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이나 나이를 속이는 사람들에 대한 사연은 한 달에 한두 건 정도 빠짐없이 오고 있다. 만남 어플이나 랜덤채팅, 소개팅 어플 등에서 만난 상대가 ‘허세를 넘어선 거짓말’을 하는 사연이 제일 많고, 그 다음으로는 클럽이나 나이트, 또는 헌팅 등을 통해 만난 상대가 그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연들은 대개 거짓말이 다 밝혀진 이후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라, 내가 뭐라 말을 더하지 않아도 저절로 끝나곤 한다. 거짓말이 들통 나기 전까진 큰소리 뻥뻥 치던 상대가 이젠 허풍도 떨 수 없이 반성하는 마음으로 만나야 하니 흥미를 잃어 떠나거나, 이쪽이 거짓말에 한 번 놀란 까닭에 계속해서 의심하다 결국 와해되곤 한다.
이번 사연의 주인공인 M양 역시, 대략 9일 정도만 더 지나면 완전히 끝날 거라 난 예상한다. 거짓말이 한 번 들통 나고 난 뒤에도 상대가 관계를 이어가려 하는 경우와 아닌 경우는 그 박동소리가 다른데, M양 남친에게선 M양의 ‘의심’을 구실로 그만 손 털려 할 때의 박동소리가 난다. 그래서 그냥 둘까 하다가, 이런 주제로는 매뉴얼을 발행한 적 없어서 이렇게 발행하기로 했다. M양의 사연만이 아닌, ‘거짓말’에 대한 총체적인 이야기를 좀 살펴보자.
1. 주로 어떤 거짓말을 어떻게 하는가?
거의 대부분은 ‘학력’과 관련된 거짓말이다. 원서 썼다 떨어진 적 있는 학교를 ‘다니다 그만 뒀다’고 말한다거나, 대학엘 다니지 않았으면서 친구에게 들은 대학 얘기를 자신이 대학을 다닌 것처럼 말하는 식이다. A대를 나왔으면서 B대학을 나왔다고 말한다든가, 대학원에 등록한 적 없으면서 대학원을 다니다 그만 뒀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학력에 대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 현재의 생활이 불안정함.
- 현 상황과는 큰 차이가 있는 풍족한 미래에 대한 꿈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음.
- 자신의 유년기나 학창시절에 대해 믿기 어려울 정도의 과장된 이야기를 함.
등이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내세울만한 것이 없을 때 과거를 윤색해 꺼내게 되는데, 바로 그 지점에서 거짓말이 끼어든다고 할 수 있겠다.
또,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거짓말을 기반으로 둔 곳에서 다른 이야기들로 이어지는 까닭에, 나중에 하나가 들통 나더라도 전부가 속 시원히 해결되진 않는다. 수리영역만은 만점을 받을 정도로 수학을 잘해 A대학 특기생으로 입학했으며 고등학생 땐 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아 영국에도 다녀온 적 있다는 이야기를 한 사람이, 알고 보니 B대학 인문계열 중퇴생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학교만 속인 것이냐, 수능과 경시대회 얘기, 영국 얘기 등이 모두 거짓인 것이냐.”
라고 따져 묻기도 좀 그렇잖겠는가. 때문에 이쪽이 헤어질 마음이 없을 때에는, 학력만 거짓으로 치고 나머지는 ‘의심은 되지만 일단 믿어주는 걸로’라는 판정을 내리곤 한다.
2. 거짓말이 들통 난 뒤에도 못 헤어지는 사람들.
모르는 누군가가 집에 찾아왔을 때 문을 안 열어 주기는 쉬워도, 일단 안에 들여 한참 이야기를 나눈 상황에서 쫓아내기는 어려운 법이다. 또, 거짓말이 습관화 된 사람들은 그만큼 변명과 주제 돌리기에 능한데, 때문에 상대의 그것들에 넘어가 그저
‘앞으로는 진실된 태도로만 대하겠다니,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만나볼까?’
‘자신은 모든 고백을 다 했고, 이제부터는 못 믿으면 내 불신이 문제인 거라고 말하는데….’
‘거짓말 하고선 그간 그만큼 자신도 마음을 졸였다고 하니, 용서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라는 고민만 새로 하게 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 와중에 내게
“믿어봐도 괜찮은 걸까요?”
“한 번 그랬으니 또 그러진 않겠죠?”
“의심이 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만큼 말했는데 못 믿는 거냐고 할까봐 못 묻겠어요.”
