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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3년 만에 다시 연락한 여자, 그녀와 결혼하고 싶은데요.

by 무한 2016. 7. 1.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 결혼해선 안 됩니다. 저는, 김형이 서른이 되기 전까진 거의 모쏠처럼 지내고 이후에는 그저 선만 몇 번 보며 짧은 만남만을 가졌던 까닭에, ‘뭣이 중헌지’를 모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날씬하고 예쁘다’는 것 하나 때문에 그녀와 결혼한다면, 나머지 모든 부분에서 시행착오와 절망을 겪게 될 거라 확신합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그녀의 결혼관이 ‘돈 벌어다 줄 사람 구하기’에 가깝기 때문.

 

김형과 그녀의 데이트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 김형의 돈으로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같이 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형은 이걸 그저 ‘그녀가 리드하는 데이트’라며 좋게만 표현하는데, 정말 그런 건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김형이 하고 싶은 것’을 함께 하자고 제안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 제안이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라 예상합니다.

 

그녀가 “결혼하면 이거 사줄 거냐, 저것도 사줄 거냐.”라고 묻는 것 역시, 이게 두 사람이 같은 목적지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김형과 결혼해주는 대가로 뭔가를 받는 것’에 더 가깝다는 증거입니다. 그녀가 요구하는 건 신혼여행을 어디로 가자는 것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받고 싶은 물질적인 것들이지 않았습니까? 그건 ‘미래계획’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결혼해주는 대가로 받을 것들’을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녀가 말했던 것들이 제 기준에서는 전부 비싼 물건들이었는데, 초반에 이런 걸로 다투면 헤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제가 전전긍긍하며 말을 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며 데이트를 했고, 마음을 얻기 위해 최대한 데이트 비용 많이 내가며 어필하려 했고요.”

 

전 그 지점에서 두 사람이 완벽한 오해를 한 거라 생각합니다. 김형은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그녀도 김형의 마음을 알아주며 동반자가 되리라 생각했던 거고, 그녀는 김형이 그런 것들을 다 해줄 정도면 앞으로도 원하는 걸 다 들어줄 테니 결혼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결혼하면 상대가 변할 거라 생각한 것이 김형의 오해, 그리고 결혼하면 김형이 더 헌신할 거라 생각한 것이 그녀의 오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결혼생활 수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생활비 액수를 제시했을 때, 그녀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모으면서 살 수 있을 거라고요. 그런 걸 봤을 땐 ‘그래도 생각 없이 살진 않겠구나’싶었습니다.”

 

그게 막 그런 식으로, 데이트 중 지나가는 말로 물은 뒤 대답을 들어 판단하고 결론 내릴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 두 사람이 어떻게 살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데, 그걸 무슨 “물냉면이 좋아, 비빔냉면이 좋아?”라는 질문하듯 간략히 물어서 되겠습니까? 가깝게는 두 사람이 식을 올리는 것에 대해 누가 뭘 어떻게 알아볼 것인지, 그리고 어디에 자리를 잡고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 3년 후의 계획은 무엇이고 5년 후의 계획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만약 지금과 같은 대화만 나눈 뒤 결혼했는데, 그때 상대가

 

“돈 더 있어야 해. 이걸론 생활비 하면 남는 것도 없어서 즐기면서 못 살아. 전에 충분하다 그러지 않았냐고? 그땐 그럴 수 있을 줄 알았지.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 지금.”

 

이라는 얘길 하면, 그때 김형은 어떻게 대처하시겠습니까? 여행 가자고 했을 때 상대가 알았다고 해서 다 해결된 것이 아니듯, 결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가면 다 알아서 되겠거니, 했다간 내 인생과는 관련이 없을 줄 알았던 ‘별거’, ‘이혼’, ‘소송’같은 단어들과 친해지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상대가 해달라는 것을 김형이 해줄 수 있다고 말하기만 할 게 아니라, 상대는 뭘 어떻게 할 생각인지에 대해서도 묻고 답을 들으시길 권합니다.

 

 

2. 그녀에게 김형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없기 때문.

 

정말 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 계약서에 ‘0’하나가 더 쓰여 있는 건 아닌지를 확인할 때보다, 훨씬 더 유심히 봐야 합니다.

 

“그녀는 저에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며, 제게 불만인 부분들에 대해 지적을 하는 편입니다. 제 입장에선 그런 행동들이 제게 관심이 있으며 신경 써주고 있는 거란 생각이 들고요.”

 

전 그 부분을 김형과는 완전히 반대로 보는데, 그녀는 그냥 ‘재력’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에 대해 김형에게 불만이 많은 겁니다. 해달라는 대로 해주니 결혼까진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나머지 부분들은 마음에 차지 않으니 김형을 개조하려는 거지, 신경을 써주는 게 아닙니다.

