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짜 한 번 맞은 걸로 너무 상심할 필요 없다. 퇴짜를 맞았다는 건 그래도 혼자 우물쭈물 거리기만 한 게 아니라 용기를 한 번 내봤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퇴짜 이후 상대가 거리를 두거나 불편해 한다면 조심해야겠지만, 첫 사연의 주인공인 K군처럼 오히려 둘이 보는 횟수가 늘고 상대가 팔짱까지 낀다면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해도 좋다.
K군의 문제는, 외국인인 상대가 염려하는 부분에 대한 아무런 답도 줄 수 없으면서
‘빨리 상대와 연애도 하고, 스킨십도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너무 머릿속에 가득 찬 것이라 할 수 있다. 상대는 만약 연애를 시작하면 무엇을 어떻게 책임지고 그려나갈 수 있는지를 궁금해 하는데, K군은 ‘언제 어떻게 다시 고백해야 날 받아줄까?’만을 고민하고 있다. 서로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이 완전히 다르니, 이 초점교정을 아래에서 시작해 보자.
1. 팔짱도 끼는 사이였는데, 고백했다 퇴짜 맞았어요.
상대가 퇴짜를 놓으며 한 말을 보자.
“우리는 문화적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야. 우리는 똑같지 않아. 나는 이 점이 무서워.”
그녀가 밥을 오른손으로 먹는 문화를 가진 건 아니지만, 만약 내가 K군이었다면
“난 앞으로, 손으로 밥을 먹어야 한다고 해도 먹을 수 있어. 그 정도의 각오도 없이 가볍게 사귀자는 말을 한 게 아니야. 게다가 난 종교도 없어서, 네가 나에게 ‘우리의 평화를 위해 어떤 종교를 믿어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 종교를 가질 각오까지를 하고 있어. 내가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지금 전부 나열하는 것보다, 만나며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한 거라고도 생각하고 있고.”
정도의 대답을 했을 것 같다. 그녀의 저 말을 단순히 ‘거절’로만 받아들인 채 시무룩해할 것이 아니라, 내가 뭘 어떻게 할 각오까지 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며 그녀를 설득했을 것 같다.
물론 저걸 그대로 따라하라는 건 아니다. 실제로 K군에게 저런 각오나 계획이 있는 게 아니면서 맹목적으로 따라하면 곤란하다. 최소한, 사귀게 되면 둘 사이에 생길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본 뒤 그것에 대한 K군의 대책을 이야기해야 한다.
또, 고백 이후 오히려 더 가깝게 지내게 되었을 때 그녀가
“우리는 왜 이렇게 맨날 봐? 자주 봐?”
라고 물은 것에 대해서는, 내가 K군이라면
“우린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어. 하나는 그냥 ‘아는 사이’로서 거리를 둔 채 적당히 만나는 거고, 다른 하나는 지금처럼 만나면 즐거우니까 자주 보는 거야. 지금 우리가 만나는 건 억지로 약속을 잡고 귀찮거나 피곤한대도 의무적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해가 떠 있는 동안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움직이듯 자연스레 만나게 되는 거잖아. 다른 사람들과는 그러고 싶어도 둘 중 한 사람의 마음이 달라 그러지 못할 수 있는데, 난 너와 지금처럼 자주 만나고 볼 수 있어서 기뻐.”
라고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그저 K군처럼
“상대가 아직도 우리 관계에 대해서 무서워하는 것 같더라고요.”
라는 하소연만 하는 게 아니라 말이다.
상대의 말을 ‘판정’으로 생각한다든가, 바뀌지 않을 ‘결론’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내가 늘 얘기하지만, 과감해져야 할 시점엔 앞에서 끌 수도 있어야지 늘 뒤만 쫓아가면 안 된다. 상대가
“넌 왜 한국인 여자친구를 찾지 않아?”
라고 묻는다면 그것에 대한 K군의 생각을 대답해야지, 그걸 그저
‘아…. 한국인인 나와는 사귀지 않겠다는 걸 돌려서 말하는 건가 보네.’
