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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먼저 사귀자고 했던 여친, 그녀의 이별통보. 외 1편

by 무한 2016. 1. 25.

올해 3월에 해외에 다녀오기로 약속하곤 항공권까지 다 예약한 커플이라 해도, 둘 중 하나가

 

- 갈등의 순간에 문 쾅 닫거나 전화 끊기.

- 왜 그것밖에 못 하냐고 지적하기.

- 생활에 간섭하고 통제하려 들기.

 

등을 시작하면 며칠 내로 헤어질 수 있다. 저런 일들을 벌이고 난 뒤

 

"해외여행 계획 세울 때만 해도 정말 분위기 좋았거든요. 그런데 왜…."

"친구들도 저희가 헤어졌다는 걸 믿지 못 해요. 그냥 잠깐 싸운 거 아니냐고 하는데…."

"여친 어머니께서 절 정말 예뻐해 주셨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헤어지는지…."

 

라는 이야기를 하는 대원들이 많은데, 난 그들에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겁니다."

 

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건, 인간성 좋고 친절한 의사가 있다고 해도 그의 실력이 좋지 않으면 그의 환자가 되고 싶진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첫 사연의 주인공인 B군은 이 지점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엉뚱한 부분을 이야기하며 재회하고 싶어 하는데,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부터 함께 살펴보자.

 

 

1. 먼저 사귀자고 했던 여친, 그녀의 이별통보.

 

여자친구 입장에서 봤을 때 'B군 이어야 하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똑똑하다든가, 성실하다든가, 세련되다든가, 깔끔하다든가, 유머러스하다든가, 재치 있다든가, 다정하다든가, 리더십이 있다든가, 박력이 있다든가, 남에게 못 하는 이야기를 B군에게는 털어 놓을 수 있다든가, 날 위해 거의 모든 것을 해줄 남자라는 믿음이 있다든가, 하는 여러 가지 중에 하나는 있어야 한다.

 

저런 게 없거나 부족하다면, 상대가 먼저 고백해 사귀게 되었다 하더라도 마음이 점점 식을 수밖에 없다. 멋져 보이는 카드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 카드의 혜택이 아무 것도 없는 걸 깨달았다면, 카드를 들고 나가는 횟수가 적어지거나 아예 카드를 없애버리지 않겠는가.

 

"그럼 제게 아무 매력도 없어서, 그게 헤어지게 된 이유라는 건가요?"

 

B군이라는 한 사람 자체에 대한 아무 매력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자신의 매력을 전혀 보여줄 수 없는 사례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집착의 늪에 빠졌을 때'는 심각할 정도로 수동적으로 굴며 상대에게 백치와 같은 모습만을 보여주게 된다.

 

연애할 때 B군이 어땠는지를 보자. B군은 여친과 대화할 땐 '다른 의도'를 캐내려 했고, 떨어져 있을 땐 내게 더 집중하라며 구속하느라 바빴다. 이런데 무슨 매력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집착의 늪에 빠진 채로는, 상대를 몰아세울 증거만을 찾느라 매력을 보여줄 수가 없다.

 

만나서 함께 있는 순간엔, 상대가 잠시 폰을 보거나, 피곤해 하거나, 100% 만족해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보인다거나, 나랑 더 있을 수 있는데 들어가려 한다거나, 하는 부분에 대해 서운해 하거나 좌절한다. 상대와 떨어져 있을 땐, 지금 연락할 수 있는데 상대가 연락을 안 했다거나, 나랑 만나서 놀 수 있는 시간에 친구들을 만나서 놀고 있다거나, 한 모임에 둘이 참석해서도 내 옆에 붙어 나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도 대화를 나눈다거나, 하는 부분에 대해 또 서운해 하거나 좌절한다.

 

두 사람이 헤어진 지금도, B군은 여친과 대화하기 보단 친구들과 머리를 맞댄 채 방법을 찾으려 하고, 여친의 이별통보에 대해서는

 

- 선택대로 따르리라. 하지만 다른 사람이 생겨서 그런 건 아닌지?

 

라는 생각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찾아가지 못 하고, 만나자고도 못 하고, 전화도 못 하고, 그저 겨우 폰 붙잡은 채 카톡으로 애원을 해보려 하고 있으면 연애도 못 하게 된다. 하루하루가 숨 막히고 눈물만 흐른다는 얘기는 이쯤하고, 뭐라도 좀 해보길 권한다. 친구들이

 

"홧김에 헤어지자고 한 것 같으니 조금 더 기다렸다가 연락해 봐."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아. 그러니 정리될 때까지 시간을 좀 두고 기다려봐."

"다른 남자랑 연락하진 않는 것 같아. 그런 애 아니니까 의심은 하지 마."

