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새끼고양이 작명을 부탁드린 글에, 백여 명이 넘는 독자 분들께서 댓글로 참여해주셨다. 몇 가지 이름으로 좁혀질 거란 내 예상과 달리 다들 다른 의미가 있는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그래서 이름을 정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말았다. 그 중 두 번 이상 나왔던 이름을 추리면 아래와 같다.
[검은색 수컷/노란색 암컷]
조니/대니(6표)
짜장/카레(3표)
초콜릿/캐러멜(3표)
흑자/노른자(2표)
깜냥/꽁냥(2표)
별이/연이(2표)
저 이름들 중, 이번 매뉴얼 댓글로 가장 많이 추천을 받은 것을 선택할까 한다. 녀석들이 아직 새끼인 까닭에 눈이 파란색이라 존과 대니(존 스노우, 대너리스)보다 ‘아더’에 더 가까운 듯 보이긴 하는데, 여하튼 최근 사진을 한 장 더 업로드 할 테니 사진 속 녀석들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을 댓글로 적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자 그럼, 고양이 이름 얘기는 배웅글에서 더 하기로 하고 매뉴얼 출발해 보자.
1. 연애는 꾸준히 하는데 서너 달이 끝이에요.
S양의 연애가 서너 달짜리 단기연애로 끝나고 마는 가장 큰 이유는, 그다지 크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사귀기 때문이다. S양의 연애는 대부분 S양이 거절해도 상대로부터의 열정적인 대시가 계속되면 시작되는데, 이래버리면 귀찮음이 설렘을 넘어서기가 힘들며 상대의 관심을 간섭정도로만 여기는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전 제가 쉴 때 방해 받는 걸 제일 싫어해요. 사소한 것까지 참견하는 것도 싫어하고, 시끄러운 사람도 싫어해요. 하지만 연인으로서 이렇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건 힘들죠. 지금 생각해 보니, 상대방이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제가 헤어지자고 했던 것 같네요. 저 진짜 못된 것 같아요.
그런데 저도 괴롭거든요. 그래서 올해는 차라리 아무도 사귀지 말자고 생각하며 솔로로 지냈어요. 하지만 어쩌다 보니 연애를 다시 하고 있네요. 지금 남친에게는 제가 생각보다 무뚝뚝하다고, 서운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말해둔 뒤 저도 조심하고 있어요.”
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드는 사람과 만나야 한다. 그런 마음이 드는 사람과 만나야 가슴이 뛰는 거지, 그저 내 앞에 가장 열심히 줄 서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만나면 그와의 연애는 ‘사귀어주는 것’ 또는 ‘팬서비스’가 될 확률이 높다. 어쨌든 사귀는 사이니 연인들이 하는 모든 일을 함께할 순 있겠지만, 상대가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목소리를 듣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면, ‘상대의 여자친구’라는 배역을 맡아 질리기 직전까지 연기만 하다 끝날 수 있고 말이다.
또, 여행을 가더라도 돌아다닌 만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연애 역시 얼마나 마음을 쓰고 참여했나에 따라 그 깊이가 달라질 수 있다. 일본에 다녀왔다 하더라도 공항에서 내린 뒤 바로 호텔로 직행해 거기서 이틀 묵고 돌아온 거라면, 물리적으론 여행을 다녀왔다 할 수 있겠지만 남는 건 공항과 호텔에서의 기억밖에 없지 않겠는가.
늘 얘기하지만, 한 사람은 하나의 세계다. 때문에 진정 ‘그에 대해 안다’는 건, 상대라는 세계를 어디까지 여행해 봤나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서너 달 만나다 S양은 방해받고 싶지 않은데 상대가 간섭한다며 이별을 말할 정도면, 공항과 호텔만 오간 여행과 다를 바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연애를 하니 누구를 만나든 상대는 장삼이사처럼 보이는 거고, 상대가 베푸는 은혜와 같은 관심에 고마워하긴커녕 귀찮고 불쾌한 기분만 느끼고 마는 것이다.
“갈수록 더 짧은 연애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이젠 제가 지레 상대의 패턴이 어떨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금방 헤어지게 돼요.”
