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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한 달 사귄 연애의 기억 때문에 열 달을 폐인처럼 지내요.

by 무한 2016. 7. 13.

열 달 정도는 괜찮다. 여긴 막

 

“제가 여기서 포기하면, 정말 우리 이야기는 모두 끝나버리는 것 같아서….”

 

라며 5, 6년씩 폐인처럼 지내고 계신 분들도 있다. 내가 거기서 계속 땅 판다고 뭐 나오는 거 아니라고 근 10년째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래도 조금만 더 파보겠다며 자기 키의 두 배 이상을 파놓고는 또 거기서 빠져 나오지도 못 하는 사례도 있다.

 

인생을 한 천 년 사는 거라면 10년쯤 그렇게 미련과 후회, 기대라는 삽으로 땅을 파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청춘은 짧고, 30년쯤만 살아도 치아에 이상이 생기거나 눈주름과 목주름, 팔자주름 등에 대한 걱정을 시작해야 한다. 10년쯤 더 살면, 바짝 마른 듯 가늘어지는 머리카락이나 신문의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 노안을 슬슬 걱정해야 하고 말이다.

 

당뇨와 고혈압, 고지혈증 등에 대한 걱정 없이 뭐든 막 먹거나 마실 수 있고, 얼음도 거침없이 와그작와그작 깨물어 먹을 수 있는 그 인생의 개화기를, 이젠 이쪽에게 관심 없다는 사람을 홀로 그리워하며 엄마도 모르는 알코올중독에 빠져 들어가며 보내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내가 그런 대원들의 구조를 위해 열심히 애쓰고는 있지만, 오랜 시간을 그렇게 보낸 대원을 겨우 구조해 놓고 보면, 알코올성 치매증상을 보이며 머리가 굳은 것 같다고 말하거나 이제 몸도 잘 따라주지 않는다며 데이트고 뭐고 집에서 쉬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 인생의 사계절 중 여름의 초입이고 끝난 건 아무 것도 없는데, 스스로 ‘이미 버린 인생’이라 생각하며 ‘누가 날 사랑해주긴 할까? 난 누굴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1. 계속 들여다보면, 계속 그 생각만 난다.

 

앞서 말한 대원들이 그 ‘삽질’을 멈추지 못하는 건, 자신의 연애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라는 이야기를 남겼다는데, 그걸 가까이서 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니 얼마나 심각한 비극으로 느껴지겠는가. 2주를 사귀며 두 사람이 버스는 딱 한 번 같이 탔는데, 그 버스 안에서 이어폰을 한 쪽씩 귀에 꽂은 채 함께 같은 노래 들었던 걸 잊지 못하는 대원도 있었다.

 

이별 후 어디서 무얼 하든 계속 상대와 관련된 것들이 떠오르는 건, 아주 정상적인 일이다. 같이 탄 적 있는 번호의 버스가 지나가면 생각이 나고, 같이 간 적 있는 식당이나 커피숍을 보면 생각이 나고, 역시 같이 간 적 있는 행사가 올해도 열린다는 소식이 들리면 또 생각이 난다. 아침에 눈을 떠도 생각이 나고, 폰을 들여다봐도 생각이 나며, 컴퓨터를 켜도 생각이 나고, 그냥 길거리에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는 것만 봐도 생각이 날 수 있다.

 

온통 상대와 관련된 것들로 포위당한 것 같은 그 상황에선, ‘정말 상대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난 사람이 아닌 강아지 ‘간디’와 이별했다 생각해도 가슴이 내려앉을 것 같은데, ‘내 사람’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상대가 낯선 표정과 목소리로 이별을 말한다면 어떻게 서 있을 수 있겠는가. 추억에 함몰된 채, 폐허가 되어버린 그곳에서 조각난 기억들을 맨손으로 만지고 있는 것으로 겨우 견딜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난, 그건 이쪽이 자발적으로 지속해가는 수감생활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이별 후 얼마쯤 힘들어 하는 건 그 관성 때문이라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계속 힘들다고 말하는 건 새로운 것들을 봐도 계속 거기다 상대와 관련된 의미를 담고, 그러다 나중엔 실제 상대와의 연애가 차지했던 것보다 더 크고 무거운 의미까지를 만들어 힘겹게 들고 있기 때문이다.

 

“<널 사랑하지 않아>라는 노래가, 마치 걔가 저한테 하는 말 같기도 하고….”

 

계속해서 저렇게 의미를 쌓아가는 것이다. 사실 두 사람이 연애할 땐 상대가 이기적으로 굴어 좀 짜증난 적도 있고 연락 가지고 사람 힘들게 해서 답답했던 적도 있는데, 그런 건 다 지우고 ‘행복했던 기억, 미안했던 기억’같은 것만 남긴 채 또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그 기억을 열심히 닦아댄다.