라고만 받아들일 필욘 없다. 사귀자는 얘기하는 것을, 상대를 K군 집에 초대하는 거라 생각해 보길 권한다. 만약 상대가 “너희 집에 가면 12시 넘어서도 대중교통 타고 돌아올 수 있는 거야?”라고 묻는다면 그것에 대한 대답을 해주거나 “내가 아빠 차를 빌려서라도 데려다 줄게.”라고 이야기해야지, ‘우리 집에 오기 싫은가보네….’하며 시무룩해 있을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지금 K군과 상대의 관계를 보면, 연인이라는 간판만 걸리지 않았지 스킨십을 제외하고는 연인처럼 지내는 것에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그저 ‘팔짱은 이제 그만, 얼른 다음 진도의 스킨십으로!’라는 마음으로만 들이대지 말고, 이미 연애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며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함께 해나갔으면 한다. 아침에 눈 뜰 때 생각나고, 저녁에 눈 감을 때 생각나는 사이가 된다면, 나머지 것들은 저절로 다 해결될 테니 말이다.
피 끓는 이십대 중반의 대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얼른 스킨십 진도 나가려고 하다가 상대에게 실망이나 선물하고 좋은 사람 놓친다는 것이니, 생각은 하반신이 아닌 상반신으로 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K군이 지금 시달리고 있는 이유 없는 다급함에서만 벗어나면, 이 관계는 고속도로에 접어든 듯 쭉쭉 달리게 되리라 나는 생각한다. 파이팅.
2. 외국인 남친과 한국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상대에게 용돈을 줘가며 만나는 관계는 ‘잘못된 관계’일 가능성이 8할 이상입니다. 특히 상대가 사지 멀쩡하고 알바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돈을 줘가며 만나는 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상대가 이쪽에게 더는 애정을 갖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이 있기 때문이라고도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인이고 외국인이고를 떠나서, A양의 남친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너무 냉정하게만 말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그의 인생을 보면 자신의 나라를 찾은 타국 여자들의 도움을 받아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의 구여친이라는 사람들이 그에게
“넌 내가 사는 나라에서의 거주를 목적으로 날 만나는 것 아니냐.”
“난 너를 위해 이러이러한 것들을 했는데, 넌 날 위해 뭘 했냐?”
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지금 A양과 상대의 관계를 보면 이것 역시 똑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98.72% 이상입니다. A양은 현재 둘의 생활비 대고 있으며 상대에게 용돈 주고, 한국 거주를 위해 필요한 학비까지 자신이 마련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알바 자리를 마련해줘도 이틀 나가다 때려치우며, 한국에 몇 달째 살고 있으며 학원까지 다니지만 한국어는 늘지 않고 있고 말입니다.
그런 와중에 그는 ‘오토바이로 세계일주를 하는 게 내 꿈’이라며 한국에서 면허를 취득하려 하고 있습니다. A양과 면허시험장에 같이 갔을 때, A양이 “너, 등록비 있어?”라고 묻자 그는
“네가 빌려주면 되잖아.”
라고 아무 대책도 개념도 없이 말했을 뿐이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예민하고 섬세하며, 사람에 대한 예의도 있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것들을 보살펴주고 싶어 하고요.”
다 좋은데, 그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인지를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나쁘게 말하자면 그의 생활방식은 ‘대책 없는 하쿠나마타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 잘될 거라 생각하며 사는 건 좋지만, 씨를 뿌리거나 밭을 갈지도 않으며 열매 맛 볼 생각만 하고 있는 건 나머지 수고를 모두 가까운 사람에게 맡긴 태도 아니겠습니까?
