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씨의 사연은, 총체적 난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거 한 꼭지로 다룰만한 사연이 아니긴 한데, 여하튼 사연을 뽑아들었으니 무라도 썰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빙빙 돌리지 않고 바로 말하자면, 우선 지성씨가 컨셉('콘셉트'가 맞는 말입니다.)을 잡았으면 컨셉 대로 가야 한다는 얘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좀 수줍은 모습을 보이는 게 편해서 그렇게 다가갔으면, 일단 그 모습을 쭉 이어나가면 됩니다.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해 친구가 말해주는 대로 따라하지 말고,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겁니다.
번호는 좀 나중에 물어봐도 되는 거고, 밥 역시 나중에 먹어도 됩니다. 그런데 지성씨는 친구가
"야, 번호를 따야지. 그리고 만나서 밥 먹으며 얘기를 해봐."
라고 하니, 곧바로 친구의 말을 따르지 않았습니까? 친구가 그녀의 친구와 친해서 좀 떠봐준다고 하자 그래주길 바랐고 말입니다.
그래 버리니까, 일단 주변의 말대로 지르기는 하는데 진행이나 수습이 안 되는 겁니다. 연락처를 교환했으면 상대와 대화를 하면 되는 건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지성씨는 아래와 같은 대화를 해버리고 맙니다.
지성 - 저, 아까 전화 번호 받아간 지성입니다. 혹시 오늘 일 끝나고 같이 저녁 드실래요?
상대 - 저 오늘 고모 댁 가요ㅋㅋㅋ
지성 - 네, 그럼 다음에 시간 될 때 같이 식사해요. ㅎㅎ
상대 - 네~ 그래요 ^^
사연을 보내는 것도 보내는 거지만, 이래서 제가 이전 매뉴얼들을 좀 읽으시라고 권하는 겁니다. 저는 그간 자연스레 음식 얘기로 시작해 약속을 잡는 방법, 맛집을 구실삼아 약속을 잡는 방법, 스토리텔링을 이용해 식당에 갈 약속을 잡는 방법 등 참 다양한 방법들을 소개해 두었는데, 매뉴얼을 읽지 않은 지성씨는 그냥 참 정직하고 요점만 간단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더불어 상대가 선약이 있다고 말하면, 그것을 계기로 몇 마디 더 나눌 수 있는 여러 방법들에 대해서도 이미 매뉴얼이 발행되어 있습니다. 위의 경우라면, 보통 고모님과 친한 경우가 많지 않는데 상대는 좀 특별한 것 같다는 얘기를 해도 되고, 혹은 고모 댁이 머냐거나 뭐 타고 가냐고 물어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상대가 거부감을 표현한 적 없는 관계이니, 고모 댁에 갈 때까지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눠도 되는 거고 말입니다.
이후 지성씨가 상대에게 보낸 카톡도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든 '만날 약속'을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지성씨는 그 흔한 '안녕'도 말하지 않고 다짜고짜
"내일 8시 괜찮아? 너무 늦은가? ㅎㅎ"
라는 말부터 꺼내고 맙니다. 상대가 그 시간에 일이 있다고 하니,
"그럼 끝나고는 괜찮아? ㅎㅎ"
라고 묻고, 이후에는 상대가 몸이 좀 안 좋다고 하니
"그래? 그럼 힘들겠네. ㅠㅠ"
"몸 안 좋으면 어쩔 수 없지. ㅠㅠ"
"몸 괜찮으면 끝나고 볼래?"
라고 물을 뿐입니다.
여하튼 그러다가 상대와 만나기는 했는데, 저는 '왜 저렇게 만나는 것에 목숨을 거는 것인가? 만나서 대체 뭘 할 작정이길래?'하며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상대와 만나 지성씨가 한 일이라곤
- 저녁에 또 약속이 있다고 하는 상대에게 실망.
- 만남 중 상대가 이후 만날 사람과 통화하는 것에 실망.
- 상대가 타고 갈 버스가 오자 망설임 없이 버스를 타고 간 것에 실망.
위의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상대가 지성씨와 만난 후 이미 있던 선약도 취소하고, 또 저녁에 집에 들어갈 때에도 버스를 몇 차례나 그냥 보낸 후에 마지못해 집에 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면 지성씨도 기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상대의 생일이 언제인지 동생이나 언니 오빠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저절로 다 그렇게 되길 바라는 건 욕심이 아닐까요?
