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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과여행/여린마음해외여행

세부 크림슨리조트, 크림슨리조트 스노클링 - 필리핀 여행 2부

by 무한 2015. 9. 11.

세부에 도착하니 저녁이었다. 공항에서 나와 가장 먼저 한 일은, 공항 경찰에게

 

"Excuse me. Where can I smoke?"

 

라고 묻는 일이었다. 경찰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우측 택시정류장을 가리켰고, 난 습관적으로 팁을 줄 뻔 하다가 얼른 도로 넣곤 정류장으로 향했다.

 

바로 옆 정류장에 도착해 담배를 꺼냈는데, 라이터가 없었다.

 

'아…. 마닐라 공항에서 압수당했지.'

 

다행히 부근에 세부 청년 하나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난 다가가 손에 쥔 담배를 입에 무는 시늉을 하며

 

"Could I…."

 

까지 말했는데, 청년은 내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흡연자들끼리 통하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자신이 피고 있던 담배를 내밀었다. 말은 한 마디도 안 했지만, 그 불로 내 담배에 불을 붙이라는 뜻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담배를 피웠다. 청년이 내게 뭔가를 말하고 싶은 눈치였고, 나도 아무 말이나 한 번 걸어볼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이 우리를 가로 막고 있었고, 우린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대신 했다. 청년이 담배를 다 피우곤 날 보며 고개를 끄덕 거리며 갔는데, 거기엔

 

"세부 처음이신가 봐요? 즐겁게 놀다 가세요. 전 여기 공항에서 일해요. 지금 막 도착하신 것 같은데 얼른 숙소로 가서 쉬세요. 그럼 저는 이만 담배를 다 피웠으니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이거, 공항에 도착한 게 저녁인데다 당시 숙소로 가는 게 우선(밤에 세부에서 택시 타는 게 위험하다고 들었다)이라 이때 찍은 사진이 없다. 그러니 우선 리조트에 도착했을 때 찍은 사진을 먼저 한 장 올려두고 택시 얘기를 하기로 하자.

 

 

 

세부에 가면 흰 택시와 노란 택시가 있는데, 노란 택시는 공항택시로 우리나라 '모범택시'와 비슷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흰 택시를 탈 예정이었는데, 마침 국내선 출구 우측이 흰 택시 정류장이라 그곳에 가서 줄을 서 기다렸다.

 

현지인들이 많은 까닭에, 20분쯤 기다린 후 겨우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세부에서 택시를 타면 미터기를 켜는지 꼭 확인하라고 하던데, 다행히 미터기도 켜 있었다. 목적지를 말하자, 택시가 출발했다.

 

"Chinese?"

 

갑작스럽게 기사가 물었고, 난 저 질문에 "Korea."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대답 직후 잘못 대답한 걸 깨닫고 곧바로

 

"Korean."

"From korea."

 

라며 혼자 두 번 다시 대답했다. 그러자 기사는

 

"Oh, KOREA! I'm korean."

 

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누가 봐도 기사는 필리핀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종종 저런 식으로 말을 많이 시킨 후 팁을 더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기에, 난 그저 멋쩍게 웃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자 기사는 한국 어디서 왔냐고 내게 다시 물었다. 난 '파주'라고 대답하려고 하다가, 아무래도 파주보다는 일산이 더 유명한 것 같아 그냥 '일산'이라고 대답했다.

 

기사 - IL-SAN? Rosen Brau!

무한 - ?

기사 - 로젠 브로이.

무한 - 오! 로젠브로이. 라페스타.

기사 - 예스. 예스. 라페스타.

무한 - 오호~

기사 - 거기 친구 많아.

무한 - ?

기사 - 필리핀 친구 거기서 노래해. 싱어.

무한 - 오, 맞아요. 거기 필리핀 가수가 노래하는데.

 

갑작스런 한국말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후 우리는 계속 한국말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무한 - 한국말 잘 하시네요.

기사 - 6년 있었어. 김포.

무한 - 아, 김포.

기사 - 밤 공장. 일했어.