공항과 호텔만 오가는 얕은 연애를 반복하면 점점 더 나빠질 수 있다. S양과 비슷한 고민을 하던 선배 대원 중에는, 아직 비행기 타지도 않았는데 발권만 하곤 ‘가봐야 별 거 없을 듯.’이란 생각으로 발걸음을 돌린 대원도 있다. 소개팅 잡혔는데 상대가 카톡으로 몇 마디 하는 걸 보고 바로 잘라낸 것이다. 그 대원은 내게
“전 이제 소개팅 하러 나갔을 때, 그 날의 느낌만으로도 어떻게 될지 예상이 가능해요. 상대가 멀리서 걸어오는 것만 봐도 ‘아, 이 사람이랑은 안 되겠구나’하는 게 바로 느껴져요. 뽀송뽀송하지 않은 기분이 든달까요? 그런 축축한 기분이 들었을 때 잘 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아니 무슨 인간 습도계인가? 만나면서부터 이미 ‘너랑은 글렀다’는 생각으로 상대를 대하니 잘 될 턱이 없는 거고, 습도계도 아니면서 자꾸 마음의 습도가 어쩌니 하며 앞날부터 점치려 하니 본인 앞에 놓인 인연을 구경만 하다 끝나는 거다.
최소한 허리까지는 담가야 옷이 젖는다는 걸 잊지 말자. 신발 벗고 바지 걷은 채 발로 참방참방 할 뿐이면, 물기 툭툭 털고 뒤돌아서는 게 전혀 어렵지 않아진다. 이러면 상대나 연애로 인해 상처를 받는 일은 방지할 수 있겠지만, 마음 역시 아무 곳에도 가 닿지 못하고 말 것이다. 상대에게 “난 앞으로 널 서운하게 만들 수도 있어.”라며 물가에 주저앉아 있는 걸 이해받으려 하지 말고, 상대라는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진 채 즐거운 여행을 해보길 권한다.
2. 남친이 헤어질지 시간을 가질지 결정하랍니다.
내게 도착하는 사연 중엔, 이십대 초반에 사람 하나를 잘못 만나 서른이 넘어서까지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되는 사례들이 있다. 이쪽의 여림과 순수함과 애정을 상대가 악용한 까닭에, 자존감은 곤두박질치고 괴상한 세뇌로 인한 죄책감이나 공포에 시달리는 것이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닌 말 한 마디. 기껏해야 스물 대여섯 된 철없는 상대가 함부로 뱉어버린 그 말 한 마디에 상처를 입어, 불안과 두려움의 후유증을 앓게 된다.
사랑했기에 상대의 말에 더 귀 기울인 거고, 신뢰했기에 상대의 판단을 자신의 판단보다 더 무겁게 여기며 이쪽의 모든 비밀까지도 다 털어 놓았던 건데, 상대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해 평생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남기고 만다. 저주 섞인 비아냥. 약점에 대한 집요한 공격. 받지도 않을 거면서 무릎 꿇고 사과하라는 위협. 그리고 완전히 파괴해버리려는 듯한 조리돌림.
J양이 서 있는 그 지점이, 바로 저 길로 접어드는 초입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난 J양에게 상대와 반드시 헤어지길 권하고 싶다. 그는 J양에 대한 애정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으며, 지금은 ‘재회’를 인질삼아 J양을 마음대로 조종하려 하고 있을 뿐이다.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심술을 부려가며 J양을 내치지 않을 것이고, J양의 허물을 들춰가며 완전히 굴복시키려 들지 않을 것이며, ‘헤어질지 시간을 가질지 결정’하라며 모든 선택과 책임을 J양의 몫으로 두지 않을 것이다.
마냥 좋을 때 애정표현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날도 별로 춥지 않고 앞에 모닥불까지 활활 잘 타고 있는 상황이라면, 외투 벗어주는 건 일도 아니잖은가.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지, 그리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는, 칼바람 부는 겨울에 모닥불마저 꺼졌을 때 알 수 있다.
똑같은 의미가 담긴 말이지만
“아무 일 없었다고 해도, 이성인 친구도 포함된 무리를 자취방에 데려와 술 더 마시고 잠드는 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라는 말과, J양 남친이 한
“남자애 집까지 끌어와서 재우네. 막나가자는 거지 그냥.”
이라는 말은 분명 다르다. 게다가 그가 저 일을 빌미 삼아
“너도 막나가는데 난 그러면 안돼? ㅋㅋ 앞으로 안 그러긴 뭘 안 그래?”
“나도 오늘 술 먹고 여자애랑 잘까?”
“ㅋㅋ 그냥 마음대로 행동해. 바쁘니까 톡 그만 보내.”
라며 비아냥대는 모습을 보면, 이런 일이 벌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J양의 편에서만 이야기하는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난 솔직히 이 갈등의 원인제공을 한 게 J양이라 하더라도, 남친이 막으려고 했다면 얼마든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적극적으로 행동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일을 일부러 수동적인 태도로 방관한 뒤, 결국 일이 벌어지면 그때 심술까지 부려가며 몰아세우는 느낌이랄까.