 

- 운동을 해서 이러이러한 몸을 만들어라.

- 옷 입는 것에도 신경 쓰고, 꾸며라.

- 그 외에 이러이러한 부분들은 다 바꿔라.

 

지금은 김형에게 콩깍지가 씌어 있으니 저 말들이 ‘관심과 애정’으로 보이겠지만, 콩깍지가 벗겨지고 난 뒤에는 ‘불평과 불만’이라는 게 명확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서는 100% 완벽한 신붓감이라고 생각하며, 김형에게만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부분에 대해 고치라고 하는 중이지 않습니까. 김형이 그 부분에 대해 “나도 존중받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녀가 꺼내든 카드는 무엇이었습니까? ‘여기서 그만하자.’라는 것 아니었습니까?

 

김형이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상대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는 게 좀 죄송합니다만, 그녀는 그냥 자기 멋대로인데다 ‘잘못이 있다면 그건 분명 내가 아닌 상대가 저지른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 한 차례 갈등을 겪은 후 그녀가 한 말을 보시기 바랍니다.

 

“왜 나를 끝까지 달래주지 않았냐.”

“난 사과만 거듭하는 오빠 모습이 더 싫고 화가 났다.”

 

‘우리’보다는 ‘나’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꼬꼬마라면 저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삼십대 후반이 되어서도 저러고 있다면, 늘 ‘받는 연애’만 한 까닭에 자기 아픈 것만 알지 남 아픈 건 모르는 거라 볼 수 있습니다. 이후엔 또 어떻습니까? 김형이 사과를 해도 그녀는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달성할 때까지 대화도 하지 말고 만나지도 말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단언컨대, 만약 김형이 지금 그녀와 결혼한다면, 결혼해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지, 관계를 인질로 삼아 자신의 요구사항만 말하진 않는지, 연락 끊고 만나지도 않는 걸 자신이 쥔 칼자루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정말 유심히 봐야 합니다. 그녀에겐 김형에 대한 애정도 없고 존중도 없습니다.

 

그녀가 김형에게, ‘다시 만나더라도, 내게 오빠를 사랑하는 마음이 들 때까지 노력해라’라고 말하는 걸 놓치지 말고 봐야 합니다. 당장은 그녀가 엄포를 놓으니 김형은 어떻게든 다시 그녀와 전처럼 지낼 수 있도록 관계를 되돌리는 것에만 마음이 급하겠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왜 그래야 하는지’까지를 꼭 함께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김형은, 그녀를 어르고 달래 어떻게든 다시 결혼을 진행시키기만 하면, 둘의 앞날엔 사랑과 평화와 행복만이 가득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다시 말하지만, ‘뭣이 중헌지’를 꼭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거, 김형의 남은 반평생이 달린 일입니다.

 

 

3. 그녀가 다가온 건 미련이나 후회가 아니라 유적발굴이기 때문.

 

두 사람은 3년 전에 선을 한 번 본 적 있는 사이일 뿐, 그것 외에는 지금까지 아무 교류도 없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김형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으며, ‘재미없고 답답하다’는 악평까지 거침없이 해가며 차버렸습니다.

 

그런 그녀가 뜬금없이 3년 후에 연락을 해온 건, 김형과 선을 봤던 시간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가 남아서는 결코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3년이 지난 그 시점에 만나는 사람도 없고 만나자는 사람도 없으니, 과거에 자신에게 호감표현을 하거나 대시한 적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을 겁니다. 그러던 중 김형이 그 연락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니, 만나보기로 한 것일 거고 말입니다.

 

이번 연애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면, 김형이 먼저 연락을 한 것도 아니고 상대의 환심을 사려 이렇다 할 노력을 한 것도 아닌데, 사귀기까지가 엄청 쉽지 않았습니까? 그냥 오는 연락 받은 뒤 만나서 밥 한 번 먹자고 하니 연애까지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습니다. 사귀고 나니, 계절하나도 바뀌지 않았는데 금방 결혼 얘기까지 오갔고 말입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김형의 연애가 진행된 것만 놓고 보자면 이건

 

- 그녀가 결혼하고 싶어 하던 중 김형에게 연락한 것.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 결혼은 김형의 의사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겁니다. 모두 그녀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김형이 해야 할 건 결혼비용 및 이후 생활비를 대는 것과 그녀가 불만을 품는 부분을 고쳐야 할 일밖엔 없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녀의 뜻에 거슬리는 일이 발생하면 그녀는 ‘헤어지겠다’는 카드를 꺼낼 것이고 말입니다.(그 일은 이미 벌어져, 지금 우리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너무 돈과 관련된 부분을 예민하게 생각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연애 블로그를 보니 여자가 밥을 사는 건 굉장히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 시간이 지나면, 그녀도 언젠가는 제게 밥을 사겠거니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가를 지불해야만 만날 수 있는 기형적인 관계를 제외한다면, 그 어떤 연인이 상대에게 밥도 한 번 못 얻어먹겠습니까. 이런 와중에 결혼 얘기가 오가는 건 말도 안 되는 겁니다. 이건 완벽하게 일방적이며 한 쪽이 굴러 떨어질 정도로 기울어진 관계입니다. 밥 한 번 안 사면서 김형에게 수천만 원짜리 선물을 요구하는 그녀는 염치와 개념도 없는 사람일 뿐이고 말입니다.