무한 - 공장에서 일하셨구나.

기사 - 주간, 야간. 나 야간.

무한 - 네. 일산이랑 파주에도 필리핀 사람 많아요.

기사 - 파주! 내 친구도 거기 있어. 유리공장.

무한 - 그러시구나.

기사 - 불법. 잡아가.

무한 - 네….

기사 - 세부 처음 왔어?

무한 - 네.

기사 - 예스.

 

옆에 타고 있던 공쥬님(여자친구)은, 웃으며 꼭 한국에서 택시 탄 기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택시기사가 공쥬님의 말을 받았다.

 

기사 - 한국이랑 비슷해. 저 옆에 벽돌공장.

공쥬님 - 아~ 벽돌공장.

기사 - 여기, 한국 인천공단 같아.

무한 - 인천공단 ㅎㅎㅎㅎ

기사 - 지금 사람들 퇴근시간이라 나오는 거야. 주간.

무한 - 네, 주간.

기사 - 사람들 지프니 타고 가.

무한 - 네, 지프니 알아요.

기사 - 한국에 있을 때 나 차 있었어. 빠른 차.

무한 - 무슨 차요?

기사 - 티뷰론.

무한 - 아, 티뷰론.

기사 - 사장님 나 세부 가지 말라고 했는데 왔어.

무한 - 사장님이 잡으셨구나.

기사 - 세부 택시 3년.

무한 - 네.

 

이후 우리는 마사지 얘기, 식당 얘기, 맥주 얘기, 교통 얘기, 물가 얘기, 과일 얘기 등을 나눴다. 마사지는 200페소, 그러니까 우리 돈 5000원 정도만 내면 한 시간 받을 수 있으니 지역 마사지샵에서 받으라는 얘기를 그는 해주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샵에서는 1시간에 900페소 정도 한다고 했더니 그는 고개를 저으며

 

"바가지."

 

라고 한국말로 말해주었다. 식사 역시 현지 식당에서는 1000페소(25,000원) 미만으로 둘이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다고 해주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그 정도 먹으면 3000페소(75,000원) 정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여하튼 그는 우리를 리조트에 내려줬고, 우린 체크인을 한 후 마트에 들러 저녁거리를 사야하니 좀 기다려 달라고 했다. 체크인을 마친 후 다시 그의 차를 타고 마트로 향했고, 우리는 거기서 필리핀 맥주인 산미겔과 과일, 안주, 간식 등과 기사에게 줄 음료를 구입했다. 담배도 구입했는데, 당황스럽게도 담배만 팔고 라이터는 팔지 않는다고 했다. 라이터를 사려면 밖으로 나가 작은 슈퍼 같은 곳에 들르라는 대답을 들었다.

 

난 택시에 타서 기사에게 다시 한 번 확인을 했다. 그러자 그 역시, 라이터는 작은 구멍가게 같은 곳에서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런 뒤 5분쯤 가다가 그가 택시를 갓길에 세웠는데, 난 갑작스러운 상황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기사가 문을 열고 내리며 라이터를 사오겠다고 했다. 난 라이터 값을 지불해야 하기에 같이 내리려 했는데, 그는

 

"Only me."

 

라며 나보고는 차에 남아 있으라고 했다. 아까 리조트에 올 때에는 그가 세부는 안전하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그 얘기를 할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저 말을 했다. 잠시 후 그가 라이터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작은 조명까지 들어오는 거라며 켜서 보여준 뒤 내게 건넸다. 가격을 물어보니 10페소(250원)라고 했다.

