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를 하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난 정말 친하게 지내려고 한 것뿐인데, 왜 다들 그걸 이성적인 호감으로 오해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어느 모임에 가든 결국엔 내가 나쁜 사람인 것처럼 되고 만다. 마녀사냥 당하듯 그렇게 몰리는 것도 너무 힘들고, 변함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는데 그게 모조리 깨지는 것도 너무 싫다."
그래서 전,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예림이. 왼 손 펴봐. 왼 손 아래 있는 거 그거 떡밥 아냐? 떡밥 뿌렸네. 그간 떡밥을 뿌렸으니까 고기들이 제 시간에 모이는 건데, 왜 그 얘기는 쏙 빼고 고기들이 밥 달라고 모여 짜증난다는 얘기만 해? 왜 이렇게 혓바닥이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기차 얘기는 못 들은 걸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음악 하는 사람에게 악상이 떠오르듯,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저런 것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당장은 읽었을 때 별로 웃기지 않기에 몇몇 분들은 '왜 이러는 거지?'하실 수 있지만, 한적한 미용실 같은 곳에서 헤어디자이너에게 "혓바닥이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라고 말하는 상상을 해보시면 빵 터질 수 있습니다.
여하튼 금요일입니다. 저녁부터 비가 내린다니 물금이 될 확률이 높은데, 여하튼 최근 오답노트만 많이 발행했으니 오늘은 사연모음 한 번 다루겠습니다. 위의 '예림이'이야기는 첫 번째 사연과 이어지니, 아직 버리진 마시고 들고 계시기 바랍니다. 출발하겠습니다.
1. 다른 사람 만나 봐도 그 여자 생각만 납니다.
P씨가 지독히도 좋아한다는 그녀. 전 그녀가 '어장관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그럴 사람 아니며 제게 잘 해준 적도 있고, 또 그녀 스스로도 그런 오해 때문에 힘들어 하고…."
그녀의 이미지가 어떻고 의도가 어땠는지에 대해 저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전 그녀의 행동을 봅니다. 그녀의 행동들에서 전 '어장관리'가 분명하다는 걸 발견했고, 이대로 계속 가면 P씨는 사고를 치거나 전문의의 도움이 필요해질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나쁘게 말하자면 그녀는 '악질 어장관리자'에 속하고, P씨는 이제 희망고문에 익숙해져 더 큰 아픔도 계속 감내할 것 같습니다.
그녀의 진입장벽은 낮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남자는 그녀와 친해지자마자 사귈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갖게 됩니다. 아주 가벼운 스킨십이긴 하지만 그녀는 이성을 터치하는 것에 익숙하고, 연락을 하면 꼬박꼬박 답을 잘 해줍니다. 게다가 연락을 하는 상대가 오해하고 남을 정도의 리액션을 해주며, 먼저 연락을 하기도 합니다. 또 감정을 살펴주는 대화를 하기도 하고 애교도 부립니다. 보통의 여자라면 부담스러워서 단박에 거절할 것 같은 부탁도, 그녀는 일단 받아준 뒤 나중에 피치 못해 거절하는 것처럼 말하거나 다른 주제로 은근슬쩍 돌려 거절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나는 친한 사람들과 딱 지금과 같은 사이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싶다."
라고 말합니다. 그녀가 '친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남자들이 그녀에게 친절과 호의를 베푸는 건, '썸'을 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P씨만 해도 썸녀에게는 어디 다녀오며 선물 하나 사다주려고 하고, 또 밥도 같이 먹으려고 하며, 그녀가 도움을 요청해도 최선을 다해 들어주려 하지 않으십니까? 그건 그녀와 사귀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아낌없이 베풀고 또 그녀에게 잘 해주는 건데, 그녀는 상대를 '아는 오빠'나 '모임 친구'로 둔 채 계속해서 그런 친절과 호의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상대가 어장임을 깨닫고 나가버리면, 그녀는 '그에게 실망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그건 당연한 겁니다. 뭔가 잘 될 것 같은 분위기를 느끼곤 그녀에게 친절과 호의를 베풀었는데,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여지를 남기며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면, 저라고 해도 마음을 거둘 겁니다. 이쪽에서 바랐던 건 '선택'인데 그녀는 '시식'만을 원한 것이니 말입니다.