 

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계속 그들에게 묻고 확인받으려 하지 말고, 당사자인 여친과 대화를 하자. 왜 멀리 빙빙 돌아가며 상관도 없는 사람들과만 뒤에서 쑥덕거리고 있는가. 여친이 날 싫어할 것 같다, 여친에게 내가 민폐를 끼치는 것 같다, 여친은 나보다 다른 남자를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등의 B군이 혼자 만든 불안은 내려놓고, 아무 확인과 대답도 받으려 하지 않은 채 여친을 만나보길 바란다.

 

 

2. 친구 보다는 가깝지만 연인은 아닌 우리, 어쩌죠?

 

죄송합니다만, 사연을 몇 번이나 다시 읽어봐도 '친구 이상'이라고 말씀하신 부분의 증거가 안 보입니다. 아무리 봐도 상대는 Y양과 상대는 '아는 사이' 정도인 것 같은데, 이런 와중에 '사귀면 벌어질 일' 등을 고민하신다는 게 좀 혼자 너무 멀리까지 가신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일부러 제게 말을 안 거는 것 같았고…."

 

Y양의 저런 짐작이 효력을 가지려면, 그 반대의 사례가 존재해야 합니다. 상대가 평소엔 다정했는데 어떤 사건으로 인해 갑자기 다정한 모습을 거두었다든지, 아니면 Y양에게 호감을 느껴 연락도 자주 하고 친근함을 표시했는데 어느 순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든지 하는, 뭐 그런 게 있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Y양과 상대 사이엔 그런 게 없지 않았습니까?

 

이렇다 할 일이 없는데 거기다 의미부여를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상상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같이 거리를 걸으며 대화를 나눴던 것, 그리고 술을 마시며 몇 마디 했던 것, 또 대화하다 찾은 공감대에 대해 앞으로 서로 연락 주고받자고 한 것 때문에 Y양은 이걸 썸과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시게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오늘 어떤 모임에 가서 누군가와 친해진 뒤 나눌 수 있는 대화 수준일 뿐입니다.

 

"파주 사세요? 파주 어디? 문산이요? 삼거리식당 아세요? 정미식당은? 거기서 임진각 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헬기장 하나 있는데, 저 거기 별 보러 많이 갔거든요. 그리고 연말이면 임진각에서 재야행사해서 불꽃놀이 보러도 자주 갔는데. 경의선 운정역 아시죠? 최근에 야당역도 생겼잖아요. 저 야당역 근처 살아요."

 

같은 동네에 산다는 걸 알게 된다 해도 별 말 없는 사람이 있는 반면, 몇 번 가본 곳에 산다는 걸 알게 되면 그걸로 대화를 이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수영을 할 줄 안다든지, 기타를 칠 줄 안다든지 하는 취미의 공감대를 찾았을 때 그걸 발판삼아 대화를 이어나가는 사람도 있는 거고 말입니다.

 

물론 상대의 저런 태도를 '관심'으로 해석한 후 만남과 연락의 횟수를 늘려 친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 정도의 친근함 표시를 '이성적 호감'으로 해석한 후 이제 연애가 시작될 일만 남았다고 여기는 건 너무 성급한 생각입니다. 

 

더군다나 Y양은, 위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될 경우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

 

라는 생각을 좀 금방 하는 편인데, 그런 태도는 훗날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현재 제일 가깝게 지내는 이성이 상대여서라든지, 아니면 이제 막 알게 되었기에 아무래도 머릿속의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게 상대일 수 있는 건데, 그럴 때마다 그걸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여기면, 금방 사랑에 빠졌다 또 금방 헤어지는 일이 벌어질 수 있고, 가까운 이성이 있다면 그들과 전부 연애를 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져 주변의 이성들을 멸종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 사실 이 사연보다, 연애에 임하는 Y양의 태도가 좀 걱정이 됩니다. 그간 이런 식으로 연애를 시작하셨다거나 누군가와 만나셨다면, 분명 많은 문제들이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실제 두 사람의 관계와는 큰 관련 없이 혼자 마음을 걸거나 접으려 하는 모습이라든지, 아니면 상대가 표현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Y양이 혼자 의미를 부여하는 게 분명 문제를 일으켰을 겁니다.

 

이건 깜빡이만 켜면 아무 곳에서나 유턴을 해도 되는 걸로 잘못 알고 있었던 사람이, 그간 많은 문제를 일으켰을 게 분명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이 관계는 덜컥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기 보다는 둘이 영화부터 한 편 같이 보는 사이가 되는 것 정도로 시작해 보기로 하고, 그것보다 Y양의 과거 연애에 대해 한 번 정리할 겸 사연을 주시길 권합니다.

 

 

사연을 하나 더 준비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오늘은 두 편만 다뤄야 할 것 같다. 오늘부로 '밀어주기' 위젯이 종료된다고 하던데, 그간 글을 읽으시곤 커피 한 잔씩 밀어주셨던 독자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내일부터는 날이 많이 풀린다고 하니, 오늘까지만 추위 잘 버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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