 

다시 리조트로 돌아오는 길, 어느 집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뭐 하는 거냐고 묻자, 기사는 누군가가 죽었을 때 필리핀에서는 저렇게 한 집에 모여 밤을 지샌다고 말해주었다. 이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우리가 출국하는 날 다시 우리를 데리러 와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언제냐고 묻고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리조트에 도착해 나는 그에게 한국 마스크팩(필리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걸 알고는, 선물로 주려고 챙겨 갔었다)과 100페소의 팁을 주었다. 보통 20~40페소의 팁을 주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가 여러모로 많이 도와줬기에 저 정도는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팁을 받은 기사는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하며 다시 출발할 때까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숙소. 얼음을 주문해 맥주를 담아두곤, 씻고 바로 저녁식사를 했다. 한 가지 안타까웠던 건, 마트에서 산 과일이 전부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거다. 망고는 덜 익었고, 망고스틴은 너무 익어 멍든 마늘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마트 직원이 손수 골라준 것인데, 먹을 수 없어서 버리고 말았다.

 

난 사실 어딜 가도 숙소나 음식 사진을 찍지 않는 편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숙소 사진을 많이 찍었던 것 같다. 첫 번째로는 지인이 제공해 준 숙소여서 그렇기도 하고, 두 번째로는 밖이 너무 더워 나갈 수 없으니 실내에서만 사진을 찍었다. 리조트 내부를 궁금해 하실 분이 있을 수 있으니, 아래엔 내부 사진을 두어 장 올려둘까 한다.

 

 

 

 

 

욕실이 있는 쪽 미닫이문이 고장났길래, 직접 고쳤다. 슬리퍼는 저 옷장 같은 곳에 들어 있다는 정보를 미리 접하고 간 까닭에 꺼내 신었다. 우측에 있는 커피포트로 라면과 소세지 등을 끓여 먹었고, 헤어드라이기가 없길래 전화를 해서 말했더니 갖다 주었다. 물은 기본 두 병 제공인데, 더 달라고 하자 네 병을 갖다 주었다. 룸에서 바로 이어진 베란다가 있는데, 흡연은 거기서 할 수 있다. 하지만 모기와 열기, 그리고 습기 때문에 오래 앉아 있긴 어렵다.

 

 

 

다음 날 아침, 현관에 저 통이 놓여 있었다. 안에는 꽃과 그 날 리조트의 일정표가 담겨 있다. 리조트 바깥 사진도 찍었어야 하는데, 너무 덥기도 하고 배가 고파 조식을 먹으러 가느라 찍질 못 했다. 이후에는 공쥬님 사진을 찍느라 풍경만 단독으로 찍질 못 했는데, 허락을 받았으니 그 사진이라도 올려둘까 한다.

 

 

 

룸에서 나왔을 땐, 위와 같은 느낌의 길이 펼쳐져 있다. 잔디가 작고 고르며,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회양목과 비슷하지만 잎이 더 크고 채도가 빠진 듯한 예쁜 나무들이 있다. 우측에 의자 있는 곳이, 내가 위에서 말한 베란다이다.

 

 

 

크림슨리조트에 왔으면 꼭 한 번 찍어줘야 한다는 인피니티 풀장도 찍었다. 볕이 너무 강할 시간인데다 구름이 안 예쁜 게 함정이다. 매직아워에 찍고 싶었지만, 저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로비인데다 다른 일정들이 많아 더 찍진 않았다.

 

사진으로 보면 수영장까지 바로 이어지는 듯 보이지만, 그렇진 않다. 그리고 맨 앞에 보이는 풀장은 발목까지만 담글 수 있는 수준이라 들어가서 노는 게 불가능하다. 저 사진에 낚여 리조트를 찾았다가, 시무룩해지는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고 한다.

 

 

 

역시 풍경사진이 없기에, 공쥬님이 나와 있는 사진을 올리게 되었다. 염장을 지르는 느낌이라 되도록 인물사진을 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올리게 된 점을 양해 부탁드린다. 좌측에 보이는 곳이 조식을 먹는 곳, 그리고 사진의 반대편이 풀장, 우측이 바다다.

 

 

 

스노클링을 하기 위해 바다로 내려와 찍은 사진이다. 파노라마로 찍을 계획이었는데, 몸은 이미 땀으로 다 젖어 있고, 볕은 강하고, 목이 말라 음료를 시켰는데 빨리 나오지 않아 대충 인증사진 찍듯 찍게 되었다. 여기서 음료를 시키다가 영어를 실수해 잠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무한 - I'll have 망고 스무스.