 

김형이 쇼핑몰 가서 그녀에게 옷 사줬을 때 그녀가 뭐라고 했습니까.

 

“여기서 몇 벌 사도 백화점 옷 한 벌 가격 밖에 안 돼요. 다음에 또 사줘요.”

 

고맙다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그녀에게 그때는 김형도 좀 실망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저런 태도를 보며 그저 실망만 할 게 아니라, 그녀의 됨됨이가 어떤지를 바로 파악했어야 합니다. 저런 반응은 절대 정상적인 반응이 아닙니다. 저 사건 하나만으로도 눈치 챘어야 하는데, 김형에게 커다란 콩깍지가 씌인데다 다투면 헤어지게 될까 무섭다는 생각이 커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저에 대한 그녀의 마음이 커졌는지, 그녀가 먼저 여행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걸 보면 제게 호감이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김형이 신청서에 적었듯, 그녀가 한 여행 제안은 의외였으며 오히려 김형은 ‘너무 빠른 거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까?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사례를 예로 들어 말하자면,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자고 말하기만 하면 상대가 교통비, 숙박비, 식비 다 대니 남의 카드로 긁자고 말하듯 제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혼 전 커플 피부관리나 외모관리 하자며 성형외과 피부과 티케팅을 하도록 부추기는 경우도 있고, 골프가 치고 싶었는지 같이 배우자며 장비부터 회원권까지 다 끊도록 유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형이 사업실패로 재산을 다 날렸을 때에도 그녀가 옆에 있어줄 것 같은지, 사정이 생겨 일을 못하고 집에 계속 같이 있게 될 경우 과연 행복할지, 사고를 당해 필담으로만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서로 웃으며 필기를 할 수 있을지 등을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김형은 현재 자신은 다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으니, 그 반대의 경우일 때에도 가능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시라는 겁니다. 그게 안 되는 관계인데 상대가 날씬하고 예쁘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구애하고 청혼까지 하면, 그 앞길은 필연적으로 가시밭길이 될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김형, 제가 노멀로그에 매뉴얼을 발행하며 이렇게까지 결사반대 한 적은, 아마 ‘술 취하면 때리고 술 깨면 사과하는 남친’에 대한 사연 정도 말고는 없을 겁니다. 그만큼 김형의 사연이 심각하단 얘깁니다. 김형 부모님께서는 상대를 보시곤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고 했는데, 효도하는 차원에서라도 이 관계를 결혼까지 이끌진 마셨으면 합니다.

 

그녀가 김형에게 실망하고 이제 다시 안 만날 것처럼 행동해 걱정하고 있는 김형의 염려와는 달리, 그녀는 반드시 김형과 다시 만날 겁니다. 그녀가 김형에게 걸어 놓는 조건을 봐도 그건 관계를 끝내려는 사람이 거는 조건이 아니며, 그녀 입장에서 김형은 ‘해달라는 것 하고 싶다는 것 다 해주는 남자’에 가까운 까닭에 절대 이대로 끝내진 않을 겁니다. 김형이 계속 침묵하고 있으면 오히려 그녀가 다시 먼저 연락을 해 올 것이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김형을 말리고 있는 겁니다. 이게 그저 그녀가 김형에게 의존해 살아가며 김형도 그게 나쁘지 않아 톱니 물리듯 맞물려 살 수 있는 거라면 저도 이렇게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쓴 시나리오대로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김형의 콩깍지가 벗겨지고 나면 그녀 역시 불행을 피할 순 없을 것입니다. 결혼까진 성공적일지 모르나, 결혼생활은 생지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아이가 있다면 아이까지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됩니다. 김형과 비슷하게 결혼해 7년을 살다 지금 이혼소송 중인 사연이 지금 제 옆에 있어 드리는 말씀이니, 낯모르는 제가 하는 말보다 그녀의 말이 달콤해 다시 만나시더라도, 백여덟 번 정도는 고민해 보신 후 결혼을 결정하셨으면 합니다. 아니면 적어도 그녀와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만나보고 결정하시길 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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