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까요 말까요, 하고 묻는 사연은 참 다루기가 어렵다. 헤어지지 말라고 해서 계속 사귀었는데 문제가 생기면 내 탓, 헤어지라고 해서 헤어졌는데 그 사람보다 나은 사람 없는 것 같다며 후회가 될 때면 또 내 탓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고민을 할 정도의 연애 중엔, ‘사연을 보낸 사람이 내 여동생이라면?’이라는 가정을 했을 때 당장 헤어짐을 권하고 싶은 사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내 여동생도 잘한 것 없으며 상대가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에 일조했다면? 또, 내 여동생이 본인만 배려 받으려는 마음을 가진 채 상대에 대해 ‘배려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상대가 뭘 사주려 할 때에도 괜찮다며 계속 거절해 놓고는 나중에 ‘그렇다고 진짜 안 사주네?’라며 불만을 품고 있다면?
헤어지고 싶으면, 헤어져도 괜찮다. 그저 상대가 슬퍼하고 힘들어할 것을 생각해 하루하루 더 지속하기만 하는 연애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다만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왜 헤어지게 되는 것이며, 그 이별사유는 대체 어쩌다 형성된 것인지’는 꼭 살펴봤으면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다음 사람을 만나더라도 비슷한 일로 또 헤어지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M양 커플의 사연을 함께 살펴보자.
1. ‘착하기만 한 남친’의 문제.
M양 커플의 경우, M양 남친에게 좀 문제가 많은 게 맞다. M양은 그를 ‘착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착하기보단 ‘자기 의견’이라는 게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냥 멍하니 있다가 이쪽에서 우회전 하라면 우회전하고 또 화내면 사과하는 거지, 딱히 ‘착한 모습’이라고 할 만한 건 찾아보기 어렵다.
나이에 비해 자신이 뭔가를 결정하거나 주도해나가는 것에 취약한 것 역시 그의 단점이다. 집안 분위기에 따라 좀 다를 수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서른 중반인 남자가 부모님이 계시면 전화통화를 못 한다든지, ‘엄마의 말’을 앞세워 여자친구에게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미성숙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친구 중에 둘째 애 돌잔치까지 한 친구가 있을 정도의 나이인데, 그 나이에, 그것도 2년 넘게 사귄 커플이 부모님께 들키면 안 되는 것처럼 만난다는 게 여기서 봐도 답답하다.
그의 ‘센스 없음’과 ‘성의 없음’역시 문제다. 서른 중반쯤 되었으면 원하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 뒤의 결과와 현재의 상황까지 고려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는 M양과 편한차림으로 만나 배드민턴을 치고 난 뒤
“아 맞다. 우리 부모님이 언제 한 번 너 데리고 오라고 했어. 지금 같이 가자. 괜찮아. 부담 없이 가도 돼.”
라는 이야기를 했다. 땀으로 범벅이 된 M양은 ‘지금 이 차림으로는 아무래도 곤란하다’고 말했는데, 그러자 그는 그것에 상처 받았는지 몇 주 후에
“너는 우리 집에 오고 싶지 않은가 보네. 그때 그냥 왔으면 됐는데….”
라며 서운함을 표시했다. 어른이라면 날짜를 조율한 뒤 정식으로 약속을 잡는 것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그는 그러지 못했다. 애처럼 ‘내가 가자고 할 때 안 갔다’는 것만으로 혼자 상심한 채 나중에 M양 탓을 했을 뿐이다.
둘의 연애 후반부에 그가 보인 태도를 보면, 그에겐 M양을 만나고 싶은 마음보다 ‘M양이 거부할 수 없는 핑계’를 대 못 만난다는 것에 승인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 큰 것처럼 보인다.
“이번 주 쉬는 건 어렵게 말해서 뺀 거라, 다음주에는 (쉬는 날을)못 맞출 수도 있어.”
“다음 주 너랑 맞춰 쉬려고 날짜 정해서, 이번 주에는 그냥 일해야 해.”
M양의 하소연을 들어보자.
“저도 그와 같은 직종에 있어요. 그런데 그의 회사는 저희 회사보다 훨씬 자유로우며, 그의 직급역시 저보다 높거든요. 저보다 쉬는 날 맞추기가 절대 어려울 수가 없어요. 전 어떻게든 쉬는 날 맞춰서 쉬려고 애썼는데,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저런 핑계만 대요. 그리고 통화하는 시간을 늘 제가 그에게 맞추다가 상황이 바뀌어서 그가 제게 맞춰야 할 때가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그 때는 또 자긴 한 시간 기다렸다 통화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그간 몇 시간씩 기다린 저는 뭐죠?”
쉬는 날 조율이나 연락에 관한 부분은 백 번 양보해 그에게도 사정이 있다 하자. 그건 그렇게 넘기더라도, 난 M양이 아팠던 날 그가 지하철 몇 정거장 덜 가고 싶어서 ‘만나는 장소 정하기’에 머리 굴리는 걸 보며 그와는 헤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 남자에게 뭘 기대할 수 있으며 그런 남자와의 미래에 무슨 행복이 존재하겠는가.
그냥 의욕이 없는 사람도 악하진 않으며, 악하지 않다고 다 좋고 착한 사람은 아니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M양이 시키는 건 그가 하겠지만, 그 스스로 M양을 위해 해주고 싶은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보이며 실제로도 해주는 게 없다면, 헤어지는 게 맞다. 일주일에 한 시간 내기도 어려우며 그걸 정당화 할 핑곗거리만 찾는 사람은, 남의 집 귀한 딸 붙잡은 채 놓아주지도 않고 옆에 묶어만 두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의 장식장에 들어가 있다간, 거기서 먼지만 뒤집어쓰며 아까운 청춘을 다 보낼 수 있다.