직원 - ?

무한 - ('망고'라고 해서 못 알아 듣는 줄 알고) 맹고 스무스~

직원 - 망고 스무디?

무한 - 아…. 스무스가 아니고 스무디지…. 오케이.

 

스무스의 th발음까지 나름 신경 써서 했는데….

 

 

 

망고 스무디를 먹고는 바다로 들어갔다. 수중촬영을 위해 큰마음 먹고 DSLR 방수팩을 구입해갔는데, 이게 물속에 들어가면 반사광 때문에 액정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감으로 찍어야 하는데, 처음 찍어보는 거라 구도가 죄다 엉망이긴 하다.

 

스노클링 장비는 한국에서 사갔으며, 구명조끼는 무료로 대여해준다. 오리발도 있고 리조트 자체의 스노클링 장비도 있는데, 그건 유료로 빌리는 걸로 알고 있다. 아, 스무디 가격은 290페소(7,250원) 였던 걸로 기억한다. 한국 물가로 치면 그렇게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필리핀 현지 가격으로는 꽤나 당황스러운 가격인 것 같다. 나중에 다른 택시기사와 대화를 나눴는데, 그는 내가 스무디를 290페소에 사서 마셨다고 하자

 

"스무디를 무슨 말통 같은 거에 담아주나?"

 

하는 반응을 보였다. 한 잔에 290페소라는 걸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이었다.

 

 

 

자, 본격적인 스노클링 시작. 새벽엔 물이 맑다고 하는데, 우리가 간 시간은 거의 점심때가 다 된 시간이라 물이 좀 탁했다. 해변 저 멀리에 그물이 있는 걸로 봐서는 리조트에서 물고기를 가두리 양식 하는 것 같았다. 안전요원이 대략 5~10분 간격으로 바다에 빵을 한 덩이씩 던져주는데, 그걸 먹으려 고기들이 몰려온다.

 

 

 

좀 더 깊은 곳으로 가면 더 많은 물고기들이 있다. 녀석들은 빵에 길들여진 까닭에, 빵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저렇게 있다가도 도망가 버린다. 그래서 난 안전요원이 빵을 던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고기들보다 빠르게 빵으로 헤엄쳐 가 빵 두 개를 얻어냈다. 공쥬님보고 빵을 쥐고 있으라고 한 뒤, 다시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그럼 대략 위와 같은 모습으로 고기들이 몰려든다. 각양각색의 물고기들이 몰려드는데, 물고기가 너무 많이 몰려드니 솔직히 살짝 겁이 나기도 한다. 빵과 손을 구별하지 못하곤 손을 쪼아대는 녀석도 있는데, 그러면 놀라서 빵을 떨어뜨리게 된다.

 

 

 

떨어뜨린 빵을 먹고 있는 녀석들이다. 한국에 있는 '끄리', 또는 '은어'와 비슷하게 생긴 저 녀석들이 먹이 경쟁에서 우위를 보인다.

 

 

 

좀 더 깊은 곳까지 가면 더 큰 물고기들이 있다. 거짓말 좀 보태서 참치만한 녀석들이다. 회를 떠도 될 것 같은 크기다.

 

스노클링을 하다 보면 시간이 흘렀음을 느끼지도 못했는데 한두 시간이 그냥 지나가 버린다. 손이 퉁퉁 불고 목 주변이 햇볕에 타서 쓰라림을 느끼면, 그제야 시간이 한참 지났음을 느끼곤 나오게 된다. 그리고 나이 때문인지, 물에 들어가 고기들을 구경하며 놀 땐 재미있는데 나와서는 급격히 피로감이 몰려온다. 배도 고픈데 졸리기까지 한 느낌이랄까.