라는 질문도 하곤 하는데, 난 그럴 경우
- 상대가 거짓말을 안 했어도 상대와 만났겠는가?
- 상대가 없으면 못 살 정도로 둘은 가까우며 의지가 되는가?
- 그저, 헤어지면 힘들까봐 못 헤어지는 것은 아닌가?
- 상대가 맹목적으로 다 받아주고 말상대를 해주기 때문에 좋은 것은 아닌가?
등의 지점들을 살펴보길 권하고 있다. 특히 저 ‘맹목적으로 다 받아주고 말상대를 해주기 때문’이라는 부분은, 꼭 세 번 다시 살펴보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쪽에게 잘보이기 위해 거짓말까지 하는 사람은 대개 맹목적으로 이쪽의 편을 들어주며 다정한 말들을 늘어놓기 마련인데, 그걸 상대의 인간적인 매력으로 오해해 계속 사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말하긴 좀 그렇지만, 나쁘게 보자면 상대의 호의와 다정함은 사기꾼들이 보이는 그것과 닮아 있는 경우가 많다. 정말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거짓말을 할 때는 당장 속여야 하니 그런 거고, 거짓말을 들킨 이후에는 얼른 용서를 받아야 하니 그런 것이다. 그들은 그러다가도 더는 사귈 마음이 없을 때 차단하거나, 비아냥거리거나, 적반하장의 태도로 저주를 하면 떠나는데, 난 그게 그들의 본모습에 더 가깝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M양 남친의 경우도 그렇다. M양은 그의 학력과 나이에 대한 거짓말을 한 번 용서해주기로 하고 넘어가 다시 만났는데, 그 뒤 남친의 우편함에서 가족이 아닌 다른 여자의 우편물이 발견됐다. 우편물을 거듭해서 볼 수 있었기에 오배송일 가능성은 없으며, 정황상 지금도 그 집에 같이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유부남인가? 돌싱인가?’하는 생각 때문에 패닉에 빠질 수 있으며, 상대에게 물어서라도 확인해야지 그냥 넘어갈 순 없을 것이다. M양이 남친에게 그 부분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말한 건 크게 문제될 일 없다는 얘기다. 동사무소에 가서 증명서까지 떼어 보여 달라고 한 건, 상대가 먼저 그러겠다고 할 때까지 잠시 기다렸으면 더 좋았을 일이긴 하지만, 여하튼 누구든 오해할 수 있는 이런 상황이라면 남친이 나서서 먼저 적극 해명하고 오해를 풀어주는 게 맞다.
하지만 M양의 남친은 자신의 의심 받는다는 것에 분노와 실망을 했고, 증명한다며 보여준 서류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있긴 했지만 아무튼 자기주장만 마치고는 이렇게 꼬였으니 더는 희망이 없다며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했다.
난 그가 낸 결론에 대찬성이다. 더 얘기하기엔 그의 주장이 너무 흔치않은 사례라 다 말할 순 없지만, 이렇게까지 복잡하고 여러 해명을 들어야 하는 관계는 그만 내려놨으면 한다. 학력과 나이에 대한 거짓말도 거짓말이지만,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보통의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고 부연설명을 더 들어야만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한 이 관계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상대의 해명을 들은 지금도 M양과 내 의심은 안 풀리지 않았는가. 달 하나 바뀔 때마다 상대의 양심고백을 새로 들어야 하거나 부연설명을 들어야만 대략 이해할 수 있는 관계는 유지하기 어려우니, 이렇게 어려운 길로는 가지 말았으면 한다.
3. 거짓말인지를 어떻게 알아냈어야 하나요?
학력에 대해 거짓말을 한 사람들은, 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주제를 돌리거나 말수가 급격히 적어지는 특징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할 때는 신나서 얘기하지만, 혹시나 자신이 모르는 학과 인원수나 건물이름, 동기나 선후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까봐 재빨리 말을 돌린다.
(1)
이쪽 – 거긴 한 학년에 몇 명이었어?
상대 – 별로 안 많아. **과가 많지 우리 과는 적었지.
(2)
이쪽 - ***관이 학교 끝 쪽에 있어?
상대 – 끝 쪽은 아니지. 건물은 진짜 다 별로야.
(3)
이쪽 – 동기들이랑은 연락 안 해?
상대 – 대학 때 인연이 다 그렇지 뭐. 배 안 고파?