 

그래버리면, 독방에 홀로 앉아 작은 추억에다 이것저것 붙여 만든 그 기형적인 기억을 돌보느라 3, 4년 보내는 건 금방이다. 장례식장에서 상주를 자처하며 향을 켜고 있는 사람의 마음으로 지내기에 안타까움과 답답함과 슬픔 외에 다른 감정들을 느끼기도 힘들고, 표정을 방심에 맡긴 채 영혼 없는 사람처럼 지내니 그 생기 없음에 사람들도 가까이 하려 하지 않게 된다. 어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겨도, 잠시 휴가 나왔다 다시 돌아가야 하는 사람처럼 구는 까닭에 새 인연은 뿌리도 내리질 못한다. 그 모든 일이, 날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상대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계속 그런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는 자기 자신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2. 연락을 해보고 싶다면 지금 하는 게 좋다.

 

위와 같은 태도로 삶을 대하고 있는 대원들은, 본인 삶의 업데이트를 ‘2013년 어디쯤’처럼 헤어진 지점에서 멈춰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난 차라리 좀 더 과감하게 상대에게 연락을 해보거나 계획하는 대로 선물이라도 보내보길 권해보고 있다. 그래야 상대의 마음과 태도의 변화, 그리고 현실과 두 사람 관계의 변화라는 업데이트가 이루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이별 후 근 2년을 폐인처럼 지내며,

 

“그땐 그 친구가 제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는데….”

“그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보이면, 선물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침이면 ‘오늘은 연락해 볼까?’하는 생각을 1년 동안 빠짐없이 했습니다.”

 

등의 이야기만 하고 있는 대원들이 수두룩하다. 그럼 난 일부러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면, 두려움과 망설임을 극복하고 연락할 것 같지 않으십니까? 바로 그 마음으로 연락해 보시길 바랍니다.”

 

라는 이야기를 해 그 대원들을 부추긴다. 그럼 열 명 중 여덟 명 정도는 내 말에 힘입어 상대에게 연락을 하는데, 바로 그 연락 덕분에 자신이 그리워하던 ‘그때 거기’에서의 상대와 ‘지금 여기’에 있는 상대 사이의 오차가 발견되어 삽질을 멈추는 경우가 많다.

 

그 연락으로 현실을 직시하게 되며,

 

-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상대는 이 관계에 별 의미도 두고 있지 않았음.

- 난 상대가 질색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덤덤하고 침착했음.

-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상대는 날 비웃으며 무시했음.

- 난 한없이 그리워했는데, 상대는 날 제대로 기억도 못했음.

- 내가 그리워하던 상대와 달리, 현실의 상대는 참을 수 없이 가벼웠음.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상대의 정 떨어지는 말 한 마디에 ‘저 따위 인간을 내가 지금까지 좋아한 거라니….’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리워하던 상대와 현실의 상대의 격차가 너무 커서 정신이 번쩍 드는 경우도 있으며, 연락을 해보니 상대는 덤덤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그간 그냥 이쪽 혼자 염원하며 겁먹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되어 삽을 내려놓는 경우도 있다. 상대가 이쪽을 어리숙하게 보며 대충 달래 보내려고 하는 모습에 그제야 상대의 인간성을 파악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헤어진 지 열 달이 지나도록 이렇게 연락도 못하며 혼자 끙끙 앓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타로를 돌리면서 ‘오늘은 연락해볼까?’하다 결국 못하는 제 자신도 너무 싫습니다.”

 

그렇게 현실이나 현재의 상대와 아무 관련 없는 일들을 하며 혼자 그리움과 미련을 증폭시키지 말고, 차라리 연락를 한 번 해보길 권한다. 현실의 상대는 흐르는 시간을 타고 흘러와 2016년 7월에 있는데, 혼자 2015년 9월에 머문 채 여전히 상대가 그 때와 같을 거라 생각하며 그리워하고 있으면 답이 없다.

 

한 여성대원의 경우, 정신적 지주에 가까웠던 연상남친을 그리워하며 5년쯤 그러고 있다가, 5년 후 연락했을 때 자신의 기억과는 너무 다른 ‘초라하고 처세에도 서툴며 가벼운 남자’를 발견해 정신을 차린 사례가 있다. 스물여섯이었던 그녀는 그러느라 서른하나가 되었는데, 폐인처럼 보낸 그 시간을 누구에게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겠는가. 이번 사연의 주인공도,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하고 훌륭한 모습들만을 상대에게 덧씌워가며 홀로 미련과 그리움만 증폭시키지 말고, 차라리 얼른 현실의 상대와 마주해 업데이트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3. 노력을 하고 싶다면 기쁠 일, 즐거울 일을 만들자.