또, 그가 헤어질 건지 생각할 시간을 가질 건지 선택하라고 한 후, J양을 괴롭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지점 역시 난 못마땅하다. J양이 바짝 엎드려 사과를 하고 매달리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아냥거리기만 했다. 그래서 J양도 더는 뭐라 할 말이 없었던 건데, 그러자 그는 먼저 말을 걸어
“나는 네가 침묵하지 않았으면 했다. 뭐라도 더 얘기할 줄 알았는데….”
라며 다시 찔러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널 차갑게 대하니까 어때? 내 태도에 실망하거나 섭섭했어?”
라는 이야기도 했는데, 저건 그냥 J양을 기만하며 꼬투리 잡아 계속 갈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니 그만 얘기하라고 말해놓고는, 이쪽에서 더 할 말을 찾지 못해 눈치만 보자 “이제 안 미안한가보네?”라며 다시 형벌을 이어가는 것과 같다.
완전히 실망해서 더는 말도 섞고 싶지 않은 거라면, 명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게 맞는 일이라 나는 생각한다. 그러진 않고 “넌 잘못한 사람이니, 찍소리도 하지 말고 내 심술을 다 받아내.”라고 말하듯 좌로 굴러 우로 굴러 하면,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은 팔꿈치와 무르팍이 다 까지도록 계속 구를 수밖에 없다. 그게 너무 힘들어 그만 좀 봐달라고 울먹이며 말하면, 그땐 또 “넌 네가 힘든 건 알면서 내가 힘들었다는 건 모르나 보네.”라며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을 시키면 어디 하나 잘못될 수 있는 거고 말이다.
이번 일 자체가 사실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몰고 갈 일이 아니기에, 이미 남친이 기분을 풀어 두 사람이 다시 만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남들이 다 욕해도 둘만은 서로를 감싸야 하는 연인이 가장 앞장서서 비난하고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닌지, 허물을 덮어주긴커녕 그걸 구실로 군기 잡거나 형벌을 내리고 있진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보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또, 그렇게 만나다 보면 둘의 관계는 ‘애정’이 아닌 ‘애증’만 남아 쉽게 놓아주지도 않는 병든 관계가 될 수 있는데, 그땐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을 떠올리며 꼭 돌아 나오길 권한다.
고양이 이름 고르시는 것을 좀 더 돕고자, 녀석들 사진을 몇 장 더 올릴까 한다.
이 녀석은 만지면 발라당 드러누워 장난을 친다. 손을 갖다 대면 할퀴지 않으려고 발톱을 감추며, 분유도 수월하게 잘 먹고 있다.
이 녀석은 자기 몸 챙기는 조심성은 가득하지만, 손을 할퀴거나 젖병을 끌어당기는 까닭에 애를 먹이고 있다. 다만, 배변을 할 때에는 이 녀석이 훨씬 얌전하게 엉덩이를 들이댄다. 분유를 먹을 때 검은 녀석이 두 눈을 다 뜨는 것과 달리, 이 녀석은 뭔가를 느끼는지 눈을 감고 사지를 떨어댄다. 한 쪽 눈을 잘 못 뜨는 것 같아 안연고를 발라줬더니, 지금은 잘 뜬다.
이젠 좀 컸다고 지들끼리 레슬링을 하기도 하고, 물고 누르고 하며 장난을 친다. 추우면 둘이 꼭 붙어 몸을 맞댄 채 있기도 하고, 한 녀석 분유 먹일 땐 다른 녀석이 자기도 달라며 다가와선 다리에 올라탄다. 분유를 잘 먹는 것까지는 좋은데, 잘 먹어서 기운이 남아도는지 울음소리도 그만큼 커졌다. 시력이 나날이 좋아지는지 날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하고, 내가 소리를 내면 귀를 쫑긋하며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만 적어두면 뭔가 행복하고 단란할 것 같아 보이겠지만, 솔직히 피곤하다. 내가 어쩌다 고양이 분유 먹이고 트림 하라고 등까지 문질러 주며, 배변하라고 장마사지까지 해주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료를 먹을 수 있게 될 때까지는 다른 고양이 부럽지 않게 돌볼 생각이다. 지금도 밥 먹을 시간 되었으니 어서 젖병 가져오라고 울기 시작하는데, 어서 글을 올리고 가봐야겠다. 다들 즐거운 수요일 보내시고, 가시기 전에 댓글로 서두에 있는 고양이 이름 하나씩만 추천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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