낭만도 좋고, 감성도 좋고, 자유로운 영혼도 좋은데, 당장 담배 사서 필 돈도 없으면서 오토바이 세계일주 같은 꿈만 꾸고 있는 게 무책임 한 건 아닌지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처음 만났을 때 상대가 했던 달콤한 이야기와 감성 터지는 멘트만 생각하지 마시고, 뚜껑 열어보니 게으름 피우며 유튜브 서핑에 매달려 시간 죽이고 있는 상대의 모습도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상대의 본색은 후자에 더 가까운 법이니 말입니다.
“자기는 자기만의 세계가 있고 그건 지금까지 누구도 이해 못했다고 하네요. 자긴 제 과거가 보인다는 이야기도 하고요. 자긴 형이상학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정신적인 평화를 추구하고, 언제나 중요한 건 행복이란 말도 해요.”
그런 피콜로 더듬이 빠는 소리를 지껄이는 부류의 사람들이 꽤 됩니다. 머지않아 살만해지면 ‘행복’을 핑계로 이별통보를 하거나, 자신은 물질적인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이쪽에게 정신적인 행복을 주었으니 누가 더 고마워하거나 미안해 할 필요 없다는 얘기도 할 겁니다. 그런 이야기도 그럴 듯하게 들리니 다시 또 A양이 혼란을 겪을지 모르겠는데, 상대가 지금 하고 있는 짓거리를 보시기 바랍니다. 용돈은 받아 타가면서 어쩌다 지가 알바해서 일당 생기면 그거 살림에 보태는 걸 아까워하지 않습니까?
A양의 잘못도 찾으라면 찾겠지만, 이건 상대가 너무 형편없어서 벌어지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는, A양이 한국에서 뭔가 할 생각이 있으면 한국어를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 그런 말들이 스트레스가 되며 자신은 공부를 잘 안 해도 잘 하는 타입이라는 괴상한 소리나 늘어놓지 않습니까? 그런 남자를 데려다 한국에서 대학까지 보낼 생각을 하는 건 인류애도 아니고 봉사도 아니니, 이쯤에서 그만 두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한다는 사람들이 말하는 ‘자유’에 대해 들어보면, 대부분 무책임과 도피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경제와 철학에 대해 통달한 듯 말은 잘 하지만 실제로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것 정도도 버거워하는 경우가 있고, 남들보다 열 배는 더 놀면서 맨날 ‘릴렉스’를 찾기도 합니다. 옆 사람이 자신의 수고까지를 대신 해나가는 동안 ‘마음의 평화’, ‘행복’ 따위의 이야기를 하며 잡기에 매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말입니다.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이건 끝내야 하는 게 맞습니다. 상대는 상대의 나라로 돌려보내야 하고 말입니다. 앞으로 더 경험할 거라고는 말도 안 되는 궤변일 것이 분명하기에, A양은 상대로부터 “내가 여기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건 전부 너 때문이다.”라는 괴상한 이야기까지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A양의 행복을 담당해주고 있었으니 그것으로 자신은 충분히 보상은 할 것이라는 얘기도 할 텐데, 그때는 “너도 나로 인해 행복했잖아?”라고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또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로 비겁하게 빠져 나갈 테니 말입니다.
이러고 있느라 낭비되는 시간과 돈과 에너지가 아깝습니다. A양도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확신을 가질 수 없어 우물쭈물하는 것 같은데, 더 큰 문제가 벌어지기 전에 어서 정리하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이건 노파심에 하는 이야긴데, A양과 비슷한 사연에서 상대가 자신의 폰으로 이쪽의 신분증과 통장 등을 찍어 둔 사연이 있었습니다. A양은 상대에게 통장 비밀번호까지 알려주셨다고 하셨는데, 혹시 모르니 비밀번호는 바꿔두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상대가 의심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건 방지하자는 이야기니 기분 나쁘게는 듣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여행 후 불꽃 포스팅을 약속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안 나가고 있는 것 같다. 얼른 또 사연을 읽어야 내일 매뉴얼도 발행하고 여행기도 올리고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오늘 배웅글은 생략하도록 하자. 불금 이즈 커밍. 불금이 다가오고 있으니, 다들 목요일 하루만 더 무사히 버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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