 

이후 씻고 나서는 수영장에서도 놀았는데, 급격한 피로로 인해 사진은 별로 찍질 못 했다. 게다가 세부는 5시만 되어도 노을이 지려고 폼을 잡기에, 어두워진 관계로 사진 찍기가 좀 곤란했다. 또, 리조트가 외진 곳에 있는 까닭에 밥을 먹으려면 택시를 타고 나가야 했는데, 왔다갔다 하고 나면 시간이 다 가버릴 것 같아 점심도 간단하게 마트에서 산 것들로 때우며 놀아 더 피곤했던 것 같다.

 

 

 

다 놀고 난 뒤엔 택시를 타고 나갔다. 원래 계획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해산물을 먹을 예정이었는데, 공쥬님이 현지 음식이 맛보고 싶다고 해서 현지음식점으로 갔다. 크리스피빠따인가 하는 족발튀김, 감바스라고 하는 새우양념 볶음, 가리비 구이, 립 어쩌고 하는 갈비를 먹었다. 물론 산미겔과 함께!

 

아, 서빙 하는 여자 직원이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그녀가

 

"이거, 맛있어."

 

라고 하기에, 나는 쿨하게

 

"맛있어는 반말이잖아."

 

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 직원이 갈릭 라이스도 원래는 돈 주고 시키는 건데 막 퍼주고, 사진을 찍으니 그릇 배열까지 예쁘게 해 줘서 팁을 좀 건넸다. 그랬더니, 휴지를 좀 더 달라고 했을 때 아래 사진처럼 휴지를 장식해서는 가지고 왔다. 원래는 그냥 대충 꽂아주는 휴지인데 말이다.

 

 

 

 

잘 먹고 나와서는 다시 택시를 탔다. 아, 음식점으로 올 때 택시 탔던 얘기를 안 적었는데, 그 기사가 망고 스무디 가격을 듣고는

 

"290페소? 거긴 무슨 엄청 큰 통에 담아주는 건가? 설마 한 잔 가격은 아니겠지?"

 

라구 물었던 기사다. 또,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도요타가 한국 거냐, 기아는 한국 거냐, 등의 질문을 하기에 전부 다 알려주었다. 위의 식당은 '골든 까우리'라고 하는 곳인데, 'AA 바베큐'를 갈지 '골든 까우리'를 갈지 고민하다 물어보니, 기사는 '골든 까우리'가 날 것 같다고 대답해서 저기로 간 것이다. 음식 맛에 대해서도 안적은 것 같은데, 음…, 무척 짜다.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다 실수로 소금을 쏟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짜다.

 

아무튼 갈 때는 택시비가 147페소 나왔다. 그런데 돌아오려고 다른 택시를 타니, 그 기사는 미터기도 켜지 않은 채 300페소를 달라고 했다. 나는 우리가 올 때는 150페소도 안 되는 가격에 왔는데 어떻게 두 배를 받냐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긴 문장이라 바로 떠오르지 않아 생략하곤 조금이라도 더 가기 전에

 

"Drop me off here."

 

라고 말했다. 그러자 기사는 알았다며, 여기는 길가니 길 건너에서 내려주겠다고 했다. 난 내려서 다른 택시를 탈 생각이었는데, 공쥬님은 현지인들만 가득한 길거리에 내리는 것이 불안했는지 그냥 가자고 했다. 그래서 다시 200페소에 가자고 흥정했고, 기사는 250페소가 한계라고 대답했다.

 

내려서 또 택시를 기다리느라 시간을 버릴 바에는 50페소 정도 더 주고 타고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50페소를 내기로 결정하곤 그냥 가기로 했다.(리조트에서 나올 때에도 택시가 잡히질 않아 1시간 정도를 그냥 날렸었다.)

 

원래 어느 택시를 타든 하나 선물로 주려고 했던 마스크팩을, 이 택시기사에게도 그냥 선물로 줬다. 그랬더니 그때부터 태도가 완전히 변해서는, 자기도 어쩔 수가 없다, 이 지역 기사들이 모두 이렇게 한다, 등의 이야기를 해달라며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곤, 리조트에서 공항까지 보통 얼마나 걸리냐, 공항 근처에 점심을 먹을 만한 식당이 있냐, 내일 점심시간이 혹시 차가 밀릴 시간이냐 등을 물어보았다. 그는 내 물음에 대해서는 대충 대답을 해주곤, 마스크팩이 더 신기한지 계속 공쥬님에게 어떻게 사용하는 거냐, 얼굴 전체에 덮어서 쓰는 거냐 등을 물어봤다.

