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게, 저 역시 D양의 속사정과 상황에 모두 공감하는 척 하며
“맞습니다. D양은 그저 돈을 목적으로 바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니고, 지인의 가게에서 겨우 주말에만 일을 도와줄 뿐이지 않습니까? 손님 테이블에 앉아서 같이 술은 마시지만 선을 넘는 일은 하지 않으며, D양은 남친이 아닌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건 ‘바에서 일하는 여자’들과는 분명 다른, 큰 차이가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히려 D양의 합리화를 도와 현실에 무뎌지게 만들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전,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남자들이, 바에서 일하는 여자는 그냥 바에서 일하는 여자로 봅니다. 그녀들 각자의 사정은 다 다를 수 있겠지만, 그것까지 세밀하게 고려해 각각 분류하기보다는, 어쨌든 종합해 ‘바에서 일하는 여자’로 봅니다.”
라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끼리 여기서 백날
“바에서 일한다고 해서 다 ‘바에서 일하는 여자’는 아니다.”
“터치 없이 대화만 하는 건전한 바도 있다.”
“바에서 일하는 걸 나쁘게만 보는 건 다 편견과 고정관념이다.”
라며 정신승리를 해봐야, 상대의 친구나 지인이 던진 “어디서 만났어? 뭐 하는 사람이야?”라는 질문에, 상대가 “바에서 만났어. 바에서 주말 알바 하는 사람이야. 난 손님으로 갔었고.”라는 대답을 할 경우, 그 답을 들은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지을 확률이 높은가가 바로 ‘현실적인 시각’에 가장 가까운 것입니다. 이걸 부정해가며 빙 돌려 말하려면 너무 멀리까지 돌아가야 하니, 곧바로 살펴보고자 돌직구 던지고 시작한다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출발하겠습니다.
1. 바에서 일하다 만난 남자, 정말 결혼까지 생각할까요?
D양이 이 관계에 대해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건, 상대가 D양이 일하는 바를 두 번째 찾고 난 이후
“D양과 좋은 관계로 지내고 싶고, 더 발전되면 결혼도 하는 그런 사이가 되고 싶어요.”
라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D양은 가볍게 스쳐가는 손님들 중 저렇게까지 D양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집중하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여기서 보자면 둘 사이에 어떤 감정이 싹텄던 것도 아니고 미묘한 분위기가 만들어진 적도 없던 와중에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건, 그냥 그가 한 번 세워본 ‘임시 계획’중 하나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그는 D양을 딱 두 번 봤을 뿐이며, D양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손님 접대’을 위해 D양이 열심히 분위기 맞춰준 모습 밖에 없지 않습니까?
뭐, 여기까진 백 번 양보해 ‘가능성이 있는 사이’라고 한다 해도, 이후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땠는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보통의 썸남썸녀들처럼 영화 한 편 본 적도 없고, 전화기가 뜨거워질 때까지 통화한 적도 없으며, 서로에 대한 궁금함을 드러낸 적도 없습니다. D양은 그저 상대가 말한 ‘더 발전되면 결혼’이라는 말에 초점을 맞춰 기대하게 된 거고, 상대는 매일 안부카톡을 보내는 정도로만 관계에 발을 담그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평일에 바쁘고, 주말에 바쁘고, 저녁에도 바쁜 사람입니다. 지금은 장기 출장을 가 있고요. 그리고 하루 한 번 보내는 카톡 외에는 따로 연락하지 않으며, 밤 11시쯤에 전화를 걸어오는 게 전부입니다. 통화시간은 10분 내외로 짧고, 그가 피곤해 하는 것 같으면 제가 끊을 타이밍이라는 걸 알아채고 끊는 형태로 통화합니다.”
훗날 이 관계가 연애나 결혼으로 이어지더라도, 저런 형태의 관계를 D양이 감당할 수 있겠는지를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혹, 이걸 단순히 ‘나중에 안정을 찾고 결혼까지 하면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엄청난 착각입니다.