2. 이렇게 굳어가는 것에 M양이 일조한 부분은?
‘착한 여자’나 ‘개념 있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좀 내려놓자. 남친이 M양을 집에 데려다 줄 경우 2시간 가까이 걸린다 해도, 그러면 큰일 나는 것처럼 모두 봉쇄할 필요 없다. 상대가 그러겠다고 하는 날에는 그러도록 두자. 그런 뒤 이렇게까지 M양을 챙겨줘서 고맙다는 걸 표현하면 된다.
데이트 비용 역시, ‘최대한 5:5에 가깝도록’을 너무 고집할 필요 없다. 남친이 좀 더 쓴 것 같다고 해서 M양이 그걸 얼른 되갚으려 다음번에 즉시 뭔가를 살 필요도 없고, ‘빨리 5만 원짜리 밥 사서 갚아야지’라며 빚진 마음으로 되뇌고 있을 필요도 없다. 뭔갈 주면 고맙게 받고, M양도 여유가 될 때 상대를 위해 베풀면 되는 거지, 준 거 얼마 받은 거 얼마 하며 계산만 하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과 같은 M양의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 이쪽이 덜 받거나 더 준 것이 있을 경우, 그게 모두 불만으로 치환됨.
- 받고 싶으면서도 아니라고 거절한 까닭에, 상대는 정말 그런 줄 앎.
- 알아서 다 참고 이해하고 양보하니, 그게 당연한 일이 됨.
이라는 문제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명언 중에
“받고 싶은 만큼 먼저 베풀라.”
라는 말이 있긴 한데, 저 말이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기억해 뒀으면 한다. 내가 매번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기사 역할을 자처하며 모임이 파한 후 집 앞까지 태워다 준다면, 그걸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중에 집이 아닌 단지 앞에 내려줬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사람과 상황에 따라 ‘베풂’을 적절히 사용해야 하며, 일단 무조건 먼저 다 베풀고 난 뒤 상대가 그것 이상으로 갚아주길 기대하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것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가 된다(응?)’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못 믿겠으면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M양이 술을 안마시고 친구들 대리운전을 해보길 바란다. 그게 세 번 반복되면, 나중엔 친구들이 대리운전 부를 필요 없이 으레 M양이 술 안마시고 집에 데려다 줄 거라 생각할 것이다.
더불어 갈등이 생겼을 땐,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할 게 아니라, 두 사람이 지금 어떻게든 결론을 내겠다는 태도로 그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눠야한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며칠간 연락하지 말아보자, 일주일간 시간을 가져보자, 해서 될 일 같으면 난
“이건 9일짜리네요. 넉넉하게 10일 정도 연락하지 말자고 해보세요.”
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밀어낸 뒤 100년쯤 연락을 안 해도, 뭐가 문제인지를 모르면 그저 그대로 일 수 있으니, 연락두절의 형벌을 내리지 말고 대화를 하자. 저 위에서 말한 ‘부모님 뵈러가는 것’의 문제만 하더라도, M양이
“나 지금 옷도 편하게 입고 나왔고, 땀으로 젖었잖아. 부모님 처음 뵙는 건데 이런 모습으로 가긴 아무래도 좀 그렇고, 난 뭐라도 하나 사서 찾아뵙고 싶어. 날짜를 확실하게 잡고 뵈러 가자. 어때?”
라고 말했으면 부드럽게 해결될 수 있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진 않고
“지금 나 이런데, 이런 모습으로 뵈러 가자고? 못 가.”
라고 말하면, 모르는 사람들은 ‘약속을 잡아야 한다’는 걸 계속 모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선 본능적으로 ‘사람이 어쩜 이렇게 답답하냐’ 하는 생각이 먼저 들겠지만, 문제제기를 해서 상대를 쿡 찌르지만 말고 ‘결론’을 꼭 내야 한다는 걸 기억해 두길 바란다. 커플링이든 결혼이든,
“참나. 나중에 언제? 오빤 맨날 나중에 뭐 하자는 말만 하지?”
라며 찌르기만 할 게 아니라, “그럼 커플링은 얼마씩 모아서 9월에 할까? 상견례는 10월에 거기서 할까?”정도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모지리에게 모자라다고 말한다고 바뀌는 건 없다. 답답하겠지만,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길을 제시해 주자.
M양은 현재 상대에게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한 상태고, 참 답답하게도 모지리 남친은 그걸 문자 그대로만 해석해선 ‘우리 생각할 시간을 갖는 중이니까 연락하면 안 되겠지?’ 하며 아무 것도 안 하는 중이다. 그가 악한 사람은 분명 아닌데,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답답하다. 누가 좀 그에게 “야, 지금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찾아가서라도 잡아야지.”라는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럴 사람은 없는 것 같고….
M양이 다시 연락해 “오빤 나 왜 안 잡아? 마음이 있었던 거라면,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했어도 오빠가 연락을 했었겠지.”라고 말하면, 그는 또 “미안해. 나도 반성 많이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어.”라는 이야기를 할 거고, 그럼 또 겨우 산소 호흡기를 단 채 이 연애는 몇 달 더 지속되긴 할 것이다. 그런 식의 지속은 둘 모두에게 훗날 더 크고 깊은 상처만을 남길 것이 분명하니, 기쁨도, 즐거움도, 달달함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 관계에선 이제 그만 나오길 난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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