대략 위와 같은 형태로, 대답을 회피하며 ‘긴 대화’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막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요즘은 SNS가 발달해 상대 SNS 들어가 댓글 단 사람의 링크만 따라가도 금방 파악할 수 있으니, 의심이 생긴다면 SNS를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또, 상대가 혹시 커플이나 유부남은 아닌지를 확인하는 건, 연인들의 황금시간대인 주말 동안 통화나 만남이 곤란한 시간을 체크해 본다거나, 상대의 집에 잠깐 방문해 본다거나, 상대의 친구나 지인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 보는 방법이 있다. 특히 상대의 친구나 지인과 만나는 건, 둘만의 관계에 함몰된 채 연애하는 것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니, 꼭 두루두루 만나보길 권한다.
M양의 경우 앞서 말했듯 상대에게 ‘증명서를 떼서 보여달라’며 직설적으로 요구를 했는데, 그러기보다는 ‘내가 당황한 부분’에 대해 털어놓는 것까지만 하는 게 가장 좋다. 그럼 이후 해명은 상대가 할 것이니 말이다.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증명해달라’는 이야기는, 혹 상대가 말로만 대충 설명하고 믿기를 바라며 넘어가려 할 때, 그때 꺼내길 권한다.
상대의 집에 들어가는 건, 그냥 아주 쉽게도 할 수 있다. 상대 동네에서 만나기로 한 뒤 치맥을 좀 먹고는, 오늘은 이쪽이 상대를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하자. 그러고는 상대의 집 앞에서, 화장실이 급한데 화장실만 잠시 써도 되냐고 물으면 된다. 그럼 집에 들어갈 수 있으며, 들어가선 우선 현관의 신발 한 번 보고, 화장실을 쓰면서는 칫솔 개수나 욕실 용품을 보고, 물 한 잔 마시겠다며 식기도 한 번 보면 된다. 들어갈 때 커피라도 하나 사서 들어가면 다 마신 후 버리겠다며 휴지통 상태도 볼 수 있는데, 탐정놀이를 권하려는 건 아니니 이런 건 이쯤만 설명하도록 하자.
상대의 거짓말로 인해 결국 다른 것들까지 의심하게 되어 헤어질 경우, 대개 상대는 이쪽의 ‘계속되는 불신’을 지적하며 떠나는 까닭에, 이쪽은
‘정말 내가 못 믿어서 이렇게 된 건가? 상대는 처음에 거짓말을 하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진실된 태도로 나를 대하려고 노력했던 건데, 내가 또 못 믿어서 헤어지게 되는 건가?’
하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그런 상황에 놓인 대원들에게, 난
“대개, 가볍게 만나 주목 받고 싶을 때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계속 같이 지내야 하는 직장의 동료에게는 거짓말하기 어렵지만, 어쩌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저녁을 같이 먹게 된 사람에겐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게 도착하는 사연들을 보면, ‘거짓말’과 연관된 사연은 처음에 꼭 이쪽이 아니라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었어도 비슷하게 진행되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상대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반했다거나 축적된 상대의 행동을 보며 신뢰하게 되었다기보다는, 상대의 연출에 넘어가거나 상대의 입에서 나오는 말만으로 이쪽이 상상을 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신뢰라는 건, 그간 진실하고 일관된 행동을 보인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권리 아니겠습니까? 허풍과 거짓말을 늘어놓던 사람이 ‘네가 날 믿지 못해서 떠난다’고 하는 건, 실제로는 이제 자신의 연출이 더는 먹히지 않아서 떠나는 경우가 8할 이상입니다. 부풀려서 말해도 다 들어주고 그만큼 대우해주던 것은 없어지고, 이젠 가장 사실적인 자기 모습으로 딱 그만큼의 대우를 받으며 연애를 해야 하니 흥미를 잃고 만 것입니다.
그러니 그가 무슨 변명을 대며 떠나든 거기에 너무 매달리지 마시고, 지금 보이는 상대의 모습이 그의 본모습과 가장 가깝다고 여기시길 바랍니다. 연인이라면, 한 쪽이 오해할 때 다른 쪽이 적극 나서서 오해를 풀어주려는 게 맞는 겁니다. 날 오해하고 의심했으니 더는 사귈 수 없다며 떠나는 건, 떠날 구실을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이해 가능한 진실한 사람 만나 둘의 목표를 설정하고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해명을 들어도 믿기 어려우며 또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해야 하는 사람과 만나느라 낭비하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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