충격과 공포의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그가 안정을 찾고 나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이며 그저 ‘애교 서비스’를 해줄 뿐인 D양은 정리대상 1순위가 될 수 있으며, 그가 D양에게 ‘결혼’이라는 카드를 던져 놓은 건 지금 이 상태를 결혼해서도 이어가길 바라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뭘 하든 딱 지금처럼 이해하고 기다리며, 불평이나 불만 같은 건 절대 갖지 않고 그저 ‘애교 서비스’만 제공하길 바랄 수 있다는 얘깁니다.
하나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은, 한국에 바가 D양이 일하는 곳만 있는 게 아니며, 그는 다른 바의 다른 사람에게도 D양에게 말한 것과 똑같은 얘기를 해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이 얘기를 하는 건 모든 경우 중 부정적인 경우를 부풀려서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라, 그만큼 D양과 상대의 사이엔 뭐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라는 걸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오늘 당장 상대가 다른 바에 가서 다른 사람의 번호를 딴 뒤, ‘결혼’까지 생각한다며 연락하기로 하면 D양과의 관계와 똑같아지지 않습니까?
D양은 그의 태도에 대해 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고 하셨는데, 저는
- 남자가 바에 갔고, 옆에 앉은 직원에게 전화번호를 물었고, 직원이 전화번호를 줬고, 그렇게 연락하며 밖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된 것.
정도로 생각합니다. 이런 관계에다가도 의미를 부여하자면 얼마든지 부여할 수 있겠습니다만, 자유롭게 만날 수도 없고, 통화도 어렵고, 지금은 언제 다시 볼 수 있을 거란 기약도 없는 이런 관계는 내려놓는 게 좋을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이야 상대가 D양에게 최대한 호의를 베풀어야 하니, D양이 상대가 지인들과 여행갈 때 여자인 지인도 끼어있다는 것에 삐친 척을 해도 미안한 척 하겠지만, 그런 호의를 거두고 나면
‘쟨, 자긴 매주 남자 손님들 테이블에 앉아 분위기 맞춰주고 같이 술 마시면서, 왜 내 여행에 여자인 지인이 끼어 있다는 것을 내 잘못인 것처럼 말하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상대가 일 때문에 피곤할 때 D양과의 전화를 빨리 끊으려고 하는 게 그의 본모습에 더 가까우니, 이쯤에서 그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2. 소개팅 어플로 만난 남자에게 첫눈에 반했는데요.
A양은 이번 상대가 아닌 다른 상대를 만나더라도, 시작부터 무릎 꿇고 애정을 구걸하고 또 확인하려는 태도로 연애에 임할 것 같다. 인기가 없기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니다. 다른 남자들로부터 대시를 받을 정도로 인기가 있긴 한데, 참 이상하게도
날 좋아한다는 남자 – 마음도 안 가고 싫다. 노력해서 좋아하고 싶지 않다. 잘라내야지.
내가 좋아하는 남자 – 날 싫어하면 어쩌지? 내가 어떻게 해야 날 좋아할까? 제발 날 좀….
이라는 딱 두 가지 포지션 중 하나만 택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날 좋아한다는 사람을 경멸하고 밀어내거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매달리며 혼자 괴로워하거나.
이런 ‘중간층’이 없는 여성대원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그녀들은 ‘내가 좋아하는 남자’와 처음에는 공평한 관계로 시작했다가도, 1~2주 만에 ‘집착의 병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상대에게 자신의 판타지만을 덧씌우며 알아서 ‘을’의 자리를 찾아가는 까닭에, 상대는 처음엔 ‘이래도 되나’싶어하며 머뭇거리다 나중엔 자연스레 하대하기 시작한다.
A양이 상대에게 덧씌운 판타지들을 좀 보자.
“상대는 주변에 여자도 꽤 있는 것 같고, 친구도 많아서 친구들로부터 이성을 소개 받을 기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도 안 사귀고 있는 걸 보면 외모를 많이 보는 것 같고요. 거의 매일 다른 친구들을 만날 정도로 아는 사람이 많아요. 부모님에게도 애교 있는 아들인 것 같고, 다정다감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며 얘기도 잘 들어줘요. 외모는 주관적으로 보나 객관적으로 보나 잘생긴 얼굴이고요.”