 

그런데 이 기사, 길을 모른다. 가다가 중간 중간 차를 세우곤 행인들에게 크림슨 리조트가 어딘지를 묻는다. 영어가 아닌 현지어로 묻는 거지만, '크림슨'이라는 단어가 대화중에 나오는 것과 차를 세우고 묻는 것만 봐도 길을 모른다는 걸 알 수 있다. 난 곧바로 따지고 싶었지만, 웹에서 다른 여행객들의 경우를 보니 길 모른다고 타박해 필리핀 사람의 자존심의 상처를 내면 엄청난 재앙이 벌어질 수 있다고 해서 그냥 참고 있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본인의 행동이 민망했는지, 기사도

 

"헤헤, 쏘리, 헤헤."

 

하며 급하게 차를 몰았다. 난 대충 택시를 타고 오며 길을 외워두었기에, 기사에게 여기서 좌회전을 해라, 여기서 우회전을 해라, 하며 길을 알려주었다. 처음부터 어딘지도 모르면서 안다고 했던 게 좀 황당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필리핀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해 '모른다'거나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필리핀에 있는 지인에게 들어보니, 거기서도 현지인이 고객에게 실수를 해 놓고도 절대 사과하지 않아 중간에서 처리 하느라 진땀을 빼는 일이 많다고 한다.

 

 

 

혹시 다른 길로 가서 납치라도 하는 게 아닌가 싶었던 택시도 무사히 리조트까지 도착했고, 우리는 방으로 들어와 쉴 수 있었다. 돌아오니 내가 쪽지로 부탁해 놓았던 타올아트가 만들어져 침대 위에 올려져 있었다.

 

아, 우리는 리조트에 오기 전에 마트에 들러 산미겔을 좀 더 샀다. 그런데 대형마트는 저녁 9시에 닫는데, 우리는 9시를 조금 넘겨서 마트에 도착했다. 마트 앞에 여자 가드가 있었는데, 나를 보고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래서 나 역시

 

"Hi~"

 

하며 들어가려 했는데, 갑자기 내 앞을 막더니 영업이 끝나서 못 들어간다며 다시 손을 흔들었다. 옆에 있던 공쥬님을 보니, 웃겨 죽겠다는 듯 웃고 있었다.

 

"왜?"

 

하고 물었더니,

 

"저 사람이 들어가지 말라고 손 흔든 건데, 넌 같이 손 흔들면서 '하이~' 이랬잖아. ㅋㅋㅋㅋㅋㅋ"

 

하며 숨도 못 쉴 정도로 웃어댔다. 호텔과 리조트에선 다들 먼저 인사를 하고 관광객을 반갑게 맞아주는데, 거기에만 있었더니 현지에서도 다들 그럴 거라 내가 착각했던 것 같다. 아무튼 이 일을 두고 공쥬님은 한국에 돌아온 지금까지도 나를 놀리고 있다. 하이, 하이, 하면서.

 

 

이렇게 세부에서의 마지막 밤도 어느새 저물었다. 난 잠이 오질 않아 베란다에 나가 산미겔을 마시며 담배를 피웠는데, 하늘에 오리온자리가 낮게 걸려 있었다. 한국에서 볼 때보다 오리온자리가 좀 더 커 보이는 느낌이었는데, 아마 해외에 나와서 처음 별자리를 본다는 기분 탓에 그랬던 것 같다.

 

이때까진 정말, 다음 날 그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지 못 하고 있었다. 첫 날 우리를 리조트까지 데려다 주었던 택시기사, 100페소의 팁과 선물까지 받아간 '벤자민'이라는 그 기사가 분명 리조트로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3)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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