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좀 생겼다. 구조한 새끼 고양이들 이름이 ‘조니/대니’로 확정되긴 했지만,
- 녀석들이 뭐라고 부르든 반응 안 하는 문제.
- 부르는 사람이 누가 조니고 누가 대니인지 구별 못하는 문제.
- 이름 짓기 전 고양이들을 본 지인들이 다르게 부르는 문제.
- 조니는 ‘까망이, 깜둥이, 검은애, 까만애’등으로 불리는 문제.
- 대니는 ‘노랑이, 노랭이, 노란애’ 등으로 불리는 문제.
등으로 인해 아무렇게나 불리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나조차 ‘노란애, 까만애’로 부르는 일이 많으며, 어차피 뭐라고 부르든 알아듣질 못하니 ‘나비야’로 둘을 통칭하고 있다. 뭐, 장미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향기로운 것 아니냐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변명처럼 내밀고 싶다.(응?)
분유도 사고, 장난감도 사고, 모래도 사고, 간식도 사느라 허리가 휘고 있다. 어제는 또 고양이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니 고양이들이 발톱으로 긁으며 놀 것이 필요하다길래, 마침 집에 남는 박스도 있고 해서 장난감을 만들어 주었다.
저거 만드느라 큰 박스가 거의 하나 다 들어갔는데, 혹시 기성품으로 파는 게 있으면 그냥 사서 쓰는 걸 추천한다. 작은 커터 칼로 자르려니 종이먼지는 휘날리고 억센 골판지 때문에 잘 잘리지 않아, 다 만들고 나니 손을 쥐었다 폈다 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또, 직접 만든 장난감 위에 올라가 있는 녀석들을 보니 흐뭇하다. 종이먼지 때문에 기침해가며 만든 정성을 아는지, 특히 노란애가 아주 자기 침대인 양 계속 올라가 있다. 그래서 난 사실 처음엔 검은애한테 마음이 더 있었지만, 지금은 노란애에게 마음이 더 간다. 예쁜 게 예쁜 짓 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예쁜 짓을 하면 또 예뻐 보이는 것 같다. 검은애는 분유 빨리 안 준다고 내 손을 두 번이나 물기도 했다.
잠자고 있는 노랭이의 모습이다. 가운데서 자면 편할 텐데, 저렇게 앞쪽 끝에서 고꾸라질 듯 자거나 뒤쪽 끄트머리로 가서 뒤로 넘어갈 듯 잔다. 고양이들은 모서리를 좋아하는가 봉가. 여하튼, 고양이 얘기는 이쯤하고, 매뉴얼 시작해 보자.
1. 남친이 저를 하찮게 생각해서 이별하게 된 걸까요?
Y양의 가장 큰 단점은 ‘자폭한다’는 거고, Y양의 이별 역시 그 자폭으로 인해 치명상을 입은 상대가 그만 하자고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곳에서 연애 상담을 받아봤어요. 그랬더니 그 상담사는 조건 좋은 상대가 저를 하찮게 생각해서 그러는 거라고 얘기하더라고요.”
난 그 상담사를 존중하지만, 그의 결론에 대해선 안타깝게도 ‘피콜로 더듬이 빠는 소리’라는 평가를 해야 할 것 같다. 남친이 정말 Y양을 하찮게 생각했다면, 두세 시간씩 통화를 하거나 이별 직전까지 ‘내가 다 알아서 할게’라며 여행갈 생각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 상담사는 남친 회사 이름만 듣고 ‘대기업 사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남친이 실제로 회사에서 담당하고 있는 일과 그의 경제력을 보면 ‘대기업’의 간판이 걸린 곳에 다닐 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기업 사원’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알 수 있다. 같은 이름의 회사를 다니더라도 스마트폰을 연구·개발하는 일과 조립·포장하는 일에는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둘의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하는 말만 듣고는 남친에게 “이제 알겠네. 그동안 날 하찮게 생각했으니 그런 거겠지.” 따위의 얘기를 할 게 아니라, 남친이 직접 했던 말을 보길 바란다. 이별 얘기가 나왔던 날 남친이 뭐라고 얘기했는가?
“너, 말 함부로 하지 마라.”