난 그렇게 아는 사람들 만나기 바쁘고 소개팅 시켜주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 있는 환경에 놓여 있는 사람이, 소개팅 어플에 들어가 인연을 찾고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심지어 A양과 오프라인에서 만난 첫날에도 A양이 화장실을 다녀오는 그 잠깐의 사이에 어플에 들어가 있었는데, 이쯤 되면 그는 자신의 외모에 어플 내 이성들이 대시하는 걸 즐기며, 인기 관리 차원에서 들이대는 사람들을 한 번씩 만나주는 것에 가깝다는 해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플에 서식하는 남자들의 유형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매뉴얼을 발행할 예정이니 우선 넘어가기로 하고, 여하튼 그는 ‘어플 죽돌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어플을 활용한 인기관리’에 푹 빠져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와중에 A양은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며 어플에 있으리라고는 더더욱 기대하지 않았던 잘생긴 그를 보며 모든 환상을 덧씌운 것이고 말이다.
“제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거나 약속을 잡지 않으면, 그는 연락도 하지 않고 약속도 잡지 않았을 거예요. 실제로 제가 먼저 2주 정도 연락을 안 한 적 있는데, 결국 그에게선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만나자고 말하면 만나긴 하지만, 자신이 먼저 만나자고는 하지 않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잘생긴 사람은 자신이 잘생긴 것 알고, 스펙이 좋은 사람은 자기 스펙 좋은 거 안다. 그 사람 역시 자신이 잘 생겼고 다른 이성들에게도 계속 연락이 오니, A양과의 관계가 이어지든 끊어지든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A양이 계속 연락하고 만나자고 하니, 시간 내서 한 번 만나준 것이고 말이다.
A양은 그가 좋은 사람이니 그냥 자신이 좋아하며 친구로라도 지내고 싶다고 했는데, 어디에 있는 무엇을 보고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건지 난 알 수가 없다. 상대는 A양이 카톡을 보내도 ‘읽씹’으로 대처할 때가 많은데, 그래도 그냥 그가 잘 생겼으니 ‘좋은 사람’인 건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A양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그 짧은 시간에 어플에 접속한 걸로 봐선, 그의 ‘어플 사랑’은 거의 중증에 다다른 것 같다. A양은 그걸 보고 탈퇴하라고 말해 그가 탈퇴했다고 했는데, 이후 두 사람이 스킨십 진도를 다 나간데다 그는 A양의 고백에 확실한 거절 의사도 밝혔으니, 이제 그는 A양이 뭐라고 하든 전부 사양하고 거절해도 거리낄 게 없다. 이후 A양이 만나자고 부탁해 만날 때에만 그가 스킨십을 하고, A양이 ‘오빠는 나 안 좋아한다면서 왜 스킨십은 하냐’고 했을 때 ‘좋아하는데….’라고 대충 대답하는 걸로 봐서는, 그냥 이렇게 지내며 이용만 당하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 있으니, 이쯤에서 그만 두길 권한다.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거절해 놓고는, 스킨십 할 때 키스하는 건 뭐죠?”
거기엔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겠다는 것 외에는 아무 의미 없으니, 그걸 그에게 또 “오빠는 오빠 욕구에 충실하기 위해서 그냥 나랑 스킨십 하는 거야?”라며 물은 뒤 이상한 궤변을 대답으로 받아들곤 ‘확인’했다 하지 말고, 더 휘둘리기 전에 어서 정신 차리고 빠져나오길 바란다.
아까 음악을 좀 들으려 이어폰을 찾아보니, 귀에 꽂는 부분이 잘려나가 있다. 밤중에 방에 들어온 사람은 나와 까망이(새끼 고양이)밖에 없는데, 내가 잠을 자면서 이어폰을 물어뜯었을 것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까망이가 그런 것 같다. 물파스를 발라 놓으면 고양이가 건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중요한 곳 여기저기다 물파스를 발라 두었는데, 까망이는 처음엔 눈을 찡그리며 피하더니 이제는 핥아 먹고 있다. 이어폰의 사망으로 인해 배웅글을 길게 쓸 기분이 아니니 이쯤에서 마무리 하도록 하자. 다들 폭염 잘 견디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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