 

마음을 둔 채 열정을 쏟고 있는 취미도 없고, 일주일에 친구나 지인들과의 연락도 한 번 할까말까 하고, 또 이번 주말에도 아무 약속 없이 그냥 언제나처럼 좀 쉬다가 다시 다음 주를 시작하는 상황이라면, 꼭 이별한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삶이 단조롭고 외롭고 지겹게만 느껴질 수 있다.

 

이별 후 노력을 한다는 건, 상대에게 연락하고 싶은데 참거나 떠오르는 상대의 생각을 지우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자기가 책임져야 할 자신의 삶에 기쁜 일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거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오늘의 내가 뭐라도 하며 내일의 나를 도와야 달라지는 거지, 그냥 전부 일시정지 해둔 채 딴 생각만 하려 애쓴다거나 괴로우니 술 마시고 얼른 잠들려고만 한다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보고,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배우며,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해보는 거다. 이건 둘의 관계에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재회의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꼭 해야 하는 것들이다. 다시 만나는 날이 오더라도 이것저것 해봤다는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상대의 마음이 동할 수 있는 거지, 1년 2년이 지났는데도 그 자리에서 그 상태 그대로

 

“너와 사귀며 내가 뭘 잘못했고, 어떤 부분에서 실수를 했는지 모두 알 것 같아. 다시 기회를 준다면 정말 잘 할 수 있어.”

 

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으면, 2016년을 살고 있는 상대에겐 ‘옛날 사람’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또, 재회만을 바라고 있는 대원들은

 

- 상대와 다시 만나게 된다면, 분명 모든 게 다 해결되고 즐거운 일만 가득할 것

 

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다시 만난다고 해도 연애에 빠져 잠시 또 현실을 망각하게 되는 것 외에는 실제로 해결되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건, 서른에 접어든 사람이 자신이 중학생 때까지는 공부를 잘했다며, 고교시절 가정환경이 어려워지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자리 하나 차지하고 있었을 거라 계속 되새김질만 하고 있는 것과 같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도 기회는 무수히 많았지만, 그는 ‘가정환경 탓’으로 모든 책임을 돌려둔 채 옛날 얘기만 하지 않는가. 그래도 이런 건 고교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니니 나중에라도 정신을 차리기 마련인지만, 연애와 관련해서는 ‘재회의 가능성’이라는 것 때문에 계속해서 희망만 걸어둔 채 허송세월하게 되기 쉽다.

 

나만 해도, 오늘 저녁 그대가 신나는 일을 할 거라고 했을 때 같이 어울리고 싶지, 나중에 여유가 된다면 신나게 지나고 싶다는 이야기만 하고 있는 걸 들어주고 싶진 않다. 전에 이야기 했던 ‘카톡 남김말에 우울한 문장만 올리는 지인’은 그 문장을 보기만 해도 힘 빠져서 아예 첫 화면에 보이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뒀고 말이다. 이번 주말에 뭔가 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 노력이지, 이번 주말도 그저 겨우 버텨보는 건 노력이 아니라는 걸 꼭 기억해 두었으면 한다.

 

 

정리하자. 실연당했지만 여전히 상대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처럼 굴면 주변에서 로맨티스트 같다고 말해주긴 하겠지만, 사실 그들은 그 이별에 별 관심이 없으며 계속 ‘예전 연애’이야기만 하면 지겨워할 뿐이다. 예의상으로라도 힘내라고 말해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그러고 있으면 ‘정신 못 차리는 불쌍한 애’정도로 볼 뿐이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것 먹으며 지내기에도 아까운 시간을, 왜 거기서 마음에 곰팡이가 핀 사람처럼 암울하게 지내고 있는가. 완벽해야 할 필요도 없고, 멋져 보여야 할 필요도 없다. 자꾸 괴상하게 증폭시키고 왜곡시켜가며 자신도 ‘이게 진짜 있었던 일인지, 내가 상상하며 만들어 낸 일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위험지대까지 가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 삽 내려놓고 툭툭 털고 나오길 바란다. 좀 더 걷다 보면 길 여기저기에 즐비하게 마련되어 있을 소중한 인연들을, 거기 주저앉은 채 궁상떠느라 모두 놓치진 말았으면 한다. 내일도 늦다. 이월도 안 되는 청춘, 바로 지금부터 아낌없이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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