Y양은 기분이 상하면 극단적으로 행동하려 들며, 과격한 말들을 내뱉고, 더불어 상대의 자존심을 짓밟을 수 있을 정도로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특히 Y양이 마지막으로 그에게 보냈다는 메시지를 보면
“참 사람 우습게 만드네요. 마지막까지.. ㅎ”
“위선적으로 보여요. 유치해 보여요.”
“꼭 당신 같은 여자분 만나서 결혼하길 빌어 줄게요~”
라는 문장들이 등장하는데, 저런 건 앞으로 서로 관뚜껑에 못 박히는 소리 들을 때까지 원수로 지내고 싶을 때 하는 말이다. 물론 저건 상대에게서 ‘다시 만날 생각 절대 없음’이라는 확답을 받고 보낸 메시지이긴 하지만, 그 전에 보낸 메시지들을 보더라도 Y양은 ‘갈등’이 생겼을 때 저것과 비슷한 태도로 그 싸움에서 이기는 것에만 신경 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버리면, 몇 년을 만났든 얼마나 사랑했든, 단 한 번의 그 난도질로 인해 관계가 끝장날 수 있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불만 제기’ 정도로 의견을 꺼내야지, 그걸 넘어 ‘조롱’까지 해버리면 상대는 이를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또, 화가 나서 상대에게 따지고 싶더라도 ‘숨 쉴 구멍’은 만들어 놓고 갈궈야지, 헤어질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1차 위협한 뒤 2차로 상대의 해명에 계속 ‘웃기시네’같은 태도만 고집하면, 상대가 누구라도 결국 그 관계를 그냥 놓고 싶어질 수 있다. 다툼 도중 남친이 비명처럼 질러댔던 말들을 보길 바란다.
“그렇게 쏘아대고 나서 당분간 연락하지 말자고 하면 마음이 더 편하니?”
Y양은 속이 후련해 질 때까지 상대를 짓밟으려 했던 거고, 상대는 거기에 완전히 질려버렸던 거다. 이런 일들이 모두 ‘남친이 Y양을 하찮게 생각해서 벌어진 것’이라는 결론을 낸 어느 상담사 덕분에 Y양은 더욱 분노하면서도 자존감이 무너지게 되었는데, 크게 다퉜던 저 마지막 싸움이 ‘둘이 여행가는 것’을 두고 싸운 거라는 것만 봐도 ‘하찮게 생각해서 벌어진 일’은 절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이후 제가 계속 매달려도 보고 천천히 다가가도 봤지만, 그는 다른 사람 만나 행복하게 살라는 말을 할 뿐이었습니다. 그때야 알겠더라고요. 이 사람은 날 사랑한 적, 아니 좋아한 적도 없었다는 것을.”
그렇게 정신승리를 해서 Y양이 행복해질 수 있는 거라면 나도 그저 그 합리화를 돕고 싶다. 하지만 이 사람은 그렇게 어찌어찌 나쁜놈 죽일놈 해서 잊을 수 있을지 몰라도, Y양의 폭발하는 모습이 고쳐지지 않으면 다음번 연애도 비슷한 마지막을 맞게 될 것 아닌가.
이번 연애에서 마지막까지 Y양이 상대에게 보여준 건 ‘조롱과 저주’였다. 그가 이별을 택한 건 Y양을 하찮게 생각해서나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닌, 바로 그 ‘Y양의 폭발을 감당할 수 없어서’라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상대가 날 실망시켰다고 해서 곧바로 총을 집어 들면, 상대는 무릎 꿇고 비는 게 아니라 도망가 버린다는 것도 기억해 두길 권한다.
2. A를 좋아하는데, B와 엮이고 있습니다. A가 더 좋아요.
복학생 오빠가 새내기 여학생과 둘이 같이 공부하고, 또 집에도 같이 가고 하면 누구든 그 관계를 ‘썸’이라고 불 수 있다. J씨는 자신과 B양이 엮인 것에 대해
“제가 선을 확실히 그었어야 하는데, 저의 불찰로 이런 일이 생겨버렸습니다.”
라고 말을 하는데, 그런 후회를 하는 와중에도 A양에게 밥을 먹자고 했을 때 A양이 “B양도 같이 먹자고 할까요?”라는 이야기를 하자, 그러자고 대답을 했다.
이런 부분들이 좀, 그렇다. 다 저질러 놓고 나중에 만회할 방법을 찾을 게 아니라 그 순간순간 자기 생각을 표현해야 하는 건데, J씨는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여 일들 더 크게 만들고 만다.