"제가 궁금한 건, 왜 처음엔 괜찮았던 그녀의 태도가 지금은 '읽씹'으로 변했냐는 겁니다. 아,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리면 저는 처음에 만났을 땐 어색해하지만, 친해지고 나면 저를 재밌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건 '낯가림'과는 큰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지성씨가 상대와 뭘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계획 없이 그저 막연히 상대가 지성씨에게 호감을 보이기를 바라는 게 첫 번째 문제고, 그 다음으로는 지성씨가 상대에 대해 알고 싶어 하기보다는 빨리 연애부터 하고 싶어하는 게 두 번째 문제이며, 오로지 상대가 나에게 호감 있나 없나만 확인하려 드는 게 세 번째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지성씨가, '날 보면 잘 웃어주고 대답도 잘 해주는 상대'라고 해서 무작정 연애로 이으려 하진 않았으면 합니다. 사실 상대에 대해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할 말도 없는데 일단 잘 받아주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요새 무슨 음악 들으며 어떤 영화 보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를 먼저 만들어보시길 권합니다. 그건 타자연습과 같아서 안 해 본 사람은 못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꼭 상대가 아니더라도, 지성씨가 고민상담을 하고 의논한다는 그 동성친구들처럼 지낼 수 있는 이성친구들을 만들어 보길 권해드립니다.
좋은 월요일입니다. 최근 들어 댓글창이 활발해져, 읽는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다만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은, 친목이 형성되면 다른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는 부분입니다.
여기다 다 적자면 한없이 길어질 수 있으니 짧게 적겠습니다. 내년이면 9년차가 되는 노멀로그에서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러한 일들에 의한 결과로
- 독자 간 연락처 교환은 지양해 주시길.
- 댓글을 통해 말을 놓거나 언니, 오빠, 누나, 형, 동생 등으로 호칭하는 건 지양해 주시길.
- 정모나 번개를 하려는 시도는 지양해 주시길.
등을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혹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지신 분들 중엔
"제가 그랬던 건 무슨 이성과 만나려고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댓글을 나누며 친해진 사람과 그러려고 했던 것인데…. 그리고 매번 보다보니 친해진 느낌이 들어 좀 더 친근하게 표현한 것인데…."
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그걸 또 우리가 '착한 목적', '나쁜 목적' 이렇게 나누기도 애매한 것이고, 또 그러다보면 댓글로 "언니 헬로~", "어 안녕ㅋ"하며 끼리끼리 어울리는 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친해지다 보면 아무래도 유대감이 형성되는 까닭에 훗날 다른 누군가와 갈등이 생겼을 때 무리를 이뤄 공방을 하게 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말입니다.
노멀로그에서는 그간 그런 일들이 몇 차례 있었고, 그 분들 중 두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노멀로그와 인연이 끊겼습니다. 그 모임 내부에서 갈등을 겪다 누군가가 나가버리거나, 그 안에서 연애를 하다 헤어져서 머쓱해진 까닭에 발길을 끊거나, 친목행위의 정도가 심해져 제가 그 이야기를 공지로 적었다가 인연이 끊기거나, 뭐 그런 식으로 멀어진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또 발생한다 해도 노멀로그는 바다처럼 늘 이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만, 조금씩 양보하고 주의해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함께 막았으면 합니다. 월요일부터 무거운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 다들 따뜻한 월요일 저녁 보내시길 바랍니다. 늘 감사합니다.
▼ 공감과 좋아요 버튼 클릭은 사랑입니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응?)
'연애매뉴얼(연재완료) > 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리스마스 특집 묵은 연애사연 정리 1부 (90) | 2015.12.24 |
---|---|
10년째 짝사랑하던 그녀와 연락중인데요. (72) | 2015.12.23 |
연애도 연애지만 대인관계가 너무 어려워요. (136) | 2015.12.11 |
남자들에게 대시도 받는데 저는 왜 아직 모쏠일까요? (112) | 2015.12.10 |
여친 없다던 짝사랑남이 결혼한대요. (72) | 2015.12.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