐 주시는 분들, 그리고 커피 밀어주기로 응원해 주시는 분들, 잊지 않고 노멀로그 광고까지 눌러주시는 분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2016년이 시작한 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난 매일 사연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언젠가부터 해가 바뀌는 것에 좀 무감각하게 되었는데, 올해는 찾아오는 달마다 좀 새로운 기분으로 맞아주며 살 생각이다. 이런 다짐을 하다가 든 생각 중 하나가, 노멀로그 독자 분들의
"0월에 00에는 꼭 가보세요."
"00가 언제쯤 열리니 참고하세요."
"제가 누구누구랑 00에 언제쯤 갔었는데, 좋았어요."
등의 추천을 받아 월별 계획표를 한 번 짜보는 것이다. 사연을 읽다 보면 혼자서, 또는 연인과 갔을 때 참 좋았었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렇듯 좋았던 경험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공유해 주시길 좀 부탁드리고 싶다.
내일이면 또 생에 처음으로 맞이하는 2016년의 두 번째 월요일이 시작된다. 새해를 맞아 세웠던 계획이 흐지부지 될 것 같으신 분들은 다시 고삐를 당기시고, 아직 이렇다 할 계획이 없으셨던 분들은 작년, 또는 재작년에 세웠던 계획들을 돌아보시며 그것 중 여전히 안 되고 있는 것들을 발굴해 재도전 해보시길 권한다. 자 그럼, 다들 2016년을 행복으로 몰아가시길!
▼ 공감과 좋아요 버튼을 누르시면 상상도 못했던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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