“저랑 같이 수업을 듣거나 학교에서 만나던 아이들은, 대부분 제가 B를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볼 정도면, 그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N씨가 처신을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오이 밭에서 신발끈 고쳐 매지 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잖은가. A양 역시 J씨가 B양과 가까워질 마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니 “B양도 같이 먹자고 할까요?”라고 물은 건데, J씨는 거기다 대고 기쁜 듯이 “콜 ㅋㅋㅋ”이란 대답을 했다.
다가오는 이성이 있다고 해서, 또는 솔로부대원이니 누굴 만나도 문제될 게 없다고 해서 아무 강단 없이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놓고 있으면 곤란하다. 특히 누군가를 마음에 두고 있을 땐 다른 사람과의 인연을 맺고 끊는 것에 더 신경 써야지,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데이트처럼 보이는 거 다 해놓곤 나중에 ‘사람들이 착각한다’고 하소연 해봐야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대에 대한 호감을 표현하고 싶은 거라면, 지금이라도 애매하게 대하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정리하고 상대에게 집중하길 권한다.
“제 지인들은 그녀가 잘 꾸미고 다니는데다 스타일도 좋아서 금방 남자친구가 생길 것 같다고 하던데요. 만약 제가 다가가는 동안 남친이 생기게 되면, 저는….”
안전하다는 게 완전히 보장되지 않는 이상 발을 담글 생각이 없는 거라면, 이쯤에서 마음을 접길 권한다. ‘되면 한다’의 마음인 거라면, 빨리 접을수록 좋을 것이다. 지금 J씨가 밟아가는 패턴은 여자 네트워크에 ‘찝쩍이’로 분류되고 만 선배대원들이 걸어갔던 길인데, 그들은 시간 지나
“B와의 관계는 사람들이 착각한 거고, A는 내가 잘 모르면서 그냥 좋아했던 거고, 새로운 C야말로 진짜 내가 호감을 느낀 사람이다.”
따위의 이야기를 하다 저절로 매장 당했다.
또, J씨가 처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의도치 않은 상황’이 되었다 해도, 그걸 남들에게 설명하며 ‘내 편 구하기’를 하지 말길 권한다. 당장이야 J씨의 사정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J씨 편이 되어주는 것 같아 안심이 될 수 있겠지만, 단언컨대 그 말들이 나중엔 J씨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J씨가 사연에 적은 말을 보자.
“저에 대한 A의 호감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아서, 저도 이제 지인들에게 말로는 포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포기가 안 되고….”
공사현장에서든 연애현장에서든 ‘안전제일’은 중요하지만, 그게 그저 ‘내 안전이 제일’이 되어버리면 비겁하고 치졸한 모습이 될 수 있다. 상대와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으면 자신이 상대에게 호감 있다는 걸 여기저기 알리다가, 뭔가 틀어질 듯한 분위기가 보이면 포기한다고 말하는 건 ‘내 안전이 제일’인 태도다. 누군가에게 호감이 있는 거라면 좀 우직하고 굳건하게 그 호감을 지켜가야지, 간 보다 발 빼는 것도 아니고 아직 둘이 커피 한 잔 같이 마신 적도 없으면서 벌써 포기하네 마네 하는 건 너무 가벼운 것 아닌가.
그리고 하나 더. 말끝을 흐리지 말고 분명하게 말하길 바란다. 흐리멍덩하게 운만 띄우는 건 겁쟁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같이 밥 먹고 싶으면 상대에게 어떠냐고 물어봐서 약속을 잡아야지, 이렇다 저렇다 할 결론도 내지 않고 얼버무린 뒤 나중에야 “아, 의사전달이 잘 안 됐나보네.” 따위의 이야기로 변명해선 안 된다. 난 이번 기회에 J씨가, 상대와 사귀고 못 사귀고를 떠나 ‘분명하게 말하고, 내가 한 말에 책임지는 모습’을 배웠으면 한다.
고양이들이 또 밥 달라고 찡찡거리는 중이다. 이빨이 나서 이제 통조림 먹는데, 오늘은 사료와 함께 먹여보려고 사료를 불리는 중이다. 얼른 매뉴얼 올려두고 먹여야겠다. 이번 주에는 매뉴얼을 두 번이나 빼먹었으니, 주말에도 한 편 발행할까 한다. 다음 매뉴얼에서 뵙기로 하며, 다들 불금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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