또, 제가 무엇보다 이 상황이 위험하다고 느끼는 건, P씨가 집착 쩌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잘라내지 않고 다른 핑계들로 거부할 뿐이라는 점입니다.
그녀 - 그냥 카톡으로 말해요.
P씨 - 잠깐도 안 되나? 답장 계속 기다렸는데 전화 좀 받지.
그녀 - 카톡으로 말하면 안 돼요?
P씨 - 하기 싫어. 진짜 너무하네.
그녀 - 혹시 전에 하신 말과 같은 말이라면, 제 대답은 똑같아요.
P씨 - 알어. 알았다. 전화 안 해도 돼. 나 어제 좀 화났었다 너 때문에.
그녀 - 왜요?
P씨 - 아무튼 난 다 그만둘 거다. 너를 여자로 안 보고 지낼 자신 없다.
그녀 - 왜 그만둬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P씨 - 널 그냥 동생으로 볼 수 없으니까. 아무튼 얼굴 보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녀 - 너무 감정적으로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P씨 - 그냥 지금 전화 좀 통화하면 안 되나?
그녀 - 지금 전화 받을 수가 없어요.
P씨 - 그럼 내일은 전화 되나? 억지로 만나자곤 안 할게.
그녀 - 너무 감정적으로 선택하지 마세요.
P씨 - 아무튼 그러니까 전화하면 안 되나?
그녀 - 오빠가 절 좋아하신다면 저를 배려해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P씨 - 제발 전화로 얘기하면 안 되나? 나중에라도 제발.
그녀 - 다음 주 수요일 시간 언제 괜찮으세요?
P씨 - 왜 또 다음 주 수요일이야.
그녀 - 나머진 다 선약이 있어요.
그녀가 착해서 저러는 것이든 어장관리를 해서 저러는 것이든, 이러면 P씨는 그 관계에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계속 존재하는 듯 착각하게 되고, 나중엔 모든 감정이 그녀에 대한 배신감, 또는 증오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녀는 'P씨랑 영화 볼 생각 없음'이라는 말을 그대로 하지 않고 '영화 보다 다른 게 더 하고 싶다. 사람들 모아서 다른 곳 가자'라는 식으로 말을 하는데, 그게 '거절'이라는 걸 P씨는 알아야 합니다. 희망이나 가능성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얘깁니다.
현재 P씨는 이 관계에서 P씨가 잘못한 것이 뭔지, 또 어떻게 해야 상대와 잘될 수 있는지 등을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그런 P씨에게 저는, 이 관계를 통해 뭔가를 돌아본다는 것까지도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녀와 잠시 친했다가 그녀를 등지고 떠난 남자들이 괜히 그런 게 아닙니다. 더불어 P씨가 다른 연애를 하다 돌아와도 그녀가 별 감정의 변화 없이 반겨주니 '역시 얘가 내 운명의 짝인가'하는 착각이 들겠지만, 그런 것 역시 아닙니다. P씨가 결혼한다고 말해도 그녀는 웃으며 축하한다고 말해줄 것입니다. 그러니 계속해서 점점 더 깊이 들어가지 마시고, 이쯤에서 밖으로 나오시길 권합니다. 꼭 P씨의 문제라서가 아니라 그녀가 그런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문제도 있으니, 아무 것도 돌아보지 말고 그냥 나오시길 바랍니다. 살려면 거기서 나와야 합니다.
2. 남친과의 관계가 무덤덤한데, 결혼해도 될까요?
결혼에 대한 고민이 담긴 사연이면, 최소한 A4 열 장은 되어야 합니다. 세 장으로는 그냥 '투정'을 듣는 것 정도의 일밖에 할 수 없어요. 남친이 이것도 안 해주고 저것도 안 해준다는 이야기만 듣고 '결혼을 해도 좋은가, 아닌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건 위험한 일 아니겠습니까? 때문에 K양의 질문 중 '결혼을 해도 좋은가'에 대한 부분은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 말고 현재상황이 벌어지도록 만든 것들을 좀 살펴보자면, 첫째로 '잘못된 습관이 든 데이트'가 있습니다. 만나서 데이트를 하는데 몸만 같이 있을 뿐 서로 각자 폰만 들여다보고 있거나, '넌 뉴스, 난 웹서핑'을 하는 건 좋지 않은 습관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같이 있을 땐 폰을 들여다보는 걸 최소화 하는 게 어떤지에 대해 대화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K양이 자신이 원하는 걸 남친에게 강요하는 문제가 있습니다.(좀 심한 비유를 하게 될 것 같으니 미리 양해를 좀 구하겠습니다.) 남자친구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에겐 K양과 만나는 게 '목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K양과 만나면 이것도 하면 안 되고, 저것도 하면 안 되는 일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에게 K양과의 만남은, 그냥 일 끝나고 친구 만나 같이 술 한 잔 하는 것처럼 만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랬다간 왜 계획도 없냐는 소리를 듣게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또 K양과 만나면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소리도 듣게 될 것이며, K양이 하고 싶었는데 못 한 것에 대한 불평을 하면 그걸 다 듣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외에 K양이 불만을 가진 것들에 대해서도 듣고 있어야 할 것이고 말입니다.
또, K양은 사연신청서를 적으며
"그건 허락함."
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그것과 반대로 K양이 남친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 건 얼마나 되는지도 돌아보시길 권합니다. 남친에겐 줄이고, 변하고, 끊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지만 K양에겐 그런 부분이 없지 않습니까? K양은 "그건 다 잘 되자고 그러는 거잖아요."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이유로 모든 걸 통제 하에 두려고 하면 상대는 숨 막힐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시길 권합니다.
K양의 사연을 읽으며 제가 답답했던 것 중 하나는, K양이 '현재 애정의 확인'을 미래에 대한 보장으로 생각하며 확인하려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운전할 때 운전만 하고 손 안 잡아줘요."
"보통 남자들은 집에 데려다 주고 갈 것 같은데 안 그럴 때가 있어요."
"주 2회 만나고 땡이에요. 전 더 만나고 싶은데요."
결혼을 하냐, 마냐를 고민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런 부분만 체크하고 있으면 정말 곤란합니다. 이제 그가 운전할 때 손 많이 잡아주고, 집에 충실하게 데려다 주며, 주 3회 이상 만나면 그를 완전히 믿고 결혼해도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지, 둘의 1년 후, 3년 후, 5년 후는 어떨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둘의 생각을 맞춰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 없이 남친이 지금 결혼을 진행하려고 하니 별 생각 없이 탑승해 버리면, 둘이 식장에 들어갈 수 있을지 부터 확신할 수 없게 됩니다.
현재 남친 부모님은 두 사람이 결혼하면 같이 살기를 바라는데 K양이 남친에게 물어보면 남친은 그럴 생각 없다고 하고, 뭐 그런 상황이지 않습니까? 이거, 잠깐 며칠 제주도 가서 묵을 숙소 정하는 그런 게 아닙니다. 결혼 계획을 세운다는 게, 드레스 고르고 식장 고르는 게 다가 아니란 얘깁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 없이 그냥 '지금 멀리까지 가는 것도 귀찮아하지 않으며 데이트 하니까' 정도의 이유로 결혼을 해버리면, 결혼이 내 인생을 망쳤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30일 정도 유럽여행을 가게 된다면, 그땐 안 읽던 책까지 읽어가며 준비하고 카페활동하며 정보를 캐내지 않습니까? 이거 30년 이상 상대와 함께 하게 될 '결혼'입니다. 남친에 대한 불만 몇 개 추려서 '손금 봐 주세요' 하듯 묻지 마시고, 보다 치열하고 진지하게 달려들어 고민하시길 권합니다. 지금 "남친은 감정적인 건 잘 돌봐주는데 한 방이 없어요. 그래서 결혼이 고민돼요."같은 얘기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이상한 계획표를 가지고 확인하면 그 결과도 이상하게 나오는 법이니, 계획표부터 싹 다 바꾸셨으면 합니다.
자, 오늘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물금이 될 확률이 높지만 그래도 다들 즐거운 금요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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